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리뷰
시 한 편 한 편은 장례다. 불가능한 애도다. 나는 장례를 계속해서 시도한다. 나는 엄마의 죽음은 글쓰기로밖에는 담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엄마의 죽음, 죽음의 엄마는 글쓰기 안에 좌정한다. 죽음에 분위기가 있다고 할 수 있는가. 죽음에 감각이 있다고 할 수 있는가. [……] 엄마는 나를 탄생시킴으로써 나에게서 엄마를 끊은 적이 있었다. 나에게는 그 사건의 상처가 있었을 거다. 그 단절의 첫 사건 다음, 엄마는 나를 품에 안고 젖을 먹인 적이 있었다. 그러니 두번째 단절이라고 왜 없겠는가. 엄마는 엄마에게서 나를 두번째로 끊은 다음 나를 안고 검은 젖을 먹였다. 그다음 나는 엄마에게서 죽음을 상속받았다. 나는 또다시 작별의 상처를 상속받았다. 그러고 보니 태어날 때부터 죽음은 나의 엄마였다. 죽음은 여성형이었다. 그러니 나의 상처도 여성형일 거다. 죽음은 명사가 아니라 형용사이고 부사다. 죽은 이들은 죽어서 명사가 되지 않는다. 형용사나 부사나 접속사가 된다. 엄마의 죽음에 안기고서야 비로소 나는 시인이 된 기분이다. 죽음의 분만으로 나는 시인으로 다시 태어났다. 형용사와 부사와 접속사에 둘러싸였다. 나의 시 쓰기의 기반은 죽음이다. 부재가 반, 존재가 반인 그런 시 쓰기. 존재를 부재에, 부재를 존재에 투척하는 시 쓰기. 그리하여 죽음에 안겨 있는 시인. 아무것도 아닌 것에 안긴 아무것도 아닌 시인. 엄마가 사라진 다음 그 사라진 집으로 사라진 시인이 들어간다. 그 집에 시 언어로만 구제할 수 있는 죽어버린 죽음의 내밀한 세부가 기다리고 있기나 한 것처럼. 죽어버린 관계의 낱낱의 분리가 있기나 한 것처럼. 모래가 가득하기라도 한 것처럼.
―산문 「죽음의 엄마」에서
작가 소개
지은이 : 김혜순
1979년 『문학과지성』으로 등단. 시집 『또 다른 별에서』 『아버지가 세운 허수아비』 『어느 별의 지옥』 『우리들의 음화』 『나의 우파니샤드, 서울』 『불쌍한 사랑 기계』 『달력 공장 공장장님 보세요』 『한 잔의 붉은 거울』 『당신의 첫』 『슬픔치약 거울크림』 『피어라 돼지』 『죽음의 자서전』 『날개 환상통』 『지구가 죽으면 달은 누굴 돌지?』 등을 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