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경남 거제에서 활동 중인 송용탁 시인은 시집 『투명한 짐승들의 계절』을 창연출판사에서 펴냈다. 1부_‘가깝다는 말의 명도’에는 「봉제 인형」 외 시 14편, 2부_‘감성적 번역기’에는 「새벽공방」 외 시 12편, 3부_‘흩어지는 법’에는 갈, 「몽경夢境」 외 시 12편, 4부_‘불편한 에세이’에는 「일인극」 외 시 12편, 5부_‘세계는 없다’에는 「송용탁·1」 외 시 14편 등 총 시 69편이 실려 있다.
그리고 ‘시집 해설·1’에는 이승하 시인(중앙대 교수)의 ‘새로운 독법이 필요한 아주 새로운 시’, ‘시집 해설·2’에는 활연 시인의 ‘사면(四眠)- 거듭 깨어나 허물고 다시 짓는 잠(蠶)’이라는 해설이 각각 실려있다.
출판사 리뷰
<도시의 숨을 짐승의 몸으로 기록하다> 도시는 낮에도 어둡고, 밤에도 완전히 깨어 있지 않다. 무수한 네온사인 아래에는 길 잃은 몸들이 걷고, 빛은 그림자와 뒤섞여 사라질 듯 남아 있다. 『투명한 짐승들의 계절』은 이 도시의 결을 따라 흐르는 ‘숨의 언어’를 붙잡는 시집이다. 송용탁은 거대한 목소리로 외치지 않는다. 대신 작은 호흡의 떨림, 눈에 보이지 않는 리듬으로 오늘을 산다. 그의 시는 풍경을 묘사하는 데 머물지 않고, 풍경 너머의 ‘살아 있음’을 증언한다. 이 시집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장면은 거리, 골목, 편의점, 정류장, 밤공기다. 시인은 익숙한 풍경을 낯설게 바라보고, 우리가 지나쳤던 흔적에 생명의 온도를 부여한다. 「아가미를 찾습니다」에서 시작되는 그의 언어는 도시라는 수족관 속에서 숨을 찾는 짐승의 몸짓이다. ‘왼발부터 시작한다’라는 짧은 문장은 단순한 동작이 아니라 생존의 첫 호흡이다. 우리는 걷는 존재이자 숨을 견디는 존재이며, 그의 시는 이 단순한 사실을 다시 깨닫게 만든다. 송용탁의 시는 이미지와 리듬이 정밀하게 맞물려 있다. 골목을 통과하는 바람, 유리창에 비친 불빛, 자정에 흘러나오는 소음까지 그의 시에서는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감각의 중심으로 떠오른다. 언어는 투명하고 간결하지만, 그 안에는 오래된 상처와 오래된 숨이 겹겹이 쌓여 있다. 투명하다는 것은 곧 감추지 않는다는 뜻이며, 그의 문장은 그 투명함 속에서 독자에게 낯설고도 익숙한 현실을 보여준다. 『투명한 짐승들의 계절』은 일상의 잔광을 붙잡는 시집이다. 시인은 문장 하나하나를 통해 사소함이 결코 사소하지 않음을 증명한다. 작은 숨, 짧은 걸음, 무심한 표정이 사실은 거대한 삶의 일부라는 것을 말없이 증언한다. 이 시집을 읽는다는 것은 거대한 위로를 받는 일이 아니라, 내 안에 숨어 있던 작은 숨을 다시 발견하는 일이다.책장을 덮고 나면, 독자는 도시를 다른 방식으로 바라보게 된다. 네온의 불빛은 단순한 조명이 아니라 시간의 고백처럼 느껴지고, 골목의 적막은 말해지지 않은 언어로 다가온다. 송용탁의 시는 조용하지만 단단하다. 말보다 오래 남는 리듬, 침묵보다 더 선명한 언어로, 그는 우리가 잃어버린 감각을 되돌려 준다. 『투명한 짐승들의 계절』은 지친 도시의 밤, 발을 멈추고 숨을 들이마시게 하는 시집이다. 투명한 언어는 결코 약하지 않다. 그것은 살아 있는 자만이 남길 수 있는 흔적이며, 시인은 그 흔적을 세밀하게 새기고 있다.
- 임창연(시인·문학평론가)
[시집 해설]
새로운 독법이 필요한 아주 새로운 시
이승하(시인, 중앙대 교수)
송용탁 시인의 두 번째 시집 『투명한 짐승들의 계절』의 원고를 받아서 목차를 보다가 제5부의 시 15편의 제목을 보고 깜짝 놀랐다. 연작시 「송용탁」 15편이다. 시인들이 ‘자화상’이란 제목으로 쓰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써봤자 1편이다. 송 시인처럼 15편의 시를 이름 연작시로 쓴 경우는 없었다. 아주 특이한 시도여서 제5부의 시를 먼저 읽게 되었고 4부, 3부, 2부, 1부 역순으로 읽게 되어 이 순서대로 논해볼까 한다. 시집 해설의 기능은 길 안내를 위한 멘트 정도에 그쳐야 한다는 것이 내 생각인데, 어떤 경우 해설이 논문이나 신문의 사설 같아서 불편한 적이 많았다. 이 해설의 글을 독자들은 편안한 마음으로 읽어주면 좋겠다.
