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리뷰
★벨기에를 대표하는 아동문학가 X ‘부켄파우상’ 수상 작가가 그려 낸 기적 같은 이야기
★치매라는 닫힌 세상, 그 속에 따뜻하게 스며든 가족의 사랑
담담하고 절제된 언어가 뿜어내는 강렬하고 묵직한 감동《우리 할머니는 나를 모릅니다》는 치매로 인해 자신의 딸과 손녀를 알아보지 못하는 할머니와 이를 받아들이며 다가가는 가족의 가슴 아픈 현실을 묵직하게 담아내면서도, 페트라와 할머니가 함께 춤추고 노래하며 기쁨을 나누는 모습을 통해 희망을 이야기하는 그림책이다.
플랑드르 최고의 아동문학상인 'Book Lion'상을 비롯해 다수의 아동문학상을 수상하며 작품성을 인정받은 야크 드레이선은 절제된 문장과 섬세한 상황 묘사를 통해 인물의 감정을 표현한다. 여기에 플랑드르와 네덜란드에서 일러스트가 가장 아름다운 어린이·청소년책에 수여하는 ‘부켄파우상’ 수상 작가의 아름다운 그림이 더해져 다른 나라의 걸작 그림책을 감상하는 묘미를 선사한다. IBBY 어너리스트 번역 부문에 선정된 김영진 번역가는 중역이 아닌 네덜란드어 원문으로 쓰인 원작을 우리말로 옮기며 작품 전체에 흐르는 분위기와 작가의 의도를 예리하게 짚어 냈으며, 짧은 표현에 담긴 뉘앙스 하나까지 고심하여 단어를 길어 올리고 문장을 완성했다.
이 책은 벨기에에서 출간된 이듬해인 2006년 국내에 선보였다가 잠시 절판되었고, 이번에 새롭게 복간되었다. 세대를 이어 온 노래가 서로를 연결하는 따뜻한 순간들은 시대를 초월한 감동을 전하며, 치매라는 주제를 다룬 가족 이야기로 독자들에게 큰 여운을 남긴다. 이 작품의 복간이 반가운 이유다.
“할머니, 저 페트라예요. 할머니 손녀요. 기억 안 나세요?”
_사랑하는 가족의 ‘치매’라는 닫힌 세상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법엄마와 페트라는 할머니가 있는 요양원, ‘초원의 집’으로 향한다. 기차 안에서 엄마는 말없이 창밖만 내다본다. 할머니 생각으로 무거운 엄마의 마음을, 페트라는 알고 있다. 이윽고 도착한 초원의 집. 커다란 창 앞에 선 할머니는 두 사람이 보일 텐데도 눈길을 주지 않는다. 페트라가 손을 흔들어도 가만히 있는다. 할머니가 사는 곳은 ‘치매’라는 닫힌 세상이다.
할머니의 기억은 할머니 옷의 패턴처럼 조각조각 나 있다. 엄마의 입맞춤도, 부축하려는 손길도 외면하고 깍듯한 존댓말로 거리를 둔다. 손녀인 페트라 또한 알아보지 못한다. 할머니를 바라보며 어깨를 감싸 안는 엄마와 그런 엄마를 외면하며 등을 보이는 할머니를 표현한 장면들은 둘 사이의 심리적인 거리를 직관적으로 보여 준다.
이처럼 이 작품은 치매 환자의 휘발된 기억과 이를 바라보는 가족의 복잡한 심리를 탁월하게 전달한다. 놀라운 것은 페트라와 춤추는 할머니를 통해 치매에 걸린 사람이어도 얼마든지 다른 사람들과 함께 기쁨을 나눌 수 있음을 보여 준다는 점이다.
치매로 기억을 잃는다는 것, 치매 환자의 가족으로 산다는 것은 언제든 우리에게도 예고 없이 찾아올 수 있는 일이다. 그렇기에 이 작품은 더 깊은 공감을 불러일으키며 사랑하는 이의 닫힌 세상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법을 깨닫게 한다.
“네가 그 노래를 어떻게 아니?”
“내가 가르쳐 줬죠. 난 옛날에 엄마한테 배웠고요.”
_세대에서 세대로 이어진 노래, 그 속에 담긴 따뜻한 위로야크 드레이선의 작품에서는 어린 자녀와 부모, 또는 조부모 간의 관계가 중심을 이루며 ‘음악’이라는 소재가 끊임없이 등장한다. 이 작품 역시 마찬가지다. 어린 딸 에마가 물에 빠져 죽은 시절에 기억이 멈춰 버린 할머니를 반응하게 한 것은 다름 아닌 페트라의 노래다. 오래전 할머니가 엄마에게, 엄마가 페트라에게 가르쳐 준 이 노래는 할머니에게 에마에 대한 기억을 불러일으키며 세 인물 사이의 거리를 극적으로 좁힌다. 비로소 할머니는 엄마의 얼굴에 입을 맞추고 페트라에게 손을 흔든다.
