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등단 이후 이 땅에서 소외당한 채 고통을 참고 사는 사람의 모습을 치열하게 그려내고 있는 홍광석 작가의 신작 소설집이다. 소설 『유별留別의 시詩가 걸린 풍경』에는 히로시마 원폭 피해자와 10·28 건대항쟁 희생자 등을 비롯한 역사의 현장에서 직간접적으로 고통받은 인물들을 형상화한 9편의 단편을 싣고 있다. 그 가운데 「히로시마의 버섯구름」, 「내 피에 흐르는 검은 비」, 「그해 유월 그믐날」, 「바우가 넘은 고개」는 히로시마 원폭 피해자들의 원초적인 체험의 공간을 그리고 있는데, 개인이 선택한 것이 아닌 외부에서 일방적으로 주어진 시간의 정서적 유대 공간을 아프고도 애잔하게 그리고 있다.심지어 친정 언니들까지 나서서 병원에 입원시키라고 했으나 재훈은 “자식들이 그 모양인데 나까지 선희를 서운하게 만들면 안 되겠지요. 내가 이해하고 거두어야지 선희를 더 아프게 하면 도리가 아닙니다. 집사람의 병이 낫고 옛날처럼 티없이 웃을 날이 오겠지 하는 희망을 지키며 기다립니다”라는 말을 남겼다. 그런 말을 들은 아내 미란도 “재훈씨 말이 감동이네요.” 하며 눈물을 닦았다. “왜 히로시마 이야기를 넘어 미국과 일본을 이야기하느냐고 묻겠지. 나는 우리 가족의 비극, 선희의 죽음이 단순한 개인의 운명이 아니라 천구백사십오년 팔월 육일 아침에 시작되었다고 믿어. 나라를 잃고 유랑의 삶을 살았던 백성들이 원폭이라는 비극적인 사건에서 피할 수 없었던 거야. 듣기에 따라서는 많이 황당할 수 있겠지. 그렇지만 강제징용이나 정신대로 끌려간 여성들의 아픈 운명은 너도 알고 있을 거야. 같은 시대의 비극이지. 그럼에도 정부가 비극적인 역사에 너무 무관심했고 일본에는 늘 저자세를 보여 왔어.”자신의 불행이 자신의 잘못 때문이 아니라는 재훈의 확신은 많은 공부와 깊은 성찰과 깨달음의 결과였다.“내 주장이 무리일 수 있겠지. 그러나 선희를 생각하면 분노와 함께 누군가를 원망하지 않고는 배길 수 없어. 얼마 전 일본 최고 재판소는 한국에 거주하는 피해자들에게도 의료비를 지급하라는 판결을 내렸다고 들었지만, 그런 판결도 우리에게는 그림의 떡이야. 당시 히로시마에 살았다는 인우보증을 서줄 사람을 찾을 수 없고, 더구나 해방 후 한국에서 태어난 선희 같은 경우는 원폭과 인과관계를 입증할 증거도 없고, 의학적으로 증명해줄 증인도 없다. 원폭 피해는 본인에게 그칠 뿐 후손에게 영향이 없다는 미국이 설치한 원폭피해자위원회(ABCC)의 공식적인 입장을 뒤집을 방법도 없어. 아무튼 소송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점도 그렇지만 그보다는 의학적으로 증명할 수 없다는 사실이 너무 분한 거야. 일본에 책임을 물을 수 없고 미국 탓을 할 수도 없고 나라를 빼앗기고 자기 백성을 일본으로 내몰았던 조상들을 원망한다고 풀리지 않고…, 전적으로 개인의 문제가 된 현실이 너무 아프게 한다.” (「히로시마의 버섯구름」)
내가 알아본 바로도 당시 히로시마 부근에서 살았다는 사실, 그것도 원폭으로 당한 히로시마 변두리에서 살았다는 사실만으로 외가 식구들이 법률적으로 보호받을만한 증거는 될 수 없었다. 더구나 히로시마 근처에도 가지 않은 내가 원폭과 연관성이 있다고 인정받을 길은 찾을 수 없었다. “당시 나라 잃은 히로시마에서 우리 백성들이 최소 삼만 명가량 사망했다고 들었다. 겨우 목숨을 건졌으나 대대로 이어지는 고통에 시달린 사람의 숫자는 아무도 모른다. 일본은 물론 해방된 우리나라도 실태조사조차 하지 않았기 때문이지. 그런데 이제 그럴 수밖에 없었던 원인은 묻히고 왜곡되었으며, 죽은 이들의 원혼을 달랜다는 의식은 엉뚱하게 평화를 강조하는 정치적 행사로 변질되었다. 