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르네상스 연구자인 한국교원대 역사학과 임병철 교수의 책으로, 미켈란젤로나 레오나르도 다 빈치 같은 예술가 중심의 역사서술에서 벗어나, ‘말과 글을 통해 고대 세계를 부활시키려 한 지적 운동’인 르네상스의 본질에 초점을 맞추어 르네상스사를 가장 올곧게 전달하기 위해 지성인들의 열전 형식을 따랐다. 단테, 마키아벨리, 보카치오, 페트라르카처럼 널리 알려진 인물은 물론 일반인에게 다소 생소할 수도 있는 브루니, 카스틸리오네, 브란돌리니, 귀차르디니 등을 망라해 당시의 시대상을 여러 각도에서 입체적으로 직조해냈다.15세기의 르네상스인들은 단테와 페트라르카 그리고 보카치오를 이탈리아 문학계의 ‘3대 왕관tre corone’으로 일컬으며, 그들의 문학적 위상에 관한 크고 작은 논쟁을 벌이곤 했다. (중략) 단테와 페트라르카가 비교의 핵심이었다. 단테는 일찍부터 현실정치에 뛰어든 능동적인 시민의 전형이었고, 결국 정쟁에 휘말려 고국에서 추방되어 망명객으로 삶을 마감한 불운한 천재였다. 이와 달리 페트라르카는 마치 세파에 초연한 듯 파도바, 아비뇽, 밀라노 등의 여러 도시를 제 집처럼 오가며 ‘세계시민’의 삶을 추구한 방랑 지식인이었다. (중략) 한마디로 그[보카치오]에게 단테는 모방할 만한 근대 작가의 본보기였다. 하지만 이와 달리 페트라르카는 단테에게 의도적인 냉담이나 무관심 이상을 표출하지 않았다. 단테가 “선술집이나 저잣거리의 무지한 이들”에게나 어울릴 법한 저속한 언어를 구사한 통속 작가에 지나지 않고, 그렇기에 그의 책들은 한낱 “생선 가게의 포장지”로나 쓰일 수 있을 뿐이라고 냉소할 정도였다.
르네상스기의 지식인들은 고전고대의 부활을 염원했다. 하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그것은 책이라는 타임캡슐의 도움 없이는 결코 도달할 수 없는 고상한 꿈에 불과했다. 이를 고려하면 빛바랜 고서들의 가치를 깨닫고 그것들을 어둠 속에서 구출했으며, 또 모두가 이용할 수 있도록 길을 터준 니콜리는 분명 르네상스의 이상을 가장 충실하게 실천한 초기 르네상스의 주인공이었다. 르네상스가 다른 무엇보다 책과 함께 시작했고 고전이라는 책을 중심으로 전개된 글과 말의 향연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우리는 분명 르네상스 지성의 역사에서 니콜리를 빼놓을 수 없다.
르네상스기의 휴머니스트들은 흔히 ‘자유교양학문liberal studies’이라고 불리는 새로운 교과를 통해 시대가 요구하는 능동적인 시민을 기르려고 했다. 살루타티가 환호했듯이 베르제리오는 이런 휴머니즘 교육의 이상을 명확한 논고의 형식으로 제시한 최초의 인물이었다. 무엇보다 그는 사회적 유용성에서 교육의 가치가 구해져야 하며, 따라서 교육과 학문의 목적이 그저 개인적인 즐거움을 누리는 것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고 거듭 강조했다.
작가 소개
지은이 : 임병철
서강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교 대학원에서 레오나르도 브루니의 공화주의를 주제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미국 인디애나 대학교 사학과에서 근대 초 유럽 지성사와 문화사를 전공해 르네상스에 관한 연구를 계속했고, 그 결실로 2004년 포조 브라치올리니의 자아-재현과 르네상스 개인주의라는 주제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어릴 적부터 신화나 옛이야기에 유독 호기심이 많았으며, 학부 시절 근대 유럽의 형성과 인문학적 소양이라는 별개의 주제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현재까지 르네상스에 천착하고 있다. 전인적 교양인을 강조한 르네상스 휴머니즘을 프리즘 삼아 현대 유럽 사회를 이해하고 더 나아가 그것을 통해 물질만능의 기치 아래 인간성이 쇠락하는 오늘날의 문제를 성찰하고 싶은 이유에서다. 주요 연구 분야는 르네상스 시기의 이탈리아 지성사와 사회·문화사이며, 미술사와 역사이론에도 관심을 가지고 있다. 그동안 <21세기 역사학 길잡이>(공저), <서양문화사 깊이 읽기>(공저), <역사 속의 소수자들>(공편), <르네상스기 이탈리아인들의 자아와 타자를 찾아서> 등의 책을 썼고, 레오나르도 브루니의 <피렌체 찬가>, 주디스 브라운의 <수녀원 스캔들>, 니콜라스 터프스트라의 <르네상스 뒷골목을 가다>, 한스 바론의 <초기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위기>, 리사 자딘과 제리 브로턴이 함께 쓴 <글로벌 르네상스>를 우리말로 옮겼다. 2005년부터 2019년 여름까지 부산 신라대학교에서 재직했으며, 이후 현재까지 한국교원대학교 역사교육과에서 교수로 일하고 있다. 공부하면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에 감사하며 하루하루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