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허균은 조선 최고의 문장가이자 시대를 앞서간 자유주의자였다. 과거시험 부정에 연루되어 졸지에 파직되고 유배를 떠난 곳에서 쓴 『도문대작屠門大嚼』은 단순히 귀양지의 허기를 달래기 위해 끄적거린 음식 목록이 아니었다. 자신이 누렸던 풍요로운 기억을 소환해 현실의 고통을 견뎌내려는 처절한 기록이자 음식에 담겨 있는 삶의 온정을 되새김하는 과정이었다. 또한 김풍기 교수가 읽어내는 그 행간의 이모저모 속에는 인간의 욕망과 시대의 아픔이 고스란히 박제되어 있다. 『허균의 맛』을 통해 저자의 상상력의 궤적을 따라가다 보면, 식재료 하나하나에 담긴 이 땅의 삶과 풍류를 만나게 된다.
저자 김풍기 강원대 교수는 대표적인 허균 연구자다. 허균의 산문을 모아 번역한 『누추한 내 방』(2003)을 비롯해 『독서광 허균』(2013)을 지었으며 이번에는 『허균의 맛』을 내놓았다. 이 책은 허균의 『도문대작屠門大嚼』을 번역하고 해설하며 저자 자신의 음식 추억과 결부시켜 풀어낸 기록이다. 허균을 시작점으로 하여 조선시대 전반으로 퍼지는 동심원 물결처럼 이 땅의 수백 년 음식문화가 펼쳐진다.
출판사 리뷰
“맛난 고기든 아름다운 꽃부리든 씹어보지 않는 것이 없었다”
조선 팔도의 음식을 통달한 조선 선비 허균
그가 메모한 미각의 반도체칩과도 같은 책
『도문대작屠門大嚼』에 압축된 정보를 입체적으로 풀어내다
조선의 지식인들을 사로잡은 미식 문화의 실체 조명
지금은 사라진 식재료와 조리법을 찾아 떠난 고고학 탐사
“우리 집이 가난하기는 했지만 선친께서 살아계실 때는 사방에서 기이한
먹을거리를 예물로 바치는 사람이 많았기 때문에 나는 어릴 때
온갖 진귀한 음식을 고루 먹을 수 있었다. 커서는 잘사는 집에 장가들어
육지와 바다에서 나는 먹을거리를 다 경험할 수 있었다. 임진왜란 때 전쟁을 피해
북쪽으로 갔다가 강릉 외갓집으로 갔다. 그곳은 여러 가지 기이하고 귀한 것이
많아서 골고루 맛볼 수 있었다. 벼슬길에 나선 뒤로는 공무로 남북을 오가며
더욱더 입호사를 하느라 맛난 고기든 아름다운 꽃부리든 씹어보지 않은 것이 없었다.”
― 「도문대작 인引」
허균은 조선 최고의 문장가이자 시대를 앞서간 자유주의자였다. 과거시험 부정에 연루되어 졸지에 파직되고 유배를 떠난 곳에서 쓴 『도문대작屠門大嚼』은 단순히 귀양지의 허기를 달래기 위해 끄적거린 음식 목록이 아니었다. 자신이 누렸던 풍요로운 기억을 소환해 현실의 고통을 견뎌내려는 처절한 기록이자 음식에 담겨 있는 삶의 온정을 되새김하는 과정이었다. 또한 김풍기 교수가 읽어내는 그 행간의 이모저모 속에는 인간의 욕망과 시대의 아픔이 고스란히 박제되어 있다. 『허균의 맛』을 통해 저자의 상상력의 궤적을 따라가다 보면, 식재료 하나하나에 담긴 이 땅의 삶과 풍류를 만나게 된다.
