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삼십 년 밥벌이의 지겨움을 털고 고향 들판에서 늙은 엄니의 농사일을 도우며 투덕거리는 엄니와 아들의 풍경으로 시작된다. 엄니도 늙고 아들도 늙었다. “빗살무늬 토기처럼 갈빗대 도드라진 사내, 구부정한 등짝의 나”로 표현되는 잡놈의 현실은 “팔순 엄니와 지지고 볶을 시간 얼마나 남았을까” 지난 시절의 흔적들을 떠올린다. 엄니와 잡놈의 시간은 농투성이로 한 생을 살다 가신 아버지의 기억을 뿌리로 마을 사람들, 시골 장터 약장수의 “그리운 사설”의 재현으로도 이어진다. 무엇보다 이번 시집에서 두드러진 점은 생생한 삶의 이야기를 대중가요, 민요, 고전수필 등과 직조하고 있다는 것이다. 백년설의 <나그네 설움>, <번지 없는 주막>, 배호의 <누가 울어>, 방실이의 <서울 탱고> 등 그리운 노래가 흘러나오면 어김없이 그리운 삶이 뒤따르며 시의 감각은 피어난다. “저녁이면 게딱지 같은 달동네를 밝히는 불빛”(따듯한 종점)처럼 세상살이 설움과 그리움을 담은 노랫말들은 타자의 마음을 빛내는 언어로 거듭난다. 따라서 세상 잣대로 보면 잡놈이되, 잡놈만은 아닌 잡놈의 시학을 구현하고 있다는 점이다.
출판사 리뷰
2003년 시집 『즐거운 사진사』, 2004년 ≪현대시학≫에 시를 발표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한 이후 줄곧 농투성이들의 애환을 보듬으며 탁월한 유머 감각과 뭉클한 서정을 선사해 온 차승호 시인이 일곱 번째 시집 『엄니와 잡놈』을 냈다.
충남 당진에서 태어나 자라고, 성년이 된 이후에는 타향살이로 잔뼈가 굵은 차승호 시인이 고향 당진과 농촌의 서정을 노래하는 데 한 생을 바치고 있는 이유는 시 「예당평야에서」 구절에서 찾을 수 있다. “들판에 서서 들판이 되어 가는 사람들”, “단 한 번도 주목받지 못한 그들의 생애가/어두워지는 세상 불 밝히고 있다”는 구절이 바로 그것이다. 모든 생명을 품고 있는, 자연의 일부로 살아가는 농투성이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직업”으로 꼽는 시인의 마음이 곧 차승호의 시를 낳는 젖줄인 셈이다.
차승호 시인이 추구하는 “날것 그대로의 농촌시”(시인의 말)는 자연의 이치와 이어지는 ‘하늘의 섭리’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래서 생명을 향한 절실한 의지를 바탕으로 특유의 능청과 해학으로 풀어가는 삶의 이야기는 웃고 울리며 때로 뭉클한 여운을 남긴다. 독자에게 서사와 서정이 어우러지며 생성되는 시원한 카타르시스를 선물처럼 안겨주는 독보적인 시세계를 구축한다.
이번 시집은 삼십 년 밥벌이의 지겨움을 털고 고향 들판에서 늙은 엄니의 농사일을 도우며 투덕거리는 엄니와 아들의 풍경으로 시작된다. 엄니도 늙고 아들도 늙었다. “빗살무늬 토기처럼 갈빗대 도드라진 사내, 구부정한 등짝의 나”로 표현되는 잡놈의 현실은 “팔순 엄니와 지지고 볶을 시간 얼마나 남았을까” 지난 시절의 흔적들을 떠올린다. 엄니와 잡놈의 시간은 농투성이로 한 생을 살다 가신 아버지의 기억을 뿌리로 마을 사람들, 시골 장터 약장수의 “그리운 사설”의 재현으로도 이어진다.
무엇보다 이번 시집에서 두드러진 점은 생생한 삶의 이야기를 대중가요, 민요, 고전수필 등과 직조하고 있다는 것이다. 백년설의 <나그네 설움>, <번지 없는 주막>, 배호의 <누가 울어>, 방실이의 <서울 탱고> 등 그리운 노래가 흘러나오면 어김없이 그리운 삶이 뒤따르며 시의 감각은 피어난다. “저녁이면 게딱지 같은 달동네를 밝히는 불빛”(따듯한 종점)처럼 세상살이 설움과 그리움을 담은 노랫말들은 타자의 마음을 빛내는 언어로 거듭난다. 따라서 세상 잣대로 보면 잡놈이되, 잡놈만은 아닌 잡놈의 시학을 구현하고 있다는 점이다.
오홍진 문학평론가는 해설을 통해 “차승호가 그리는 시적 세계는 현재인 듯 과거이고, 과거인 듯 미래인 사건들로 넘쳐난다. 잡놈이되, 잡놈만은 아닌 잡놈의 시학은 여기서 뻗어 나온다. “오래전 나는 그곳에서 왔다”(「좋은 시」)라는 결구를 가만히 음미해 보라. 자연을 온몸으로 받아들인 존재만이 사물의 심연을 밝히는 시를 쓸 수 있다.”고 말한다.
