출판사 리뷰
[시인의 산문]
내가 사는 소읍 의령 서쪽에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빗방울 화석이 있다.
떨어지는 각도 같은 것.
찰나의 몸짓을 음각하는 일 같은 것.
가여운 나의 마음을 화석에 가두었다.
구석이 오랜 그의 자리였죠
먼 곳에서 소식이 왔어요 부고가 왔어요
슬퍼해야 할지 잠시 생각해 봐요
그러니까 슬퍼졌어요
우리가 아는 사이였던가요
한 번도 본 적 없는 사람들이 너무 쉽게 죽어요
우리는 모르는 사람 하지만,
너무 쉬워요 이별이
첫 배냇저고리 같은
죽어서 더 조용한
눈이 커다란 인형인 줄 알았어요 담벼락 아래
노란 민들레처럼
한쪽 눈은 감고 다른 쪽 눈은 떴어요
한밤중에 아버지가 사다 주신 인형도 그랬어요, 찡긋
별이 빛나는 푸른 밤에
세상의 모든 슬픔
하품을 해요
― 「요요」 전문
꿈같은 거 꾸지 말고 당신한테 가지 말고
그냥 살까 하다가도
여자는 아이를 낳고 사과는 사과를 낳고
누는 누를 낳고
아이를 낳는 동안 구름은 흩어졌고 여자는
첨탑 위의 시계처럼 늙어갔네
눈을 감았다 뜨면
사과밭의 사과는 익어가고
전선 위
참새는 떨고
노래를 잊은 기타 줄은 흔들리고
노래는 의자에서 미끄러지고
사과가 익어가는 마을에는
은하수가 내리고
사랑 같은 거 하지 말고 당신한테 가지 말고
그냥 살까 하다가도
나는 나를 낳고
누는 누를 낳고
― 「사과는 사과를」 전문
작가 소개
지은이 : 주향숙
경남 진주에서 태어나 경상대학교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했다. 지금은 수학을 가르치며 살고 있다.
목차
제1부
요요13/사과는 사과를14/토마토16/스피카18/연필의 태도20/창살22/모자이크23/이재24/캘리포니아 학교26/페스츄리28/묘비명30/풍장31/사과나무 숲32/가좌동34/사월36/남극37/물거품처럼 나는 자꾸 말을38/그림자 일기40/솟대42/장마43/백야44
제2부
달맞이꽃47/평범하게 육교48/코스모스50/모메꽃51/침낭에 누워보기52/숨바꼭질하는 별을 보았니?54/시인55/자기나무56/개양벚꽃58/봄날59/지족60/수요일의 다큐62/교실63/푸에르토 라피세스64/첫눈66/벽조목67/스페인광장68/와디70/라디오71/통영72
제3부
밀양75/경사로76/구례78/안동79/훌륭한 식사80/조차(潮差)82/무동83/독립영화84/집시86/무밥87/국경의 밤88/몽골(夢骨)90/종이집91/남성동(南城洞)92/집으로 가는 길94/사진의 힘95/오타루96/꽃다발97/매물도98
해설 장예원(문학평론가)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