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故 오경훈 작가가 《가깝고도 먼 곳》이라는 신작 소설집을 냈다. 오 작가는 지난 2월 22일 별세했다. 제주도 북제주군 구좌면 세화리에서 1944년 1월 19일 출생한 작가는 향년 81세를 끝으로 세상을 등지고 말았다. 소설집 《가깝고도 먼 곳》의 원고는 지난겨울에 출판사로 넘어가 편집 중이었다. 그런데 갑작스러운 병환으로 세상을 등짐에 따라 졸지에 신작 소설집이 유고집이 되어버렸다.
파란만장한 제주섬의 역사와 현실을 변화무쌍한 바다와의 관련성 속에서 예리하게 포착해낸 소설집 《제주항》의 작가로 널리 알려진 오 작가는 소설가가 드문 제주에서는 매우 소중한 작가였다. 이번 소설집에는 표제작인 〈가깝고도 먼 곳〉을 비롯해서 〈열쭝이 사설〉, 〈사교(邪敎)〉, 〈실향〉, 〈마을제[酺祭]〉, 〈악마는 숨어서 웃는다〉 등 단편 6편과 중편 〈강정(江汀) 길 나그네〉(원제: 〈맹꽁아 너는 왜 울어〉) 등 총 7편이 수록되었다.
출판사 리뷰
故 오경훈 작가가 《가깝고도 먼 곳》이라는 신작 소설집을 냈다. 오 작가는 지난 2월 22일 별세했다. 제주도 북제주군 구좌면 세화리에서 1944년 1월 19일 출생한 작가는 향년 81세를 끝으로 세상을 등지고 말았다. 소설집 《가깝고도 먼 곳》의 원고는 지난겨울에 출판사로 넘어가 편집 중이었다. 그런데 갑작스러운 병환으로 세상을 등짐에 따라 졸지에 신작 소설집이 유고집이 되어버렸다.
파란만장한 제주섬의 역사와 현실을 변화무쌍한 바다와의 관련성 속에서 예리하게 포착해낸 소설집 《제주항》의 작가로 널리 알려진 오 작가는 소설가가 드문 제주에서는 매우 소중한 작가였다.
이번 소설집에는 표제작인 〈가깝고도 먼 곳〉을 비롯해서 〈열쭝이 사설〉, 〈사교(邪敎)〉, 〈실향〉, 〈마을제[酺祭]〉, 〈악마는 숨어서 웃는다〉 등 단편 6편과 중편 〈강정(江汀) 길 나그네〉(원제: 〈맹꽁아 너는 왜 울어〉) 등 총 7편이 수록되었다.
《제주항》이 제주 근대의 시간과 장소를 함축한 제주항을 중심으로 섬의 역사와 민중들의 삶을 살폈다면, 이번 신작 소설집에는 현재의 4·3, 과거사로서의 4·3이 아니라 현재까지도 그 질긴 역사가 남긴 인연에 엮여 있는 삶을 살핀다. 단편 〈실향〉, 〈마을제[酺祭]〉, 중편 〈강정 길 나그네〉는 4·3을 다룬 작품들이다.
〈실향〉은 4·3으로 인해 뒤엉킨 가족의 수난이 세대를 넘어 계속되고 있음을 용의주도하게 짚어낸 단편이다. 제주의 심각한 현안인 제2공항 문제가 거기에 긴밀히 연결되어 있음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특히 주목된다. 4·3 때 제주섬에 관철된 국가폭력이 시대와 얼굴만 바꾸었을 뿐 여전히 반복되고 있다는 점을 드러낸다,
〈마을제〉의 공간적 배경은 ‘K읍 S리’로 설정되어 있는데, 이곳은 작가의 고향이기도 하지만, 다랑쉬굴이 존재하는 구좌읍 세화리임을 단박에 알 수 있다. 이 작품은 바로 세화리의 중산간에 있는 다랑쉬굴 사건을 다루고 있다. 주지하다시피 이는 1948년 12월 행방불명되었던 주민 11명의 유골이 굴속에 가지런히 놓여 있음이 1992년 봄에 알려지면서 4·3의 참상을 다시금 널리 인식시킨 사건이다. 다랑쉬굴 발굴 20주년인 2012년 마을 주민의 눈으로 이 사건을 되짚었다.
〈강정 길 나그네〉는 5장으로 구성된 중편소설이다. 4·3의 깊은 상처와 관련된 현실에서의 용서와 화해가 간단하지 않음을 인상적으로 다루었다.
이 소설의 주인공인 김석우는 지난날 4·3의 엄청난 격랑에 휩쓸리면서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다. 전란의 한복판에서 큰 고통을 겪은 그는 귀향해서도 온전한 생활을 영위하지 못하였다. 악몽에 시달리면서 팍팍해진 삶을 계속하던 그는 성당에 다니면서 안정을 찾고자 하였다. 성당 미사 중 수십 년 만에 4·3 때 누이를 총살한 전직 경찰인 고승록을 만나게 된다. 하지만, 학살자 고승록은 4·3 이후에도 천주교 신자로 경제적으로도 풍요롭게 잘 살아온 듯한 그는 “나는 나라를 어지럽히는 폭력에 적극 대항해온 사람이오. (…) 나는 떳떳하게 살아왔다고 자부하오.” 라면서 무고하게 죽은 4.3희생자들에게 대한 아무런 죄의식도 없이 오히려 당당히 4·3학살의 정당성과 자부심을 드러내는 그를 보면서 피해자는 용서하지 않았는데, 교회가 오히려 그를 용서하는 형국에 대해 깊은 회의를 느낀다. 반성 없는 단죄 없는 용서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인 것이다.
