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4·9통일평화재단의 이창훈 사료실장이 인혁당재건위 사건으로 산화한 8인 열사의 삶을 재판기록, 유가족과 관련자들의 증언, 신문 기사를 비롯한 여러 자료를 수집하고 취재하여 약전(略傳)으로 구성한 것이다. 2011년부터 2016년까지 4·9통일평화재단에서 진행한 인혁당 관련자 45명을 대상으로 한 400여 시간의 구술사업과 이후 현재까지 지속적으로 8인 열사들의 유가족을 대상으로 인터뷰를 진행해 열사들의 성장기와 개별적 생각들을 모으면서 사라져가는 열사들의 자료를 소중히 챙겨서 이 책을 집필하였다.
출판사 리뷰
유신 쿠데타와 독재가 남긴 깊은 상처, ‘인혁당재건위 사건’
어두운 과거가 여전히 반복되는 오늘, 우리는 그날 8인의 사형수를 기억해야 한다.
1972년 10월 17일 박정희는 위헌적 계엄과 국회해산 및 헌법정지 등을 골자로 하는 대통령 특별선언을 발표하며 1인 독재 집권을 영구화하기 위한 유신쿠데타를 일으켰다. 그러자 학생, 종교인을 필두로 반유신 민주화 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며 유신권력에 대항했는데, 박정희는 유신체제를 수호하기 위해 온갖 수단 방법을 동원했다. ‘인혁당재건위 사건’은 1974년 박정희 정권이 유신독재에 대한 학생과 국민의 반발을 무마하기 위해 조작한 사건이다. 잔혹한 구타와 고문을 통해 ‘인민혁명당’이라는 명칭에서부터 모든 내용이 거짓으로 만들어진 심문조서로 재판이 진행돼 1975년 4월 8일 8명에게 사형이, 7명에게 무기징역 등 총 25명에게 중형이 선고됐고, 형이 선고된 지 채 24시간이 안 된 4월 9일 새벽 4시 55분부터 8명의 사형이 차례로 집행됐다. 박정희 독재의 대표적 ‘사법살인’이었다. 이들에게 무죄임을 확정시켜준 명예회복은 2007년 1월 23일에야 이뤄졌다. 2025년 그 ‘사법살인’ 50년이 되는 해다.
이 책은 4·9통일평화재단의 이창훈 사료실장이 인혁당재건위 사건으로 산화한 8인 열사의 삶을 재판기록, 유가족과 관련자들의 증언, 신문 기사를 비롯한 여러 자료를 수집하고 취재하여 약전(略傳)으로 구성한 것이다. 2011년부터 2016년까지 4·9통일평화재단에서 진행한 인혁당 관련자 45명을 대상으로 한 400여 시간의 구술사업과 이후 현재까지 지속적으로 8인 열사들의 유가족을 대상으로 인터뷰를 진행해 열사들의 성장기와 개별적 생각들을 모으면서 사라져가는 열사들의 자료를 소중히 챙겨서 이 책을 집필하였다.
어두웠던 과거의 기록이 미래의 ‘불의한 권력’을 막아 주기를!
저자는 이 책의 집필 이유 중 하나로 “독재권력에 의해 무고한 생명이 목숨을 잃는 과거로 돌아갈 수 없다는 점을 명확히 하고 싶었다”라고 말한다. 저자는 “지난해 12월에 일어난 불법 계엄 쿠데타 시도는 ‘이제는 사라졌다고 본 불의의 역사’가 44년 만에 재현된 것”이라며 “그 내란이 성공하지 못한 데에는, 불의에 대한 사회적 기억이 그나마 존재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저자는 이 책이 미래 어느 시점에서 일어날지도 모르는 ‘불의’를 막아내는 역사 기록으로 남기를 바란다고 했다.
8인의 열사들, 그들은 어떤 사람이었을까?
8인의 열사, 그들이 살아온 1930년대부터 1970년대는 우리 민족이 일제 강점과 분단, 독재와 같은 여러 모순에 허덕이던 시대였다. 1923~1944년에 태어난 열사들은 대부분 해방 전 일제를 경험했다. 해방 이후에도 친일파가 득세하는 세상을 보면서 뭔가 잘못됐다는 느낌을 공통분모로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해방 정국과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민족 통일과 식민지 유산 청산을 위해, 학교 교사로 언론사 기자로 학생으로 각자 서 있는 자리에서 열심히 노력했다. 그리고 사월혁명을 통해 독재와 불의를 일소하는 새로운 세상을 꿈꿨던 젊은 그들은 박정희라는 새로운 독재 권력의 폭압에도 굴하지 않고 스스로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며 살아갔다. 박정희 정권은 그들을 ‘간첩’으로 몰아갔지만, 열사들 마음 속에는 진정한 민주주의의 꿈이 있었다. 저자는 이 책을 “친일파와 독재자에 따르지 않고 그들의 세상에 저항했던 이들에 대한 기록”이라고 정리한다.
