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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은 등 뒤에 있어
꽃피는책 | 부모님 | 2025.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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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 소개

‘인생 산책자를 위한 밤과낮 에디션’은 우리가 꼭 읽어야 할 세계 고전 산문을 두 권의 책에 나눠 엮은 산문선이다. 문학이 내어주는 너른 품에 삶의 많은 시간을 기대어 살아온 젊은 번역가 세 명이 모여 우리가 사랑했고, 사랑하며, 사랑할 작품을 함께 고르고 각각 영미, 유럽, 일본어권 작품을 맡아 한 단어 한 단어 꼼꼼하고 충실하게 우리말로 되짚었다. “우리가 사는 동안 완수해야 할 책무는 온갖 단어를 찾아 그 빛에 걸맞은 이름을 붙여주는 것”이라는 카뮈의 말을 이정표로, 문학을 통해 삶을 견디고 인생을 산책으로 물들이는 이들을 위한 즐거운 선물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출판사 리뷰

지금 세계 고전 산문을 가장 걸맞게 만나는 즐거움
꽃피는책 산문선 ‘인생 산책자를 위한 밤과낮 에디션’

‘인생 산책자를 위한 밤과낮 에디션’은 우리가 꼭 읽어야 할 세계 고전 산문을 두 권의 책에 나눠 엮은 산문선이다. 문학이 내어주는 너른 품에 삶의 많은 시간을 기대어 살아온 젊은 번역가 세 명이 모여 우리가 사랑했고, 사랑하며, 사랑할 작품을 함께 고르고 각각 영미, 유럽, 일본어권 작품을 맡아 한 단어 한 단어 꼼꼼하고 충실하게 우리말로 되짚었다. “우리가 사는 동안 완수해야 할 책무는 온갖 단어를 찾아 그 빛에 걸맞은 이름을 붙여주는 것”이라는 카뮈의 말을 이정표로, 문학을 통해 삶을 견디고 인생을 산책으로 물들이는 이들을 위한 즐거운 선물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제껏 없던 풍성하고 새롭고 충실한 세계 고전 산문선
꽃피는책 ‘인생 산책자를 위한 밤과낮 에디션’

“오렌지와 두꺼비, 여름과 겨울 같은, 누구에게나 익숙한 소재들이 작가들의 시선 속에서 다시 태어난다. 우리가 사랑했고, 사랑하는 작가들의 산문을 공들인 번역으로 읽고픈 독자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
- 백수린 작가

영미와 유럽, 그리고 일본어권을 아우르는 세계적 작가들의 작품을 한 번에 만날 순 없을까?
32인의 작품 51편을 만날 수 있는 이제껏 없던 풍성한 구성의 세계 산문선

카프카, 헤세, 울프, 헤밍웨이, 소세키, 오사무 등 한 명 한 명이, 이름 하나하나가 각자의 나라와 각자의 문화권을 넘어 그 자체로 세계 문학사인 작가들의 작품을 한 권의 책으로 만날 순 없을까? 그들 각자의 내밀한 삶과 그들 문학의 수수께끼를 풀어줄 열쇠가 담긴 산문들을? 꽃피는책의 ‘인생 산책자를 위한 밤과낮 에디션’은 이 바람을 충족해줄 이제껏 없던 풍성한 구성의 세계 고전 산문선으로 영미, 유럽, 일본어권을 아우르는 세계적 작가 32인의 산문 51편을 밤 에디션과 낮 에디션 두 권으로 나눠 엮은 책이다. 여행 중에서든 침대 맡이든 언제 어디서나 가까이 두고 읽을 수 있기를, 먼저 인생을 산책한 대가들의 산책길을 함께 하는 즐거움을 온전히 누릴 수 있길 바라며.
낮 에디션인 『빛은 등 뒤에 있어』에는 나쓰메 소세키, 너새니얼 호손, 니이미 난키치, 다자이 오사무, 데라다 도라히코,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로베르트 발저, 미야자와 겐지, 버지니아 울프, 베아트릭스 포터, 시마자키 도손,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알도 레오폴드, 알베르 카뮈, 알퐁스 도데, 어니스트 헤밍웨이, 오리쿠치 시노부, 윌리엄 포크너, 조지 기싱, 조지 오웰, 찰스 디킨스, 카렐 차페크, 폴 부르제, 헤르만 헤세,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산문이 담겨 있다. 빛나는 낮을 되새겨주는 이 25인 28편의 엄선된 작품들을 읽으며, 독자들은 이제껏 없던 풍성한 인생 산책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세계적 작가들의 진지한 사유와 삶을 바라보는 시선을 비교하며 읽을 순 없을까?
밤의 죽음애서 낮의 사랑까지 10개의 주제로 나눠 엮은 이제껏 없던 새로운 구성의 세계 산문선

꽃피는책 산문선 ‘인생 산책자를 위한 밤과낮 에디션’은 우리가 사랑했고, 사랑하며, 사랑할 세계적 작가들의 산문을 밤과 낮이라는 두 개의 시공간으로 나눠 엮은 새로운 구성의 책이다. 밤과 낮은 단순한 시간 구분을 넘어 추상적 차원에서 보면, 일생을 사는 동안 우리 삶을 관통하는 여러 주제를 그 온도와 명암에 따라 담고 있는 상징적 개념이라 할 수 있다. 이는 그래서 시간이자 공간이고, 공간이자 시간이 된다. 그리고 그 시공간에는 한편에는 불면, 죽음, 산책, 쓰기, 고독 같은 것이, 다른 한편에는 공간, 계절, 여행, 사랑, 반려 같은 것이 담길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삶을 관통하는, 다른 온도와 다른 명암을 가진 주제들 말이다.
낮 에디션인 『빛은 등 뒤에 있어』는 공간, 계절, 여행, 사랑, 반려 등 다섯 가지 주제로 나뉘어 구성되어 있고, 이 각각의 주제에는 각각 세계적 작가의 작품이 담겨 있다. 독자들은 헤세의 명료한 정원과 류노스케의 감상적 스미다강을, 카뮈의 철학적 여름과 오사무의 문학적 가을을, 헤밍웨이의 회한 가득한 슈룬스 여행기와 도데의 기쁨에 떠는 알제 여행기를, 부르제의 이성적 사랑에 대한 심오한 질문과 소세키의 어머니에 대한 근원적 사랑을, 차페크의 드라마틱하고 유머러스한 개와 함께 살기와 디킨스의 기괴하면서 슬픈 큰까마귀와 함께 살기를 읽으며 삶을 바라보는 너무도 다른 시선을 만나는 즐거움과 그 안에 담긴 작가마다의 진지한 사유를 느껴보는 황홀함을 동시에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작가마다의 문체와 호흡부터 작품에 숨겨진 수수께끼까지 풀어 전해주는 번역을 만날 순 없을까?
이 바람을 충족해줄 이제껏 없던 충실한 번역의 세계 산문선

‘인생 산책자를 위한 밤과낮 에디션’을 기획하며 꽃피는책은 젊은 번역가, 그중에서도 문학 연구나 출판 관련 일을 함께하는 번역가를 찾았다. 원문을 더 충실하게 옮겨줄 수 있을 것이어서였고, 원문에 숨겨진 수수께끼까지 충실히 풀어줄 수 있을 것이어서였다.
꽃피는책은 우선, 단락 분량의 통일성이나 내용 전달의 용이성을 위해 긴 단락을 자의적으로 쪼갬으로써 작가의 문체와 원문의 단락이 지닌 호흡을 조정하는 것부터 시작, 작가의 의도를 접어두고 더 쉬운 전달을 위해 원문에 없는 단어를 넣거나 원문에 있는 단어를 빼는 것을 거쳐 우리말 쓰임에 맞추려 원문의 언어가 지닌 다름을 지우는 번역이 아닌, 쉼표 하나까지 온전히 살려 작가의 문체와 호흡, 정확한 의도, 원문 언어의 다름을 그 어떤 번역보다 충실히 담아 전하는 번역을 요청했다.
더해, 꽃피는책은 꼭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한에서 가능한 많은 주석을 요청했다. 산문이나 시 같은 정서에 좀 더 기울어진 글을 옮기거나 펴낼 때면 대개의 번역가와 출판사는 ‘각주 포비아’가 된다. 하지만 원문에 라틴어 문장이 있으면 어찌해야 할까? 우리나라 독자들은 잘 알지 못하나 작가의 사회적 위치나 인간관계를 알려주는 인물이 등장했는데, 검색으로도 확인이 까다롭거나 기본 지식이나 정보 없이는 확인이 거의 불가능한 인물이라면? 작가도 착각할 수 있는데, 이 착각을 확인했다면? 꽃피는책은 이 질문들에 대한, 이 수수께끼들에 대한 답이 주석에 있다고 판단했기에, 이 주석이 각각의 작품을 독자에게 더 온전히 더 충실하게 전하는 일이라 믿었기에 가능한 많은 주석을 요청한 것이다.
다행히도 세 젊은 번역가 겸 연구자 겸 출판인은 이런 요청에 흔쾌히 응해줬다. 꽃피는책 산문선 ‘인생 산책자를 위한 밤과낮 에디션 2’ 『빛은 등 뒤에 있어』 속 이런 번역과 주석은 무척이나 오래 걸릴 수밖에 없는, 더 까다로울 수밖에 번역 작업을 몹시도 꼼꼼하게, 하지만 즐거운 마음으로 해준 세 번역가가 전해주는 뜻밖의 멋진 선물이다.