김석우는 4·3후유장애자이기도 한데, 마침 성당에서 해군기지 건설 반대투쟁으로 뒤숭숭한 강정마을에서 미사를 진행하자 이를 계기로 해군기지 반대투쟁의 현장에 참여하기도 하면서 사복형사의 조사 경험에서 다시 떠올린 4·3의 트라우마, 강정에서 옮겨진 법정보호생물인 맹꽁이들이 결국 이식해 간 곳에서 포식자의 먹이로 사라져 버렸음을 깨닫고는 4·3당시 고향마을에서 쫓겨나고 끌려가 생명을 잃은 수많은 얼굴들을 떠올리다가 결국 아무 말도 못 하는 먼산바라기가 되었다가 산속의 요양원으로 끌려가고 만다. 4.3을 거치면서 뒤틀린 그의 모진 역정은 그의 삶 전체에 관통하며 정신마저 무너뜨려버린 것이다.
오경훈은 4·3의 문제를 과거의 특정한 사건으로 한정시켜 두지 않는다. 끊임없이 지금-여기와 소통하는 가운데 절실한 당면 과제로 오롯이 끌어온다. 마을공동체에 대한 확장된 인식을 통해 4·3 해석의 방향을 제시하고자 했으며, 강정해군기지 건설의 폭력성과 제2공항 추진의 야만성을 돋을 새김하는 가운데 신제국의 야욕이 폭발한 지점이라는 4·3의 본질을 끊임없이 곱씹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김동윤의 해설 중에서)
4·3의 법적·제도적 후속조처의 완료, 4·3유족에 대한 희생자 보상 등 4·3의 제도적 절차가 마무리되면 4·3은 완전한 해결에 이르는가?라는 근원적 질문을 던지게 하는 소설이기도 하다. 섬의 숙명 또는 영원한 약자로 남을 수밖에 없는 섬의 운명 속에 제2, 제3의 4.3은 언제나 도래하는 현재형이라는 묵직한 메시지를 던진다.
〈가깝고도 먼 곳〉, 〈사교〉, 〈열쭝이 사설〉은 노년의 작가가 인간이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가를, 죽음과 운명에 대한 노년의 성찰이 짙게 깔린 작품들이다.
2007년 9월 나리 태풍 때의 복개천 범람에 따른 참상을 재현한 〈악마는 숨어서 웃는다〉는 개발지상주의의 폐해를 지적한다는 점에서 4·3을 바라보는 작가의 인식과 일맥상통하는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부동산업자, 건설업자, 사업발주기관, 어용 전문가 등등 경제적 이득만 추구하는 이들의 탐욕을 더 이상 좌시해서는 안 된다는 발언이다. “인간의 이기적이고 오만한 개발이 불러온 재앙에 몸을 떨”(187쪽)게 되는 주인공의 인식은 악마처럼 도사려 있는 인간의 탐욕이 활개 치는 작금의 제주 상황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일깨우는 준엄한 경고다.
국제관광지, 에메랄드빛 청정바다, 유네스코 등재 화산섬, 1950미터의 한라산, 올레코스, 골프장과 특급호텔 등 제주를 상징하거나 떠오르게 하는 이미지들 그 아래 지층처럼 쌓여있는 제주섬의 운명의 키워드들 섬, 4·3, 개발광풍 등은 섬의 트라우마이자 생채기이기도 하다.
제주섬사람으로서 오롯이 살다간 소설가 오경훈은 제주섬사람들의 이야기를 써 내려갔다. 어쩌면 그가 남기지 않으면, 끓는 여름바다를 건너 쇄도해온 태풍이 모든 걸 집어삼켜 지워버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절대 잊히면 안 될 섬사람들의 이야기를 소설로 남겼는지도 모르겠다.
해설
묵직한 성찰과 따끔한 전언
김동윤(제주대 교수, 문학평론가)
1. 중단편 35편, 장편 1편을 남긴 제주섬의 작가
오경훈(吳景勳) 작가가 지난 2월 22일 별세했다. 제주도 북제주군 구좌면 세화리에서 1944년 1월 19일에 태어났으니 향년 81세로 이승의 날개를 접은 것이다. 사실 이 소설집 원고는 작가가 별세하기 전에 출판사로 넘어가 있었다. 그런데 갑작스러운 병환으로 세상을 떠남에 따라 뜻하지 않게 유고집으로 나오게 되었다. 오경훈이 그동안 펼쳐왔던 작품 활동에 대해 정리하는 작업이 필요한 때다.
제주대학 병설교육과(현재의 제주대학교 교육대학)를 졸업하여 1964년부터 초등학교 교사로 근무하던 오경훈은 1974년 《제주문학》에 첫 소설 〈우도〉를 발표하면서 작가로서의 길을 모색하였다. 이후 1976년 〈표류〉가 《현대문학》에 초회 추천되었지만 추천 작가인 오영수의 타계(1979)로 등단이 지연되고 있었다. 그런 가운데 《경작지대》 동인으로 창작을 계속하다가 마침내 1987년 〈사혼〉을 《현대문학》에 발표(하근찬 추천)하면서 추천 완료되었다.