저자 김풍기 강원대 교수는 대표적인 허균 연구자다. 허균의 산문을 모아 번역한 『누추한 내 방』(2003)을 비롯해 『독서광 허균』(2013)을 지었으며 이번에는 『허균의 맛』을 내놓았다. 이 책은 허균의 『도문대작屠門大嚼』을 번역하고 해설하며 저자 자신의 음식 추억과 결부시켜 풀어낸 기록이다. 허균을 시작점으로 하여 조선시대 전반으로 퍼지는 동심원 물결처럼 이 땅의 수백 년 음식문화가 펼쳐진다.
피란길의 고단함을 씻어준 방풍죽의 향기로움
‘도문대작’이란 푸줏간 앞을 지나면서 입맛을 쩍쩍 크게 다신다는 뜻이다. 이는 한나라 환담桓譚이 지은 『신론新論』에 나온 말로, 실제로 먹을 수 없는 처지이나 먹는 것을 흉내 냄으로써 만족을 느껴보려는 심정의 표현이다. 김풍기 교수는 삼십대 중반에 『도문대작』을 처음 만났지만, 내용이 너무 간략해 큰 관심을 느끼지 못했다. 그러다가 세월이 지난 뒤 허균의 강릉에서의 행적을 보기 위해 책을 펼쳐보게 되었고 우연히 ‘방풍죽’ 항목에 빠져들었다.
나의 외가는 강릉인데 그곳에는 방풍이 많이 난다. 2월이면 강릉 사람들은
이슬을 맞으며 새벽같이 나가 막 돋아난 방풍 싹을 뜯어 햇볕에 노출되지 않도록 한다.
곱게 찧은 쌀로 죽을 끓이는데, 반쯤 익었을 때 방풍 싹을 넣는다.
다 끓기를 기다려서 차가운 사기그릇에 옮겨 담아 반쯤 식었을 때 이것을 먹는다.
달콤한 향기가 입에 가득하여 사흘이 지나도 가시지 않는다. 세상에서 만날 수 있는
최고의 음식이다. _30~31쪽
허균에게 임진왜란은 지울 수 없는 생의 트라우마였다. 스물네 살의 그는 왜군이 들이닥치자 연로한 어머니와 만삭의 아내를 이끌고 피란길에 올랐다. 한양을 떠나 험준한 태백산맥을 넘는 여정은 가혹했다. 함경도 단천에 이르러 아내가 아들을 순산했지만, 쉴 틈도 없이 왜군이 뒤를 쫓았다. 산후조리도 못한 아내는 갓난아기를 품에 안고 마천령의 험한 고개를 넘어야 했다. 결국 기력이 다한 아내는 머나먼 타향의 민가에서 눈을 감았고, 엄마의 젖을 한 번도 물어보지 못한 아기마저 며칠 뒤 세상을 떠났다. 허균은 슬픔을 추스를 새도 없이 뒷산 언덕에 가족을 묻고 강릉 외갓집으로 향했다.
천신만고 끝에 도착한 강릉 사천의 외가는 폐허나 다름없었지만, 죽음의 고비를 넘긴 그에게는 유일한 안식처였다. 허균은 이곳에서 텅 빈 마음을 달래려 주변의 풍광을 감상하며 시를 지었다. 그때 그의 상처받은 영혼을 어루만져준 음식이 바로 방풍죽이다. 향기가 입안에 사흘이나 머물 정도였다. 허균에게 그 향기는 가족을 잃은 고통을 달래준 유일한 위로였다.
황해도 수안군수로 부임했을 때 그는 문득 그 맛이 그리워 죽을 끓이게 했다. 하지만 12년 전 강릉에서 맛보았던 향긋함은 어디에도 없었다. 토양이 달랐을 수도 있고 조리법이 미숙했을 수도 있지만, 무엇보다 인생의 밑바닥에서 절실하게 마주했던 그 ‘위로의 맛’이 재현될 리 없었다.