어쨌든 피트는 한 마리 개일 뿐이었다. 전생 없이 태어나 세상에 별 기대를 품지도, 영생을 원하지도 않았다. 음식(아는 손길과 알아들을 수도, 답을 할 수도 없는 말을 하지만 아는 목소리가 애정을 담아 준다면 종류나 양은 상관하지 않았다), 뛰어다닐 땅, 숨 쉴 공기, 철마다의 햇빛과 비, 그리고 땅을 알고 태양을 느끼기 훨씬 오래전부터 그의 유산이었던, 맡아본 적도 없지만 충실하고 믿음직한 조상에게 물려받아 이미 그 냄새를 아는 메추라기. 이것이 피트가 원했던 전부다. 하지만 십이 년은 그리 길지도, 그것을 채우는 데 그리 많은 게 필요하지도 않은 시간이기에 그의 자연 수명인 팔 년이나 십 년, 또는 십이 년을 채우기엔 이만으로도 충분했을 것이다.
- 윌리엄 포크너, 「그의 이름은 피트였다」 중

겐지와 학생들이 킬로테리움 발자국을 발견한 육 년 뒤, 지질학자 사이토 후미오斎藤文雄는 이와 관련한 학술논문을 발표했는데, 논문은 일본에서 발견된 이 발견은 일본의 과학적 자연사 연구를 추동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겐지의 상상력을 자극, 훌륭한 작품을 탄생시킨 원동력이 되기도 했다. (오이시 마사노리, 「특별전 화석예술 - 제1부 독일 튀빙겐대학 생흔 화석 컬렉션, 제2부 하나마키의 족적 화석」, 『이와테현 박물관 소식지』 No. 94, 2002, p.4.)
- 미야자와 겐지, 「영국 해안」 속 다섯 번째 주석




옮긴이의 말 중에서

꽃피는책의 ‘인생 산책자를 위한 밤과낮 에디션’은 세계 문학사에 거대한 발자취를 남긴 작가들의 산문을 두 권에 나눠 엮은 책이다. 밤과 낮은 하루의 시간을 반으로 가르는 과학적 구분이지만, 우리 삶을 구성하고, 지배하고, 이끌고, 관통하는 여러 주제를 그 온도와 명암에 따라 가르는 정서적 구분이기도 하다. 불면, 고독, 상실, 죽음 등은 밤의 영역으로, 자연, 사랑, 여행, 가족, 반려 등은 낮의 영역으로 바라보는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이렇게 나뉜 두 개의 시간, 두 가지 주제들은 빛과 그림자처럼, 동전의 앞뒷면처럼 원래 한 쌍이기에 단면으로는 존재할 수 없는 삶을, 그 삶이 이뤄지는 시공간을 은유한다.

우리가 인생이라는 길고도 짧은 행로를 걷는 동안 빛과 어둠은 교대로 길을 비추고, 교대로 길을 감춘다. 영원한 낮도, 영원한 밤도 없기에 그 길은 걸어볼 만한 길이다. 그리고 좋은 문학 작품은 언제나 그 길의 훌륭한 동반자가 되어준다. 오래전 세상을 떠난 작가들이 남긴 문장에는 행간마다 진지한 사유의 흔적이 서려 있고, 삶을 바라보는 시선이 살아 꿈틀댄다. 때로는 시리도록 명징하고 때로는 봄볕처럼 따뜻한 그 사유와 시선에 감응하며 독자 여러분 각자의 인생 산책을 이어가기를, 그 시간에 충만함이 깃들기를 빈다.

공간, 오랫동안 그곳에 남아
헤르만 헤세❘정원에서

나는 정원의 여름이 그토록 급하게 왔다 간다는 사실이 언제나 놀랍고 애처롭다. 겨우 몇 달밖에 안 되는 그 짧은 시간 동안, 정원에서는 여러 종의 식물이 뿌리내리고 피어나고 살아가다 시들어선 죽는다. 어린 허브를 심은 화단에 물과 비료를 주면 얼마 지나지 않아 빽빽하게 자라선 번영을 이룬다. 그러고는 두세 달이 지나기도 전에 늙어버린다. 그렇게 목적을 다 이룬 허브는 새로운 생명에게 자리를 내준다. 정원처럼 여름이 무섭도록 빠르게 스쳐 가는 곳은 없을 것이다.

  작가 소개

지은이 : 너새니얼 호손
19세기 미국 문학의 거장이자 미국 낭만주의를 대표하는 소설가. 1804년 매사추세츠주 세일럼에서 태어났다. 17세기 신대륙 개척 시대에 건너온 청교도 가문의 후손으로, 그의 선조 중에는 세일럼 마녀재판을 주도한 판사가 있었다. 이로 인한 가문의 비극적 역사와 죄의식은 호손의 문학 세계를 형성하는 핵심 요소가 되었다.보든 대학 시절 시인 헨리 롱펠로, 후일 미국 대통령이 된 프랭클린 피어스와 친밀한 관계를 맺었다. 졸업 후에는 12년간 고향집에서 은거하며 치열한 독서와 습작 생활을 이어갔다. 1837년 첫 단편집 『두 번 들은 이야기』로 에드거 앨런 포의 찬사를 받았다. 1839년부터 보스턴 세관 검사관으로 근무했고, 1842년 결혼 후 콩코드의 ‘낡은 목사관’에 머물며 에머슨, 소로 등 당대 지성인들과 교류했다. 1846년에는 단편집 『낡은 목사관의 이끼』를 발표했다. 같은 해에 세일럼 세관 검사감독관으로 임명되었으나 1849년에 정권이 바뀌며 강제로 해임되었다.1850년, 46세에 발표한 『주홍글씨』는 그의 대표작이자 미국 문학이 유럽의 그늘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길을 개척했음을 선언하는 이정표가 되었다. 허먼 멜빌은 호손의 문학적 깊이에 경의를 표하며 『모비 딕』을 그에게 헌정했다.이후 『일곱 박공의 집』(1851), 『블라이드데일 로맨스』(1852), 『대리석 목신상』(1860) 등을 통해 인간 내면의 어둠과 빛을 탐구했다. 말년에는 건강이 악화되어 고통받다가 1864년, 오랜 벗 피어스와의 여행 중 플리머스에서 생을 마감했다.호손은 청교도적 도덕주의와 낭만주의적 상상력을 결합해 인간 영혼의 비극적 진실을 파고든 작가로 평가받는다. 특히 죄와 속죄, 은밀한 죄책감의 심리적 작용을 다룬 그의 작품들은 현대에도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지은이 : 나쓰메 소세키
소설가, 영문학자. 일본 근대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 메이지 시대가 시작되기 전 해인 1867년 도쿄에서 5남 3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도쿄제국대학 영문과를 졸업하고 교직 생활을 하던 중 국비 유학생으로 선발되어 영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유학 중 경제적인 어려움과 학문에 대한 고민 등으로 극도의 신경쇠약을 앓는다.귀국 후 도쿄제국대학에서 영문학을 강의하다가 서른여덟 살에 쓴 첫 소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로 큰 호평을 받으며 문단에 등단했다. 이후 대학을 사직하고 아사히 신문사에 입사해 전업 작가로 활동을 시작했다. 그 후 대부분의 저작은 아사히 신문을 통해 발표되었다.1916년 마흔아홉 살에 지병인 위궤양이 악화하여 《명암》 집필 중에 생을 마감했다.《나는 고양이로소이다》 이후 《도련님》, 《풀베개》, 《산시로》, 《그 후》, 《문》, 《마음》 등의 작품이 있다.

지은이 : 니이미 난키치
일본 아이치현 출생으로,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는 일본의 대표적인 동화 작가이다. 주로 생명의 소중함과 생태계를 지키고자 하는 마음이 담긴 작품을 썼으며, 자연을 소재로 생명력 넘치면서도 평화를 추구하는 감동적인 메시지를 전하는 작가로 알려져 있다. 대표작으로는 <금빛 여우>, <장갑을 사러 간 아기 여우> 등이 있다. 110편의 동화와 60편의 소설 및 다수의 시를 남기고 29세에 결핵으로 세상을 떠났다.