오경훈은 첫 작품집 《유배지》를 1993년에 펴냈는데, 여기에는 〈세월은 가고〉, 〈사혼〉, 〈당신의 작은 촛불〉 등 9편의 중단편이 수록되어 있다. 이어서 1997년에는 《날개의 꿈》이라는 장편소설을 전작(全作)으로 출간하였다(4·3을 다룬 이 장편은 2001년에 내용을 고치고 제목을 바꾸어 《침묵의 세월》로 재출간됨). 2005년에는 〈비극의 여객선〉, 〈가신 님〉, 〈빌린 누이〉 등의 ‘제주항’ 연작(連作) 9편을 묶어 《제주항》을 펴냈고, 2024년에는 여기에 〈진상 가는 배〉, 〈탑동광장〉, 〈항구다방〉을 보태어 총 12편 연작의 《증보판 제주항》으로 완간하였다.
이번에 펴내는 작품집 《가깝고도 먼 곳》에는 표제작인 〈가깝고도 먼 곳〉을 비롯해서 〈열쭝이 사설〉, 〈사교(邪敎)〉, 〈실향〉, 〈마을제[酺祭]〉, 〈악마는 숨어서 웃는다〉 등 단편 6편과 중편 〈강정(江汀) 길 나그네〉(원제: 〈맹꽁아 너는 왜 울어〉) 등 총 7편이 수록되었다. 그렇다고 오경훈이 그동안 발표한 소설들이 모두 이들 작품집에 수록된 것은 아니다. 〈표류〉, 〈밀항의 하늘〉, 〈바람 부는 땅〉, 〈작은 섬〉, 〈은폐〉, 〈바람 속에서〉, 〈깡통〉 등 7편은 어떤 작품집에도 묶이지 않은 소설이다(김소영, 〈오경훈 연작소설 <제주항> 연구〉 참조). 따라서 작품집에 수록되지 않은 것들까지 합했을 때 오경훈이 남긴 소설은 [표]에서 보는 바와 같이 중단편 35편, 장편 1편인 셈이다.
2. 제주 현대사와 현안에 대한 웅숭깊은 현실 인식
오경훈은 부산공고에 잠시 재학했던 1년과 육군 현역병으로 근무한 3년을 제외하고는 평생 제주도에서만 살았다. 그랬기에 그가 “전작을 쓰는 동안 나는 번번이 눈시울을 적시고 영탄하고 고개를 젓지 않을 수 없었다. 마음이 약해서가 아니다. 비애와 분노, 미련, 애상이 송두리째 내 것이었으며 나는 제주인이기 때문이다.”(《제주항》 증보판 작가의 말)라고 고백했음은 충분히 수긍할 만하다. 그만큼 오경훈은 제주 토박이 작가로서 시종일관 지역민의 정서를 바탕으로 섬의 역사와 현실에 천착하였다. 이번 작품집에서도 제주의 현대사와 당면 문제에 관련된 웅숭깊은 현실 인식은 여전하다.
〈마을제〉의 공간적 배경은 ‘K읍 S리’로 설정되어 있는데, 웬만한 독자라면 이곳이 구좌읍 세화리임을 단박에 알 수 있다. 바로 다랑쉬굴 사건을 다루고 있기 때문인데, 주지하다시피 이는 1948년 12월 행방불명되었던 주민 11명의 유골이 굴속에 가지런히 놓여 있음이 1992년 봄에 알려지면서 4·3의 참상을 다시금 널리 인식시킨 사건이다. 다랑쉬굴의 소재지인 세화리는 바로 오경훈의 고향마을인바, 오래전부터 4·3을 탐색해온 작가로서 다랑쉬굴 발굴 20주년인 2012년에 마을 주민의 눈으로 이 사건을 되짚었다.
다랑쉬굴 유골 발굴을 계기로 마을 일각에서는 “역사는 이미 그들의 봉기를 숭고한 항쟁으로 기정사실화하고” 있으므로 “그동안 폐지되었던 마을제를 부활하여 그들의 죽음을 자연스럽게 애도하고 추모하는 의례를 행하는 게 좋”(129쪽)겠다는 의견이 제기된다. 반면에 “큰일을 위해서라면 나약한 사람들을 얼마든지 죽이고 재산을 소진해도 좋단 말인가. (…) 저쪽 사람들은 다 망해가는 과정에서 항쟁과는 거리가 먼 만행을 저질렀다.”(132쪽)면서 산부대(무장대)의 잘못에 대해서도 짚어낸다. 굴속 유골들은 산부대의 일원으로 마을을 습격했던 이들일진대 어떻게 숭고한 뜻만 기리느냐는 지적이다.