화려함과 궁벽함이 공존하는 허균의 맛
『허균의 맛』에서 저자는『도문대작』 본문을 번역해 원문과 함께 책 뒤에 싣고, 본문에서는 이를 바탕으로 음식문화사를 써내려갔다. 모든 음식, 식재료 항목마다 출처를 살피고 지명고地名考, 물명고物名考 등의 고증 작업을 거치고 자료가 부족할 경우 관찬 지지와 개인 문집 등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풍성하게 내용을 되살려냈다. “그저 한 시대를 살아가면서 허균이 경험한 음식문화와 내가 경험한 음식문화, 그리고 지금 우리 시대가 보여주는 음식문화를 다양하게 비교하면서 여러 가지 문화 코드를 읽어보고 싶었다”는 게 저자의 변이다.
이 책의 1부는 모두 65개의 글로 이뤄져 있다. 『도문대작』의 항목을 재구성하여 예순 다섯 가지의 맛을 제시했다고 할 수 있다. 앞부분은 배, 귤, 감, 참외, 수박, 복숭아, 대추, 포도 등 과채류가 주를 이루고, 곰·사슴·꿩 등 심심산중의 특산물을 거쳐 드넓은 바다로 나간다. 가자미, 석화, 젓갈, 문어, 도루묵, 청어, 고등어, 오징어, 해파리, 전복, 방어, 살조개, 대게 등을 섭렵한다. 바다의 해초류도 풍성하게 다뤄 올미역, 감태, 김, 다시마, 청각과 황각 등을 언급한다. 열목어, 금린어, 숭어, 은어, 웅어, 붕어, 새우 등 민물 식재료도 그에 버금가는 양이다. 죽순, 표고, 원추리, 들쭉, 황각, 삼포, 여뀌 등 우리가 쉽게 접하는 것부터 전혀 알지 못하는 식물 식재료들의 세계도 만만치 않게 구성지게 다뤄지고 있다.
내자시정, 조선 팔도의 진귀함을 맛보다
『도문대작』은 허균이 유배지에서 지은 글이다. 쌀겨도 귀하고 밥상에 상한 생선과 들미나리가 겨우 올라올 정도였던 헐벗은 상황에서 과거 맛있게 먹었던 음식을 떠올리며 품평을 한 기록인 셈이다. 기억에 의존했다고는 하지만, 허균은 조선 팔도의 특산물과 어떤 음식은 어디가 가장 맛있다는 음식 족보가 명확하게 서 있었다. 가령 붕어는 “전국 어디나 모두 있지만 강릉 경포는 바닷물과 통하기 때문에 맛이 가장 좋으며 흙냄새가 나지 않는다”고 적는 식이다.
허균은 불교를 숭상했다는 혐의로 삼척 부사에 임명된 지 2개월 만에(실제로는 삼척에 도착한 지 13일 만에) 탄핵되었고, 그로부터 2개 월 뒤인 1607년(선조 40) 7월에 복직되어 내자시정 內資寺正으로 약 5개월가량 근무한 적이 있다. 이 벼슬은 궁궐에 소용되는 각종 쌀, 곡식 가루, 기름, 술, 꿀, 채소, 과일 등을 관리하는 책임자로 궁중의 연회를 총괄한다. 이러한 직책의 특성상 허균은 조선에서 생산되는 혹은 공물로 올라오는 각종 진귀한 음식을 두루 맛보았을 것이다. 허균이 각 지역별로 무엇이 맛있는지 소상히 알게 된 것은 이런 직책을 맡은 것과 무관할 수 없다. 또하나 눈길을 끄는 것은 앵두다. 허균은 이렇게 기록했다. “앵두[櫻桃]. 저자도楮子島 에서 나는 것이 작은 밤만큼이나 크고 맛이 달다. 흰 앵두는 영동 지방에서 많이 나는데, 맛이 붉은 앵두만은 못하다.” 저자도는 서울의 압구정동과 옥수동 사이 한강에 있던 섬이다. 근대화 바람에 사라진 것은 허균이 칭송한 앵두만이 아니었다. 그것을 길러내던 저자도 역시 사라진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도문대작』을 통해 그곳의 앵두를 상상할 수 있다. 저자는 “앵두가 아무리 크다 해도 작은 밤 정도의 크기라니, 생각만 해도 흐뭇하다. 게다가 맛이 달다고 했으니 그 앵두를 먹으려고 봄이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마음은 오죽했을까”라고 안타까움을 표현했다.
