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독백의 형태로 말해지는 ‘부재증명의 우정’을 통해 지난 30여 년간 가장 완벽한 방식의 우정을 탐색해”(조연정)온 소설가 최윤의 중단편선 『하나코는 없다』가 문지작가선 아홉번째로 출간되었다. 이번 중단편선에는 1994년 제18회 이상문학상을 수상한 표제작을 비롯해 「회색 눈사람」(1992년 제23회 동인문학상 수상작) 「당신의 물제비」(1992) 「워싱턴 광장」(1994) 「굿바이」(1999) 「분홍색 상의를 입은 여자」(2015) 등 작품 활동 초기부터 최근까지 펴낸 최윤의 대표작 10편을 수록했다. 수록작 가운데 「워싱턴 광장」 「속삭임, 속삭임」(1993)「열세 가지 이름의 꽃향기」(1995) 등 8편은 2018년, 문지클래식 6으로 출간되었던 최윤의 소설집『저기 소리 없이 한 점 꽃잎이 지고』에 미수록된 작품들이다.최윤은 타인의 부재 속에 “확인 불가능한 자신의 부재를 미리 경험하”(조연정)는 화자를 등장시키며 그로부터 작가 자신의 소설 쓰기의 윤리를 확장한다. 고통 한가운데에 선 화자의 ‘애도’는 증언이나 독백을 통한 ‘대신 쓰기’의 방식으로 죽은 자를 향하고 있을 뿐 아니라, 기록 과정에서 복기하는 화자 자신의 한 시절과 상처마저 보듬는다. 이는 시대의 야만은 냉철하게 인식하되 그 안에서 피고 지는 인간의 삶을, 끈질긴 생명력을 주의 깊게 들여다보는 최윤 소설이 지닌 가장 큰 특징이다.미소가 지워져버린, 이제는 무표정하게 떠올라오는 아름다운 사람의 얼굴까지. 이 마지막 얼굴은 그 빈자리의 가장자리를 더 깊고 넓게 패게 했을 뿐. 어떤 얼굴도 그 빈자리를 메워주지 못한다.[……] 그래도 그녀는 이 마지막 얼굴로 잠시 되돌아온다. 갑작스럽게 등장해 의심해보기도 전에 요지부동으로 자리를 잡는 하나의 확신이 그녀 몸속에 한 줄기 차가운 바람을 일으킨다. 「굿바이」
그러나 불가지론과는 무관하게 과학의 세계는 늘 예상 외의 놀라운 결과를 연출하며 이 앞에서 과학자는 한계성과 무한성이라는 심히 아름다운 상반된 우주의 법칙을 마주하게 된다. 그때 과학자는 자신이 질문을 잘못 던졌음을, 다른 방식으로 질문을 던져야 함을 인정하는 것을 배운다. 「당신의 물제비」
어느 날 아침, 머릿속 가득히 한 곡의 이중창이 채워져 있었다. 머릿속 작은 우주뿐 아니라 방 안 가득히, 도시 가득히 그리고 저 먼 우주까지 가득히. 그것은 여느 상쾌한 이른 아침 휘파람 곡으로 되어 입술 사이를 새어 나오는 작은 행복의 표시 같은 것은 아니었다. 때가 지나가버린 유행가 가락이며, 음악이라기보다는 부르짖음에 가까운 그런 이중창. 「워싱턴 광장」
작가 소개
지은이 : 최윤
1953년 서울에서 태어나 서강대학교 국문과를 졸업하고 프로방스 대학교에서 불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988년 계간 『문학과사회』에 「저기 소리 없이 한 점 꽃잎이 지고」를 발표하여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다수의 소설집과 장편소설을 출간했으며, 최근에는 소설집 『동행』(2020), 장편소설 『파랑대문』(2019), 산문집 『사막아, 사슴아』(2023)를 펴냈다. 1992년 「회색 눈사람」으로 동인문학상을, 1994년 「하나코는 없다」로 이상문학상을, 2000년 「소유의 문법」으로 이효석문학상을 수상했다. 다수의 작품이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 스페인어, 튀르키예어, 일본어, 중국어 등으로 번역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