지은이 : 다자이 오사무
다자이 오사무(일본어: 太宰 治, 1909년 6월 19일 ~ 1948년 6월 13일)는 일본의 소설가이다. 1936년(쇼와 11년)에 첫 작품집 『만년(晩年)』을 간행하였다. 1948년(쇼와 23년)에 애인 야마자키 도미에(山崎富栄)와 함께 다마가와(玉川) 죠스이(上水)에 투신자살하였다. 주요 작품으로는 「달려라 메로스(원제: 走れメロス)」, 「쓰가루(津軽)」, 「옛날 이야기(お伽草紙)」, 「사양(斜陽)」, 「인간실격」이 있으며, 사카구치 안고・오다 사쿠노스케(織田作之助)・이시카와 준(石川淳) 등과 함께 신희작파(新戱作派)・무뢰파(無賴派) 등으로 불린다.본명은 쓰시마 슈지(일본어: 津島修治)인데, 필명을 쓴 까닭은 쓰가루 지방(아오모리현 서부) 출신인 스스로가 본명을 읽으면 쓰가루 방언의 영향으로 지시마(チシマ)로 들리지만 이 필명은 방언투로 읽어도 발음이 그대로이기 때문이었다고 한다.[1아버지는 공무로 늘 바빴고 어머니는 병약했으므로, 다자이 자신은 유모 등의 손에서 자랐다.1916년(다이쇼 5년)에 가나키제일심상소학교(金木第一尋常小學校)에 입학하였다. 4년만인 1922년(다이쇼 11년) 4월에 소학교를 졸업하고 학력 보충을 위해 현지 4개 마을에서 조합으로 세운 메이지고등소학교(高等小學校)에 다시 1년간 통학하였으며, 1923년(다이쇼 12년)에는 아오모리 현립 아오모리중학교(靑森中學校)[2]에 입학하는데, 입학 직전인 3월에 다자이의 아버지가 도쿄에서 세상을 떠났다.프랑스어를 전혀 하지 못하면서도 프랑스 문학을 동경해 4월에 동경제국대학 문학부 불문학과에 입학하지만, 높은 수준의 강의 내용을 전혀 이해할 수 없었던 데다 친가에서 부쳐주는 돈으로 마음껏 방탕하고 호사스러운 생활을 하면서 그에 대한 자기 혐오, 내지 다자이 자신의 처한 위치와 더불어 마르크시즘에 심취해 갔고, 당시 치안유지법에서 단속하고 있던 공산주의 활동에 몰두하느라(다만 공산주의 사상 자체에 진심으로 빠져들었던 것은 아니었다) 강의조차 대부분 출석하지 않았다. 또한 소설가가 되기 위해 5월부터 이부세 마스지(井伏鱒二)의 제자로 들어갔는데, 이때부터 본명인 쓰시마 슈지가 아닌 다자이 오사무라는 이름을 쓰게 된다. 대학은 거듭된 유급에 수업료 미납으로 제적된다.[5] 재학 중에 만나 동거하던 술집의 여급으로 유부녀였던 18세의 다나베 시메코(田部シメ子)와 1930년 월에 가마쿠라의 고시고에(腰越) 바다에서 동반 투신자살을 기도하였으나, 시메코만 죽고 다자이는 혼자 살아남았다. 이 일로 다자이는 자살방조 혐의로 검사로부터 조사를 받았지만, 형 분지(文治) 등의 탄원으로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다고 한다.[6]「인간실격(人間失格)」, 「앵두(櫻桃)」를 마무리한 직후 1948년 6월 13일, 타마가와(玉川) 죠스이(上水)에서 애인 야마자키 토미에(山崎富栄)와 동반자살하였다.[14] 이때 그의 나이는 39세였다. 이 사건은 발표 직후부터 온갖 억측을 낳았는데, 도미에에 의한 억지 정사설, 희극 심중 실패설 등이다. 다자이가 생전에 아사히 신문에 연재 중이던 유머 소설 「굿 바이」도 미완의 유작으로 남았는데, 공교롭게도 13화에서 작가의 죽음으로 절필되었다는 데에서 기독교의 징크스를 암시하는 다자이의 마지막 멋부림이었다는 설도 있고, 그의 유서에는 '소설을 쓰는 것이 싫어졌다' 등의 취지가 적혀 있었는데, 자신의 컨디션 저조나 다운증후군을 앓는 저능아였던 외아들의 처지에 대한 비관도 자살의 한 원인이 되었을 거라는 설도 있다. 기성 문단에 대한 '선전포고'로까지 불리던 다자이의 연재 평론 「여시아문(如是我聞)」의 마지막회는 다자이 사후에 게재되었다. 유해는 스기나미 구 호리노우치에서 화장되었다. 계명(戒名)은 문채원대유치통거사(文綵院大猷治通居士)였다.다자이의 사체가 발견된 6월 19일은 공교롭게도 그의 생일이었는데, 죽기 직전에 쓴 단편 「앵두」와도 관련해, 생전에 다자이와는 동향으로 교류가 있던 곤 간이치(今官一)에 의해 '앵두 기일'이라 불리게 되었다. 이 날은 다자이 문학의 팬들이 그의 무덤이 있는 도쿄도 미타카시의 젠린사(禪林寺)를 찾는 날이기도 하다. 또한 다자이가 태어난 아오모리 현 카나기마치에서도 '앵두 기일'에 맞춰 다자이를 기념하는 행사를 열었는데, 다자이의 탄생지에서 다자이의 탄생을 축하하는 것이 옳다는 유족의 요망도 있어 다자이 오사무 탄생 90주년이 되는 1999년부터는 「다자이 오사무 탄생제」로 이름을 고쳤다.

지은이 : 미야자와 겐지
1896년 일본 이와테현에서 태어나 1933년 급성 폐렴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일본에서 가장 사랑받는 시인이자 동화작가로 자연과 인간의 조화로운 삶, 우주와 생명에 대한 통찰과 뛰어난 상상력을 담은 작품을 많이 남겼습니다. 산과 들을 산책하며 자연을 관찰하고 농업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가 하면, 농업과학을 연구해 농사를 지도하기도 했습니다. 1921년부터 동화를 쓰기 시작했으나 살아 있을 때 나온 책은 시집 『봄과 수라』와 동화집 『주문 많은 요리점』뿐이고, 삶을 마친 뒤 작품들이 알려지기 시작하여 지금은 세계적으로 사랑받고 있습니다. 주요 작품에 『은하철도의 밤』 『구스코 부도리의 전기』 『첼로 켜는 고슈』 『바람의 마타사부로』 『오츠벨과 코끼리』 등이 있습니다.

지은이 : 버지니아 울프
20세기 문학의 혁신을 이룬 영국의 작가. 잊을 수 없는 언어, 역사·정치·페미니즘·예술 문제에 관한 시대를 초월한 문제의식, 놀랍도록 왕성한 작품활동, 소설의 기존 형식을 깨부순 그녀의 실험은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의 진로를 바꾸어 놓았다.본명은 애들린 버지니아 스티븐(Adeline Virginia Stephen)으로 1882년 1월 25일 영국 런던의 중상류층 가정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레슬리 스티븐은 저명한 문인이자 영국 국가인명사전의 초대 편집자로, 어렸을 적부터 문학적 재능을 보인 울프를 지도했다. 어머니 줄리아 덕워스는 빼어난 미모와 빅토리아 시대가 요구하는 자기희생으로 명성이 자자했다. 또한 19세기 최고의 인물 사진가인 줄리아 마거릿 카메론을 숙모로 둔 만큼 저명한 사회적, 예술적 인맥을 가지고 있었다. 1895년, 1905년 어머니와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고 이때 발병한 울프의 신경질환이 평생을 괴롭힌다.그녀가 회복하는 동안 네 남매(바네사, 토비, 버지니아, 아드리안)는 런던의 보헤미안적인 블룸즈버리 지역으로 이사했고, 그곳에서 자유롭게 공부하고 그림을 그리거나 글을 쓰고 즐겁게 지냈다. 곧 미술·문학·사회경제 분야를 아우르는 급진적인 젊은이들의 주간 모임 ‘블룸즈버리 그룹’을 주최하는데 거기서 교제한 레너드 울프와 1912년 결혼한다. 1917년 울프 부부는 인쇄기를 구입하고 ‘호가스 출판사’를 설립한다. “사람들을 조각과 모자이크로 드러낼 것입니다. 그들은 예전처럼 깨끗하고 획일적이며 일관된 전체가 아닙니다.” 그녀는 일기에 쓴 것처럼 현실을 “떨리는 조각들로 이루어진 전체”로 창조하고 “마음의 비행을 포착하는 데 전념”했다. 《댈러웨이 부인》, 《등대로》 등 그녀 최고의 소설들은 깔끔한 해결책이나 명확한 구분 없이 인간의 내면과 외부 사이를 오가며 시간, 경험, 성격의 불확정성과 의식에 영향을 미치는 외부 환경에 대한 미적 탐구로 우리를 초대한다. 또한 예술 이론, 문학사, 여성의 글쓰기, 권력의 정치에 관한 선구적 에세이 《자기만의 방》을 남겼으며 전기문과 일기, 서신도 썼다. 정신 질환이 재발하면서 1941년 3월 28일 서섹스 우즈강에서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향년 59세).

