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은이 : 이문기
거리가 다시 북적거리고 활기로 넘쳐 날 때였다. 2학기 추가등록을 넘겨버린 나는 밀려오는 공황을 감당하지 못해 무작정 집을 나섰다. 기타 하나면 어디든 훌쩍 떠날 수 있는 시절이었다. 바닷가 허름한 민박집에 여장을 풀고 해변을 나가본다. 시장통의 왁자지껄한 세계, 이색적인 풍광들. 떠돌이어서 혼자였던 그 시절은 아마도 새벽공기를 가르며 하루를 시작하던 또 다른 경험이었던 것 같다. 단아한 숲속의 아침풍경, 정렬해 있는 층계가 나무들, 안온한 자작나무 잎사귀들이 산소를 뿜어내며 침울한 감정을 조금씩 전환해 주었다. 돌층계를 힘주어 내려가며 문득 언제나 지금처럼 하루를 맞게 된다면……하고 떠나온 성산 마루를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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