시대와 교류하며 시대를 넘어서려 했던 열사들의 기록!
저자는 “이 약전은 ‘혁신계 인명사전’이라고 할 정도로 혁신계 인물들이 많이 등장합니다. 이 책을 통해 열사들의 활발한 활동은 물론이고, 그 당시 혁신계 활동의 큰 그림도 볼 수 있을 것입니다.”라고 이 책을 소개한다. 그의 말처럼 이 책에는 1950~1970년대에 활동하던 혁신계 인물 500여 명이 등장한다. 모두 열사들과 직간접적으로 인연을 맺은 인물이다. 그만큼 열사들은 활발하게 ‘시대’와 교류하면서 ‘시대를 넘어서려’ 했다. 여러 인물들과 교류하던 열사들의 이야기는 1950~1970년대를 시대 배경으로 쓰여진 한 권의 소설을 읽는 것처럼 흥미진진하다.
추천사를 쓴 민족문제연구소 임헌영 소장은 이 책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이 책은 인혁당 8인 열사의 가장 정확한 전기를 씨줄로 삼고 날줄로는 현대 한국 진보운동가들의 형성 계보를 엮어주고 있기에 마치 『삼국지』나 『수호전』처럼 흥미진진하면서도 님 웨일즈의 『아리랑』이나 김사량의 『노마만리』의 파란만장한 서사구조를 느끼게도 해준다. 그런가 하면 8인 열사와 함께 했던 빛나는 변혁투쟁사의 성좌를 형성했던 인물들이 열망했던 민족 주체적인 독립국가와 민주사회 실현을 위한 고난의 인생역정들은 마치 항일독립투사들의 발자취나 일제 암흑통치 시기 경성콤그룹의 위기일발 모험을 재연하는 듯한 감동을 자아내기도 한다. 이런데다가 5·16쿠데타 세력의 암흑기 아래서 투쟁 노선을 둘러싼 논쟁과 그 진로 모색의 차이가 빚어낸 생사의 운명의 갈림길은 인생론과 역사인식의 경지로 진입하는 진지성을 통하여 변혁투사들이 지녔던 고뇌의 심연을 이해하도록 만들어주기도 한다.”
과거를 지우려고 하는 힘과 맞선 시간들!
저자는 2007년 인혁당재건위 사건의 재심 무죄 판결이 나온 뒤 2011년 4·9통일평화재단에 사료실장으로 합류하여 ‘인민혁명당과 혁신계의 활동’ 주제로 구술사업을 진행했다. 열사들을 잘 아는 45명을 대상으로 한 구술사업은 2016년까지 총 400여 시간 동안 진행됐다. 저자는 “구술에 응한 분들은 자신이 한 발언 하나 때문에 동료가 고초를 당하는 모습을 여러번 본 분들이어서 처음에는 인터뷰를 한사코 거절하는 경우도 많았다”며 “그러나 인혁 열사들을 기리는 4·9재단이 구술사업 주체로 나선 덕분에 많은 관계자들이 신뢰를 가지고 입을 열었다”고 말한다. 폭압적인 독재권력의 악행은 오랜 시간이 흘렀어도 그 기억조차 입에 담고 싶지 않게 한 것이다. 저자는 “당시 인터뷰를 한 분들 중 상당수가 세상을 떠났다”며 “4·9재단 활동을 통해 그냥 묻힐 수도 있는 역사의 한 단면을 채록할 수 있었던 것은 큰 다행”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런 노력에도 독재권력이 지우고자 했던 열사들의 행적을 찾는 데는 어려움이 있었다. 독재정권이 정권 차원에서 고문 등을 가한 흔적을 조직적으로 없애려고 했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1997년 여야 정권교체를 앞두고 중앙정보부의 후신인 내곡동 안전기획부에서는 검은 연기가 수십일 타올랐다는 언론보도가 있었습니다. 독재정권에서 자행된 수많은 불법기록을 태운 건데요. 8인 열사에 대한 불법행위의 기록도 이때 많이 사라졌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구술사업이 종료된 이후로도 현재까지 지속적으로 8인 열사들의 유가족을 대상으로 인터뷰를 진행해 열사들의 성장기와 개별적 생각들을 모으면서 사라져가는 열사들의 자료를 소중히 챙겨서 이 책을 집필하였다. 이 책에는 8인의 열사들의 삶뿐만 아니라 저자의 인생도 오롯이 담겨있다.