지은이 : 시마자키 도손
시, 소설, 수필, 동화 등 문학의 전 분야에서 역량을 발휘해 일본문학사에 거대한 족적을 남긴 작가다. 1872년에 나가노현(長野縣) 니시지쿠마군(西筑摩郡) 미사카(神坂)에서 아버지 마사키(正樹)와 어머니 누이(縫)의 막내로 태어났다. 도손의 가문은 1513년에 선조가 기소(木曾)로 이주해 와서 대대로 촌장과 역참과 숙박업을 가업으로 이어 왔는데 바로 아버지 마사키가 본 소설 주인공 한조의 모델이다. 어렸을 적부터 아버지로부터 《천자문》과 《권학편》 등을 배웠고 열 살 때 도쿄로 유학을 가서 매형 집에서 기숙하며 다이메이(泰明)소학교를 다니게 된다. 그 후 여러 곳으로 전전하며 15세 되던 해에 시바(芝)에 있는 영어학교에 입학한다. 그리고 정신적 스승인 기무라 구마지(木村熊二)에게 영어를 배우기 시작한다. 이해 11월에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고, 이듬해 본격적으로 영어를 배우기 위해서 메이지(明治) 학원 본과에 입학한다. 한때 정치에 뜻을 두고 있었으나 18세 되던 해에 동경대 교양학부의 전신인 제1고등학교 입학시험에 실패를 계기로 문학을 하기로 마음먹는다. 그리고 21세인 1892년부터 잡지 《여학(女學)》에 습작을 발표하면서 본격적으로 문학의 길에 들어선다. 22세에는 《문학계(文學界)》 창간 동인으로 참가하고 거기에 작품을 발표하며 필명인 도손(藤村)이라는 이름을 사용하게 된다. 26세 되던 해에 발표한 《새싹집(若菜集)》이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며 일약 무명에서 스타덤에 오른다. 특히 그 안에 수록된 〈첫사랑(初戀)〉이라는 7·5조의 정형시가 독자들을 단숨에 매료한다. 이 시는 중학교 교과서에 실리며 국민적 시인이라는 명성을 얻는 계기가 된다. 그는 연이어 네 번째 시집 《낙매집(落梅集)》까지 간행하지만 시로는 만족을 하지 못하고 산문으로의 전향을 염두에 두고 습작 삼아 수필 《지쿠마가와강 스케치(千曲川のスケッチ)》를 발표한다. 이 작품도 명작으로 명성을 얻는다. 31세에는 〈옛 주인(舊主人)〉이라는 첫 단편소설을 발표하는데 풍기 문란을 조장한다는 이유로 발매를 금지당하고 만다. 33세에는 결연한 각오로 자비 출판을 계획하고 장인에게 자금 원조를 부탁하는데 이 작품이 1906년 35세에 출간되는 《파계(破戒)》다. 천민 계급의 차별 문제를 픽션으로 다룬 것으로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던 출세작이며 일본 자연주의 작품의 기념비적 작품이라 일컬어진다. 1908년, 과거 22세 때 제자를 사랑한 나머지 학교를 사직하고 여행을 떠났던 자신의 사건을 소설로 《아사히 신문》에 연재하고 간행한 것이 바로 《봄(春)》(1908)이다. 이 작품을 기점으로 이른바 사소설 글쓰기가 유행하며 이 흐름이 일본 자연주의의 주류가 되었다. 39세에는 《집(家)》(1910)을 《요미우리 신문》에 연재하는데 출가한 누이의 가문과 친정의 두 가문의 가부장제하의 퇴폐와 붕괴의 과정을 그린 누이의 생애를 그린 자전적 소설이다. 47세에는 상처하고 혼자 지내던 중 집안일을 돌보러 온 조카를 임신시킨 사실을 소설로 써서 발표하게 된다. 《신생(新生)》(1918)은 작가 자신의 치부 고백의 완결편이지만 “노회한 자기변명에 불과하다”라는 작가 미시마 유키오(三島由紀夫)의 혹평을 듣기도 한다.58세부터는 본 작품인 《동트기 전》 집필을 시작한다. 그동안 축적해 온 작가적 역량을 총동원한 비장한 글쓰기였는데 이 작품은 그가 평생 동안 일관되게 추구해 왔던 “자아정체성 찾기”의 일환으로 아버지를 추적한 것이며 그 아버지라는 메타포에 자신의 내적인 성찰과 고뇌도 함께 상감해 넣었다. 그와 동시에 프랑스에 도피 도중 우연히 목격한 제1차 세계대전을 통하여 전쟁 참화와 그에 따른 국가의 존재를 절감하면서 정치 시스템까지 아우르는 역사 소설을 써야겠다는 문학적인 사명감을 이 소설을 통해 실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64세에 이 작품을 완결한다. 그리고 72세에 소설 《동방의 문》을 집필하던 중 사망한다.

지은이 : 알도 레오폴드
1887년 미국 아이오와주 벌링턴에서 태어나 예일대학 삼림학부에서 공부했다. 1909년 삼림 공무원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1924년 위스콘신대학 〈미국 임산품 시험소〉 부소장으로 자리를 옮겨 일하다가 1933년에 위스콘신대학 농경제학과 교수로 초빙되어 1948년 사망할 때까지 재직했다. ‘환경윤리의 아버지’라고 불리며 많은 사람들에 의해 20세기의 가장 영향력 있는 보존 사상가로 손꼽히는 레오폴드의 유산은 임업, 야생동물 관리, 보존 생물학, 지속 가능한 농업, 복원 생태학, 환경 역사, 문학, 교육, 미학 및 윤리 등 광범위하다. 『모래 군의 열두 달』은 지금까지 출판된 환경에 관한 가장 사랑받고 영향력 있는 책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 그의 사상과 철학은 21세기 사회가 직면한 복잡한 자연환경 보존 문제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에 대한 통찰력과 영감을 얻기에 충분하다. 레오폴드는 1965년 미국 야생생물연맹의 자연보전 영예의 전당에 들어갔다.

지은이 : 알베르 카뮈
1913년 알제리의 몽도비(Mondovi)에서 아홉 남매 중 둘째로 태어났다. 포도 농장 노동자였던 아버지가 1차 대전 중에 사망한 뒤, 가정부로 일하는 어머니와 할머니 아래에서 가난하게 자랐다. 1918년에 공립초등학교에 들어가 뛰어난 교사 루이 제르맹의 가르침을 받았고, 이후 장학생으로 선발되어 알제 대학 철학과에 입학한다. 카뮈는 이 시기에 장 그르니에를 만나 많은 가르침을 받는다. 1934년 장 그르니에의 권유로 공산당에도 가입하지만 내적 갈등을 겪다 탈퇴한다. 1936년에 고등 교육 수료증을 받고 교수 자격 심사에 지원해 대학 교수로 살고자 했지만 결핵이 재발해 교수직을 포기했다. 이후 진보 일간지에서 기자 생활을 한다.알베르 카뮈는 1942년에 《이방인》을 발표하면서 이름을 널리 알렸으며, 같은 해에 에세이 《시지프 신화》를 발표하여 철학적 작가로 인정을 받았다. 또한 1944년에 극작가로서도 《오해》, 《칼리굴라》 등을 발표하며 왕성한 작품 활동을 했다. 1947년에는 칠 년여를 매달린 끝에 탈고한 《페스트》를 출간해 즉각적인 선풍을 일으켰으며 이 작품으로 ‘비평가상’을 수상한다. 1951년 그는 공산주의에 반대하는 내용을 담은 《반항하는 인간》을 발표했다. 이 책은 사르트르를 포함한 프랑스 동료들의 반감을 사기도 했다.1957년에 카뮈는 마흔네 살의 젊은 나이로 노벨 문학상을 받았으며 이때의 수상연설문을 초등학교 시절 자신을 이끌어준 선생님에게 바쳤다. 삼 년 후인 1960년 겨울 가족과 함께 프로방스에서 크리스마스 휴가를 보낸 후 친구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파리로 돌아오던 중 빙판길에 차가 미끄러지는 사고로 숨졌다. 사고 당시 카뮈의 품에는 발표되지 않은 《최초의 인간》 원고가, 코트 주머니에서는 사용하지 않은 전철 티켓이 있었다고 한다. 《이방인》 외에도 《표리》, 《결혼》, 《정의의 사람들》, 《행복한 죽음》, 《최초의 인간》 등을 집필했다.

지은이 : 알퐁스 도데
남프랑스 님에서 출생. 리옹의 고등중학교에 들어갔으나 가업이 파산하여 중퇴하고, 알레스에 있는 중학교 사환으로 일하면서 청소년 시절을 보냈다. 1857년 형이 있는 파리에 가서 문학에 전념하며 시집인 《사랑에 빠진 연인들 Les Amoureuses》을 발표, 이것이 당시의 입법의회 의장 모르니 공작에게 인정받아 비서가 되었다. 이를 계기로 문학에 더욱 정진하게 되었다. 그 후에 남프랑스의 시인 미스트라르를 비롯하여 플로베르, 졸라, E. 공쿠르, 투르게네프 등과 친교를 맺었으며, 아내 쥘리의 내조로 행복한 57년의 생애를 파리에서 보냈다. 그는 친교를 맺은 문인들과 더불어 자연주의의 일파에 속했으나 선천적으로 민감한 감수성, 섬세한 시인 기질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시적인 면이 넘치는 유연한 문체로 불행한 사람들에 대한 연민과 고향 프로방스 지방에 대한 애착심을 주제로 하여 인상주의적인 자신만의 작풍을 세웠다. 그의 문장은 보여 줄 것이 많은 예술가의 문장이자 시니컬하면서도 동정심을 담은 시인의 문장이다. 익살스런 농담에서부터 더없이 섬세한 환상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주제를 다룰 수 있는 재치를 가지고 있었기에 학자들부터 군중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독자층을 매혹했다. 자신을 과시하지 않는 경험담으로 작품에 활기를 부여할 줄 알았던 그는, 세월이 흘렀어도 빛바래지 않은 다양한 작품으로 ‘아름다운 문학’을 느끼게 한다.