허균이 국고를 헐어서 서얼들을 돕는 데 썼다는 죄로 공주 목사에서 파직된 후, 은거하던 그에게 지리산에서 수행 중이던 고승 부휴선수浮休善修(1543~1615)가 죽실을 보내왔다. “죽실竹實. 지리산에서 많이 난다. (…) 감과 밤의 가루와 섞어서 만든 것이었다. 몇 숟갈을 먹었는데 종일 든든했다. 참으로 신선들이 먹는 음식이다.” 대나무가 꽃을 피우고 나면 보리처럼 달리는 열매다. 수확하여 말린 뒤 죽을 끓여 먹기도 하고 숟가락으로 떠먹기도 했는데, 맛이 상상이 가질 않는다.
꿩고기는 북쪽이 제맛이지
중국 사신을 마중하러 자주 북방 지역으로 갔던 허균은 험한 산골의 음식도 익숙했다. 이곳의 백성들은 높으신 관리 양반들에게 곰발바닥이나 사슴꼬리 같은 귀한 음식을 대접했다. 허균은 특히 곰발바닥과 사슴꼬리를 많이 먹었던 듯하다. 곰 발바닥에 대하여 허균은 “산간 지역에는 모두 있다. 삶아서 익히는 것을 적절히 하지 못하면 제맛이 나지 않는다. 회양淮陽의 요리가 가장 좋고, 의주·희천熙川이 그다음이다”라고 했다.
야생 사슴을 포획하기란 결코 쉽지 않은 일로, 전문 사냥꾼 여럿이 작전을 짜고 몰이를 해야 성공할 수 있었다. 사슴을 잡기가 쉽지 않은 만큼 사슴의 혀와 꼬리로 만든 요리는 무척 귀할 수밖에 없고, 그러다보니 공물을 취합하는 관리 중에서 녹미와 녹설로 이익을 취하는 자들이 있었다. 책에는 사슴 꼬리를 절인 엄록미醃鹿尾라는 요리를 만드는 법이 나온다. “사슴 꼬리의 털을 깨끗이 깎아내고 뼈를 발라낸 공간에 소금을 넣고 동전을 넣은 뒤 그 구멍에 막대기를 끼워 바람에 건조시킨다.”
요즘은 꿩을 거의 먹지 않지만 조선시대에 꿩은 닭만큼 많이 먹는 식재료였다. 허균은 꿩은 북방의 것이 맛있다고 기록했다. “고치膏雉. 황해도 산간 지역에서 나지만, 양덕陽德과 맹산孟山의 것이 가장 좋다.” 성현成俔의 『용재총화慵齋叢話』에서는 꿩에 대해 이렇게 소개하고 있다. “꿩이 아름답기로는 북쪽 지방이 최고다. 지금은 평안도 강변江邊의 꿩을 진상한다. 그 크기가 집오리만 하고 기름 엉긴 것이 호박琥珀과 같다. 겨울이 되면 이것을 잡아서 진상하는데, 이를 고치膏雉라 한다. 그 맛이 매우 좋다. 북쪽으로부터 남쪽으로 갈수록 꿩이 점점 비쩍 마르는데, 호남·영남의 남쪽 끝으로 가면 고기 비린내 때문에 먹을 수가 없다.”
