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리뷰
『사씨남정기』는 숙종이 장희빈에게 미혹되어 인현왕후를 내쫓은 사실을 풍자한 소설이다. 나아가 이 작품은 숙종 개인의 행위가 어리석었음을 비판하는 것에 머물지 않고, 일종의 윤리 비판의 성격을 가진다. 이런
이유로 조선 후기 소설을 논의하는 자리에서 특히, 소설을 도덕적 효용론의 관점에서 긍정할 때 대표적 작품으로 거론되기도 한다. 한편 소설사적 관점에서는 '가정소설'의 원형이자 후대 장편소설의 전범으로 이해되는데,
이는 당시 여성 독자층의 요구와 기호에 맞추어 처첩 간의 갈등, 축첩으로 인한 가정 내의 비극이라는 새로운 소재를 다루고 있다는 점과 다단한 구성의 측면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 본문 소개유 한림은 덕과 재학을 겸비한 사씨(사정옥)와 결혼하였다. 부부간의 금슬이 좋았으나 사씨는 10년이 다 되어가도록 출산을 못하였다. 사씨는 후일 조상의 향화를 받들지 못할까 근심한 나머지 유 한림에게
후처를 구할 것을 청하였다. 유 한림은 거절했으나 사씨가 진심으로 여러 번 권하자 마지못하여 교씨(교채란)라는 처녀를 맞아들인다.
그러나 교씨는 천성이 간악하고 질투와 시기심이 많은 여자였으니, 겉으로는 사씨를 존경하는 척하나 속으로는 증오하였다. 그러다가 아들을 출산하자 욕심이 극에 달하여 자기가 정실(正室)이 되려고 마음먹기에
이른다. 교씨는 간교한 문객(門客) 동청과 모의하여 유 한림에게 사씨를 계속해서 헐뜯는다. 유 한림은 처음에는 믿지 않았으나 교씨가 집요하게 사씨를 모략한 탓에 결국 사씨를 폐출시키고 곧 교씨를 정실로 맞이한다.
남편 유 한림에게 버림받은 사씨는 남으로 남으로 정처 없는 방랑을 계속하면서 온갖 풍파와 고난을 겪는 가운데 몇 번이나 자살하려고 한다.▷작품해설작자가 이 작품에서 구현하고자 한 주제는 일반적으로 처첩 간의 갈등과 쟁총(爭寵)으로 보고 있으나, 사씨의 훌륭한 덕성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후자의 견해는 성혼 과정에서 매파가 사 소저의 미색을 칭찬하자 유현이 사 소저의 덕성을 크게 칭찬한 것과, 사씨 부인이 유 한림에게 소실을 얻도록 간청하는 등, 그녀의 고운 덕성이 계속해서 그려지고
있다는 점에 근거한 것이다.
더욱이 교씨의 간교로 인해 시가에서 쫓겨난 사씨 부인이 친정으로 돌아가지 않고, 시부모의 산소에서 지내는 모습까지 보여주는 사씨의 후덕함으로 인해 그런 견해는 나름대로의 설득력을 갖는다고 하겠다.
나아가 이 작품은 인현왕후를 내친 숙종 개인의 행위가 어리석었음을 비판하는 것에 머물지 않고, 일종의 윤리 비판의 성격을 가진다. 이런 이유로 조선 후기 소설을 논의하는 자리에서 특히, 소설을 도덕적
효용론의 관점에서 긍정할 때 대표적 작품으로 거론되기도 한다.
♧ 저자 소개김만중 金萬重1637∼1692
김만중은 본관이 광산(光山)이며, 자는 중숙(重叔), 호는 서포(西浦), 시호는 문효(文孝)이다. 명문거족의 집안에서 1637년에 김익겸의 유복자로 태어났다. 1665년에 정시문과에 장원급제한 후, 여러
벼슬을 거쳐 1671년에는 암행어사가 되어 경기지역을 맡기도 하였다. 후에 동부승지가 되었으나, 1674년 인선왕후가 작고하여 자의대비의 복상문제로 서인(西人)이 패하자, 관직을 삭탈 당하였다.
그 후 다시 등용되어 1679년 예조참의, 1683년 공조판서에 이어 대사헌이 되었으나 조지겸 등의 탄핵으로 전직되었다. 1685년 홍문관대제학, 이듬해 지경연사로 있으면서 김수항이 아들 창협의 비위까지
도맡아 처벌되는 것은 부당하다고 상소했다가 선천(宣川)에 유배되었으나 1688년에 풀려났다. 이듬해 박진규, 이윤수 등의 탄핵으로 다시 남해(南海)에 유배되었다가 그 곳에서 1692년 56세의 나이로 별세하였다.
김만중은 국문에 대한 큰 애정으로 몇 편의 국문소설을 직접 창작하기도 해 우리의 문학·예술 발전에 있어 주체적 입장을 공개적으로 천명하고 실천에 옮긴 최초의 문학가라는 평가를 받는다.
저서로는 『구운몽(九雲夢)』, 『사씨남정기(謝氏南征記)』, 『서포만필(西浦漫筆)』, 『서포집(西浦集)』, 『고시선(古詩選)』 등이 있다.
목차
책을 펴내며...5
사씨남정기...9
작품 해설...137
작가 연보...1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