일곱 살에 참화를 겪었던 석주와 한세는 “이쪽이 당한 참화엔 눈을 감으면서 왜 굴속의 뼈 조각에 대해선 귀물이라도 발견한 듯 호들갑을 떠는가”(123쪽) 하는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한세 아버지는 뒤뜰에서 산사람들과 마주쳤는지 옆구리에 창을 맞고 울타리 밖으로 떨어져 무너진 돌담 아래 깔려 있었”고 “석주네 아버지는 처마 아래 쓰러져 죽었는지 불타는 처마도리와 서까래에 덮여 시신이 숯덩이가 되어 있었”(128쪽)던 처절한 기억이 선명하기 때문이다. 석주와 한세는 군인들의 만행도 목격하였다. 이웃마을과 경계인 연대동산에서 집단 총살 장면을 숨어서 본 것이다. 군인들은 주민들에게 구덩이를 파게 했다.
“살려주세요. 제발, 목숨만 살려주세요….”/ 누더기짜리들은 무릎을 꿇고 곱작대며 두 손을 머리 위로 올려 파리 발을 드렸으나 군바리들은 개잖게 쏘아볼 뿐이었다./ 허리에 찼던 권총을 뽑아든 전투모의 사나이가 총부리로 구덩이 쪽을 가리키며 꼬붕 군바리들에게 구령했다./ “일렬 횡대로! 거총!”/ (…) 노리쇠를 튕겨 장전하는 소리, 때깍 하고 소총의 안전장치를 푸는 소리, 그 뒤로 울부짖는 소리가 들릴 때 한세와 석주는 뒤꽁무니를 뺐다. 그들은 엎드러지고 미끄러지면서 모래 산을 뛰어 내려갔다. 연발하는 총소리를 들으며 쫓기는 짐승처럼 혼쭐빠지게 달렸다.(150쪽)
한세네는 그 충격적인 장면은 보아선 안 될 비밀스러운 일 같았기에 서로 입을 맞추고 함봉키로 하였다. 이때부터 둘은 “자신의 다리가 짤막해서 아무리 쿵당거려도 위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지질한 꿈에 시달”(151쪽)리곤 했다. 수십 년 세월이 흘러 4·3 영혼들을 추모하는 제례에 대해 논의하면서도 당시의 목격담을 발설할 수가 없었다. 노인이 되었어도 그해 겨울은 전대미문의 공포 그 자체로 남은 것이다.
험악한 시비 속에서도 마을제 부활이 결정되었다. 그런데 신위를 새긴 신주 빗돌이 누군가에 의해 파괴되는 사건이 일어났고 그 바람에 마을제는 무기 연기되고 말았다. 다시 10년 세월이 흐른 뒤에 파괴되었던 빗돌을 복원하고서야 마을제가 부활되었다. 정월 첫 정일(丁日)에 온 주민들이 모인 가운데 의식이 거행되었다. 마을의 안녕과 함께 4·3의 넋들도 추념하였다.
“간원하오니, 원통하게 죽어 이를 윽물고 사는 영혼들이시여, 가슴을 열고 여기 오셔서 좋은 음식을 드시옵소서. 죽인 사람은 죽은 사람에게 용서를 빌고 죽은 사람은 죽인 사람의 죄를 용서하며 그 사람들의 수난과 의분을 일말 헤아려 주시옵소서. 원한을 풀고 화해하여 다시는 이 마을에서 다랑쉬굴 같은 비극이 일어나지 않게 하소서. 후대 후생들이 다시는 이 일로 찌그럭거리고 토라지는 일이 없게 하시어 모두 발전에 힘을 모으게 하소서—.”(154쪽)
이러한 기원은 뭔가 아쉬움이 있다. 두리뭉실하여 구체성이 없기 때문이다. 세상은 달라졌고 마을 구성원도 다양해졌는데 의례적으로 축문을 고할 뿐이다. 그래서 귀화 흑인 조오지(한국명 조대수)가 나선다. 15,6년 전 마을에 들어와 한국인 부인과 함께 목장을 운영하는 그는 다음과 같이 덧붙여 기원한다.
“죽은 사람들보다 산 사람들 마음을 푼푼하게 고쳐주시고 통이 큰 사람 되게 만들어 주시요오. 그리고 우리 다문화 가정 아이들 말이에요, 알지요? 바닥나기 아이들이 차별받지 못하게 하시고 왕따 만들지 않게 하시고 편을 갈라 싸우는 일 없게 신경써 주시요이. 사람들 다 사이좋게 살게 하여 주시요오—.”(160쪽)
마을제가 끝나고 아낙들이 제상의 음식물을 치우기 위해 제장 안으로 들어갔다. 거기에는 말총머리 베트남 여인도 끼어있었다. 그녀는 마을 주민인 강민의 아내였다. 다문화 사회에서 모든 이들이 언제 어디서든 더불어 존중받는 성숙한 세상을 만드는 것, 그것이 4·3이 궁극적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이 아니겠는가, 작가는 그렇게 생각한 듯하다.
여기서 한 가지 더 짚어야 할 지점은 4·3에 대한 작가의 관점을 기계적 중립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무자년 봄날 항쟁의 정당성에 대해서 대다수의 도민들이 지지하며 성원했음은 분명하지만, 사실 그런 상황이 시종일관 지속되었다고 볼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통일독립항쟁으로서의 정당성은 자랑스럽게 계승해야 마땅하지만, 산부대의 명분이 남북 정부가 수립된 이후에도 여전했다고 볼 수는 없음이다. 물론 그 어떤 경우에도 국가폭력은 용인되어서는 아니 된다. 다만 다소 불편할 수 있는 진실에 대해서도 터놓고 진지하게 성찰해야 할 때임을 작가는 우리에게 넌지시 말하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강정 길 나그네〉는 5장으로 구성된 중편소설이다. 4·3의 깊은 상처와 관련된 현실에서의 용서와 화해가 간단하지 않음을 인상적으로 다루었다.