동수어(얼린 숭어)의 인기, 백성의 고혈을 짜다
숭어는 한강과 평양의 냉동 숭어를 으뜸으로 쳤다. 겨울철 별미였던 ‘동수어(얼린 숭어)’는 선비들 사이에서 귀한 선물이었으나, 이를 진상하기 위해 얼음을 채워 나르던 백성들의 고혈이 서린 생선이기도 했다. 고소한 봄의 전령인 웅어는 갈대숲에 산다 하여 ‘위어葦魚’라 불렸다. 뼈째 씹는 고소한 맛이 일품이나 성질이 급해 금방 죽기에, 조선 시대에는 이를 궁에 신선하게 배달하기 위해 얼음을 실은 전용 배인 ‘빙어선’까지 운영했다. 허균은 한때 풍성했던 청어가 자신의 시대에는 잡히지 않음을 탄식했다. 이순신 장군이 청어 7000마리를 곡식과 바꾸려 했다는 기록으로 보건대, 청어가 많이 날 때는 식량인 곡식과 교환할 정도로 용도가 다양했지만 허균이 글을 쓰던 때는 청어의 씨가 말랐던 듯하다. 그런데 조선 후기 청어는 다시 풍성해졌다. 값이 저렴해 가난한 유생들이 배를 불릴 수 있다 하여 ‘유어儒魚’ 혹은 ‘비유어肥儒魚’라는 별칭까지 얻었다.
허균의 기록에는 또한 미스터리한 부분도 많다. 모과에 대한 기록이 그렇다. “모과[木瓜]. 예천 醴泉에서 나는 것이 가장 좋다. 맛이 배 같고 물기가 있다.” 이는 상식에 위배되는 말이다. 저자 김풍기 교수는 자신이 시도해본 모과는 모두 물기가 없고 시고 써서 먹을 수가 없었기에 더더욱 이를 믿을 수 없었다. 그런데 명자나무 열매도 목과木瓜라고 했다. 이규보도 “모과는 반쪽 뺨이 불그레한데, 조각조각 칼 끝에 떨어진다”라는 시를 썼다. 이로 보건대 붉게 물드는 명자나무 열매와 유사하다. 과연 허균이 언급한 모과는 우리가 아는 모과일까 명자나무 열매일까. 기록은 짧고 세월은 지나 저자로서도 끝까지 고증해내지는 못했다.
촌철살인의 품평 속에 압축된 조선의 맛
허균은 한강에서 잡히는 복어를 최고로 쳤다. 독이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 맛을 포기 못 했던 조선 사람들의 사건사고를 전하기도 했다. 게는 서해의 꽃게와 동해의 대게를 모두 언급했는데, 특히 삼척에서 나는 대게는 “크기가 강아지만 하다”고 묘사할 정도로 인상 깊게 기록했어. 연어는 동해 지역에서 잡히는 연어 알을 젓갈로 담가 먹는 맛을 귀하게 여겼다.
밤다식은 함주(함흥) 지역에서 나는 밤으로 만든 다식을 추천했고 꿀떡은 궁중이나 명문가 연회에서 나오던 꿀과 기름이 듬뿍 들어간 떡들의 맛을 회상하며 기록했다. 복숭아는 허균의 글에서 가장 다채로운 이미지를 형상화한다. 그는 춘천과 홍천의 황도, 안양천변의 반도, 전주의 승도(천도복숭아)를 각각 언급하며 그 특징을 상세히 기록했다. 특히 납작한 모양의 반도를 두고 “지금은 구할 수 없으니 안타깝다”고 술회하는 대목에서 미식가로서의 진한 아쉬움이 느껴진다.
이 책엔 홍시를 먹다가 돌아가신 것으로 추정되는 허균 모친의 에피소드, 잉어회를 쳐놓고 기다린다며 친구를 부르는 익살맞은 편지, 조선시대 선비들의 입길에 오른 고급 포도 품종 ‘마유포도’에 대한 이야기, 허균이 유일하게 설화까지 섞어서 비중있게 소개한, 우리가 쏘가리로 알고 있는 금린어, 요즘처럼 구워 먹는 것보다 내장젓갈로 훨씬 더 주목받았던 조선시대 고등어 등 다양한 이야기들이 소개되고 있다.
