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왕실의 영광과 권력을 이어가기 위해 만들어간 욕망의 역사. 김장수 교수(가톨릭관동대학교 역사교육과 명예교수)의 『로열패밀리, 그들이 사는 세상』이 '푸른사상 교양선 22'로 출간되었다. 프로이센과 오스트리아를 지배한 호엔촐레른과 합스부르크, 왕실의 영광과 권력을 이어가기 위해 만들어간 그들 욕망의 역사 속으로 독자들을 안내한다.1871년 1월 18일 베르사유 궁전에서 독일 제국이 탄생하기 이전 독일권에서 주도권을 행사한 국가는 프로이센과 오스트리아였다. 프로이센은 호엔촐레른 가문이, 오스트리아는 합스부르크 가문이 다스렸다. 이 두 가문이 1918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때까지 그들의 역사를 살펴보면 매우 흥미롭다.호엔촐레른과 합스부르크, 이 두 가문 사이에는 공통점도 있고 차이점도 있다. 우선 눈에 띄는 공통점은 후계자, 즉 아들을 얻기 위해 쓸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한다는 것이다. 물론 이 두 가문만 그랬던 건 아니다. 한 가지 예를 들어보면, 독일제국 탄생에 혁혁한 공을 세운 비스마르크는 1848년 8월 21일 장녀 마리에가 태어나자 장인에게 그 기쁜 소식을 전하면서, 아들이었다면 신께 무릎을 꿇어 감사했을 것이라는 사족을 붙였다. 호엔촐레른과 합스부르크 가문에서 아들 집착이 심각했던 것은, 남자 상속인 없이 사망하면 왕위 계승에서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후계자를 얻으려는 과정에서 빈번하게 이루어진 근친혼도 부작용을 야기했다. 대다수 합스부르크 가문 위정자에게서 얼굴 기형, 말단 비대증, 선천적 매독 증세 등이 확인되고 수명도 짧았다. 후계자에게 근친혼에서 비롯된 유전병이 있어도, 합스부르크 가문은 장자상속 제도를 무조건 고집했다. 1835년 오스트리아 황제로 등극한 페르디난트 2세가 그 대표적인 일례라 하겠다. 호엔촐레른 가문에서도 근친혼이 잦았지만, 얼굴 기형 같은 유전병은 확인되지 않았다. (중략)이 책에서는 프로이센과 오스트리아의 정치외교적 활동보다는 양국을 통치한 호엔촐레른 가문과 합스부르크 가문에서 확인되는 흥미로운 특징이나 전통을 특정 사례를 통해 확인하도록 한다.- ‘책머리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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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를 6세는 남자 후계자가 없을 경우를 대비하여 국사조칙을 발표했지만, 이를 통해 왕국의 통합을 굳건히 하려는 의도도 있었다. 그런데 카를 6세는 국사조칙을 바로 공포하지 않고 당분간 비밀로 남겨두었다. 이는 아들이 태어나기를 기다렸기 때문이다. 카를 6세는 당시 유럽의 군주들과 마찬가지로 전쟁이 일어나면 자신의 후계자가 군대를 이끌고 전선에 나서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국사조칙으로 그의 장녀가 오스트리아 왕위를 계승하면 그런 일이 불가능할 것이었다. 따라서 그는 결혼하고부터 가능한 한 빨리 아들을 얻기 위해 노력했고 주치의들이 여기에 동원했다.
작가 소개
지은이 : 김장수
한양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베를린 자유대학교 역사학부에서 석사 및 철학박사를 취득했다. 저서로는 『Die politische Tätigkeit F. Palackýs(팔라츠키의 정치활동)』 『Korea und der ‘Westen’ von 1860 bis 1900(1860년부터 1900년까지의 조선과 서방 세계)』 『Die Beziehungen Koreas zu den europäischen Großmächten, mit besonderer Berücksichtigung der Beziehungen zum Deutschen Reich(한국과 유럽 강대국들과의 관계, 특히 독일 제국과의 관계를 중심으로)』 『프란티셰크 팔라츠키의 정치활동』 『독일의 대학생 활동 및 그 영향』 『서양의 제 혁명』 『비스마르크』 『중유럽 민족문제』(공저) 『유럽의 절대왕정시대』 『주제별로 들여다본 체코의 역사』 『주제별로 살펴본 서양 근대사』 『체코 역사와 민족의 정체성』 『슬라브 정치가들이 제시한 오스트리아 제국의 존속 방안』 『후스로부터 시작된 종교적 격동기(1412~1648)』 『19세기 독일 통합과 제국의 탄생』 『메테르니히』 『오스트리아 최초의 여왕 마리아 테레지아』 『독일 통합의 비전을 제시한 프리드리히 2세』 『1848 독일혁명』 등이 있다. 프란티셰크 팔라츠키의 친오스트리아슬라브주의와 19세기 오스트리아 제국의 민족 문제를 다룬 많은 논문도 있다. 현재 가톨릭관동대학교 역사교육과 명예교수이며 한국세계문화사학회(구한국서양문화사학회) 명예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