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엉뚱하고 발칙한 예측불허의 전개, 평행우주를 구현한 듯 나란한 네 가지 이야기, 구제불능이라 더 사랑스러운 캐릭터, 고풍스러움으로 무장한 특유의 스타일… 전무후무한 개성으로 사랑받아온 모리미 도미히코의 대표작 《다다미 넉 장 반 신화대계》가 한국어판 출간 17년 만에 전면개정판으로 다시 태어났다. 문고본 출간 당시 작가가 직접 개고한 내용을 충실히 반영했으며, 번역자 권영주 또한 전체 원고를 새로 가다듬었다. 동명의 애니메이션 캐릭터 디자인을 담당한 나카무라 유스케의 일러스트로 꾸민 표지도 눈길을 사로잡는다. 기존 독자에게는 새로운 감동과 즐거움을, 첫 독자에게는 신선한 충격과 재미를 선사할 것이다.대학 3학년 봄까지 이 년간, 실익 있는 일은 하나도 하지 않았노라고 단언해두련다. 이성과의 건전한 교제, 학업 정진, 육체 단련 등 사회에 유익한 인재가 되기 위한 포석을 쏙쏙 빼버리고 이성으로부터의 고립, 학업 방기, 육체의 쇠약화 등 깔지 않아도 되는 포석만 족족 골라 깔아댄 것은 어인 까닭인가. 책임자를 추궁할 필요가 있다. 책임자는 어디 있나.
오즈와 나의 만남에서 이 년을 훌쩍 건너뛴다.3학년이 된 5월 말이었다. 나는 사랑하는 다다미 넉 장 반에 앉아 가증스러운 오즈와 마주 노려보고 있었다. 내가 기고하는 곳은 시모가모 이즈미가와초에 있는 시모가모 유스이 장이라는 하숙이었다. 일설에 따르면 막부 말기의 혼란기에 불에 탔다 재건된 이래로 바뀐 데가 없다고 한다. (…)그날 밤, 오즈가 하숙에 놀러왔다. 둘이 음울하게 술을 마셨다. “먹을 것 좀 주세요”라고 하기에 핫플레이트에 어육 완자를 구워주자, 딱 한 입 먹고 ‘제대로 된 고기가 먹고 싶다’ ‘파 소금장을 얹은 소 혀가 먹고 싶다’ 하고 사치스러운 소리를 했다. 울화통이 터져 지글지글 구워진 뜨거운 완자를 입에 쑤셔 넣어주자 조용히 눈물을 흘리기에 용서해주었다.
스승님이 그렇게 날카로운 표정을 지으면 어쩐지 고귀함이 느껴진다. 시모가모 유스이 장처럼 무너지기 일보직전인 다다미 넉 장 반에는 전혀 걸맞지 않고, 어느 유서 깊은 가문의 젊은 도련님이 세토 내해를 항해하던 중에 난파당해 이 누추한 다다미 넉 장 반이라는 고도에 표류한 것처럼만 보였다. 그렇건만 스승님은 낡아 후줄근해진 유카타를 버리지 않고, 육수로 삶은 듯한 다다미를 깐 넉 장 반에 눌러앉아 있었다. “가능성이라는 말을 무한정으로 쓰면 아니 되는 법. 우리라는 존재를 규정하는 것은 우리가 지닌 가능성이 아니라 우리가 지닌 불가능성이다.”
작가 소개
지은이 : 모리미 토미히코
1979년 나라 현 출생. 교토 대학 농학부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석사과정을 수료했다. 대학원 재학중이던 2003년 《태양의 탑》으로 제15회 일본판타지노벨대상을 수상하며 소설가로 데뷔한다. 2006년 작품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는 제137회 나오키상 후보, 제4회 서점대상 2위, 제20회 야마모토슈고로상 수상으로 뜨겁게 주목받았다. 이후로도 《유정천 가족》 《요이야마 만화경》 《펭귄 하이웨이》 《거룩한 게으름뱅이의 모험》 등 선보이는 작품마다 주요 문학상을 휩쓸고 베스트셀러에 등극하며 평단이 추천하고 독자가 열광하는 작가, 일본 문단의 미래를 이끌 작가로 우뚝 섰다. 교토를 배경으로 하는 작품이 많은 점, 현실과 가상의 경계가 모호한 환상성 짙은 이야기, 예스러운 단어나 표현으로 고아함을 높이는 ‘의고체’ 스타일은 모리미 도미히코 문학 특유의 멋과 맛이라 칭해진다. 《다다미 넉 장 반 타임머신 블루스》는 무려 16년 만에 탄생한 《다다미 넉 장 반 신화대계》의 속편. 모리미 도미히코와 극작가 우에다 마코토의 컬래버레이션이라는 사실로도 큰 화제를 모았다. 원안이 된 희곡 〈서머 타임머신 블루스〉의 유쾌하고 독특한 설정, 그 위에서 한층 자유로이 활개 치는 ‘다다미 넉 장 반’ 캐릭터들. 두 매력의 융합이 빚어낸 완벽한 속편이라는 극찬이 줄을 이었고, 단숨에 10만 부 이상 판매되며 명작의 변함없는 힘을 증명했다. 2022년에는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를 연출한 나쓰메 신고 감독의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