이 소설은 김석우라는 노인에 의해 초점화되고 있다. 석우는 4·3의 엄청난 격랑에 휩쓸리면서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다. 입산한 남편 때문에 21살의 누나가 시아버지와 함께 총살당하는 장면을 목격한 16살 석우는 결국 산으로 피신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후 1949년 12월 귀순했지만 경찰국 수사과의 심사를 거쳐 형식적 군사재판에서 5년 징역형을 받았다. 서대문형무소에서 수감 생활 도중 6·25전쟁이 일어나자 옥문을 연 인민군에 이끌려 개성의 군사학교에서 1개월 속성 훈련을 마치고 경찰군인이 되었다. 전남 구례에서 활동하던 그는 인천상륙작전 이후 퇴각하던 와중에 탈출하여 귀순하지만 포로수용소에 갇히고 만다. 그렇게 전란의 한복판에서 큰 고통을 겪은 그는 귀향해서도 온전한 생활을 영위하지 못하였다. 악몽에 시달리면서 팍팍해진 삶을 계속하던 그는 성당에 다니면서 안정을 찾고자 하였다. 예비신자 교육과 보충 교육을 1년 가까이 받고서 정식 입교하여 다니엘이라는 세례명까지 받았다. 그렇게 조용히 마음 추스르고 살고자 했던 그는 예수 부활의 밤을 기리는 토요일 성야미사에 참석했다가 뜻밖의 인물을 목격하고 충격 받는다.
전직 경찰인 고승록을 수십 년 만에 본 것이었는데, 그는 바로 4·3 때 누나를 총살한 자였다. 석우에게 그는 ‘인정사정없는 불악귀’요 ‘피도 눈물도 없는 천격’일 수밖에 없는 그야말로 ‘구수(仇讐)’였다. “저기 날백정이 있다. 악마가 들어왔다—”, “성전에 살인마가 들어왔군. 개판 세상 아닌가”(317쪽)라고 외치며 성당을 나왔다. 하지만 그의 외침은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고 되레 그가 머리가 이상한 사람으로 인식되었다.
고승록은 벽돌 기와집 저택에 살면서 현금으로만 교무금을 낸다고 했다. 대학병원 특실에 입원해 있으면서 “나는 나라를 어지럽히는 폭력에 적극 대항해온 사람이오. (…) 나는 떳떳하게 살아왔다고 자부하오.”(275쪽)라거나 “내게 다시 직임을 준다면 나는 사회질서를 교란시키는 불온시키는 불온세력을 뿌리뽑는데 앞장설 거요.”(276쪽)라고 호기롭게 말한다. 병문안 간 신부는 그를 위해 “주님과 더욱 가까이에서 인생의 새 출발을 하는 계기가 되도록 도와주소서”(275쪽)라고 기도한다.
얼마 후 고승록이 죽고 장례식이 성당에서 치러졌다. 성당의 교우들은 “고승록 그레고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281쪽)라며 사자의 구원을 간구하였다. 그러나 석우는 교우들과 더불어 기도할 수 없었다.
“교회는 왜 쉽게 악인의 잔꾀에 넘어가는 것입니까. (…) 어쩌다가 주님께서 마음이 약해지셔서 죄인을 용서해 주시는 날에는 사람들은 쉽게 나쁜 짓을 저지르고 주님께 숨으러 달려갈 것입니다. 이건 안 되지 않습니까.”(281∼282쪽)
피해자는 용서하지 않았는데 교회가 용서하는 형국이라고 생각한 석우가 속말로 우물거린다. 이청준 소설 〈벌레 이야기〉(1985)가 연상되는 부분이다. 피해자는 여전히 고통스러운 반면 가해자는 아주 당당한 상황이다. 그러기에 “지난날의 여분을 곱씹는 것은 묵은 상처를 다시 덧내는 일”이긴 하나, “그렇지만 누가 하고 싶어서 하는가. 억다물고 눌러도 자꾸 애나고 한이 나서 그런 거지.”(263쪽)라고 곱씹는 석우로서는 “원수를 눈앞에 두고 피해 달아날 순 없”(320쪽)었던 것이다. 그러나 정작 복수를 제대로 실천하지도 못했다.
석우는 고문 후유증으로 인해 ‘추골간연골반 탈출증’과 ‘양극성 기분장애’라는 진단서를 발급받아 4·3 후유장애자로 인정해 달라고 심사위원회에 제출한 상태인데, 해군기지 건설 문제를 둘러싸고 제주섬이 매우 뒤숭숭하다. 성당에서는 강정마을에서 미사를 진행하면서 신도들의 관심을 촉구하고 석우도 거기에 참석한다.
이때 석우는 강정마을 맹꽁이를 찾아다니는 일에 꽂힌다. 구럼비 바위 발파에 앞서 맹꽁이를 피난 보냈다는 소식을 전해주는 마을 노인의 부탁을 접했기 때문이었다.