지은이 : 조지 기싱
1857년 영국 웨이크필드에서 약제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맨체스터대학교에 입학했으나, 매춘부와 교제하며 결혼한 후 그녀를 구하기 위해 절도죄를 범하고 투옥되어 퇴학당했다. 극도로 빈곤한 생활을 하면서도 1876년에 미국으로 건너가 고전·철학·문학을 공부했다. 이후 《새벽의 노동자Workers in the Dawn》(1880), 《군중Demos》(1886), 《밑바닥의 세계The Nether World》(1889), 《신 삼류 문인의 거리New Grub Street》(1891), 《유랑의 몸Born in Exile》(1892) 등을 펴냈다.특히 빈민층의 생활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그는 영국 자연주의의 대표 작가로 뽑힌다. 그의 문학적 특징은 지적인 무산자無産者, 영락零落한 지식인 등이 그의 교양 때문에 자기가 속해 있는 빈민층에 안주하지 못하는 비극을 다룬 점에 있다. 그러나 사회주의에 대해서는 공감하지 않고 오히려 비관주의로 기울어 후기에 갈수록 고전적 교양의 세계를 동경했다. 그는 일생 디킨스를 존경해 《찰스 디킨스 평론》(1898)을 썼으며, 자전적 수상록인 《헨리 라이크로프트의 수기The Private Papers of Henry Ryecroft》(1903)와 남이탈리아 기행문 《이오니아 해변에서By the Ionian Sea》(1901)는 수필의 명작이라 불린다. 그 밖에 단편집 《거미집이 있는 집The House of Cobweb and Other Stories》(1906)이 있다. 1903년 남프랑스에서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지은이 : 조지 오웰
영국의 작가·저널리스트. 본명은 에릭 아서 블레어(Eric Arthur Blair). 1903년 6월 25일, 인도 아편국 관리였던 아버지의 근무지인 인도 북동부 모티하리에서 태어났다. 첫돌을 맞기 전 영국으로 돌아와 “하급 상류 중산층”으로 명문 기숙학교인 세인트 시프리언스와 이튼을 졸업한 뒤 명문 대학에 진학하는 대신 식민지 버마로 건너가 영국의 경찰간부로 일한다. “고약한 양심의 가책” 때문에 경찰직을 사직한 뒤, 자발적으로 파리와 런던에서 부랑자 생활을 하고 그 체험을 바탕으로 『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생활』(1933)을 발표한다. 1936년은 오웰에게 중요한 의미를 지닌 해이다. 그해 잉글랜드 북부 탄광촌을 취재하여 탄광 노동자의 생활과 삶의 조건 등을 담은 『위건 부두로 가는 길』(1937)을 쓰고, 이 책의 원고를 출판사에 넘겨주자마자 “파시즘에 맞서” 싸우기 위해 스페인내전에 참전하여 『카탈로니아 찬가』(1938)를 펴내면서 자신의 예술적·정치적 입장을 정리해나간다. 그러한 전환점 이후 폐렴 요양차 모로코에 가서 『숨 쉬러 나가다』(1939)를 쓴다. 2차세계대전 중에는 BBC 라디오 프로듀서로 일했고 이후 <트리뷴>의 문예 편집장, <옵저버>의 전쟁 특파원 노릇도 한다. 1945년에는 전 세계적인 반향을 불러일으킨 정치 우화 『동물농장』을 출간한다. 또 다른 대표작 『1984』(1949) 집필 중 폐결핵 판정을 받은 그는 1950년 1월 21일, 마흔여섯 나이로 숨을 거둔다.『위건 부두로 가는 길』은 오웰이 작가로서 어느 정도 인정을 받은 뒤 한 진보단체로부터 잉글랜드 북부 노동자들의 실상을 취재하여 글을 써달라는 제의를 받고, 두 달 동안 랭커셔와 요크셔 일대 탄광 지대에서 광부의 집이나 노동자들이 묵는 싸구려 하숙집에 머물며 면밀한 조사활동을 벌인 결과물이다. “실업을 다룬 세미다큐멘터리의 위대한 고전”으로 평가받는다.

지은이 : 찰스 디킨스
1812년 영국 포츠머스의 해군 경리국에서 근무하는 하급 관리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가 열두 살 때, 호인이었으나 생활력이 없었던 아버지가 빚을 지고 투옥하는 바람에 집안 형편이 어려워져 학교를 다니지 못하고 구두약 공장에서 열 시간씩 일하게 되었다. 이때의 경험이 훗날 그의 작품에 큰 영향을 끼쳤다. 열다섯 살에 변호사 사무소의 사환, 법원 속기사를 거친 끝에 신문기자가 되어 의회에 관한 기사를 쓰게 되었다. 또한, 청소년기부터 고전을 탐독하면서 일찍이 문학에 눈을 떴고 이에 기자 생활을 하며 쌓은 경험이 더해져 풍부한 관찰력과 식견을 갖추었다. 1833년 잡지에 단편을 투고해 당선된 데 힘입어 계속해서 다양한 작품을 발표했다. 1836년 발표한 단편을 모아 《보즈의 스케치》를 출간했다.그는 스물네 살에 신진작가로 화려하게 문단에 데뷔했다. 다음 해에 완성한 장편소설 《피크위크 클럽의 기록》(1837)에는 그의 뛰어난 유머 감각이 발현돼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다. 다음 작품인 《올리버 트위스트》(1838)는 베스트셀러가 되어 작가로서 확고한 위치를 확립했다. 그 후 영국과 미국의 각계각층 독자의 호응에 보답해 《니콜라스 니클비》 (1839)《골동품 상점》(1842) 〈크리스마스 캐럴〉(1843) 등 중.장편소설을 연이어 발표해 명성을 떨쳤다. 몸소 체험한 사회 밑바닥 생활상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세상의 부정과 모순을 용감하게 비판했던 그는 1850년부터 이전 작품과 성격이 조금 다른《데이비드 코퍼필드》(1850) 《황폐한 집》(1852) 《위대한 유산》(1861) 등을 집필했다. 이외에도 다수의 소설과 수필을 남겼다. 작품을 쓰는 일뿐만 아니라 잡지사 경영, 자선 사업, 연극 상연, 자작품 공개 낭독회, 각 지방의 여행 등 다양한 활동을 하다가 1870년 6월 9일 세상을 떠났다. 소박한 평민이나 교양 있는 사람들, 빈민층을 막론하고 누구나 동감하는 작품을 써서 생전에 폭넓은 인기를 누렸던 그는 현재 영국이 낳은 가장 위대한 소설가로 평가받고 있다.

지은이 : 카렐 차페크
카프카, 쿤데라와 함께 체코 문학의 길을 낸 국민 작가 카렐 차페크는 1890년 1월 9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보헤미아 북동부 지역에서 태어났다. 김나지움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프라하 카렐 대학에 입학했다. 대학시절 베를린과 파리의 대학을 오가며 수학했고, 1915년 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대 초반 강직성 척추염이라는 희귀 질환을 진단받았지만, 더욱 왕성한 집필 작업으로 체코 문학의 기린아로 부상했다. 1916년 산문집 『빛나는 심연 외(外)』를 시작으로 소설, 희곡, 에세이, 동화, 번역 작품에 이르기까지 여러 장르에서 뛰어난 작품들을 발표했다. 동시에 체코 주요 일간지 『나로드』, 『나로드니 리스티』 등의 편집자로 일했다. 몇 차례 노벨 문학상 후보에 올랐던 차페크는 독일이 프라하를 점령하기 몇 달 전인 1938년 12월 25일 인플루엔자 합병증으로 사망하였다.1934년에 출간된 『평범한 인생』은 『호르두발』, 『별똥별』과 함께 철학 소설 3부작의 대미를 장식한다. 회상 형식으로 전개되는 이 작품은 현재(顯在)하는 자신에게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여러 개의 자아가 존재하며, 그 내면에 있는 자아들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진실을 찾아간다는 이야기다. 그럼으로써 자신뿐만 아니라 타인도 이해하게 된다는 함의를 담아내며, 서로의 차이점과 다양성을 인정하고 형제애를 실천하는 것을 지향하는 차페크 문학의 본질인 휴머니즘의 정수를 보여 준다.그 밖의 작품으로는 <로봇robot>이라는 신조어를 세상에 알린 희곡 「R. U. R.」를 비롯하여 「곤충 극장」, 「마크로풀로스의 비밀」, 「하얀 역병」, 「어머니」 등과 소설 『도롱뇽과의 전쟁』, 『절대성 공장』, 『크라카티트』 외 다수의 동화와 에세이집이 있다.