페트라는 노래를 부르고 또 부릅니다.
할머니가 페트라에게 다가가 어깨에 손을 얹습니다.
둘은 초원에서 함께 춤추며 서로를 바라봅니다.
이 책은 엄마와 페트라가 기차에 탄 장면으로 시작해서 같은 장면으로 끝난다. 하지만 더 이상 두 사람은 말없이 창밖만 바라보지 않는다. 서로 기대어 앉아 미소를 띤 채 대화를 나눈다. 이다음에 엄마가 자신의 이름을 기억 못 하면 자기 아이도 엄마에게 노래를 불러 줄 거라는 페트라의 뭉클한 위로는 기차 안을 온기로 채운다. 말이 다 담지 못하는 부분을 채워 준 따뜻한 위로, 세대와 세대를 잇는 끈이 되어 준 페트라의 노래는 시대를 초월한 감동을 선사한다.
섬세한 상황 묘사로 인물의 감정을 표현하는 절제된 텍스트,
원서의 감동을 고스란히 전하는 번역《우리 할머니는 나를 모릅니다》는 벨기에에서 출간된 이듬해인 2006년 국내에 소개되었다. 출간된 지 20년 가까이 되었지만, 현재를 사는 우리 삶에 더욱더 깊숙이 파고든 치매라는 병, 가족의 의미를 이야기하는 작품이기에 이번 복간이 의미 있게 다가온다.
야크 드레이선은 민감하고 무거운 주제 속에서 희망을 이야기하는 작가다. 절제된 언어, 섬세한 상황 묘사를 통해 인물의 감정과 행동의 본질을 표현하는 데 탁월하다. 이 작품에서는 단 몇 줄의 문장만으로 할머니가 엄마와 페트라를 알아보지 못하며 그것이 둘에게 얼마나 슬픈 일인지를 보여 준다. 독자에게 아무것도 강요하지 않고 그저 독자 스스로 그 감정을 느낄 수 있게 하는 것이다.
김영진 번역가는 중역이 아닌 네덜란드어로 쓰인 원작을 우리말로 옮기며 짧은 표현에 담긴 뉘앙스 하나까지 고심하여 단어를 길어 올리고 문장을 완성했다. 작가의 작품관과 고유한 스타일을 고스란히 살리면서 문학적 완성도를 높이기 위한 번역가의 노력은 원작의 감동과 여운을 더 깊고 진하게 전한다.
인물의 감정을 깊이 있게 묘사하고 전달하는, ‘부켄파우상’ 수상 작가의 아름다운 그림첫 그림책으로 ‘부켄파우상(플랑드르와 네덜란드에서 일러스트가 가장 아름다운 어린이·청소년책에 주는 상)’을 수상한 아너 베스테르다윈의 그림은 독자의 시선을 압도한다. 그는 삽화가가 아닌, 화가로서의 면모를 드러내며 그림 그 자체로 많은 이야기와 감정의 깊이를 전한다.
특히 푸른색과 붉은색의 대조를 통해 인물의 감정을 드러낸 점이 눈길을 끈다. 기억을 잃고 소통이 단절된 할머니의 옷은 차가운 푸른색으로, 그런 할머니에게 다가가 계속해서 눈을 맞추고 말을 걸고 손길을 건네는 엄마의 옷은 따뜻한 빨간색으로 표현했다. 할머니를 만나러 가는 기차 안의 푸르고 차가운 빛, 집으로 돌아가는 기차 안의 붉고 따뜻한 빛은 걱정스럽고 무겁게 가라앉은 감정과 행복하고 따뜻해진 마음을 선명하게 대비시킨다. 들꽃과 푸르른 풀로 뒤덮인 초원에서 할머니와 페트라가 마주 보며 춤추는 장면, 엄마와 페트라를 배웅하는 할머니의 푸른색 옷이 붉은 노을로 물드는 장면은 잃어버린 기억 한 조각을 떠올리며 비로소 가족의 사랑과 온기로 채워진 할머니의 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 준다.
과감한 붓 터치, 의도적으로 생략하거나 왜곡한 형태가 돋보이는 유화 기법의 그림과 만난 액자 형태의 구성은 독자에게 매 장면 빼어난 회화 작품을 감상하는 묘미를 선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