저 이름은 제법 쉬운 질문에서 왔다. 불현듯 바람과 태몽을 찾는 누군가의 안색. 유독 배앓이가 심한 날에는 떠나는 사람이 더 늘었다. 어미는 이해하지 못했기에 해치지 않았다. 왜 견디라고 하는 겁니까? 어떤 뒤통수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저 이름이 대답이라고 그냥 믿기로 했다. 사실 이름에게는 여러 사연이 있었는데. 제법 키 크고 높고 어설픈 발음이라고, 어미든 아비든 모두 서로의 귀 한쪽을 물고 뜯고 사느라 관심이 없었다. 허나 바람도 부딪히다 보면 아무는 소리가 난다. 피해와 가해의 역할을 정할 순 없으나 지금쯤 모양도 방향도 색깔도 무의미할, 이런 지점에 대한 질문은 가난한 활자보다 못하다.
- 「송용탁·1」 전반부
첫 번째 자화상은 ‘용탁’이라는 이름에 대한 것이다. 왜 이런 이름을 지었을까 궁금해 어떤 이는 모친에게 태몽을 묻기도 했으리라. 이름의 뜻을 어미는 이해하지 못했기에 그냥 용탁아 용탁아 부르면서 키웠나 보다. 이 시에는 이름에 얽힌 에피소드가 나오지 않는다. 이름값을 했는지 안 했는지, 유년기의 추억담이나 성장기의 일화도 일절 나오지 않는다. 생각의 파편을 모으는 것! 이것이 송용탁 시의 가장 큰 특징이다. 논리나 인과관계를 배제하고 다소 엉뚱한 뇌까림 문장으로 시를 끌고 간다. 그래서 독자는 시 앞에서 망설이게 되고, 고개를 갸웃거리게 된다.
이는 기승전결로 나누어 분석하는 참고서식 시 분석에 길들여 있는 독자의 허를 찌르는 시인의 작전이 맞아들어간 것이다. 이 시의 세 번째 문장인 “유독 배앓이가 심한 날에는 떠나는 사람이 더 늘었다.”에서 주어가 화자의 어미인 듯하지만 확실하지 않다. 누구의 배앓이가 심했는지, 왜 떠나는 사람들이 더 늘었는지 시인은 설명하지 않는다. 네 번째 문장이 “어미는 이해하지 못했기에 해치지 않았다.”인데 무엇을 이해하지 못했는지, 누구를 어떻게 해쳤는지 설명하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송용탁 시인 특유의 시창작 방법론이다. 독자의 가슴에 물음표를 남겨놓고 다음 문장으로 넘어간다. 독자가 알아먹을 수 있는 것은 “어미든 아비든 모두 서로의 귀 한쪽을 물고 뜯고 사느라 관심이 없었다.”는 것 정도이다. 용탁이에 대해 신경 쓸 겨를이 없는데 이름이 어쩌면 어때.
그다음 문장이 “허나 바람도 부딪히다 보면 아무는 소리가 난다.”인데 다른 시인 같았으면 “허나 바람도 부딪히다 보면 아문다.”라고 했을 것이다. 독자와의 거리 두기 혹은 거리 떼기는 송용탁 시인의 기본적인 전략이다. “아무는 소리가 난다.”가 시적 표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끝 문장에 나오는 “가난한 활자”도 그렇다. ‘이런 지점에 대한 질문은 활자보다 못하다.’는 것은 1차원적 사고이기 때문에 ‘가난한’이라는 수식어를 넣었다.
미처 전하지 못한 정답을 생각하며 안부 같은 오답을 전했다. 이름은 다시 골몰한다. 당신들이 도착한 곳에 가면 소리가 좋아질까요? 공명하다 남은 거센소리는 어디서 기다리면 됩니까? 이제 시간이 많은 당신들은 몹시 난처하겠습니다. 찬란한 화장의 시간이 지나가고. 온몸에 불을 붙이고 떠난 사람은 순식간이었다. 뒤돌아보지 않는다. 뒤를 쫓는 것은 아름다운 자성의 귀퉁이. 슬픔을 모으기 충분한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광장에 선 이름. 그리고 이종. 과거도 없는 이름으로서는 미래에서 출발한 질문들과 대면할 수 없다. 오늘을 실천하는 질문들만 이름의 잘생긴 꼬리이기 때문에.
