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농촌의 국제결혼 가정에서 태어난 이주배경청년 고예나의 회고록이다. 한 사람의 자기 서사에서 시작해 가족, 친구, 이주민으로 줄기를 뻗어가는 이 책은 개인의 정체성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여주는 동시에 다문화국가로의 진입을 목전에 둔 한국 사회에 물음을 던진다. 이곳에 뿌리내리고 있는데도 언제나 타지에 있다는 감각은 어디서 오는 걸까. 그저 살아가는 게 아니라 존재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우리’라는 대명사는 ‘다문화’와 닮았다. 나와 너를 품는 듯 보이지만 기준에 들어맞지 않는 이들은 밀어내기도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언제나 타지에 있다』가 말하는 ‘우리’는 누구일까. 저자와 저자의 엄마와 같은 이주배경청년? 이 책에 공명하는 독자? 아니면 다문화사회를 살아가고 있다는 모든 사람들? 결국 이 질문은 세상에서의 자기 범주를 묻는 일과 다르지 않다. 이 책은 그 범주를 넓혀보자고 제안한다. 내 앞의 울타리를 허물어 너의 자리를 만들기. 여기에 데려오는 게 아니라 거기로 가기. 그렇게 ‘우리’의 외연을 넓히기. 그런 희망을 담아 이 책을 우리에게 권한다.나는 작은 키에 마른 몸, 투 블록과 상고머리를 오가는 커트 머리, 25호 파운데이션을 발라도 톤 업이 되는 피부와 짙은 쌍꺼풀을 가졌다. 만나는 사람이 고만고만한 시골 마을을 떠나 도시로 나오고 나서는 외모에 관한 질문을 자주 듣는다.
연애를 하기는커녕 일면식도 없던 외국인 둘이서 처음 만난 날 곧바로 혼인 신고서에 서명을 했고 사흘 후 합동결혼식을 통해 가정을 이뤘다. 나는 자라면서 그런 가정에서 태어난 것이 너무 부자연스럽다고 느꼈다. 나는 태어나지 말았어야 하는 존재 같았다. 엄마와 아빠의 결혼이 개인적으로도 이상한 선택이지만, 무엇보다 사회적으로 타당하지 않다고 여겼다. 하지만 내 존재 자체를 부정하게 만드는 생각의 소용돌이에 휘말릴 때마다 언제나 나를 붙드는 것이 있었다. 바로 내 동생들.
우리 집에 정 같은 것을 붙인 적 없다고 여겨왔는데. 그냥 태어나 보니 우리 집이었다. 아주 어릴 때는 남들도 당연히 다 이런 줄로만 알다가 차츰 다른 집들이 어떻게 사는지 알게 되면서 우리 집이 많이 부족하다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 집에 대한 특별한 감정이나 추억 따위는 없는 줄 알았다. 남기고 싶은 것보다 버리고 싶고 잊고 싶은 것들이 더 많을 줄 알았는데. 부서지고 어긋나고 비뚤어진 옛집을 싹 허물고 반듯하고 깨끗한 새 집을 얻는 것이 마냥 기쁠 줄 알았는데. 눈물이 계속 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