“(…) 맹꽁이들이 살고 있는 곳을 한 번 보고 와 주시겠소? 내 신세도 그리 될 것 같소. 땅을 내놓게 되었으니 어디로 떠나야 하지 않겠소? 맹꽁이신세가 돼버린 거요. (…) 일생이 소개의 연속인 것 같소. 사삼사태 때에는 군경이 내몬 소개령으로 저기 윗마을 도순으로 해서 새별동산 함백이골 새수촌을 전전하다가 이곳 구답동네 해안까지 내려오지 않았수가. 맨땅에서 밤을 지내기도 하고 남의 집 잿막이나 마구간에 살면서 어두운 밤에 멍이진 가슴으로 들은 건 구럼비 해안의 맹꽁이 소리였다오. 이제는 그 맹꽁이 소리도 멀리 가 버리고 이 사람도 다시 떠나야 하는 거요.”(303쪽)
조천읍의 돌공원으로 옮겨졌다는 강정 맹꽁이를 추적해 봤으나 끝내 허사였다. 매·까마귀·비오리·가마우지에게 모두 잡아먹혀 한 마리도 찾을 수 없음을 확인했다. 법정보호생물인 맹꽁이가 그렇게 포식자의 먹이로 살뜰히 제공돼 버렸음을 알고 그는 지난날 고향 마을에서 함께 살다가 4·3 때 끌려가 생명을 잃은 수많은 얼굴들을 떠올린다. “그들이 떠나 버린 마을의 무너진 집터가 맹꽁이들이 사라져 버린 마른 흙구덩이와 겹쳐 보이면서 풀줄기만 간닥거리는 무몰한 땅이 죽음의 현장인 듯 가슴을 참담하게 만들었”(227쪽)던 것이다.
결국 그는 집에 들어박혀 먼산바라기가 되었다가 산속의 요양원으로 끌려가고 만다. “과거를 생각하며 다시는 그런 비극이 이 땅에 없도록 하기 위해서”(296쪽) 나서던 해군기지 반대운동에도 동참할 수 없는, 그야말로 길 잃은 나그네 신세가 되었다. 4·3의 문제는 이렇게 군사기지 문제와 긴밀히 연결되면서 시퍼렇게 살아있는 현안임을 오경훈은 여실히 보여주었다.
〈실향〉은 4·3으로 인해 뒤엉킨 가족의 수난이 세대를 넘어 계속되고 있음을 용의주도하게 짚어낸 단편이다. 제주의 심각한 현안인 제2공항 문제가 거기에 긴밀히 연결되어 있음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특히 주목된다.
팔순이 넘은 ‘나’는 제주섬 동쪽의 성산읍 고성리가 고향인데 지금은 시내에 살고 있다. ‘나’의 아버지는 4·3에 연루되어 옥살이하다가 행방불명된 사람이다. 아버지는 태평양전쟁 말기에 면서기였는데, 주민들에게 전쟁물자 거두는 악역을 수행하게 되었다. 해방이 되자 아버지는 그런 약점 때문에 “코 꿰인 몸이 되어 한라산 무장대가 접근하였을 때 양식과 의류 침구 등을 징구하는 대로 내놓지 않으면 안 되었”(99쪽)다. 그것은 공권에 끌려가 재판에 회부되는 빌미가 되었다.
“네 할아버지가 잡혀갈 때 할머니가 어떤 모습이었는지 아니? 남편을 죽음터로 끌려 보내면서 미친 듯이 몸부림치는 모습을 그려볼 수 있겠니? 머리는 풀어 헤쳐지고 옷고름은 떨어져 앙가슴이 드러나고 신발은 벗겨져 맨발인 채 땅을 치며 통곡하던 모습.”(106쪽)
‘나’가 당시의 상황을 아들에게 전언하는 부분이다. 아버지는 결국 실형을 받아 대전형무소에서 수감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6·25전쟁이 터지면서 생사를 모른 채 영영 소식이 끊기고 말았던 것이다. ‘나’는 그런 아버지로 인해 연좌제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사관학교 입학시험과 공무원 시험에서 고배를 마셨는데 모두 4·3 행불인인 아버지의 실종과 관계가 있었다. 그런 불행은 아들에게까지 이어졌다.
“술에 취해 들어온 아버지가 저를 끌어안고 꿀쩍댈 때면 저는 활랑거리는 숨소리를 들으며 가슴이 터져버리곤 했다고요. 아버지가 너무 불쌍하고 허약하게 느껴진 거지요. 그래서 까마득한 어린 시절부터 제 가슴속에서 자라온 건 떠나야 한다는 생각, 떠나야 살 수 있을 거란 생각뿐이었어요….”(109쪽)
성인이 된 아들은 부모 곁을 멀리 떠났다. 전문대학에서 안경사 자격증을 따고 호주로 가더니 거기서 뉴질랜드 여자를 만나 가정을 이루었다. 처가의 나라에서 안경집을 운영하면서 아들 둘을 낳아 살고 있다.