- 「송용탁·1」 후반부
시의 후반부에서 주목해야 할 문장은 “이름은 다시 골몰한다.”와 “그리고 광장에 선 이름. 그리고 이종. 과거도 없는 이름으로서는 미래에서 출발한 질문들과 대면할 수 없다.”, 그리고 “오늘을 실천하는 질문들만 이름의 잘생긴 꼬리이기 때문에.”이다. 이름에서 시작한 시여서 그런지 이름에 대한 언급에서 끝난다. 그런데 그 중간을 지탱하는 “공명하다 남은 거센소리는 어디서 기다리면 됩니까? 이제 시간이 많은 당신들은 몹시 난처하겠습니다. 찬란한 화장의 시간이 지나가고. 온몸에 불을 붙이고 떠난 사람은 순식간이었다. 뒤돌아보지 않는다. 뒤를 쫓는 것은 아름다운 자성의 귀퉁이. 슬픔을 모으기 충분한 시간을 보냈다.”는 6개의 문장은 논리적인 인과성을 배제한다. 앞에서도 얘기했지만, 전통적인 서정시의 문법에 익숙한 독자에게 이런 미래파적인 시문법은 많은 혼란을 줄 것이다. 하지만 자꾸 읽다 보면 송용탁 시인의 시에 친밀감을 느낄 것이다. 익숙해지지 않으면? 부담감을 느낄 것이다. 두 번째 시에는 분위기를 바꾼다.
불순은 순결의 반대말이 아니다. 그래서 나는 예쁜 창녀다. 내 사랑을 더럽다 말하는 이에게 예쁜 젖을 물리고 싶다. 슬픔과 정을 통한 사람은 밤새 귀두를 입에 물고 걷는다. 걷다 보면 쓸쓸한 허벅지의 풍경도 볼 것이다. 누군가 밤새 기도하다가 간 자리였다. 풍경은 바람을 먹고 산다. 그 또한 이별과 정을 통하는 것. 걱정이 많은 사람의 가랑이를 본다. 사이를 타고 흐르는 액체가 빛났다. 예쁘다 말하려다 묽은 침을 삼킨다. 순결한 자의 가랑이엔 고딕처럼 아궁이가 산다. 흔들리는 동작들을 모두 태우고 의젓하게 웃는다. 수퇘지의 냄새가 좋았다. 암퇘지의 거웃이면 더 좋았다. 그리하여 불순물은 타다 만 노을의 옷을 입는다. 저기 석양 밑에서 간음을 행한 자가 우뚝 솟았다. 몹시 순수하여 절경이다. 고독과 나눠 먹은 창녀의 이름이 떠오르지 않았다. 두 손에 쥐고 가장 멀리 던진 질문이다. 차츰 개수를 잃는 손가락은 망가진 성기를 닮았다. 가운뎃손가락으로 입술의 각도를 잰다. 쉿, 무지하여 자위는 자의적이다. 귓바퀴를 따라 도는 신음의 길이를 잰다. 사랑하다 죽어버린 질문의 목차를 훑는다. 또한 완벽한 창녀가 될 것 같았다. 사랑하다 죽여버린 질문 때문에.
- 「송용탁·2」 전문
이 시의 화자는 수퇘지의 냄새를 좋아하는 ‘예쁜 창녀’다. 인간의 어떤 속성을 이렇게 역설적으로 표현한 것이 아닐까. 정호승의 시를 적절히 패러디한 결구가 재미있는데, 인간 정신세계의 한 축을 이루고 있는 성적 욕망과 여성성에 대한 탐색 또한 재미있게 전개되는 시다. “수퇘지의 냄새가 좋았다. 암퇘지의 거웃이면 더 좋았다. 그리하여 불순물은 타다 만 노을의 옷을 입는다. 저기 석양 밑에서 간음을 행한 자가 우뚝 솟았다. 몹시 순수하여 절경이다. 고독과 나눠 먹은 창녀의 이름이 떠오르지 않았다. 두 손에 쥐고 가장 멀리 던진 질문이다. 차츰 개수를 잃는 손가락은 망가진 성기를 닮았다.” 독자가 이런 시의 내용을 원만히 해독하고 충분히 이해하면 좋겠지만 그러기 위한 노력이 물거품이 될 확률이 높다. 그의 시를 수능 문제 풀 듯이 접근하면 안 된다는 말이다.
송용탁 시인의 시를 조금이라도 편하게 읽고 싶다면 풀이 과정이 필요한 수학적인 사고를 하지 말기를 바란다. 분위기를 파악해 그것에 젖고, 그것에 재미를 느끼면 최상책이다. 전통서정시를 좋아하는 독자라면 자기 마음속의 그 독자를 버려야 한다.
