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서애 류성룡은 5천 년 한국사에서 보기 드문 리더십의 소유자였다. 서애 리더십의 요체는 중용의 세 측면인 ‘성, 용, 공’이다. 서애는 ‘통찰, 자강, 방법, 준비, 유연, 권력 비이데올로기화, 그리고 물러남’의 일곱 가지 리더십으로 중용을 실천했다. 서애는 그 무엇이 남달랐을까? 그 근원을 더듬기 위해 서애의 시심을 들여다본다.우리 정치에서도 정치가 대결이 아닌 경쟁인 시대가 있었다. 그 ‘경쟁의 시대’도 간헐적으로 ‘대결’로 돌변하곤 했지만, 그래도 상당 기간 큰 다툼 없이 온전하게 경쟁이 유지되었다. 그 시대가 바로 ‘류성룡 시대’였다. 1589년 기축옥사(정여립의 난)에서 송강(松江) 정철(鄭澈, 1536~1593)이 보인 동인(東人) 숙청의 참혹한 ‘대결’도 있었지만 그것은 일시에 불과했고, 전반적으로는 서애(西厓) 류성룡(柳成龍, 1542~1607)이 조정에 들어서는 선조 초기(1567년)에서 류성룡이 물러나는 1598년까지 30여 년은 동인과 서인(西人)이 여와 야를 서로 번갈아 하는, 조선조 역사에서 드물게 보는 경쟁의 시대였다. 무엇보다 임진왜란이란 엄청난 전쟁을 치르면서도, 다른 역사에서 으레 있었고 흔히 볼 수 있었던 내부의 예의 그 적전(敵前) 싸움이란 것 이 류성룡 주도의 이 시기에는 없었다. _서문
당파가 어찌 류성룡 시대만이랴. 문제는 당파 싸움(오늘날로 말하면 정파 투쟁 혹은 정당 간 싸움)을 하면서도 중용을 하는 정치인의 존재 여부다. 그 존재로서 류성룡의 중용을 살펴보고, 그리고 그것이 어떻게 가능했으며, 어떤 형태를 띠었는가를 보는 것이다. 그것은 앞서 잠시 언급한 그의 심덕(心德)이 근거하는 바를 좇는 것이고, 그 심덕을 다시 사서(四書) 『중용』에 의거해 설명하는 것이다. 사서 『중용』의 키노트(keynote), 요지(要旨)며 핵심은 역시 성(誠)이다. 이 성(誠)에는 용(容)과 공(公)이 따른다. 이 성·용·공 세 개의 키워드(keyword), 빗장을 풀어 주는 열쇠어를 가지고 류성룡의 심덕 리더십이 어떻게 이루어질 수 있었는가를 보려는 것이다. _제1장
‘징비’의 의미는 단순하고도 명료하다. ‘징(懲)’은 잘못을 깨우쳐 뉘우치도록 징계한다는 것이고, ‘비(毖)’는 후환이 없도록, 또다시 근심 걱정하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삼가고 경계한다는 것이다. (…) 모든 잘못이 ‘나’에게 있다고 하면 ‘나’는 반성한다는 것이고, 다시는 그런 과오를 저지르지 않도록 경계한다는 것이고, 끊임없이 새 방책을 강구하는 것이며, 그리하여 새로운 미래를 열어 간다는 것이다. 모든 잘못, 모든 책임이 ‘나에게 있다’와 ‘그들에게 있다’는 이렇게 미래 지향성과 과거 지향성의 엄청난 차이를 가져다준다. 『징비록』의 징비 정신은 미래 지향의 원형이다. _제2장
작가 소개
지은이 : 송복
1938년 경남 김해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사상계』 기자로 있다가 하와이 대학교에서 사회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서울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고, 연세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로 정년 퇴임했다. 류성룡과 이순신의 인연을 적은 『위대한 만남』,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강조한 『특혜와 책임』이 시중의 화제가 되었던 저술이다. 현재 연세대학교 명예교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