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난다의 ‘시의적절’ 시리즈는 2025년에도 계속된다. 열두 명의 시인이 릴레이로 써나가는 열두 권의 책. 매일 한 편, 매달 한 권, 1년 365가지의 이야기. 시인에게 여름은 어떤 뜨거움이고 겨울은 어떤 기꺼움일까. 시인은 1월 1일을 어찌 다루고 시의 12월 31일은 어떻게 다를까. 하루도 빠짐없이, 맞춤하여 틀림없이, 매일매일을 시로 써가는 시인들의 일상을 엿본다.시인들에게 저마다 꼭이고 딱인 ‘달’을 하나씩 맡아 자유로이 시 안팎을 놀아달라 부탁했다. 하루에 한 편의 글, 그러해서 달마다 서른 편이거나 서른한 편의 글이 쓰였다. (달력이 그러해서, 스물여덟 편 담긴 2월이 있기는 하다.) 무엇보다 물론, 새로 쓴 시를 책의 기둥 삼았다. 더불어 시가 된 생각, 시로 만난 하루, 시를 향한 연서와 시와의 악전고투로 곁을 둘렀다. 요컨대 시집이면서 산문집이기도 하다. 아무려나 분명한 것 하나, 시인에게 시 없는 하루는 없더라는 것이다.한 편 한 편 당연 길지 않은 분량이니 1일부터 31일까지, 하루에 한 편씩 가벼이 읽으면 딱이겠다 한다. 열두 달 따라 읽으면 매일의 시가 책장 가득하겠다. 한 해가 시로 빼곡하겠다. 일력을 뜯듯 다이어리를 넘기듯 하루씩 읽어 흐르다보면 우리의 시계가 우리의 사계가 되어 있을 터이다. 그러니 언제 읽어도 좋은 책, 따라 읽으면 더 좋을 책.제철 음식만 있나, 제철 책도 있지, 그런 마음으로 시작한 기획이다. 그 이름들 보노라면 달과 시인의 궁합 참으로 적절하다, 때와 시의 만남 참말로 적절하다, 고개 끄덕이시라 믿는다. 1월 1일의 일기가, 5월 5일의 시가, 12월 25일의 메모가 아침이면 문 두드리고 밤이면 머리맡 지킬 예정이다. 그리 보면 이 글들 다 한 통의 편지 아니려나 한다. 매일매일 시가 보낸 편지 한 통, 내용은 분명 사랑일 터이다.한동안 “진자가 나를 운동한다” “버들은 끊으면서 버들을 시작한다”고 되풀이하여 쓸 수밖에 없었다. 내가 나를 체감하기가 힘이 드니까. 내게 나는 주도권이 없는 것으로 추측되니까. 이러한 추측도 슬슬 지겨운데 달리 방도가 없다. 수록된 어느 글에 실린 “끝낼 수 없는 장난도 장난일까?”라는 물음이 떠오른다. 나는 나를 끝낼 수 없다. 쓰면 쓰일 것이 쓰이는 것이고, 쓰인 것이니까 쓰일 만한 것이었다고 생각하는 수밖에. 내가 나를 유지하는 방법은 쓰기뿐일까?―작가의 말 「나를 내가 반복하는 것」에서
끊으면서 버들은 버들을 시작한다. 아무리 끊어내도 버들은 시작을 모른다. 비가 창문을 때린다. 나는 내 방이 무덤이라고 말한다. 아무도 죽지 않는 무덤이라고. 아무도 죽지 않으니까 무덤은 아니라고 말한다. 나는 이따금 살아서 을 돌아다닌다. 내 방은 무덤이 아니니까.―7월 4일 「방이 분류하는 몇 종류의 나」에서
보리차를 끓이기 시작한 지 꽤 됐다. 종일 마시는 것은 아니고 작업할 때만 마시는 보리차. 쓰고 보니 이질적이고 낯선 단어. 작업. 작업이라. 내가 하는 작업은 쓰기. 쓰는 것은. 시가 안 써질 땐 안 써지는 시에 대한 글을 쓴다. 안 써지는 시에 대한 글도 잘 안 써질 땐 일기를 쓴다. 일기도 안 써질 땐 어떡하나. 글쎄. 안 쓰면 되지. 쓰지 않다보면 쓸 것이 생긴다만. 그것도 힘들다면…… 관두면 어떨까. 관두면 다 끝날까? 전혀. 무언가를 쓸 때 보리차를 마신다. 보리차를 마실 때 전화가 오면 나는 앉아 있다고 대답한다. 뭐 하니. 앉아 있어. 밖이니. 앉아 있어. 뭐 하냐. 그냥 앉아 있어요. 작업은 낯선 단어니까. 그냥 앉아 있다고. 1.5L씩 끓인다. 퇴근 후 초저녁에 한 번. 자정에 한 번. 그리고 보리차를 얼마나 마시든 쓰기는 되거나 안된다. 당연하지.―7월 14일 「보리와 차」에서
작가 소개
지은이 : 박지일
2020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했다. 시집으로 『립싱크 하이웨이』 『물보라』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