세 번째 시에 이르면 송용탁이 어떤 사람인지 보다 분명해진다. 자기를 숨기려 애쓰지만 어떤 성격인지 조금은 알 것 같다. 무척 의뭉스러운 사람이다. 이런 사람을 포커페이스라고 한다. 출판사의 임창연 대표에게 당신 시집 해설을 이승하 씨에게 부탁했다고 하면 전화를 한 번 해올 법도 한데 몇 달이 지나도 전화 한 통 없는 사람이 송용탁이다. 꼴통이다. 멋지다. 이런 사람이 시인이다.
살고자 발버둥 치는 사람은 이미 고전적이다.
그래서 고대의 시가 자라는 자리를 해질 녘이라 부르고 싶다. 질문은 진부해서 늘 발화가 먼저 도착했다.
저러다 줄초상이지. 답답한 채집자가 흙 묻은 뿌리를 털며 부음처럼 웃는다. 아, 어제도 죽은 자리. 오늘도 살려는 사람이 심긴 자리. 낭하에 떨어지는 발소리처럼 첨벙첨벙 울대를 던지는 소리. 도살이 멈추지 않았다.
이따금 불꽃을 피우면 도화살이 될 것 같았다.
- 「송용탁·3」 전반부
제2연이 ‘그래서’로, 제3연이 ‘저러다’로 시작하지만 1, 2, 3연이 이어지지 않고 따로 놀고 있다. 송용탁 시의 또 하나의 특징이 바로 이것이다. 어떤 내용의 수렴이 아니라 흐트러뜨림, 즉 발산이다. 시가 정황 설명이 아니라 파격적인 상상을 요한다. 시상의 흩어짐, 혹은 이미지의 파편 만들기가 중요한 특징이다. 제1연의 ‘고전적’, 제2연의 ‘고대의 시’와 ‘발화’, 제3연의 ‘줄초상’ ‘채잡자’ ‘도살’이 잘 이어지고 있는가? 잘 이어지면 송용탁의 시가 아니란 생각이 든다. 불협화음에 익숙해지다 보면 그것이 화음으로 들려오기 시작하는데, 송 시인의 시를 읽으려면 바로 그런 독법이 필요하다. 즉, 지금까지 독자는 서정시를 읽어온 독법을 과감히 버려야 한다. 송 시인의 베푸는 친절을 애당초 기대하지 말고, 독자 스스로 그의 시를 이해하는 자기만의 독서법을 개발해야 한다.
늦은 사람의 제자리는 매우 서툴러서
사연을 채집하는 력사는 가장 해로운 말만 되풀이한다.
오래된 사람의 고전은 몹시 고전이 된다.
아픈 사람의 역할은 이제 그만해도 되겠습니까.
아프게 회상하지 않아도 고백의 순간들이 멈추지 않았다. 암흙을 털면 순수한 행인이 흐릿하게 보인다. 아픈 사람 옆엔 늘 아픈 사람이 살았다. 등불이 켜진 귀항을 편다. 더는 죽을 필요가 없을 때까지. 나빠질 게 없다고 생각했다.
곱사의 사연을 등에 진 행인이라도 살짝 데친 낯빛으로 웃어 보인다. 불우한 것은 뿌리가 뿌리를 잊는 순간이다. 아픈 사람 옆엔 늘 웃는 사람이 살았다.
행인을 따라 씨익 웃는 자를 발견했다.
- 「송용탁·3」 후반부
‘늦은 사람’이라면 늦게 온 사람일 것이다. 그런데 다음 행 “사연을 채집하는 력사”는 두음법칙을 인정하지 않는 북한식 표기법이다. 력사는 力士인 듯하다. “오래된 사람의 고전은 몹시 고전이 된다.”는 구절은 말장난에 가깝긴 하지만 너무나 멋진 발명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송용탁의 시에 친밀감을 느끼려면 훈련을 해야 한다. 파편을 긁어모을 것. 한 문장을 다음 문장에 연결시키지 말 것. “아프게 회상하지 않아도 고백의 순간들이 멈추지 않았다. 암흙을 털면 순수한 행인이 흐릿하게 보인다. 아픈 사람 옆엔 늘 아픈 사람이 살았다. 등불이 켜진 귀항을 편다. 더는 죽을 필요가 없을 때까지.” 등을 보면 낱낱의 문장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파악하기가 정말 어렵다. 하지만 의미를 캐내려는 노력을 그만두면 시인 특유의 어법을 이해하면서 시에 가까이 다가가게 된다. 시인은 한사코 밀쳐내지만 말이다. 한 편 더 보자.
