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리뷰
피렌체의 길 위에서 르네상스인들의 숨결을 따라 걷고,
밀라노에서 미켈란젤로와 다빈치 예술의 본질에 다가서며,
베네치아에서 조르조네가 틔운 근대 회화의 씨앗을 본다. 런던에 거주하며 꾸준히 유럽의 미술관을 순례해온 저자는 ‘작품이 걸린 자리 역시 예술의 일부’라는 믿음으로, 그림 너머의 시대상, 예술가의 고뇌, 그리고 작품이 있던 그 자리의 공기까지 되살려낸다. 이 책은 단지 미술사 해설서나 미술관 순례기가 아니다. 예술의 본질, 인간의 불안, 경쟁과 욕망, 예술 후원의 경제학, 그리고 진작과 위작을 가르는 가치 기준까지, 르네상스 예술을 둘러싼 모든 장면을 섬세하게 들여다본 ‘현장 보고서’다.
이 책은 주로 이탈리아 르네상스 미술을 다루지만, 작품뿐만 아니라 시대의 분위기와 사람들의 이야기도 함께 담아낸다. 우선 저자는 이탈리아 르네상스가 시작된 피렌체의 사회 문화적 분위기를 살펴보며, 예술 발전의 원동력이었던 ‘비교와 경쟁’의 문화, 그리고 코시모 데 메디치를 중심으로 예술 후원의 전통이 어떻게 도시의 문화적 기반을 만들어갔는지를 보여준다. 이어서 르네상스 예술이 추구한 목표와 그 흐름 속에서 예술의 패러다임을 바꾼 예술가들, 이를테면 회화에 최초로 원근법을 도입한 마사초, 실제보다 더 실제 같은 현실을 창조한 레오나르도 다빈치, 그리고 초상화에 개인의 내면과 심리까지 담아낸 조르조네를 조명한다. 마지막으로 오늘날 우리의 시선에서 새롭게 발견되고 재평가된 작품과 작가들을 살펴본다. 미완성작으로 오랫동안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미켈란젤로의 <론다니니 피에타>, 시대를 앞서간 여성 화가 아르테미시아가 그 주인공이다. 책의 말미에는 위작에서 진작으로 복권된 작품들의 사례를 다루며, 예술품의 진위 판별과 가치 기준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이 책은 작품이 놓인 그 자리에서 작품을 감상하며, 자기만의 미술사를 탐험해온 저자가 미술사에서 새롭게 밝혀진 흥미진진한 사실과 자신이 오감으로 체험한 미술 이야기를 다정하게 들려준다. 미술에 관심 있는 독자라면, 작품을 감상하고 이해하는 새로운 인사이트를 얻게 될 것이다.
“이 책은 5, 6백 년 전의 작품과 사건을 다루지만, 나의 바람은 단순히 미술사적 지식과 정보를 전달하는 데 있지 않다. 이 책을 읽은 독자들이 작품을 마주할 때 그 시대의 상황과 예술가의 마음을 지금 우리의 삶에 비추어보는 것, 그래서 몇 세기를 가뿐히 뛰어넘어 그들이 우리 곁에 살아 있는 듯 가까이 느낄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기쁠 것이다.” (저자의 말)
작품이 놓여 있는 그 자리에서 본다는 것!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은 ‘작품이 놓인 그 자리(in situ)’에서 직접 감상한 경험을 중심에 둔다는 것이다. 특히 르네상스의 예술은 대부분 공간과 분리될 수 없는 제단화·벽화·건축 장식이므로, 원래 있던 그 자리에서 작품을 마주하는 일은 각별한 통찰과 감동을 준다.
저자는 피렌체 온니산티 성당에서 기를란다요와 보티첼리가 서로 맞은편 벽에 그린 작품을 마주하며, 두 화가가 경쟁심에 사로잡혀 붓을 들었을 모습을 상상한다. 그 자리에서 느낀 짜릿한 흥분은, 마치 르네상스인이 된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미켈란젤로의 마지막 미완성작 <론다니니 피에타> 앞에서는 본체에서 떨어진 우람한 팔과 성모의 베일에 새겨진 또 하나의 형상에 의문을 가진다. 이후 그 비밀을 파헤치는 여정은 이 책의 특징이 가장 잘 드러나는 백미라 할 수 있다.
이 책을 읽다 보면 ‘그림을 본다’는 것은 결국 ‘그림 앞에 선다는 것’이며, ‘그림을 이해한다는 것’은 자기만의 ‘감각적 통찰’에 이르는 것임을 알게 된다.
르네상스의 힘은 비교와 경쟁!1504년 피렌체, 베키오 궁의 대회의실. 도시의 명운을 건 두 천재 예술가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미켈란젤로가 서로 마주한 벽 앞에서 세기의 대결을 벌인다. 레오나르도는 <앙기아리의 전투>를, 미켈란젤로는 <카시나의 전투>로 서로의 기량과 예술에 대한 신념을 증명하려 했다. 비록 두 작품은 완성되지 못했지만, 그들의 대결은 예술이 무엇을 지향해야 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저자는 ‘파라고네’로 불린 이 치열한 경쟁 속에서, 예술가들이 남들보다 뛰어나기 위해 기량을 연마하고, 남들과 다르기 위해 혁명적인 사고의 전환을 감행했다는 사실을 다시금 상기시킨다.