얘, 우리 집 개 말이다 창고 지키라고 창고 앞에 늘 묶어뒀잖냐 그런디 새끼를 다섯 마리나 낳았어야 아니 워치게 된 거냐고? 이걸 장하다고 해야 헌다니, 별꼴이 반쪽이라고 해야 헌다니?
엄니, 그게 바로 하늘의 섭리라능규
- 「하늘의 섭리」 전문
사소한 일에도
삐짐 잘 타는 엄니는
사소한 일에도 삐짐 잘 타는
나를 낳았다
엄니나 나나 어떤 때는
마음자리가 간장 종지다
다투기도 잘한다
천하에 게으른 나는
엄니가 시킨 일을
대체로 미루는 경향이 있다
밭을 매거나 두렁을 깎거나
진딧물 방제하는 일 같은 거
이제나저제나 기다리다
속 터져 삐진 엄니가
앓느니 죽는다며 대신한다
말할 것도 없이 불효 막장이지만
늙은 엄니와 대거리하며
친구처럼 투덕거리는 게 나는 좋다
일을 마친 엄니는
뭐 해 처먹고 살 거냐고
수십 년 버리지 못한 입버릇을
쏟아붓는다
아니 삼십 년 넘게 머슴살이하느라
안 아픈 뼈마디가 구먼
뭘 또 해 처먹어야 하나
나는 또 삐진다
- 「엄니와 잡놈」 전문
엄니가 시킨 삽질이로세 트랙터로 갈리지 않은 밭 귀퉁이 발바닥 용천혈에 힘주어 어영차, 삽날 들이민다 고춧대 뽑은 자리 마늘도 심고 양파도 심을 요량
삽질에 똥심 잔뜩 멕였으니 머슴밥처럼 고봉으로 흙 한 사발 떠지겠거니 씨벌헐, 두어 번 삽질에 삽자루가 뚝 부러지네 어영차, 추임새가 쏙 들어가네
어이구야, 여기저기 동동거리며 물방개처럼 밥 벌어먹고 사는 동안 고향 삽자루가 썩었구나 밥 벌어먹는 게 꽃놀이패 신선놀음도 아닌데 삽자루 썩은 게 웬 말인가
오오, 고향 삽자루여 금년 시월 보름 서늘한 바람 속에서 무심중간無心中間 에 우지끈 부러지니 허벌나게 놀라와라 아야 아야, 삽자루여 두 동강이 났구나*
아아, 하늘의 뜻이로다 일하지 말라는 신탁이다 공인된 새가슴 내 가슴은 신탁을 무시할 만큼 당차지 않으니 쉬어야 한다 엄니 지청구는 따 놓은 당상 그래도 쉬어야 한다
그러니까 나는 시방 신탁받은 몸이올시다 게으르게 살아라, 신탁받은 놈이올시다
부러진 삽자루 깔고 앉아 일단 한 대 태워 문다 지엄하신 엄니 말씀에 어깃장 놨다는 생각에 기분 쾌해진다, 세 살 버릇이다
*고전 수필 「조침문弔針文」 중에서 인용 변주.
- 「세 살 버릇」 전문
작가 소개
지은이 : 차승호
1963년 충남 당진에서 태어났다. 2003년 시집 『즐거운 사진사』, 2004년 ≪현대시학≫에 시를 발표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2018년 ≪푸른 동시놀이터≫에 동시가 추천되었고 2020년 <전북일보> 신춘문예에 동화가 당선되었다. 시집으로 『오래된 편지』, 『들판과 마주 서다』, 『소주 한 잔』, 『얼굴 문장』, 『난장』이 있으며 동화집 『도깨비 창고』, 동시집 『안녕, 피노키오』가 있다. 한국작가회의 회원, ‘젊은시’ 동인이다.
목차
제1부 고추 따다 봉창
하늘의 섭리/ 엄니와 잡놈/ 그냥 속 터지는/ 세 살 버릇/ 쌀자루 도둑맞다/ 아침 문장/ 저녁 문장/ 꽃들의 폭력/ 지랄도 풍년/ 늙은 제사장/ 눙개 염소/ 밥벌이의 지겨움
제2부 무용無用의 용用
잡놈, 장승을 보다/ 잡놈, 건배를 하다/ 건강검진/ 잡놈, 약국에 가다/ 아!/ 행님도 그려요?/ 잡놈, 아라리가 났네/ 잡놈, 유튜브를 보다/ 개구리 춘야도春夜圖/ 남탕/ 씨벌에 빚지다/ 내 참 더러워서/ 산책
제3부 그리운 사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직업/ 애창곡/ 백년 출타/ 그리운 사설/ 농자지천하지대본農者之天下之大本/ 세류리 트로트/ 빈 소주병/ 워낭 소리/ 털 날리는 들판/ 해남 들판 문장/ 잡놈, 성묘를 가다/ 좋은 세월
제4부 변방
백년 밥상/ 백년 삽자루/ 얼어 죽을 시는 무슨/ It's a heartache/ 커피 시대, 을의 용서/ 변방/ 라면 쉰 상자/ 족발 유감/ 이팔망통/ 좋은 시/ 다산초당 연지석가산/ 문패/ 예당평야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