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시인 신미나의 두 달간의 도쿄 레지던시 생활을 기록한 산문집이다. 신미나에게는 시를 쓰는 자아와 그림을 그리는 자아가 나누어져 있다. 이 산문집은 ‘교차 일기’라는 콘셉트하에 서로 다른 두 자아를 넘나들며 써 내려가는 메타 에세이이다. 육첩 다다미방이 있는 가구라자카의 언덕을 중심으로 저자는 산책과도 같은 걸음을 옮겨나간다.
도쿄에 위치한 대학, 공원 등 곳곳에서 일제강점기를 살다 간 조선의 작가들을 떠올리며 현재로 흘러드는 과거를 감각하기도 하고, 때로는 이방인으로서 자신의 귀에 흘러드는 외국어의 낯선 감각에 사로잡힌다. 한편 일본 생활 속 다양한 미식 경험과 문화 체험 등을 통해 느낀 즐거움을 표현하는 것도 빼놓지 않는다. 한일 양국의 여러 번역가, 출판 관계자, 소설가, 시인 친구 들을 만나 우정 어린 교류를 나누며 추억을 나누는 장면들은 귀엽거나 아름답고 때때로 애틋하다.
출판사 리뷰
시인 신미나와 싱고가 함께 전하는 진지발랄 가구라자카 생활기
신미나 산문집 『짧은 꿈』은 저자가 일본 도쿄에서 두 달간 체류하며 나날이 써 내려간 체류기이다. ‘부캐(sub character)’ 하나쯤은 당연시되는 시대, 시인 신미나에게도 ‘싱고’라는 이름의 오랜 부캐가 있다. 시를 쓸 때는 신미나, 그림을 그릴 때는 싱고라는 필명을 사용해온 저자는 ‘신미나와 싱고의 교차 일기’라는 부제로 엮은 이번 산문집에서 그 둘을 종횡무진 오간다.
그날그날 펼져지는 두 자아의 힘겨루기! 에도성 외곽의 해자를 따라 거닐며 문학에 관해 이야기해야 할 때는 ‘시인력’이 강해지고, 일본 드라마를 보면서 궁극의 디저트를 상상할 때면 ‘싱고력’이 용솟는다. 때때로 그 두 자아는 야키토리집에서 술잔을 부딪히며 빔 벤더스의 영화를 두고 사뭇 진지한 토론을 벌이기까지 한다. 그렇게 저자는 가벼움과 무거움, 엉뚱한 상상과 진지한 사유를 넘나들며 친근하고도 먼 나라인 일본에서 한때를 보낸다. 츠바키 꽃잎을 닮은 달콤한 낮잠 같은 이야기에 여러분을 초대한다.
일상의 감각으로 도시를 사유하다
이야기는 언덕 마을 가구라자카에 있는 육첩 다다미방에서 시작된다. 가로 네 걸음, 세로 네 걸음만큼 되는 방. 시인 윤동주도 머물렀을 법한 작은 크기의 방. 저자는 그 방에 ‘스페이스 다다’라는 애칭을 붙인다. 일상의 조각들을 그러모아 상상력으로 쏘아 올리는 공간. 무중력 우주 같은 그곳에서 시인의 두 자아는 마음껏 부유한다.
저자는 스페이스 다다를 거점 삼아 이방인의 눈으로 도쿄의 일상을 바라본다. 동네 마트에서 1인분씩 포장된 참치회를 발견하며 ‘혼자’가 예외 상태가 아닌 기본값인 사회의 분위기를 체감하고, 가구라자카 골목을 산책하며 담장을 따라 활짝 핀 하얀 꽃들에 이끌린다. 아무런 사전 계획도 세우지 않은 채 방문한 도쿄국립신미술관에서 우연히 다자이 오사무의 얼굴과 마주하기도 하고, 요초마치공원을 찾아 조용한 놀이터 풍경 속에 자신을 놓아둘 때도 있다. 일상 속 자유로운 리듬에 몸을 맡긴 채 생활하는 시인의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독자 또한 가구라자카 일대를 여행하는 기분에 사로잡힌다.