그들에게 아직 봄은 오지 않았다
저자는 과거의 진실을 찾아 기록하는 것 외에도 현재 인혁당 관련 생존자와 가족들의 어려움에도 주목하고 있다. 저자의 노력은 이 책의 맺음말, ‘국가는 아무일도 하지 않았다’에 다음과 같이 쓰여있다.
“2007년 1월 23일 법원이 인혁당 사건의 무죄를 선고하고 국가 배상금을 지급한다. 하지만
2013년 2월 25일 국가는 인혁당 사건 관련자들을 대상으로 한 ‘부당이득금 반환청구 소송’을 제기하고 나선다. 당시 사건 관련 생존자 국가 손배소송에서 대법원이 사형수 8인에 대한 판결과 달리 ‘장기간 세월의 경과로 인해 이자 상정일을 원 사건의 선고확정일이 아닌 재심 변론 종결일로 정한다’는 판결을 내린다. 사건 관련자들은 이미 사용하고 없는 배상금의 일부를 곧바로 반환해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반환하지 못한 금액에 대해서는 법정 이자 20퍼센트가 매년 붙었다. 그러던 일이 지난 2022년 법원의 화해 권고조치를 법무부가 받아들이면서 끝난 것으로 세간에는 알려져 있다. 하지만 끝난 것이 아니었다. 당시 법원의 권고사항은 ‘국가배상금의 이자를 뺀 원금만 받으라’는 것이었다. 화해 권고 판결을 받은 사람은 원금을 갚기 위해 집을 팔았고, 화해 권고 판결을 받지 못한 사람은 지금도 신용불량자 신세를 면하지 못하고 있다.
국제적으로도 우리나라의 1975년 4월 9일은 ‘사법사상 암흑의 날’이라는 불명예를 받았다. 32년간 붙었던 국제적 망신딱지를 완전히 떼지도 못하고, 그 딱지 위에 ‘무죄’라는 글자만 써넣은 것이다. 이런 불명예스러운 일을 완전히 제거하기 위해 국가적 차원의 사업들이 진행되어야 한다.”
다시, 봄은 왔으나 우리에게 아직 봄은 오지 않았다
이 책의 제목 《다시, 봄은 왔으나》는 어두웠던 과거가 반복되는 혼돈의 현재에 대한 저자의 깊은 고민을 담고 있다. 저자는 다음과 같은 말로 이 책을 마무리한다.
“‘역사는 반복된다’는 말은 ‘불의를 경험하고도 교훈을 얻지 못하고 기억하지 않는다면 그 불의를 다시 겪을 수 있다’는 일종의 경고다. 내 대에 반복될 수 있고, 내 후대에서 반복될 수 있다. 이 책을 마감하는 순간에 ‘12 ·3 비상계엄’이 선포되었다. 이제는 사라졌다고 본 ‘불의의 역사’가 44년만에 같은 일이 재현된 것이다. 다만 그 불의에 대한 사회적 기억이 그나마 존재했기에 내란은 성공하지 못했다. 하지만 불의는 재현되었다. 작은 틈도 용서하지 않는 처절한 반성이 우리사회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실은 아무리 지우거나 불태우거나 거짓 증언으로 위장해도 사라지지 않는다는 걸 입증하고자 나선 4·9통일평화재단은 2011년에서 2016년까지 ‘인민혁명당과 혁신계의 활동’ 관련자 45명을 400여 시간에 걸쳐 인터뷰를 진행했고, 그 이후에도 계속 보충자료 수집에 정진해 왔는데 그 주역은 이창훈이었다. 이 소중하고 방대한 자료를 기초로 애초에 8명의 열사(서도원, 도예종, 송상진, 우홍선, 하재완, 이수병, 김용원, 여정남)들 각자의 평전을 펴낼 작정이었으나 여러 여건상 한 권으로 축약한 게 바로 이 저서다. _ 추천사 중에서
50년 전 4월 9일 여덟 명의 생목숨이 사라졌다. 그날 새벽, 서대문에 위치한 서울구치소 사형장에서는 놀랍게도 전날인 4월 8일 대법원에서 사형이 확정된 인혁당재건위 사건 ‘사형수 8인’의 형이 집행되고 있었다.
‘4시 55분 서도원, 5시 30분 김용원, 6시 05분 이수병, 6시 35분 우홍선, 7시 05분 송상진, 7시 35분 여정남, 8시 05분 하재완, 8시 30분 도예종’
위 사형집행 시작 시간은 국방부 장관의 ‘사형집행명령서’에 의해 사형이 집행된 후, 서울구치소에서 작성한 ‘사형집행명령부’에 기록된 시간이다. 이렇게 형장의 이슬로 사라져야 했던 이들은 과연 누구였던가?