‘나’는 뒤틀린 가족의 삶이 후세에라도 풀려가길 간절히 소망했다. 어머니가 별세하자 풍수가 정해준 이웃마을 난산리 지경에 산소를 쓴 것도 그런 바람의 실천이었다. 그 묘지를 점지해준 풍수가 “탄탄하고 반듯하여 발복의 지세임이 분명”(96쪽)한 곳이라고 했기 때문이다. 수년 후 아버지가 천수를 누렸을 나이가 되었을 무렵에는 어머니 무덤 옆에 아버지의 옷가지를 뭉쳐 넣어 헛묘를 쌓았다. 비로소 부모의 산소를 쌍묘로 마련한 셈이 되었다고 스스로 위로했다.
그런데 심각한 문제가 생겼다. 애초에 풍수가 “한 가지 우려되는 것은 안산, 청룡, 백호 사이가 너무 떠서 그 사이에 농로가 생기거나 토건을 일으켜 사룡(死龍)을 만들지 않을까 하는 거”(97쪽)라고 말했던바, 그 우려가 현실로 다가오고 말았다. 난산리 등지에 제2공항을 건설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던 것이다. “지근접으로 비행장이 생긴다니 지나새나 지축을 뒤흔들어놓을 굉음에 조령(祖靈)들이 어찌 잠들”(98쪽) 수 있겠는가. 그래서 이번 기회에 토장을 개장하여 자연장을 치르려고 뉴질랜드에 있는 아들에게 다녀가길 당부하였다. 아들은 거의 30년 만에 조부모 이장을 계기로 귀국하게 되었다.
아버지 묘는 “시신이 없이 허광으로 만든 무덤”(101쪽)이어서 문제가 되었지만 장시간 논란과 석명 끝에 화장의 형식을 빌려 자연장으로 치를 수 있었다. “제2공항 기본 공사비로 일백억 원이 책정되었다고 정부가 발표하던 날”(105쪽)에 묘소 이장을 마쳤다. 아들딸과 손자들까지 함께 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아들은 남아메리카의 알파카를 닮은 허여멀쑥한 사내아이 둘(피터와 어니스트)을 데려왔다. 우리말을 모르는 두 손자는 마오리족 집단 춤을 추면서 재롱을 부렸다. 동문시장에서 하이파이브를 나누면서 정도 들었다. ‘나’는 아들에게 “이제 고만 타국생활을 청산하고 환국(還國)”하고 가통을 잇기 위해 “국적을 회복”(108쪽)하기를 권했다. 그러나 아들은 이 세상 어디에서 무엇을 하건 조상을 떠나는 것은 아니라며 거절했다. 아들은 자식들에게 “저쪽 문화를 듬뿍하게 익혀 본토인들과의 경쟁에서 뒤지지 않게 만들겠다”면서 “이제는 이 나라 저 나라가 모두 이웃이며 아랫집 윗집이 되었”(117쪽)음도 강조했다.
아들과 두 손자가 그렇게 뉴질랜드로 돌아간 뒤 ‘나’와 아내는 더욱 헛헛해졌다. “부부가 동심으로 유목(幼木) 밭의 잡돌을 치워내면서 오물대곤 했던 바람이 이제는 덧없이 되고 말았는가.”(117쪽) 하며 눈물 흘리며 탄식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애들한테 가볼까 하는 아내의 제안에 ‘나’는 “좋지. 못 갈 게 뭐 있어. 이웃으로 생각하고 살아야 해.”(118쪽)라고 답하고는, 채심하여 깐깐이로 살아가기로 다짐한다. 작가가 ‘제주항’ 연작에서 강조했던 개방적 자세의 중요성이 다시 확인되는 부분이다.
이상에서 보듯, 오경훈은 4·3의 문제를 과거의 특정한 사건으로 한정시켜 두지 않는다. 끊임없이 지금-여기와 소통하는 가운데 절실한 당면 과제로 오롯이 끌어온다. 마을공동체에 대한 확장된 인식을 통해 4·3 해석의 방향을 제시하고자 했으며, 강정해군기지 건설의 폭력성과 제2공항 추진의 야만성을 돋을새김하는 가운데 신제국의 야욕이 폭발한 지점이라는 4·3의 본질을 끊임없이 곱씹어야 함을 강조했음이다.
2007년 9월 나리 태풍 때의 복개천 범람에 따른 참상을 재현한 〈악마는 숨어서 웃는다〉는 개발지상주의의 폐해를 지적한다는 점에서 4·3을 바라보는 작가의 인식과 일맥상통하는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부동산업자, 건설업자, 사업발주기관, 어용 전문가 등등 경제적 이득만 추구하는 이들의 탐욕을 더 이상 좌시해서는 안 된다는 발언이다. “인간의 이기적이고 오만한 개발이 불러온 재앙에 몸을 떨”(187쪽)게 되는 주인공의 인식은 악마처럼 도사려 있는 인간의 탐욕이 활개치는 작금의 제주 상황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일깨우는 준엄한 경고다.
3. 한 땀 한 땀 수놓아 간절한 이야기를 남기다
위에서 살펴본 소설들도 그렇듯이, 이번 창작집에 수록된 작품들에는 노인을 주요 인물로 내세운 경우가 많다. 오경훈이 60대 후반부터 10여 년 동안 발표한 작품들을 담아낸 까닭이니, 노년의 작중인물들은 대체로 작가와의 거리가 가깝다고 할 수 있다.