과거의 빛과 미래의 그림자가 포개어지는 자리에 서서
그러나 일상 속 장면들이 그저 가볍게 스치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저자에게는 문학을 통해서 알게 된 과거와 현재, 서로 다른 시공간들이 겹쳐 보이기 때문이다. 다자이 오사무의 촛불 같은 눈빛에 김수영의 횃불 같은 눈빛이 겹치고, 어린이 놀이터에 박열과 가네코 후미코, 이봉창 등이 옥살이했던 형무소와 교수대가 겹친다. 하얀 꽃들의 이름이 데이카카즈라인 것을 알고는 그 꽃에 얽힌 옛 시인 후지와라노 데이카의 사랑 이야기를 금세 기억해낸다. 호세이대 근처에서는 식민과 문명 사이에서 서성였을 소설가 박태원의 초상을 떠올리며, 과거가 현재에 스며드는 방식에 관해 고민하기도 한다. 이렇듯 저자는 사물과 장소에 얽힌 시간의 흐름을 읽어내며 시공간이 겹쳐지는 순간에 자신의 발걸음 하나를 보탠다. 이를 통해 전에 보지 못했던 새로운 풍경으로 저자와 독자는 함께 걸어간다.
고양이 금단 현상은 언제부터 시작되지?
: 미소가 번지는 엉뚱한 이야기들
책 속에는 소소한 웃음을 전해주는 이야기가 끊임없이 쏟아진다. 주로 싱고력이 샘솟는 날들의 일기들이다. 사랑하는 반려묘 이응옹을 무려 ‘나흘’이나 보지 못한 탓에 “고양이 금단 현상”을 겪는 저자, 말장난 같은 리듬을 가진 ‘트와일라이라이트’라는 서점 이름에 얽힌 뒷이야기, 우설을 먹으며 ‘혀로 혀를 씹는’ 기묘한 은유를 느낀 순간, 책거리 매니저 지영 상이 동료들에게 장난치려고 구입한 여러 맛의 초콜릿 중 본인이 고춧가루 맛 초콜릿을 골라버린 사건, 일본으로 놀러 온 친구들과 새벽까지 술을 진탕 마신 다음 날 괴로워하며 후지산으로 향하는 이야기 등등. 진지한 이야기 속에도 깨알 같은 유머가 있고, 귀엽고 사랑스러운 순간들 중에도 눈을 뜨이게 하는 사유가 시작된다. 이 경쾌한 전환은 특히나 이 책이 자랑할 수 있는 즐거움이다. 미소를 잃은 분들, 폭신하고 다디단 디저트 같은 이야기들이 여기에 있으니 한번 드셔보세요.
우리말 시어 ‘속꽃’을 일본어로 어떻게 옮겨야 할까
: 번역의 언어와 침묵의 자리
이 책의 초고는 일본 SNS 노트(note)를 통해서 일본어로 연재되었다. 번역가 리애 상과 함께 우리말에서 일본어로 다시 우리말로 오가는 동안 문장에도 시차가 생겼으며, 이러한 말의 이동 가운데서 선택을 둘러싼 망설임을 겪었다고 저자는 고백한다.
익숙한 모국어와 낯선 외국어의 경계에서 저자는 마침맞은 우리말로 쉬이 옮길 수 없는 일본어 단어들을 만나고 기록해둔다. 가령 ‘하레노히(晴れの日)’. 우리말로 단순히 옮기면 ‘맑은 날’이 되지만, 그 속뜻은 일생에 단 하루뿐이 없는 듯한 특별한 날을 이른다. ‘시시오도시(ししおどし)’는 직역하면 ‘사슴을 놀라게 하는 것’이라는 뜻인데, 대나무에 물이 차면 기울었다가 텅! 소리를 내며 제자리로 돌아오는 일본 정원의 장치를 가리킨다.
저자가 일본에 체류하는 동안 진행하는 번역 워크숍 또한 말, 특히 시어의 오묘함을 드러내주는 사례다. 저자는 “번역은 언어의 치환이 아니라 감각의 전승”이라고 말하며, 자신이 쓴 시 구절 중 하나인 “하늘에 불을 놓는다 올라간다 마지막 불꽃”이라는 구절을 일본어로 옮길 때 ‘파치파치(パチパチ)’ 대신 ‘메라메라(メラメラ)’를 써야 하는 이유 등을 밝히기도 한다. 이 일화는 시가 단순히 의미의 전달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언어가 가진 느낌, 말맛, 구조 등 다양한 요소를 품고 있는 언어 예술이라는 것을 일러준다. 두 언어 사이를 주유하며 때로는 우리말로 단카를 남기기도 하는 저자의 언어에 관한 호기심은 글의 마지막까지 반짝이며 낯선 느낌을 일깨워준다.
시미즈 선생은 ‘소설의 서술’과 ‘시의 언어’ 사이에서 고심했다. 이를테면 위 시의 ‘속꽃’을 어떻게 옮길 것인가. 모과나무는 봄이면 분홍빛 꽃을 피운다. ‘속꽃’을 그대로 옮기면, ‘내면의 꽃’쯤 될 텐데, 어딘가 밋밋하다. ‘보이지 않는 꽃’이나 ‘꽃 없는 꽃’이라 해야 조금 더 가까워질까.