지은이 : 헤르만 헤세
독일 남부 뷔르템베르크의 칼프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요하네스는 목사였고, 어머니 역시 독실한 신학자 가문 출신이라 기독교적 분위기 속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1890년 라틴어 학교에 입학했고, 이듬해 마울브론 신학교에 들어갔다. 하지만 신학교의 속박된 생활을 못 견디고 뛰쳐나와 한때 자살을 시도했다. 시인이 되기를 꿈꾼 뒤 시계 공장에서 시계 톱니바퀴를 닦으며 문학수업을 시작했다. 1895년 낭만주의 문학에 심취해 첫 시집 《낭만적인 노래》를 출간했다. 1904년 첫 장편소설 《페터 카멘친트》를 출간하여 문학적 지위를 얻었다. 그해에 피아니스트 마리아 베르누이와 결혼했으며, 스위스로 이주해 시작에 몰두했다. 그 후 인도 여행으로 동양에 대한 관심이 깊어졌으며, 아내의 정신병, 헤세 자신의 신병 등 가정적 위기를 겪었고, 제2차 세계대전 중 나치스의 광적인 폭정에 저항하는 등 파란 많은 세월을 겪었다. 주요 작품으로 《수레바퀴 밑에서》, 《게르트루트》, 《크눌프》, 《데미안》, 《싯다르타》, 《나르치스와 골트문트》, 《유리알 유희》(1946년 노벨문학상 수상작) 등이 있다.1877년 7월 2일 남부 독일 칼브에서 태어남. 1881년 스위스의 바젤로 이주함. 1890년 라틴 어 학교에 입학함.1891년 어려운 주州 시험을 통과하고 마울브론의 신학교에 들어감. 1893년 칸슈타르 고교를 중퇴함.1895년 서점 견습 점원이 됨.1899년 처녀시집 《낭만적인 노래(Romantische Lieder)》와 산문집 《자정 이후의 한 시간(Eine Stunde hinter Mitternacht)》을 발간함.1901년 시문집 《헤르만 라우셔(Hermann Lauscher)》를 발간해 시인 부세의 주목을 받음.1902년 《시집(Gedichte)》을 어머니에게 헌정했으나, 어머니는 출판 직전에 별세.1904년 최초의 장편소설 《페터 카멘친트(Peter Camenzind)》로 일약 인기 작가가 됨. 9세 연상인 피아니스트 마리아 베르누이와 결혼함. 1906년 제2의 장편소설인 《수레바퀴 아래서(Unterm Rad)》를 발표함.1907년 소설집 《이 세상 이야기(Diesseits)》를 발간함. 1908년 《이웃 사람(Nachbarn)》을 발간함. 1910년 《게르트루트(Gertrud)》를 발간. 방랑벽이 심한 그와 피아니스트인 아내와의 불화로 인도 지방으로 여행함. 귀국 후 스위스 베른으로 이주함. 1911년 시집 《도상(途上, Unterwegs)》을 발간함.1912년 《우회로(迂廻路, Umwege)》를 발간함.1913년 〈로스할데(Roßhalde)〉를 씀. 이 작품에 그려진 예술가의 결혼 생활의 파국은 마침내 헤세 자신의 현실이 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 때 반전주의자로 지목받아 국적을 스위스로 옮겼으며, 같은 입장에 있던 R. 롤랑과 친교를 맺음. 1915년 서정적인 방랑자의 이야기 《크눌프(Knulp)》와 시집 《고독자의 음악(Musik des Einsamen)》을 발간. 전쟁의 체험과 정신병이 악화된 아내와의 이별 등은 헤세의 작품 경향을 일변시켰음. 1919년 정신 분석 연구로 자기 탐구의 길을 개척한 대표작인 《데미안(Demian)》을 발간함.1922년 《싯다르타(Siddhartha)》와 〈내면에의 길(Weg nach Innen)〉에서 불교적 해탈의 비밀을 추구하였음. 1927년 《황야의 이리(Der Steppenwolf)》를 발표. 이 작품은 내외의 분열과 고뇌를 그린 《데미안》과 일관되어 있음. 1928년 에세이집 《관찰(Betrachtungen)》을 발간함.1929년 시집 《밤의 위안(Trost der Nacht)》을 발간함.1930년 스위스에 있으면서 《지(知)와 사랑(Narziss und Goldmund)》을 발표. 이 작품은 신학자로서 지성의 세계에 사는 나르치스와, 여성을 알고 애욕에 눈이 어두워진 골드문트와의 우정의 역사를 다룬 것임.1933년 소설집 《작은 세계(Kleine Welt)》를 발간함.1942년 《시집(Die Gedichte)》을 발간함. 1943년 20세기의 문명의 비판서라 할 수 있는 미래소설 장편 《유리알 유희(Das Glasperlenspiel)》를 발표함.1945년 시선집 《꽃 피는 가지(Der Blutenzweig)》를 발간함. 1946년 괴테상과 노벨문학상 수상. 《전쟁과 평화(Krieg und Frieden)》를 발간함.1951년 《만년의 산문(Spate)》을 발간함.1954년 《헤세와 로망 롤랑의 왕복 서한》을 발간함.1955년 《악마를 부름(Beschworungen)》을 발간함.1962년 8월 9일 사망함.

지은이 : 어니스트 헤밍웨이
1899년 7월 21일 미국 일리노이 주 오크 파크(현재의 시카고)에서 태어났다. 의사 아버지와 성악가 어머니 사이를 두었고, 여섯 남매 중 장남이었다. 평생을 낚시와 사냥, 투우 등에 집착했으며, 다방면에 걸쳐 맹렬한 행동을 추구하고, 행동의 세계를 통해 자아의 확대를 성취하려 했다. 그러한 인생관은 그의 작품 전체를 통해서도 드러난다.고등학생 때 학교 주간지 편집을 맡아 직접 기사와 단편을 썼으며, 고등학교 졸업 후 대학교 진학을 포기하고 1917년 [캔자스시티 스타]의 수습기자로 일했다. 제1차 세계대전 중이던 1918년 적십자 야전병원 수송차 운전병으로 이탈리아 전선에서 복무하기도 했으며, 전선에 투입되었다가 다리에 중상을 입고 귀국했다. 휴전 후 캐나다 [토론토 스타]의 특파원이 되어 유럽 각지를 돌며 그리스-터키 전쟁을 보도하기도 했다. 1921년, 해외 특파원으로 건너간 파리에서 스콧 피츠제럴드, 에즈라 파운드 등 유명 작가들과 교유하는 등 근대주의적 작가들과 미술가들과 어울리며 본격적으로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1923년 『세 편의 단편과 열 편의 시(詩)』를 시작으로 『우리들의 시대에』, 『봄의 분류(奔流)』,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를 발표했다. 방황하는 젊은이들의 삶을 그린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 소설로 베스트셀러 반열에 올랐다. 그후 1920년대 ‘로스트 제너레이션(잃어버린 세대)’를 대표하는 ‘피츠제럴드’와 ‘포그너’와 함께 3대 작가로 성장하였다.그의 첫 소설 『해는 또다시 떠오른다』를 1926년에 발표했는데, 헤밍웨이의 대다수 작품은 1920년대 중반부터 1950년대 중반 사이에 발표되었다. 전쟁 중 나누는 사랑 이야기를 다룬 전쟁문학의 걸작 『무기여 잘 있거라』(1929)는 그가 작가로서 명성을 얻는 데 공헌했으며, 1936년 『킬리만자로의 눈』, 스페인 내전을 배경으로 한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1940)는 출판되자마자 수십만 부가 넘는 판매고를 올린다. 이후 10년 만에 소설 한 편을 발표하지만, 주목을 받지 못하다가 1952년 인간의 희망과 불굴의 정신을 풀어낸 『노인과 바다』를 발표하여 큰 찬사를 받았으며, 퓰리처상과 노벨문학상을 수상한다.그러나 이 해에 두 번의 비행기 사고를 당하는데, 말년에 사고의 후유증으로 인해 우울증에 시달리고, 집필 활동도 막히기 시작했다. 하지만 행동의 규범에 철저한 만큼이나 죽음과 대결하는 삶의 성실성과 숭고함을 작품에 투영하려 노력해왔다. 1959년에는 아이다호 주로 거처를 옮겼고, 1961년 여름, 헤밍웨이는 신경쇠약과 우울증에 시달리다 1961년 케첨의 자택에서 엽총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대표작으로는 1929년 『무기여 잘 있거라』, 1940년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1952년 『노인과 바다』 등이 있다.

