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리뷰
꽃 진 자리
꽃이 마음인 줄 알았는데
꽃 진 자리,
그 아득함이 마음이었다
외롭다는 말을 들었다
그때는 그 말이
저기 저곳에서
꽃이 지고 있다는 뜻인 줄 알지 못했다
내 안의 내가 흘러넘쳐
어쩔 줄 몰라하던
이명,
겨울이 오고서야 알았다
외로운 사람과
그리운 사람의 입술이
서로의 손에 호, 호,
입김을 채워줄 수 있는 다정이
성에꽃 찬란함이라는 것을
꽃의 내륙에
바람의 내륙을 담고서야 알았다
외롭다는 말과
그립다는 말의 때늦음이
겨우
계절이라는 것을
사랑 그 후,
서성이며 일렁이며 불어오는
매미의 빈 날개를
촛불 속에 적시며 알게 되었다
마음, 마음,
온 생을 다해
울어대는
꽃 진 자리,
그 아름다운 여울을
목련의 방
그녀의 눈망울에 달이 차오르고 있었다.
저녁이 환해질수록
점점 작아지던 그녀의 방.
목련이 피어나고 있었다.
백태 안쪽 가만히 귀를 대보면
눈물이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옆집보다 야트막하게
대문 쪽으로 머리를 수그리고
코흘리개 아이들을 품고 있었다.
수레를 끄는 그녀의 등이 낡은
지붕으로 휘어져 가는 사이
아이들은 얼굴보다 큰 뻥튀기를 깨물며
흙벽 모서리에 난 구멍을 긁었다.
술에 취해 밤의 목덜미에 칼끝을 대고
새벽을 엎지르는 아비를 긁는 것인지.
그런 악천후를 피해 돌아오지 않는
이역의 어미를 긁는 것인지.
철없이 벽은 긁을수록 환해져,
커져 가는 햇빛과 엉켜
킥킥대며 방바닥을 뒹굴었다.
봄을 향한 나무의 비명이 꽃이라면
고통은 적멸에 가닿는 생의 환호일까.
수북이 쌓인 폐지 속에 숨었다가
세상보다 아득한 온기에 몸을 말고
스르르……,
눈을 감아버린
어린 고양이들의 잠.
곪은 달은 아물었다
덧나기를 반복하며
목련나무 가지 위에서 부풀었다.
혹 월식이 그리워지는 그믐이면
그녀는 명치끝에 고인 울음을
마른 밥그릇 떨어뜨려 설거지했다.
닦을수록 그늘이 깊어지는 꽃의 이명,
화들짝 달무리가 붉게 물들고 있었다.
아무도 깨지 않은 목련의 밀실이 있었다.
작가 소개
지은이 : 김은상
2009년 『실천문학』 등단. 시집<유다복음>(한국문연, 2017),<그대라는 오해를 사랑하였다>(상상인, 2024). 소설<빨강 모자를 쓴 아이들>(멘토프레스, 2019),<나의 아름다운 고양이 델마>(멘토프레스, 2019)가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