요절의 기미를 보았다고,
안녕하십니까? 저는 안녕하지 못합니다. 누래진 벽지 뒤 숨은 오래전 벽지를 볼 때마다 새 옷을 입은 내가 흉하게 웃습니다. 옷 위에 웃옷을 입으면 낡은 것들은 기면에 들까요. 악을 쓰면 소원이 빨리 도착할까요. 내상 입은 인질들은 언제 놓아줘야 합니까. 나의 인질을 사랑한다면 호주머니에 몽돌 하나 넣어주세요. 달도 빛나는 돌일 뿐이라지요. 다정한 모서리를 꼭 쥐어 봅니다. 바다가 난간에 들이칩니다. 훔쳐 간 몽돌을 찾으러 왔습니다. 바다의 단추를 채우고 속주머니를 뒤져봅니다. 바다는 아무도 모르게 주머니에 구멍을 내나 봅니다. 투명해지려고 수도 없이 모래를 쏟아냈나 봅니다. 텅 빈 지갑 속은 늘 난감합니다. 모래를 한 움큼 쥐고 세수를 합니다. 얼굴은 더럽고 손은 반짝 빛이 납니다. 몽돌의 용도를 묻습니다. 아름다운 낙서를 해 둔 얼굴이 실수로 얼굴을 묻습니다. 대답 대신 몽돌을 사라진 주소로 던져 버릴 때 잠깐 달처럼 반짝거립니다. 달의 추락을 봅니다.
- 「송용탁·13」 전문
시가 갑자기 너무 쉬워져 어리둥절케 된다. 아니, 그간 내가 송 시인의 시문법에 적응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 시 안의 시인은 가난하다. 텅 빈 지갑 속이 늘 난감하다니 딱한 노릇이다. 이렇게 살다가 나도 이상이나 기형도처럼 요절하는 것 아냐? 요절하기엔 내가 너무 늙었나? “내상 입은 인질들은 언제 놓아줘야 합니까. 나의 인질을 사랑한다면 호주머니에 몽돌 하나 넣어주세요.”를 보니 이제 송용탁 시인을 조금은 알겠다. 그는 이상처럼 난해한 시를 쓰지 않고 있었고, 기형도처럼 대상을 부정하거나 현실에 절망하지 않았다. 생활고에 시달리며, 오직 시에게서 구원을 꿈꾸는 시인이었다.
제4부의 시 가운데 비교적 쉽고, 감정을 울리는 것을 골라보았다.
함께 잠들던 방은 조금 더 외로워졌을 테고 혼자 밖을 살피던 창은 조금 더 유쾌해졌겠지. 함께 쌓았던 이야기들은 조금 더 눅눅해질 테고 혼자 밥 먹는 식탁은 조금 더 상냥해질 거야.
저기 지붕이 범람하는 이야기를 들어볼래
침대에서 비를 맞고 이불로 맨몸을 감싸고 현관에 머문 우산의 불평을 듣겠지. 카페인은 요리처럼 아름답게 살 테고,
따뜻한 나를 네게 부어줄게
비의 발단은
먼 곳부터 소란해지는 이야기
저기 구름은 이미 행복한 사람이라고 하자
탯줄 한 손 가득 쥐고 뛰어가면 난 무슨 색으로 피는
꽃이 될까
자, 다시 밤은 단단해지고
비가 올까
내가 울까
- 「비가 태어날 때까지」 후반부
시적 화자가 혼자 밥을 먹고 있는데 외로움을 많이 탄다. 자화상 연작에서는 큰소리를 뻥뻥 치며 허세를 부리기도 했는데 여기서는 슬픔의 늪에 차츰 빠져들고 있다. 그리고 “따뜻한 나를 네게 부어줄게”라는 시행을 보니 화자는 누구보다 따뜻한 심성을 갖고 있어 누군가를 돕고 싶어한다. 이 시는 그의 시답지 않게 감성적이다. 아마도 많은 독자가 이 시를 기억할 것이다. 자, 이제 제3부의 시를 한 편 보자. 일종의 연애시풍인데, 송 시인의 다른 면모를 보게 되어 느낌이 신선했다.
오랫동안 숨겨놓은 이야기가 있었어
저 깊은 표정에서 나도 한번 꺼내 볼까
나는 무슨 이유를 준비해야 하나
적당한 파문이 필요할 것 같아
잘 빚어진 세월 뒤엔
당신도 돌아올 거야 제자리로
네 번의 그늘이 지나갈 때
난 당신을 따라 무서운 피부가 될 거야
당신은 물에 잠긴 손등이 예쁘다고 속삭였어
그건 지느러미였어
헤엄치는 법을 몰랐던 거야
깊은 당신의 바닥에 가라앉던 나의 촉수들
종일 피 냄새가 가시지 않았어
우린 너무 많은 파도를 마신 거야
- 「해성海城」 전반부
“무서운 피부”가 이상하고 “그전 지느러미였어”가 어색하긴 하지만 여타 시를 엄습하고 있는 안개나 거의 다 걷혀 있고 여성에 대한 태도가 아주 공손하고 상냥해서 좋다. 이런 시는 나름대로 가독성이 있어 송용탁 시인의 시 같지 않다. 아니, 시인의 스펙트럼이 그만큼 다양하다는 뜻이다.