예술 후원의 경제학, 코시모 데 메디치의 ESG 경영피렌체에서 르네상스가 꽃필 수 있었던 배경에는 메디치 가문의 후원이 있었다. 그리고 그 출발점에 선 인물이 코시모 데 메디치다. 그는 산 마르코 수도원과 도서관, 두오모의 돔 등 피렌체의 핵심 시설을 건립하고, 동시에 인문학과 예술을 적극적으로 후원했다. 그의 후원은 결국 피렌체 시민들의 열렬한 지지를 끌어냈고, 메디치 가문이 향후 3백 년 동안이나 피렌체를 통치할 수 있는 기반이 되었다. 저자는 그가 건립한 산 마르코 수도원을 통해, 예술 후원이야말로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한 가장 오래된 경영 철학임을 통찰력 있게 보여준다.
새로운 예술의 시대를 연 두 천재, 마사초와 조르조네피렌체의 마사초와 베네치아의 조르조네, 두 요절한 천재 화가는 서로 다른 방식으로 르네상스 예술의 지형을 바꾸었다. 저자는 ‘초기 르네상스의 시스티나 예배당’으로 불리는 브란카치 예배당을 직접 방문해, 마사초가 그린 프레스코 하나하나를 면밀히 살피며 그가 일군 회화의 혁신을 조목조목 짚어낸다. 필리포 리피, 미켈란젤로를 비롯해 수많은 거장들이 이곳에서 그의 작품을 공부했지만, 브란카치 예배당을 이토록 세밀하게 다룬 책은 매우 드물다. 그만큼 이 대목은 초기 르네상스 시대에 어떻게 회화의 기초가 새롭게 세워지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주는 귀중한 기록이라 할 수 있다.
조르조네는 늘 이름 앞에 ‘미스터리’라는 수식어가 따라붙지만, 사실상 그는 베네치아 회화의 방향키를 돌린 혁명가였다. 저자는 그가 남긴 초상화를 통해, 개인의 내면과 순간적인 감정까지 담아내는 그의 그림이 어떻게 근대 회화의 씨앗으로 발아하는지를 추적해간다.
아르테미시아, 여성의 힘르네상스와 바로크의 경계에서,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는 여성 예술가로서 당대의 편견과 억압을 정면으로 깨뜨렸다. 저자는 <수산나와 장로들>을 중심으로, 그녀가 어떻게 여성의 서사를 새롭게 써내려가는지를 섬세하게 포착한다. 그 과정에서 그녀의 그림이 당대에도 21세기에도 많은 이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이유는 단지 걸출한 여성 화가라서가 아니라 ‘여성이기에 보여줄 수 있는 시선과 권위’ 즉 ‘여성의 힘’을 그림으로 구현한 보기 드문 예술가이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예술의 가치는 어떻게 결정되는가2017년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살바토르 문디>는 4억 5천30만 달러에 낙찰되며, 사상 최고의 낙찰가를 기록한다. 하지만 세계에서 가장 비싼 그림은 곧 작품의 진위 여부를 둘러싸고 논란의 중심에 선다. 저자는 이 사건을 출발점으로, 어느 날 위작에서 다시 진작으로 복권되거나 혹은 그 반대로 진작에서 위작으로 추락한 예술 작품의 운명을 추적한다. 런던 내셔널 갤러리가 소장한 레오나드로 다빈치의 <암굴의 성모>와 라파엘로의 <율리우스 2세의 초상>, 그리고 2022년에 위작 판정으로 세계를 놀라게 한 얀 페르메이르의 <플루트를 든 소녀>까지, 저자는 일련의 흥미로운 사례를 통해 예술품의 가치는 어떻게 결정되는지를 되묻는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그림이 우리에게 말을 걸어오는 순간, 르네상스 미술은 더 이상 과거의 예술이 아니라 지금 우리의 삶에서 다시 시작되는 예술이라는 사실을 감동적으로 전해준다.

겐트의 성 바프 대성당에서 얀 판 에이크의 제단화를 처음 보았을 때 느낀 경이로움, 안트베르펜의 성모 마리아 대성당에서 아무렇지 않게 걸려 있는 루벤스의 제단화를 보며 진품일 리 없다고 반신반의한 순간, 칼레에서 오리지널 <칼레의 시민들>을 마주했을 때의 전율, 페르메이르가 그렸던 델프트의 실제 풍경을 찾겠다고 몇 번이고 반복해서 달려간 끈질긴 발걸음까지, 그 모든 경험은 나에게 지울 수 없는 진한 흔적을 남겼다. 브뤼셀에서 보낸 2년은 두서없고 혼자였지만, 나만의 미술사 탐험이 시작된 무엇보다 소중한 시간이었다.
나만의 미술사 탐험은 단순히 작품을 직관하는 경험을 넘어 작품이 놓인 공간 전체를 오감으로 체험하는 일이었다. 그 순간 예술가는 더 이상 먼 과거의 인물이 아니라, 내가 서 있는 그 자리에서 살아 숨 쉬며 기뻐하고 괴로워한 한 인간으로 다가왔다. ‘인 시추’의 힘이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