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시인 박철수의 시 세계는 한 개인의 기억을 넘어 한국 현대사의 시간과 맞닿아 있다. 그의 시는 잃어버린 고향을 향한 내적 여정이자, 과거와 현재의 균열을 건너는 과정이다. 표면적으로는 서정적 풍경과 계절의 정취가 펼쳐지지만, 그 이면에는 방랑과 상실, 삶의 무게가 응축되어 있다.
시인은 꿈과 현실의 이중 구조 속에서 인간의 총체적 삶을 응시하며, 사라져가는 공동체의 시간과 언어를 다시 불러낸다. 또한 기존 어휘를 비틀고 새로운 조어를 만들어내며 언어의 균열을 세심하게 읽어낸다.
제목 ‘화이부동’이 뜻하듯, 그는 자신의 원칙을 지키면서도 시대와 조화롭게 호흡하는 길을 모색한다. 이 시집은 오랜 시간을 통과한 한 시인이 자기 존재의 근원을 향해 도달한 기록이자 독자를 시간의 깊은 층위로 이끄는 안내서이다.
출판사 리뷰
시간을 횡단하는 화이부동의 시인
시인 박철수의 시 세계를 이해하는 핵심 단서는 ‘시간’이다. 그의 시를 읽는 일은 단순한 정서 감상이나 풍경 회상이 아니라, 개인의 기억과 한국 현대사의 질곡이 겹쳐지는 시간의 층위를 따라가는 일이다. 그는 과거의 경험을 단순한 추억으로 소비하지 않고, 현재의 자아를 구성하는 원천으로 삼는다. 이러한 점에서 그는 일종의 ‘시간의 횡단자’이며, 자신의 삶에서 비롯된 고통의 흔적을 스스로 직면하는 시인에 가깝다.
박철수의 시에는 잃어버린 고향의 이미지가 꾸준히 떠오른다. 여기서의 고향은 특정 지역이나 유년기의 장소에 국한되지 않는다. 오히려 총체성이 유지되던 과거의 세계-삶의 의미가 명확했으며 사람과 공동체가 분리되지 않았던 시대-를 가리키는 은유적 공간이다. 시인은 그 고향을 거울처럼 바라본다. 거울 속의 자신과 마주할 때 비로소 과거와 현재 사이에 존재하는 균열이 드러난다. 그는 그 틈을 바라보며 자신이 이방인 혹은 나그네처럼 살아왔다는 자각에 이른다. 그리고 길을 잃지 않기 위해 선택한 것이 바로 시이다. 시는 지나간 시간을 현재로 끌어오는 도구이자, 균열을 건너게 해주는 다리다.
그의 시를 펼쳐보면, 삶의 여러 시점이 한 사람의 긴 여정처럼 이어진다. 유년기의 풍경, 젊은 날의 고단함, 성숙한 시절의 사색이 서로를 비추며 교차한다. 이러한 움직임은 마치 한 개인이 자기 자신을 찾아가는 내적 여행의 일기에 가깝다. 초기에는 삶의 무게를 짊어진 방랑자의 모습이 강조되지만, 시간이 흐르며 그는 자신의 기억 깊숙한 곳에서 되돌아갈 ‘마음의 고향’을 발견한다. 결국 이 여정은 상실의 시간에서 벗어나 자기 존재의 원형을 회복하는 과정으로 읽힌다.
박철수의 시에는 아름다운 계절감과 서정성이 자주 등장한다. 그러나 이러한 외형적 아름다움만으로 그의 세계를 이해할 수 없다. 그 이면에는 현실적 고난과 인간적 상실이 늘 그림자처럼 따라붙는다. 삶의 출발점에서 느끼는 설렘과 열정이 있는가 하면, 삶의 종착지를 향한 차분한 체념도 존재한다. 이 대비는 그의 시를 한층 깊게 만들고, 꿈과 현실의 양가성 속에서 인간이 겪는 희로애락을 다층적으로 드러낸다. 결국 그는 삶을 단순한 낭만이나 비애로 규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들을 모두 통합하는 총체적 삶의 서정을 그려낸다.
시인이 종종 불러오는 계절의 이미지와 농촌적 정서는 단순한 풍속 묘사가 아니다. 이는 공동체가 공유했던 순환의 시간, 즉 서로가 연결된 채 살아가던 시대의 감각을 복원하는 행위다. 근대 이후 단절된 공동체의 결속을 되짚으며, 그는 자연의 순환 구조 속에서 인간의 시간도 다시 순환될 수 있다는 희망을 찾는다. 이는 도시에서 이방인으로 살아가는 시인의 고독한 감각과도 맞닿아 있으며, 사라져가는 가치를 다시 호출하려는 언어적 시도다.
박철수 시의 또 다른 특징은 언어 실험이다. 일상적 단어들을 변주하거나 새로운 조어를 만들어냄으로써 기존 의미망의 틀을 벗어난다. 이는 현실의 균열을 감지하는 시인의 감수성이 언어의 층위에서도 작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에게 언어는 곧 기억이며, 기억은 다시 시간의 흔적을 끌어올리는 장치다. 때문에 그는 잊혀진 말과 사라진 소리들을 찾아내려 하고, 그것을 통해 자신의 내면과 세계의 틈새를 재구성한다.
시집의 제목이기도 한 ‘화이부동’은 그의 삶과 시적 태도를 아우르는 개념이다. 그는 타인과 조화롭게 어울리면서도 자기 원칙과 고유한 감각을 잃지 않는 태도를 지향한다. 시대의 균열 속에서도 본질을 지키면서 새로운 조화를 모색하는 자세가 그의 긴 시간의 여정 속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결국 시인은 자기만의 방식으로 시간을 통과하는 사람이며, 그 통과의 기록이 바로 그의 시다. 이 시집은 오랜 세월을 견뎌낸 한 사람의 목소리가 어떤 균열과 어둠을 지나 빛으로 나아갔는지 보여주는 단단한 시적 증언이다.
외로움을 견디어보겠다고/ 삶의 모퉁이에서/ 밤새 써 내려간 서툰 글들을/ 풀잎에/ 대롱대롱 매달아 두고
때 늦은 생활의 쳇바퀴를 돌리며/ 숨차게 달려왔던 길을/ 돌아다보니/ 세월의 바람결에 흩어져/ 저무는 햇살 속에/ 그리움으로 남아 있었다.
그 그리움을 모아/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한 권의 시집을 내려 함에
아낌없는 격려와/ 가을 햇살처럼/ 따스한 마음들을 내어 준 동문들에게/ 감사함을 전한다.
- 자서(自序)
작가 소개
지은이 : 박철수
시인. 자유문예 신인상으로 등단했다. 전북 김제에서 태어나 국립철도고등학교와 국립서울과학대학교를 졸업했으며 불뫼문학 동인으로 오래 활동했다. 현재 파티오벨라 대표이사로 재직중이다.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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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서
1부 귀향길
2부 항해일지
3부 방황
4부 화이부동
해설: 시간을 횡단하는 화이부동의 시인 - 장경식(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