푸른 슬픔도 모른 채 섬 밑에 숨은 당신
내가 먹기엔 너무 큰 몸짓이야
그건 서툰 체위였어
당신은 손가락마다 다른 맛이 난다고 했어
그건 태풍의 잔해였어
그냥 입술을 물고 잠들고 싶었던 거야
우린 더 이상 반짝이지 않아도 알몸의 실패를 알아
이젠 굶주린 반달도 하늘에서 추락하기를
기다리겠어
성문을 열어줘
당신의 손을 잡고 뭍을 달리고 싶어
섬사람들의 피는 푸르지 않다고
뭍의 입술들에게
- 「해성海城」 후반부
이 시는 제주도에서의 경험을 갖고 쓴 게 아닌가 추측되는데, 일부러 옆으로 삐져나가거나 독자를 힘들게 하려는 가학 취미를 버리고 사랑의 순수한 감정을 다루고 있다. 서툰 체위든 어떻든지 간에 제주도에 가서 묘령의 여성, 아니면 미지의 여성과 사랑에 빠지고 싶은 강한 소망을 마음에 품게 한 나쁜(?) 시다.
2부의 시 중에서는 독자의 감정을 터치한, 만만한 시를 골라보았다. 하지만 ‘울음뼈 재우기’라니, 제목부터 만만치 않다. 울음 재우기가 아니라 울음뼈 재우기다.
약속은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못다 한 이야기를 위해
흔들리는 오후를 밟고 뛰었다
멸종된 어제의 자리
다정한 연인이 오늘 있었다
그 벤치 뒤로 출몰하는 수많은 일식을 듣는다
최초의 나무가 뿌리를 키우는 오후
신탁이 있었다
몹시 울어야 할 것이다
일식도 다 먹어 치우지 못한 그림자
이렇게 가려운 몸을 누가 부른 것인가
발굴을 준비하라는 신탁이 있었다
내가 아닌 것들이 쏟아지면
오랜만이라고 인사를 했다
내일의 신전에 데려다 주세요
박제된 너의 질문에 적당한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 「울음뼈 재우기」 전반부
이 시에도 “그 벤치 뒤로 출몰하는 수많은 일식을 듣는다”나 “최초의 나무가 뿌리를 키우는 오후” 같은 특유의 어법을 구사해 당혹감을 주기도 하지만 송 시인의 시에 조금이라도 적응한 독자라면 이 정도의 방해는 시를 시답게 하는 특유의 표현방법이라 생각하고 읽어나갈 수 있을 것이다.
수면을 위한 신탁이 필요했다
내가 너에게 네가 나에게 몹시 서툴렀다
식후 30분 약을 먹듯이 나를 먹어치웠다
하루 세 번이나 자라는 나무를 취소해야 했다
네가 다녀간 어제의 덧니
모서리를 무디게 만들기 위해 발을 구른다
어느덧 최후의 나무,
여기 너를 닮은 뒤통수가 맺힐 거야
어느새 키스하는 오늘의 연인
새것처럼 서로를 아끼는 오늘
나만 없는 일식의 거리
완벽한 뒤통수를 위해 잠들어야 한다
딱딱해진 침샘을 만지면 털이 곤두섰다
나는 여기 신탁을 믿고 턱을 괸다
나무의 최댓값은 벌써 끝나고
나는 너를 사랑해야 하기에
나는 또 잠든다
- 「울음뼈 재우기」 후반부
시의 후반부는 화자가 불면증 환자인 양 온통 잠 얘기다. 우리는 왜 이성 간의 육체적 사랑을 ‘같이 잔다’로 표현해온 것일까? 인간의 몸은 잠을 자지 않으면 죽을 지경에 이르거나 죽게 되기에 잠은 밥만큼이나 중요한 것이다. 그래서 “수면을 위한 신탁이 필요했다”는 충분히 설득력을 지닌다. “완벽한 뒤통수를 위해 잠들어야 한다”도 옳은 말이다. “나는 너를 사랑해야 하기에/ 나는 또 잠든다”도 백번 지당한 말이다. 연가풍의 이 시 후반부에서 잠 이야기를 계속한 것은 불면증 때문에 병원 치료를 오래 받았던 해설자이기에 너무나 공감이 간다. 이제 비로소, 제1부의 시를 보기로 하자.(시집을 뒤에서부터 읽은 것도 첫 경험이다.)
시집의 제일 앞머리 시는 중요하므로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제목만 보면 ‘가난’이 바로 연상되지만 이 시는 흔해빠진 산동네 이야기가 아니다.
