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리뷰
사실 이런 이야기들은 이제 낯설지 않은 것이 되었습니다. 오히려 너무 진부해졌다고 할까요? 그래서 새로운 이야기가 아닐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그것을 둘러싼 어떤 변수들에 대한 것입니다. 그중 하나는 ‘속도’입니다.
저는 사회과학자로서 언제나 이 속도에 관심이 있었습니다. 사회에서는 항상 변화들이 일어납니다. 전쟁, 자연재해, 산업·경제·인구·기술의 변화, 정치적 사건들, 이런 일들은 인류가 처음 사회를 구성했을 때부터 늘 있었던 일입니다. 사실 사회란 이런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 인류가 만들어 낸 것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사회가 버티지 못하고 파괴될 때가 있습니다. 감당하지 못하는 ‘격변’의 시기가 도달했을 때입니다.
늘 불쌍한 것은 국민들, 특히 사회적 약자들입니다. 이 시대에는 청년과 여성, 지방에 사는 국민들이 상대적으로 더 어렵습니다. 지금 대한민국 청년들은 아마도 인류 역사상 가장 극심한 경쟁을 ‘공정’이라는 이름으로 겪어 내는 중입니다. 그 경쟁에서 대부분은 불행해집니다. EBS의 한 프로그램에서 물었을 때, 경쟁에서 이긴 청년들조차 행복하지는 않다고 말합니다. 가장 심각한 것은 이 경쟁이 공정하지 않고 절대 공정해질 수 없다는 사실을 누구나 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이를 낳지 않습니다. 나는 지옥에 살지만 내 아이까지 지옥에 살게 하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바로 이 시점에 한국은 자살을 결심했습니다. 더 이상 공동체를 지속시키지 않기로 결정한 것입니다. 과연 인류 역사에 이런 나라가 있었을까요? 세계의 최빈국이자 약소국으로 분단과 전쟁까지 겪은 나라가, 실로 엄청난 속도로 세계 최고 수준의 정치·경제·문화를 성취한 다음, 바로 그 정점에 도달한 때에 소멸하기로 작정한 것입니다. 만약 한국이 다음 한 세대 안에 인구 회복의 탄력성을 완전히 잃고 소멸해 버린다면 이는 단순히 한 나라의 소멸이 아니라 인류 문명사에서 볼 때도 참으로 기이한 일이 될 것입니다. 미래의 인류는 한국이라는 나라의 성장과 소멸을 통해 ‘인간과 사회란 어떤 존재인가?’라는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작가 소개
지은이 : 이관후
서강대학교 정치외교학과에서 학부와 석사를 마치고, 영국의 런던 대학교에서 ‘대표’ 개념에 대한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서강대 글로컬한국정치사상연구소 전임연구원을 거쳐 현재 건국대학교 상허교양대학 조교수이다. 주요 논문으로 「왜 대의민주주가 되었는가?」, 「연동형비례대표제와 주권의 재구성」 등이 있고, 공저로 South Korea’s Democracy in Crisis, 『한국 민주주의, 100년의 혁명 1919-2019』, 역서로 『정치를 옹호함』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