허균의 『도문대작』에 등장하는 수많은 식재료는 결국 ‘사람’과 ‘기억’으로 귀결된다. 그는 먹을 것만을 위해 살았다고 자처했지만, 사실은 그 음식을 함께 나누던 벗들, 그 식재료가 자라던 고향의 풍경, 그리고 그것을 공물로 바쳐야 했던 백성들의 고단함을 사랑했다. 유배지라는 극한의 결핍 속에서 그가 써내려간 맛의 목록은, 현실의 벽에 부딪혀 좌절했던 천재 지식인이 자신을 지켜내기 위해 차려낸 마지막 성찬이었다.
그러나 7월 10일, 그의 아내는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눈을 감았다. 그는 애끊는 심정으로 아내가 타고 온 소를 팔아서 관을 사고 입은 옷을 찢어 염습을 했다. 온기가 채 가시지 않은 아내의 몸을 차마 땅에 묻을 수 없어 통곡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갓 태어난 아기마저 엄마의 젖을 먹어보지 못하고 며칠 만에 목숨을 잃었다. 그와 동시에 왜적이 성진창城津倉을 공격 중이라는 소식이 들려왔다. 허균은 아내와 아기를 한꺼번에 잃은 슬픔을 추스르기도 전에 뒷산 언덕에 아내를 묻고 강릉으로 발길을 돌려야 했다.
역모로 처형을 당한 김자점金自點(1588~1651)이라는 인물은 한창 잘나가던 무렵 어떤 부드러운 음식도 딱딱하다면서 갓 부화한 병아리를 먹었다고 한다. 영조 때 온갖 유언비어로 세손世孫(정조)을 모해하다가 훗날 처형을 당한 정후겸鄭厚謙(1749~1776) 역시 부드럽고 사치스러운 음식을 즐겼다고 한다. 음식 사치를 즐긴 자들의 말로가 안 좋은 것을 보면 그들의 과도한 욕망이 음식에만 뻗쳐 있었던 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사슴은 한 점 버릴 것 없는 최상의 식재료였다. 『산림경제 山林經濟 』(권2)에 보면 사슴으로 즐길 수 있는 요리 몇 가지가 소개되어 있다. 사슴 꼬리를 절인 엄록미醃鹿尾, 사슴고기를 절여서 육포로 만든 엄록포醃鹿脯, 사슴고기 구이인 자녹육炙鹿肉, 사슴의 혀와 꼬리를 푹 고아서 요리하는 자녹설미煮鹿舌尾, 사슴고기를 고아서 만드는 자녹육煮鹿肉 등이다. 사슴고기와 함께 화초花椒, 회향茴香, 팥, 계피가루 등을 넣어 푹 끓인 뒤 갖은 양념을 넣은 녹갱鹿羹이라는 사슴고기국 역시 별미였을 것이다. 이 정도면 당시 사슴은 최상의 식재료가 아니었을까 싶다.
작가 소개
지은이 : 김풍기
강원도 강릉에서 태어났다. 강원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교육과를 졸업하고 고려대학교에서 석사 및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강원대 국어교육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지은 책으로는 『고전문학사의 라이벌』(공저), 『선가귀감, 조선 불교의 탄생』, 『한시의 품격』, 『선물의 문화사』, 『한국 고전 소설의 매혹』, 『정원에서의 질문』 등이 있으며, 옮긴 책으로는 『세계 최고의 여행기 열하일기』(공역), 『옥루몽』, 『금오신화』 등이 있다.
