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이 글에 나타나는 ‘선일이 할머니’는 가부장제 사회에서 결코 주체로 호명되지 못했던 여성들, 그중에서도 이름 없이, 권리 없이, 자존감 없이 살아가다 사라진 누군가이다. 공백처럼 설명할 수 없는 존재지만 사라져서는 안 될 존재다. 이 수필은 후기모더니즘의 윤리적 문학, 즉 타자를 통해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문학이다. 구조적 해명보다 사유 불가능한 타자성과의 조우, 그 ‘얼굴’ 앞에서 새로운 책임을 묻는다.EPILOGUE나는 이 글을 쓰면서 내가 얼마나 못된 인간인지 깨달았다. 우리 집을 떠나신 지 반년도 채 되지 않아 하늘의 별이 되신 할머니. “정숙아, 니랑 같이 살믄…, 안 …될, 거나? 할미는….” 말끝을 흐려가며 나를 바라보던 할머니께 고개만 끄덕여 드렸어도 좋았을 것을. 할머니를 무시했던 죄, 화풀이 대상으로 여긴 죄, 일거수일투족을 일러바친 죄, 욕심과 질투로 없는 죄까지 덮어씌운 죄…. 이 죄를 다 어찌 갚아야 하나. 할머니, 한 번만이라도 저를 혼내주지 그랬어요. 왜 바보처럼 가만히 있었나요. 억울하면 아니라고 소리쳤어야죠. 귀머거리처럼, 벙어리처럼, 눈뜬 장님처럼 그게 뭐예요.이제야 알게 되었네요. 참다보면 해결 된다는 걸. 용서하는 게 용서받는 거라는 걸. 사람을 미워하면 자신이 힘들어진다는 걸. 사랑하는 마음만 있으면 모든 게 아름다워 보인다는 걸. 늦었지만 늦지 않았다 생각할래요. 그래야 마음 편히 강을 건널 수 있잖아요. 누구나 건너는 마지막 강을요.할머니, ‘암시랑투 않다’며 나를 바라보셨던 것 기억나세요? 그날 할머니의 눈빛은 텅 빈듯 고요했답니다. 중풍까지도 마지막 천형(天刑)으로 받아들이며 모든 걸 다 이룬 듯 편한 자세로 누워있던 할머니. 저는 그날의 할머니 모습을 영영 잊지 못할 거예요. 할머니, 할머니는 하릴없이 왔다 가신 분이 아니었어요. 맏며느리 울 엄니 도와주셨잖아요. 고집불통아버지 효도하게 하셨고요. 오빠랑 동생들 사랑으로 감쌌지요. 제 편 들어주신 거 잘 알아요. 할머니가 계셨기에 우리 집이 평안했지요. 살아남은 육남매가 잘 자랄 수 있었지요. 할머니, 감사해요. 잊지 않을게요.
작가 소개
지은이 : 지정숙
충남 논산 출생결혼 후 42년 째 포천에 거주 에세이스트 77호 등단(2018)에세이스트 작가회의 이사경민대학교 e-비즈니스경영과 졸업(2014)방송통신대 국어국문학과 졸업(2016)한자, 문해강사e-mail : 0503clover@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