지은이 :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1850년 스코틀랜드 에든버러에서 등대를 전문적으로 짓는 건축 기사 아버지와 신사 계급 출신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선천적으로 기관지가 약해 어려서부터 정규 교육 과정을 따라가지 못하고 개인 교사에게 배우고 여러 학교를 옮겨 다녔다. 아버지의 뜻에 따라 등대 건축을 공부하기 위해 에든버러 대학교에 입학했으나 문필가가 되기로 결심하고, 생계를 위해 법학을 전공했다. 변호사 시험에 합격했지만 실제로 법률가 일을 하지는 않았다. 에세이와 시, 단편 소설 등을 쓰면서 유럽을 여행하다가 1876년 프랑스에서 미국인이자 기혼이었던 패니 오즈번을 만나 사랑에 빠졌다. 1879년 오즈번을 만나기 위해 미국으로 여행길에 올랐다가 건강이 악화되었다. 1880년 5월 오즈번과 결혼하고 그녀가 전남편과 낳은 아들 로이드와 함께 스코틀랜드로 돌아왔다. 1881년 여름, 악천후로 실내에만 머물러 있어야 할 때 로이드와 함께 보물이 묻힌 섬에 대한 지도를 만들면서 놀다가 『보물섬』에 대한 영감을 얻었다. 이 이야기를 《영 포크스(Young Folks)》에 연재하고 1883년 책으로 출간해 곧바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건강을 위해 영국 남부 해안 도시인 본머스에 정착해 그곳에서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의 기이한 사건』(1886) 같은 대표작들을 집필, 출간했다. 의사의 조언에 따라 미국으로 떠났다가 이후 길버트제도, 타이티, 뉴질랜드 등을 여행하다가 남태평양 사모아에 정착했다. 사모아 문화에 매료되어 서구 열강의 식민 지배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갖게 되었으며, 관련 주제의 글들을 언론에 발표하는 한편 『캐트리오나』, 『섬에서 보내는 밤의 도락』, 『조수(潮水)』 같은 장편 소설들을 집필하는 등 왕성한 작품 활동을 했다. 1894년 과로로 사망했으며, 사모아에 묻혔다.

지은이 : 윌리엄 포크너
서사와 문체, 인간 존재에 대한 근원적 질문을 통해 세계 문학사의 지형을 바꾼 20세기를 대표하는 소설가 중 한 명. 미국 남부의 신화적 공간인 요크나파토파를 배경으로 독자적인 서사 우주를 구축했으며, 인간의 죄의식, 역사, 시간, 정체성을 끊임없이 해체하고 재구성했다. 1897년 미국 미시시피주 뉴올버니에서 태어난 포크너는 옥스퍼드에서 성장했다. 어린 시절부터 문학과 미술에 관심을 가졌으며, 윌리엄 셰익스피어, 조지프 콘래드, 제임스 조이스, 셀린, 도스토옙스키, 톨스토이의 영향을 받았다. 1차 대전 당시 캐나다 공군에 지원했으나 실전에는 투입되지 않았다. 전쟁 이후 고향으로 돌아와 우체국 직원, 대학 행정직원, 작사가, 시인 등 다양한 일을 하며 글을 쓰기 시작했다. 1929년 발표한 장편 『소리와 분노』는 포크너 문학의 전환점을 이룬 작품으로 몰락하는 남부 사회의 내면을 심층적으로 그려냈다. 이후 『내가 죽어 누워 있을 때』, 『압살롬, 압살롬!』 등에서 더욱 급진적인 서사 실험을 이어나갔다.포크너는 허구의 남부 군郡인 요크나파토파를 창조해 이 지역의 인물과 사건, 역사와 신화를 바탕으로 19편의 장편소설과 다수의 단편을 엮어 ‘하나의 문학적 우주’를 건설했다. 그의 세계에는 과거 남부의 영광과 노예제의 그림자, 전쟁의 상처, 백인과 흑인의 갈등, 빈곤과 몰락의 현실이 교차하며, 이 모든 것이 언어와 시간, 의식의 실험 속에서 구현된다. 그의 분열된 화자, 중첩된 시점, 복잡한 문체는 난해하다고 평가되지만, 이는 단순한 기교가 아니라 인간 경험의 본질에 접근하기 위한 구조적 시도였다. 1949년 “심오하고 독창적인 예술적 기교를 통해 인간의 영혼을 탐구했다”는 선정 이유와 함께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수상 연설에서 그는 “작가는 사랑, 명예, 긍지, 연민, 희생, 인내 - 그런 것들을 쓰지 않으면 아무것도 쓰지 않는 것이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이후 1951년에는 자신이 직접 선별하여 여섯 개의 주제로 분류한 『포크너 자선 단편집Collected Stories of William Faulkner』으로 전미도서상을 수상했다. 100편에 이르는 단편 중 포크너가 42편을 추려낸 이 단편집은 장편소설 속 서사 구조와 미시적 현실 묘사를 압축해낸 포크너 문학의 정수이자, 요크나파토파라는 가상의 세계를 바탕으로 구성된 근대 미국인의 기억과 무의식의 지도이다. 그는 이 단편들 안에서 폐허와 침묵, 전쟁과 인종, 여성과 고통, 폭력과 슬픔을 주제로 남부 사회의 해체 과정을 치열하게 추적한다. 독립된 작품이면서도 포크너의 장편들과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이 단편들은, 그의 문학적 실험이 단지 형식에 그치지 않고 미국 역사와 인간 조건에 대한 총체적인 증언이었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포크너는 프랑스 실존주의자들로부터 인간 존재의 복잡성을 문학적으로 형상화한 작가로 평가받았고, 라틴아메리카의 마르케스, 바르가스 요사, 카를로스 푸엔테스는 모두 그를 “자신들의 문학적 아버지”로 언급했다. 일본의 오에 겐자부로, 중국의 모옌 등도 포크너의 영향 아래 자신들의 고향과 가족의 이야기를 문학화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1962년, 미시시피 옥스퍼드에서 세상을 떠난 그는 미국 남부의 역사와 상처를 하나의 신화로 바꿔놓은 작가”로 남았다. 그의 작품은 지금도 여전히 새로운 독자와 비평가를 불러들이며, 언어와 인간 존재, 그리고 서사라는 개념 그 자체를 묻는 문학적 사유의 지평을 넓히고 있다.

지은이 : 베아트릭스 포터
영국 런던 켄싱턴에서 방적공장(랭커셔)을 소유한 상류층 가정의 외동딸로 태어났으며, 동물을 사랑하는 수줍음 많은 문학소녀였다. 버터 바른 토스트를 좋아하는 ‘벤저민’과 장기를 많이 부리는 ‘피터’라는 이름의 토끼, 그리고 개구리, 박쥐 등을 키우면서 자연과 교감하는 감각을 키웠다. ‘피터’를 데리고 스코틀랜드를 여행하던 중에 가정교사의 어린 아들 노엘이 아프다는 말을 듣고는 그 소년을 위로하기 위해 지은 동화가 『피터 래빗 이야기』(1902)다.어린 시절 동물 친구들을 그리고 이야기 짓기를 즐기던 베아트릭스는 ‘왕립식물원’에서 버섯을 연구하고 스케치를 했다. 그녀의 논문은 당시 여성의 입회를 허가하지 않았던 ‘영국린네협회’에서 인정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여성이라는 이유로 식물학자가 되는 걸 포기해야 했다. 그러나 좌절은 결코 실패가 아니다. 베아트릭스는 크리스마스카드를 제작하고 수채화 실력을 더욱 발전시키면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신데렐라』 등 자신이 좋아하는 작품에 일러스트를 그렸다.베아트릭스는 처음에 『피터 래빗 이야기』를 여러 출판사로부터 거절당하여 자비출판을 했는데, 초판이 두 주 만에 동이 나는 바람에 컬러 판본을 정식 출간하게 되었다. 그 후로 『다람쥐 넛킨 이야기』, 『벤저민 버니 이야기』, 『못된 두 생쥐 이야기』, 『파이와 파이 틀 이야기』, 『글로스터의 재봉사 이야기』 등 작은 그림책들의 연이은 성공으로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다. 베아트릭스는 1903년에 조끼 입은 피터 인형을 직접 디자인하고 또 영국특허국에 등록함으로써, ‘피터 래빗’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상표 등록된 문학 캐릭터가 된다.베아트릭스는 자신의 작품 세계를 이해해 주는 편집자 노먼과 사랑에 빠진다. 아직 엄격한 신분제 사회였던 빅토리아 시대에 가족의 반대를 무릅쓴 힘겨운 연애였으나, 약혼한 지 한 달 만에 노먼이 급성백혈병으로 사망하는 비극을 겪는다. 이 러브스토리는 르네 젤위거가 주연한 영화 「미스 포터」에서 볼 수 있다.베아트릭스는 상실감을 달래기 위해 자기 작품의 배경이 되는 잉글랜드 북서부 레이크디스트릭트 지역의 ‘힐탑하우스’로 이사한다. 이 새로운 집필 장소는 제2의 인생을 사는 계기가 된다. 베아트릭스는 이곳에서 농부가 되더니, 허드윅 면양을 가장 잘 키워서 지역 협회 최초의 여성 회장이 되기도 했다.그러나 무엇보다도 무분별한 개발에 반대하고 자연보호에 앞장서는 환경운동가로 변신한다. 베아트릭스는 이곳을 순례하는 미국 독자들의 성금과 인세를 모아 농장들을 사들이기 시작했다. 지역개발 요구에 맞서 자연을 보호하기 위해 사방팔방으로 노력했고, 사십 대 후반에 이 외로운 투쟁을 도왔던 지방 변호사 윌리엄 힐리스와 결혼하였다.그렇게 모은 자신의 땅을 이후 ‘내셔널트러스트’에 기증하였고, 이러한 노력 덕분에 내셔널트러스트는 세계적인 환경운동의 중심지가 되었다. 시인 윌리엄 워즈워스의 자취도 담고 있는 레이크디스트릭트는 지금도 세계 독자들이 찾는 아름다운 명소이다. 베아트릭스의 작품은 이처럼 삶 자체가 아름다운 이야기가 된 작가의 영혼이 깃든 영원한 고전이다.