주희야, 왜 하필 나인가 하는 슬픔과 분노와 원망에서 벗어나야 한다. 사랑은 하느님이 우리에게 가르쳐주신 선한 길이다. 하느님을 배반한 인간들이 만든 사악한 죄, 그 죄의 불을 맞은 너와 내가 겪었던 아픔만이라도 글로 써서 하느님께 바쳐라. 하느님은 우리 주희를 버리지 않으실 거야.” 원자폭탄, 화염과 폭풍, 검은 비, 그리고 그 물을 마셨던 외할머니.찰나의 빛이 새긴 깊은 파장, 천형으로 여겼던 자신의 깊은 상처를 죽은 예수를 품에 안은 성모 마리아의 모습에 공감하며 소망원을 세웠던 외할머니.자신이 당한 아픔과 고통을 자신이 가진 것을 다 바치는 헌신과 희생과 사랑으로 ‘승화’시켰단 말인가! (「내 피에 흐르는 검은 비」)
화상 때문에 껍질이 벗겨 축 늘어진 사람, 성별을 구별할 수 없는 자식의 시체를 끌고 오는 어머니, 자신도 절뚝거리면서 얼굴 한 면이 데어 눈이 보이지 않은 아이를 업고 가는 남자, 짝이 맞지 않은 ‘게다’를 신고 혼자 말을 하며 걷는 할머니….지금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가고자 하는 곳이 어디인지 아는 사람도 없어 보였다. 어떻게든 살겠다고 동물적인 감각에 따라 움직이는 넝마 같은 몰골들, 움직이는 시체였다.한쪽에서는 물을 찾는 절규가 심장을 터지게 했다. 죽어가는 사람 숫자도 늘었다. 주선은 가만히 일어나 다리를 움직여 봤다. 정작 아픈 곳은 목덜미 그리고 등판이었다. 그러나 화상은 아니었다. 폭풍에 날린 무언가에 맞은 상처였다. 그래도 상처의 겉이 살짝 말라가는 중이었던지 몸을 움직이자 마른 곳이 갈라지면서 눈에 불이 번쩍 일고 현기증이 났다.고통에 일그러진 사람들의 기나긴 행렬에서 매캐한 냄새와 비릿한 피내음, 기분 나쁜 살벌함, 그리고 절망이 교차하는 공기 속에서 누굴 붙잡고 시내의 형편을 물을 수도 없었다. 주변에 숨이 끊어진 사람도 많았다. 여기저기 쓰러진 시체는 군인들이 ‘구루마’를 끌고 다니며 치우고 있었다. (「그해 유월 그믐날」)
작가 소개
지은이 : 홍광석
전남 해남출생 조선대학교 졸업 평범한 교사로 1980년 광주민중항쟁을 겪은 후, YMCA 교사협의회 활동에 참여, 1986년 교육민주화선언, 1989년 전교조 결성에 참여하여 곡성종고에 재직 중 해임되었으며, 전교조 전남지부 사무국장, 지부장으로 일했음.1991년 강경대 학생이 백골단에 타살당한 후, 10여 명의 젊은이가 독재정권에 항거하여 분신했던, 소위 ‘분신정국’ 당시 광주전남 민주연합 대변인으로 광주에서 분신한 네 분 열사의 임종을 지켜보고 장례식을 주도했으며, 그 사건이 빌미가 되어 실형을 받음(이후 1998년 사면 복권되어 10년 만에 복직).1996년과 1997년에는 최초로 정부가 지원했던 5^18 광주민중항쟁 행사위원회 사무처장을 맡아 공식행사의 틀을 잡았으며, 1996년에는 ‘겨레의 딸 자주의 불꽃 박승희열사추모사업회’ 초대 회장과 2014년 ‘사단 법인 박승희정신계승사업회’ 초대 이사장을 맡기도 했음.한편, 혼자서도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글쓰기에 도전하여 늦깎이로 1993년 광주매일 신춘문예 동화 독다리의 침묵, 1996년 광주일보 신춘문예 단편소설 미망의 강이 당선되어 문단의 말석을 차지함.2003년, 장편소설 『회소곡』 출간.2012년, 산문집 『아내의 뜨락』출간.2020년, 장편소설 『고원의 강』 출간.2022년, 장편소설 『회소곡』 재발간.2023년, 소설집 『미망의 강』 출간.2025년, 소설집 『유별의 詩가 걸린 풍경』출간.현재 나주의 산골에서 농사와 글쓰기 여행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