소녀가 안고 다니고 소녀는 반복되고
저마다의 옆구리가 가득 차는 거리에서
행복한 이야기를 듣고 싶은데
사소한 슬픔의 사이에서 두리번
거리는 온통 영원히 변하지 않을 것 같은 빛
여기는 눈알의 위치가 헐렁해진 인형의 이야기
오늘도 여전히 아주 많은 인형이 태어나고
그중 하나를 골라 선물하면 소녀가 완성된다
소녀가 인형의 속을 궁금해하기 전에
영원히 시들지 않는 꽃이라고 말해줘야지
제법 조용한 일이라고
가끔 봉제선이 삐뚤삐뚤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 「봉제 인형」 전반부
거듭 말하지만, 이 시는 봉제 인형을 만들어 생계를 이어가는 가난한 산동네 일가 얘기가 아니다. 봉제 인형에 매달리는 다문화가정의 삶의 조건을 다루고 있다. 인형이 놀잇감이어야 하는데 생활이 되고 만 현실을 다루고 있는 것이다. 이 시를 제일 앞에 둔 이유를 생각해보자. 우리네 삶이란 것이 유복, 안락, 행복, 여유 같은 것으로 수놓아져 있으면 얼마나 좋으랴. 대개의 경우는 그 반대다.
어느 공장에서 태어난 인형의 이야기는 낭만적이니까
꽃집에서 일하는 소녀의 모국어는 비극적이니까
후, 바람의 주문을 외우는 일이라고
푹신푹신한 구름의 사정을 알 필요 없는 것처럼
시간은 오로지 소녀에게만 관심이 있다고
흩날리는 실밥처럼 꽃잎이 하나둘 멈추는 날
소녀와 인형은 서로 마주 보겠지
시든 소녀를 옆구리에 낀 인형의 날
그래 맞아, 그날부터 인형은 반복되고
거기가 꽃집의 시작이라고
시들지 않는 시간을 안다고
- 「봉제 인형」 후반부
송용탁 시집이 다른 시인의 시집과 변별되는 것이 또 하나 있다. 뭐냐 하면, 사실성을 버리고 환상성으로 가려고 하는 몸부림 같은 것을 보여준다는 데 있다. “어느 공장에서 태어난 인형의 이야기는 낭만적이니까”에 바로 뒤이어 나오는 문장이 “꽃집에서 일하는 소녀의 모국어는 비극적이니까”이다. 여기까지는 사실주의이지만 바로 이어지는 “후, 바람의 주문을 외우는 일이라고/ 푹신푹신한 구름의 사정을 알 필요 없는 것처럼”은 초현실주의다. 그래서 봉제 인형을 다루지만 70〜80년대 민중문학과는 결이 전혀 다른 것이다. 제1부의 시 가운데 우리의 뒤통수를 때리지 않는 시가 없는데 다음 시들은 제목과 첫 문장이 엇박자를 보여주고 있다. 독자의 기대지평을 허물어뜨리는 데 묘한 쾌감을 느끼는 시인이다. 얄밉다. 언젠가 독립영화 감독을 했다는 그가 만든 영화를 보고 싶다. 시처럼 영화를 만들면 관객이 올까 모르겠다.
생각보다 가까이 살았다
- 「먼바다」 부분
과거의 개는 죽기 전날 지붕에서 내려오지 않았다
- 「마장魔障」 부분
초록 냄새가 어깨를 잡았다. 나는 옆과 앞에게 같이 가자 기다려 달라 말했다. 옆과 앞은 닮았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
- 「가끔은 초록 때문에 아프다」 부분
안타깝게 두 팔과 두 발로 태어났어요
- 「나그참파」 부분
안의 시선이 밖의 시선에게 물었다
- 「이마쿼크」 부분
남겨진 것들은 금방 식어 버렸다
- 「속눈썹 훔치기」 부분
모두 첫 문장부터 시선을 잡아당기고 독자는 시인과 퍼즐 게임을 하게 된다. 승률로 보면 독자는 10전 1승 9패이고 시인은 10전 9승 1패랄까? 그만큼 송용탁 시인이 고수다. 시인이 독립영화를 만들었다는 이력이 느껴지게끔 하는 시가 있다.
중독과 술을 마시면 나는 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순간의 모든 대답을 간직하고 싶었다. 거짓말은 독약을 얘기하기 전부터 달콤하고 진심은 늘 맨몸이라서 잽싸게 감추고 싶었다. 이유를 설명하기엔 우리가 너무 깊어서 영화라고 말하고 싶었다. 그래야 괜찮았다. 앞에 놓인 빈 술잔도 남은 입술을 마저 빨고 있었다. 쉽게 지워지지 않아서 나는 영화 같다고 말했다. 이게 맞나 싶을 때 저녁을 만드는 손을 들었다. 돌이킬 수 없는 전개를 기대하며 빗속 어디쯤 걷고 있는 영화의 한 장면을 가리켰다. 비의 애칭을 혐오하기로 했다. 누군가 웃고 있는 장면이 몹시 아팠다. 중독의 필요를 묻기에 더할 나위 없는 날이라고 생각했다. 누군가 객석에서 나를 보고 울었으면 했다. 우리라는 다음 장면이 나오지 않는 빗속이라 다행이었다.