지은이 : 헨리 데이비드 소로
매사추세츠 주 콩코드에서 태어났다. 하버드 대학을 졸업하고 고향으로 돌아와 교사가 되었는데, 학교가 체벌을 강요하자 이를 거부하고 3주 만에 사직했다. 아버지의 연필공장에서 일을 돕다가, 가장 친한 친구인 친형 존과 함께 사립학교를 열어 2년 반 동안 열심히 운영했는데, 존이 파상풍에 걸려서 죽자 학교를 닫고 이곳저곳을 떠돈다. 친분이 있던 초월주의 사상가 랄프 왈도 에머슨(Ralph Waldo Emerson)의 집에서 입주 가정교사 생활을 하고, 초월주의자들의 잡지 <다이얼>에 글을 기고하며 작가의 꿈을 키운다. 그러다가 형과의 추억도 정리하고 자신이 구상하는 ‘삶의 실험’도 하며 글을 쓰려고, 1845년 3월부터 월든 호숫가에 오두막집을 짓기 시작했고, 같은 해 7월 4일부터 1847년 9월 6일까지 그곳에서 홀로 지냈다. 그러는 동안에 ‘노예제’와 ‘멕시코 전쟁’에 찬성하는 미국 정부에 반대한다며 세금을 체납했다가 체포되는 일도 겪는다. 1849년 형과의 캠핑을 추억하며 쓴 《콩코드 강과 메리맥 강에서의 일주일》을 출간했는데, 초판 1천 부 중 300부도 채 안 팔려서 악성재고로 남자 후속권의 출간이 기약없이 미뤄졌다. 이에 소로는 원고를 계속 다듬었고, 결국 초고 완성 8년만인 1854년 《월든 : 숲속의 생활》이라는 제목으로 출간했다. 1859년에는 노예제도 폐지 운동가 존 브라운을 위해 의회에 탄원서를 제출하는 등 노예제 폐지 운동에 헌신하며 활발한 강연과 저술 활동을 펼쳤다. 그는 집필과 강연, 사회 참여를 이어 가던 중 폐결핵 진단을 받고 1861년 11월 3일 한평생 써 온 《일기》를 마지막으로 기록한 뒤 1862년 고향 콩코드에서 세상을 떠났다. 사후에 《소풍》(1863), 《메인 숲》(1864) 등이 출간되었다.

지은이 : 로베르트 발저
1878년, 스위스 빌에서 태어났다. 일찍이 취리히, 바젤, 슈투트가르트, 베를린, 뮌헨 등 스위스와 독일의 여러 도시를 떠돌며 다양한 임시직 사무원을 전전하다가, 1898년 베른의 한 신문을 통해 시 몇 편을 처음으로 발표한다. 1905년, 베를린의 하인 양성 학교를 거쳐, 같은 해 10월부터 12월까지 오버슐레지엔(오늘날 폴란드)에 위치한 담브라우 성에서 실제 하인으로 일한다. 1907년, 첫 장편 소설 『타너가의 남매들』을 시작으로 『조수』(1908), 『벤야멘타 하인학교』(1909) 등 대표작을 잇달아 출간한다. 그의 작품은 프란츠 카프카, 로베르트 무질, 헤르만 헤세, 발터 베냐민, 막스 브로트 등에게 찬사를 받는다, 1924년부터 1933년까지 ‘마이크로그램’이라 불리는 총 526편에 이르는 글을 남기는데, 여기엔 미완성 장편 소설 『강도』도 포함된다. 고독과 불안에 시달리다가 정신 분열 증상을 보이고, 1933년 헤리자우의 정신 요양원으로 이송된 뒤에는 끝내 절필하고 만다. 1956년 12월 25일, 홀로 산책하던 중 심장 마비로 눈길에서 사망한다.

지은이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1892년 일본 도쿄의 시타마치에서 태어났다. 1913년 도쿄제국대학교 영문학과에 입학해 차석으로 졸업했다. 대학 재학 중이던 1914년 기쿠치 간, 구메 마사오 등과 함께 동인지 《신사조》를 발간하고 〈라쇼몬〉, 〈코〉 등을 발표했는데, 〈코〉가 나쓰메 소세키로부터 극찬을 받으면서 문단에서 크게 주목받기 시작했다. 이후 합리주의와 예술지상주의의 작풍으로 시대를 풍미했으나 말년에는 자신의 삶을 조롱하는 자조적인 작품들을 많이 썼다. 서른다섯 살 되던 해인 1927년 장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을 이유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의 죽음은 일본 근대사에서 관동대지진과 견줄 만큼의 사회적 충격이었다. 그로부터 8년 뒤인 1935년 일본 출판사 문예춘추의 사주이자 아쿠타가와의 친구였던 기쿠치 간이 아쿠타가와 상을 제정, 현재까지도 일본 최고 권위의 문학상으로 인정받고 있다.

지은이 : 폴 부르제

지은이 : 데라다 도라히코
1878년 도쿄에서 1남 3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부친의 아낌없는 지원 아래 어렸을 적부터 과학적 탐구 정신을 키워 나간다. 고등학교 시절에 당시 영어 교수로 있던 나쓰메 소세키를 만나 하이쿠에 흥미를 가지게 됐으며, 물리학 교수 다마루 다쿠로의 가르침을 받고 물리학에 뜻을 둔다. 도쿄 제국 대학 물리학과에 진학하면서 상경한 이후엔 가인(歌人) 마사오카 시키, 다카하마 교시 등과 교류하며 문학적으로 현저한 영향을 받는다. 이때부터 문예지 《호토토기스》에 수필 및 사생문을 발표하며 본격적으로 문필 활동을 시작한다. 학부를 졸업하고 조교수를 거친 후 우주 물리학 연구를 위해 국비 유학생 자격으로 베를린 대학교에 입학한다. 유럽과 미국을 여행하고 귀국한 다음엔 이학부 교수로 취임한다. 「라우에의 회절 무늬 실험 방법 및 그 설명에 관한 연구」(1917)로 제국 학사원 은사상을 수상하고, 정부 및 군대로부터 각종 조사 활동과 연구를 위촉받는다. 과학 저술로는 『바다의 물리학』(1913), 『지구 물리학』(1915, 1933)이 있으며, 『후유히코슈』(1923), 『만화경』(1929), 『가키노타네』(1933) 등 수필집도 펴냈다. 1935년 전이성 골종양으로 세상을 떠난다.

지은이 : 오리쿠치 시노부
<저자소개> 오리쿠치 시노부(折口信夫)(1887~1953)국문학자, 민속학자, 시인시인으로 네기시 단가회(根岸短歌會), 단가(短歌) 잡지 아라라기(アララギ)에 참여반(反)아라라기파 결성. 『닛코(日光)』 창간 참여주요 저서 『고대연구(古代究)』, 가집(歌集) 『海山のひだ』, 시집 『古代感愛集』, 소설 『死者の書』 등

  목차

들어가는 글

공간, 오랫동안 그곳에 남아

헤르만 헤세 ⋯ 정원에서
조지 오웰 ⋯ 물 아래 달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 스미다강
헨리 데이비드 소로 ⋯ 내 손으로 집 짓기
어니스트 헤밍웨이 ⋯ 모로 성 연안 청새치 낚시

계절, 낯설지 않은 서정

로베르트 발저 ⋯ 그라이펜 호수
조지 오웰 ⋯ 두꺼비를 생각하며
알도 레오폴드 ⋯ 삼월, 기러기가 돌아오다
시마자키 도손 ⋯ 밤이 짧은 계절
알베르 카뮈 ⋯ 알제의 여름
다자이 오사무 ⋯ 아, 가을
조지 기싱 ⋯ 겨울 1

여행, 그해 일어난 일 중 지금까지 좋은 일

어니스트 헤밍웨이 ⋯ 슈룬스에서 보낸 겨울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 도보 여행
미야자와 겐지 ⋯ 영국 해안
알퐁스 도데 ⋯ 오렌지
알베르 카뮈 ⋯ 수수께끼

사랑, 네가 좋으면 나도 좋아

폴 부르제 ⋯ 진실한 감정
니이미 난키치 ⋯ 꽃을 묻다
나쓰메 소세키 ⋯ 유리문 안에서
오리구치 시노부 ⋯ 부재중일 때
너새니얼 호손 ⋯ 아이와 나

반려, 우린 모두 누군가의 첫사랑이었다

윌리엄 포크너 ⋯ 그의 이름은 피트였다
데라다 도라히코 ⋯ 새끼 고양이
카렐 차페크 ⋯ 민다, 혹은 개를 키운다는 것
버지니아 울프 ⋯ 충실한 친구에 관하여
찰스 디킨스 ⋯ 두 큰까마귀
베아트릭스 포터 ⋯ 산토끼 길들이기

작가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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