어쩌면 번역은 선택의 문제인지도 모른다. 함축과 직설, 암시와 명백, 은유와 직유의 간극에서 딱 들어맞는 한 조각을 골라내는 일.
―「주오선 창밖으로 초록은 우거지고」
무언가를 끝내 확실히 ‘알지 못한다’는 사실은 생각보다 나쁘지 않다. ‘안다’는 것이 결국 한때의 결론에 불과할 때가 많다. 그런 결론은 금방 낡고, 쉽게 다른 문장으로 대체된다. 같은 일도 시간과 시점이 달라지면 전혀 다르게 보인다. 어쩌면 ‘본다’는 것은 무엇을 아는 일이라기보다, 모르는 상태를 오래 견디는 일일지도 모른다.
하마구치 류스케의 영화는 바로 그 ‘모름의 상태’를 탁월하게 다룬다. 우연이 개입하면 상상은 제멋대로 가지를 뻗는다. 그러면 현실과 상상의 경계가 흐릿해지고, 그 모호함이야말로 영화의 가장 진짜 같은 서사로 느껴진다.
―「아는 것과 알지 못한 것」
일본 미학의 정점이라 할 수 있는 ‘요엔(妖艶)’과 ‘우키미(憂き身)’는 단순히 아름다움이나 슬픔으로 번역되지 않는다. 요엔이 죽음의 서늘한 그림자를 머금은 아름다움이라면, 우키미에는 삶의 무상을 이야기하는 맑은 품위가 있다. 그러니까 요엔은 ‘살아 있음의 아름다움’을, 우키미는 ‘살아 있음의 슬픔’을 이야기하는 것 같다. 재스민 향이 풍겨오는 저녁.
―「손바닥에 쓴 일기」
작가 소개
지은이 : 신미나
2007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 쓸 때는 신미나, 그림 그릴 때는 싱고라는 필명을 쓴다. 시집 『싱고,라고 불렀다』 『당신은 나의 높이를 가지세요』 『백장미의 창백』, 산문집 『다시 살아주세요』, 시툰 『詩누이』 『서릿길을 셔벗셔벗』 『청소년 마음 시툰 : 안녕, 해태』(전3권) 등이 있다.
목차
들어가는 말
첫날 밤
세우
의문의 검은 고양이
봄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
촛불 같은 눈동자, 횃불 같은 눈동자
주오선 창밖으로 초록은 우거지고
마트가 좋아
아는 것과 알지 못한 것
입장 바꿔 쓴 일기
우연과 동시성
손바닥에 쓴 일기
레몬 한 알을 방바닥에 굴리다
돌아보고 싶은 사람
어기여차와 돗코이쇼 사이
과거와 현재의 교차로
시인 동주에게
우리들의 책거리 시 파티
우리가 쇼핑할 때 이야기하는 것들
현재의 질문이 미래가 될 수 있다면
다시, 광장에서
시와 번역, 그 침묵의 자리에서
수줍게 건넨 선물
궁극의 안미츠를 맛보고 싶다
기억은 곧 감정이고, 감정은 종종 웃기다
센슈대학교 앞을 걸으며
당신의 운이 되고 싶습니다
식물처럼 사랑하라
책거리 서점 일일 점장의 날
사랑은 원고지 한 칸에 함께 갇히는 일
바다포도, 언어의 맛
펀펀(fun fun)한 언어 유희
내부검열자의 메타 일기
시절은 지나가고, 가수는 노래한다
스페이스 다다 ― 무중력의 우주에서
사랑을 알아차리는 아기처럼
도쿄여자대학교에서 ‘다시 만난 세계’
우설, 혹은 감각의 이중주
너의 목소리가 들려
묘신기(猫神記) ― 나의 늙은 고양이에게
불완전한 날들의 대화 ― 자아 분열극
오독의 꽃, 시 번역 워크숍
둥근 늪, 마루누마 예술의 숲 방문기
이다음에, 간다강에서 만나요
마지막 장을 미루는 마음
스미다강 다리 위에서
번외편 ― 가구라자카 기담
서울국제도서전과 텍스트힙
파치파치, 메라메라, 번역의 불을 건네며
사쿠라 네코와 저녁의 식탁
미(美)와 응시
두 친구, 쌍동밤처럼 나눠 쓴 일기
토네이도 속 체리 한 알
밤의 철도
환대의 통로
방울 소리가 들렸다
작별 인사는 말없이
구름이 걷히면 다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