그들은 마지막 순간 죽음이 목전에 왔을 때 한결같이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원한다’라고 했다. 사형 현장에 있었던 이들이 지인들을 통해 전해온 말이다. 유언조차 거짓으로 작성되었던 그 시절은 어느 시인의 말처럼 ‘겨울공화국’이고 ‘동토의 땅’이었다. 그 얼어붙은 땅은 수십 년이 지나 녹았으나, 그동안 쌓인 겨울의 잔상들은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아직도 이들에게 간첩이라 부르는 이들이 있고, 이들이 가졌던 신념을 기억해 주는 이들은 점점 사라지고 있다. 겨울은 사라졌으나 아직 이들에게 봄은 오지 않았다.
작가 소개
지은이 : 이창훈
강원도 평창에서 태어나 충북 제천에서 성장하여 경희대학교를 졸업한 후, 경희총민주동문회에 몸담으면서 민족민주운동에 참여해 왔다.2011년부터는 4·9통일평화재단 사료실장으로 일하면서 박중기 선생, 시노트 신부, 권양섭 선생, 박정기 선생, 권재혁 선생 등 이 땅의 민주화와 통일운동에 족적을 남긴 인물들의 전기 자료집 백서 등을 펴내는 일에 참여하였으며, 2015년에는 『박정희 장군, 나를 꼭 죽여야겠소』(김학민⋅이창훈 공저), 2020년에는 『김말룡 평전』를 펴냈다.
목차
책이 나오기까지
추천사_1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 소장
추천사_2 김형태 천주교인권위원회 이사장
머리말_사법사상 암흑의 날
서도원
창녕 대합면/진주고보/대구매일신문/낙동강 전투/청구대학/유한종·도예종과의 만남/민민청경북맹부 위원장/통일을 하자/영어의 몸이 되어/불령선인/핵고아재/계속되는 사회운동/경락연구회/후퇴냐 전진이냐/마지막 인사말
도예종
교육자로 성장하다/대구대학/영주교육감/사월혁명의 시작, 대구/경북시국대책위원회/경북민통련/2대 악법 반대투쟁/남북학생회담/5 ·16 쿠데타/1차 인혁당 사건/이상배/이수병/김배영 사건/영남일보 지사장/적화통일
송상진
야로 송씨/대구사범학교/김진생/도예종/민민청 경북맹부 사무국장/괴상한 법/양봉업/용호늪/민주수호경북협의회/8 ·15등산회/국민의 평등과 자유를 위해/전재권·이태환과의 인연/시신탈취/삯바느질
우홍선
언양 삼총사/신불산/육군종합학교 31기/강순희/통일청년회/7 ·29 선거/통민청 중앙위원장/소멸시효/변절/민족통일촉진회/경북·서울지도부의 실체/와허증/정보부 6국에서 강제연행 48시간/광고
하재완
동요 ‘산토끼’/전두환/집안사람들/군복무 시절/이영교/사월혁명/양조장/가정교사/사료파동/전태일 1주기 추모사/대학노트 한 권/『아항, 그래요!』/남은 이들
이수병
조선지물/끊이지 않는 전쟁/부산사범학교/이종률 교수/신흥대학/사월혁명/민족통일연구회/한미경제협정반대운동/500대 1의 민족일보 공채시험/통일의 광장/서울교도소/옥중 단식투쟁/호소문/감형/월야사매/출옥/이정숙/다시영어의 몸이되다/46년 만의 졸업장
김용원
교토에서 태어나/고향에 정착하기/부산으로 유학/부산고등학교/김춘복 ·김금수와의 인연/대입검정고시/첫 번째 구속/장학금/휴학과 입대/혁명과 쿠데타/암중모색/결
혼과 취업/1964년 6 ·3 항쟁과 동양중고/두 번째 구속/가난했지만 달콤했던 신혼생활/다시 만나는 암장 회원들/새로운 인연들/삼락일어학원/유신쿠데타/박석무/여정남의 상경/고문으로 작성된 진술서/쥐약
여정남
대처승의 아들/2 ·28 민주운동과 사월혁명/교원노조 지지 투쟁/경북고 민통련/5 ·16 쿠데타와 대학가/맥령(보릿고개)/1964년 한일회담 반대투쟁/1965년 한일협정 비준 반대투쟁/전역과 복학/안재구와 이재문/정진회의 학원민주화 투쟁/구속과 제적 그리고 수배/계엄령 위반으로 다시 구속/작은 승리/서울로 간다/현승효와 심오석
맺음말_ 국가는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
참고문헌
8인 연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