목차
책을 내며: 이토록 고마운 음식이라니
들어가는 글: 미각적 상상력이 문학과 만나게 된 사연
제1부 | 허균의 미식을 만나다
1. 피란의 아픔을 치유해준 아름다운 죽 한 그릇, 방풍죽
2. 다식茶食, 찻자리의 귀한 벗
3. 혹독한 귀양지에서 상상하는 엿의 단맛
4. 여름철에 더 많이 즐기던 만두 이야기
5. 부드럽기 그지없던 장의문 밖 두부
6. 북한의 산 기운을 담은 열매, 들쭉
7. 천사리天賜梨, 하늘이 내려준 강릉의 배
8. 춘천 문배마을에서 만나는 허균의 그림자
9. 제주도에서 보내온 귤의 향기
10. 감나무, 고향의 아름다운 맛
11. 가을을 부르는 조홍시
12. 죽실竹實, 몸과 마음을 추스르는 한 끼
13. 장수長壽를 부르는 대추
14. 앵두나무 그늘 아래의 풍류
15. 새콤달콤한 자두와 지내는 여름
16. 우리 동네 복숭아와 도교적 상상력
17. 귀한 마유포도馬乳葡萄 한 송이를 찾아서
18. 충주와 원주의 수박이 최고였지
19. 여름 과일 참외의 달콤한 기억들
20. 싱그러운 가을 향기를 간직한 모과
21. 금강산 자락에서 맛본 곰 발바닥 요리
22. 진귀한 사슴 요리들
23. 기름 자르르 흐르는 꿩고기의 추억
24. 맛있는 거위 요리에 무슨 국경이 있으랴
25. 수어水魚
26. 고소한 봄을 불러오는 생선 웅어[위어葦魚]
27. 오징어의 귀환을 기다리며
28. 해파리의 상큼한 맛
29. 청어, 가난한 선비의 생선
30. 푸른 바다 스며 있는 전복
31. 꽃같이 아름다운 음식 화복花鰒
32. 은어 낚시의 추억
33. 오대산 금강연의 열목어 구경하기
34. 봄날 시냇가의 금린어를 상상하는 즐거움
35.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즐기는 황홀한 복어의 맛
36. 방어의 붉은 꼬리는 포악한 정치의 상징
37. 양양부사가 감동했던 황어의 맛
38. 가자미, 다른 눈과 합쳐져야 비로소 세상을 보는 물고기
39. 양반가의 귀한 식재료 문어
40. 도루묵의 계절이 다가온다
41. 고등어 내장으로 만든 젓갈
42. 제곡齊穀을 찾아서
43. 달고 부드러웠던 동해의 살조개
44. 강아지만큼이나 큰 강원도 삼척의 대게
45. 바다 향기 가득한 석화石花
46. 서해안에서 나는 자하紫蝦의 감동스러운 맛
47. 벗과 함께 맛보는 죽순 절임
48. 원추리 노란 꽃으로 만든 요리
49. 표고버섯에 담은 백성의 마음
50. 바다 내음 가득한 청각과 황각
51. 몸이 허할 때 육포보다는 삼포蔘脯
52. 길섶의 잡초인 여뀌가 식용이었다고?
53. 코가 뻥 뚫리는 산갓김치의 매콤한 맛
54. 두터운 이파리에 북쪽 바다 향기 머금은 다시마
55. 겨울바다의 풍미를 머금은 삼척의 올미역
56. 부드러움과 바다 향으로 즐기는 감태
57. 맛으로는 동해안의 김이 최고였지
58. 늙을수록 매워지는 생강의 맛
59. 엄혹한 겨울을 이겨내는 푸른 파[蔥]처럼
60. 혼탁한 세속의 마음을 정화하는 마늘
61. 속세와 강호자연 사이에서 즐기는 작설차의 맛
62. 조선 최고의 평창 꿀, 그 사랑스러운 맛
63. 중국인들 입맛도 사로잡은 약밥
64. 햇감과 햇밤이 들어간 찰떡의 맛
65. 봄기운 가득 담은 꽃지짐
제2부 | 『도문대작』 번역과 원문
1. 도문대작 인屠門大嚼引
2. 도문대작屠門大嚼
3. 원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