- 「이술」 전반부
‘이술(異術)’이란 바르지 않은 술법이나 술책 혹은 요술이나 마술 같은 이상한 술법이다. 우리가 마술 구경을 즐기는 이유는 속는 것을 알면서도 그 속음이 즐겁기 때문이다. 영화를 보는 심리와 비슷하다. 깜깜한 곳에 앉아서 스크린에 비치는 빛을 보는데 필름이라는 물질을 통과한 빛이다. 절대로 사실 그대로가 아니다. 그런 순 거짓말을 돈을 내고 가서 본다. 이 시는 영화를 만들고 있는 본인이 왜 그런 저예산 영화를 만들고 있는지, 그 비밀을 추적해본 시라고 여겨진다. 소설의 디테일은 찰스 디킨즈의 거의 모든 소설이 영화로 만들어졌듯이 영화의 디테일과 비슷하다. 그래서 거의 대다수 장편소설을 1시간 반이나 2시간 분량으로 만들 수 있다. 시의 디테일은 영화의 디테일과 차원이 다른데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나 장 콕토 같은 이는 그것을 잘 결합시켰다. 송용탁 시인이 앞으로 영화 쪽에서도 실력을 발휘해 그런 감독의 반열에 오르기를 바란다. 시인의 약력을 보니 꽤 늦게 등단한 늦깎이 시인이다. 출발이 늦었지만 확실한 개성을 보여주었으므로 한국 시단의 한 축을 감당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이번 시집 출간을 계기로 큰 도약을 하기 바란다.
작가 소개
지은이 : 송용탁
부산 출생으로 2021년 5·18문학상 신인상 수상하고, 2022년 《강원일보》 신춘문예로 시 등단을 했다. 전자시집 『섹스를 하다 딴생각을 했어』, 시집 『세계의 고아』, 『투명한 짐승들의 계절』, 사진시집 『먼바다에게 하울링』이 있다. 포항소재문학상 대상, 서귀포문학작품공모 대상, 김포문학상, 심훈문학상 등 다수의 문학상을 수상했다. 현재 《아방가르드 avant-garde》 편집 주간으로 활동하고 있다.
목차
시인의 말 5
1부_가깝다는 말의 명도
봉제 인형 12
역류 14
먼바다 15
마장魔障 17
가끔은 초록 때문에 아프다 18
질문이 끝나도 꽃은 보러 가야지 20
수인한도 22
나그참파 23
이마쿼크 25
이술 27
속눈썹 훔치기 29
미 친 개 처 럼 31
이단자 33
저 사람이랑 같은 걸로 주세요 34
표해록 35
2부_감성적 번역기
새벽공방 38
아종亞種 40
혼자 놀기 42
태엽 44
나에게로 오고 있다 45
울음뼈 재우기 47
투명한 짐승들의 여름 49
가장 느린 봄 51
장르동화 52
산적자 53
노작 55
발췌독 57
죽음을 아껴 먹었다 61
3부_흩어지는 법
갈, 몽경夢境 64
나의 아름다운 세탁소 70
오! 컬트 72
미용실 가는 날 74
은폐 76
사람을 그만두고 싶은 사람은 78
그린벨트 79
해성海城 80
대재해 82
갈애渴愛 83
헤어지는 말들 84
4B 86
파롤(Parole) 89
4부_불편한 에세이
일인극 92
만조 93
클래식 94
중음中陰 96
폭설에게 98
비가 태어날 때까지 100
별서 102
어린 드리아스기 104
자재화 107
눈부시게 부서질게 108
재래 110
오고 가고 그런 것이지만 알고는 있는 것이지만 112
나는 2차 나가는 아가씨예요 114
5부_세계는 없다
송용탁·1 118
송용탁·2 119
송용탁·3 120
송용탁·4 122
송용탁·5 124
송용탁·6 126
송용탁·7 127
송용탁·8 128
송용탁·9 130
송용탁·10 132
송용탁·11 134
송용탁·12 136
송용탁·13 138
송용탁·14 139
송용탁·15 141
[시집 해설·1]
새로운 독법이 필요한 아주 새로운 시 142
- 이승하 시인(중앙대 교수)
[시집 해설·2]
사면(四眠) 161
- 거듭 깨어나 허물고 다시 짓는 잠(蠶)
- 활연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