특히 〈가깝고도 먼 곳〉은 노년의 일상과 상념과 지혜가 잘 드러난 작품이다. 이 소설의 ‘나’는 장애인 시설 ‘자애원’에 봉사활동을 다니는 노인으로, 20대 뇌성장애 남자들을 목욕시키는 봉사를 한다. ‘나’는 거기서 국숫집 할머니의 유복자가 낳은 농아인 21살 덕진이를 이태 동안 돌봐왔다. ‘나’는 8월에 두 손자와 함께 국수 먹으러 갔다가 생일 맞아 귀가한 덕진이를 데리고 바다로 간 적이 있었다. 손자들과 함께 덕진이는 조개도 잡으며 즐겁게 놀았는데, “덩치가 송아지만한 덕진이가 이제 초등학생인 꼬마들과 어벙한 소리를 지르며 낯이 빨개지도록 숨을 할랑거리면서 어울리는 장면은 동화 속의 그림 같았다.”(19쪽) 그런데 추석이 지난 어느 날 덕진이가 해안에서 익사체로 발견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나’는 바닷가에서 조가비들이 가득 들어 있는 운동화를 찾아낸 데 이어, 덕진이가 손톱자국으로 빗살처럼 찍어놓은 조개를 점토로 빚어놓았음을 확인했다. ‘나’는 바다로 데려간 선의의 행위가 사고의 원인이 되었다는 편편찮은 마음을 지울 수 없었다. 하지만 “그때 우리들의 물놀이는 참으로 아름답지 않았던가. 결국 불행을 만든 원인으로 귀결된다고 해서 그때의 그림이 지워지겠는가.”(15쪽)라는 믿음을 가졌다. 그래서 ‘나’는 힘겨워하는 후배 봉사자들에게 “흘겨보면 밉고 눌러보면 예뻐 보이기도 하는 거야.”(26쪽)라면서 “그들은 순수한 애야. 성한 사람과는 달라. 거지꼴이 없어.”(28쪽)라고 타일러 조언한다. 선입견 없는 순수한 사랑을 체득한 노인의 선한 지혜가 잔잔한 울림을 준다.
〈열쭝이 사설〉은 인간애가 넘치는 작품이다. 농장 일대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그려놓고 있는데, 작가는 이들을 간신히 날기 시작한 어린 새처럼 나약하고 겁이 많은 존재들로 생각한 것 같다. 이 작품에서 열쭝이들의 이름은 밝혀지지 않은 채 ‘뚝지’, ‘잔생’, ‘망고’ 식으로 불린다. 특히 농장 일도 제대로 해내지 못하는 ‘잔생’은 가장 열쭝이다운 인물이다. “다리 밑에서 주워온 아이, 집 앞에 버려진 업둥이, 불륜녀가 낳은 사생아”(49쪽)인 그는 자신을 길바닥에 버려진 조약돌로 여긴다. 강포한 계모 밑에서 다섯 살 아래 이복동생을 돌보며 시달렸던 조방꾸니로서 약질이 되어 버리지 않을 수 없었던 환경이었기에 성인이 되었어도 그 트라우마로 인해 모든 게 힘겹기만 하다. 매사에 자신감이 없어서 핑계만 늘어가던 그는 뚝지에게 모든 것을 털어놓는다. 뚝지의 거침없는 충고를 듣고 깊이 생각하더니 이제 제 몫은 해야 한다고 마음을 도슬러 먹는다. 그래서 저녁이 되자 혼자 비닐하우스에 들어가 땀 흘려 일한다. 가련하고 나약한 존재에 대한 깊은 애정을 느낄 수 있는 소설이다.
〈사교〉는 석주라는 인물을 통해 불행과 죽음에 맞닥뜨릴 수밖에 없는 인간이야말로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지를 보여준다. 그는 건축회사 다니다가 실직한 후 오랜 구직 활동을 하다가 어렵게 시청 청소차를 운전하며 살아간다. 그는 구직 중에 2년 정도 장모의 도움을 받는데 공교롭게도 대장암으로 입원했던 장모의 임종을 유일하게 지켜보기도 했다. 그런데 처가 식구들의 불행은 계속된다. 외항선을 탔던 큰처남은 장모 일주기 무렵에 충수암으로 죽고, 이듬해에는 육지에 시집가서 빵빵하게 살던 처제는 복막염으로 사망한다. 게다가 어머니를 모셨던 작은처남도 암에 걸리고, 아내는 야위어지면서 병원에서 재진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 되는 등 처가 식구들이 병마의 공포에 시달린다. 그 와중에 석주는 사려니숲길 갔다가 괴상한 형상의 그루터기를 발견해서 집에 갖고 왔는데 아내가 귀신 모신다고 질겁해서 내다 버린다. 그 후 재진 결과 괜찮다고 하자 아내는 그루터기가 제웅치기한 셈이라고 여긴다. 석주는 아내에게 “오라비더러 입을 자그물고 힘껏 살라고 해. 절대 희망을 잃어서는 안 된다고”(90쪽)라고 전언키를 역설한다. 그러면서도 “모든 사람은 깨벗고 간다.”(76쪽)는 것을 알기에 “삶이란 앞을 모르는 사람이 어둠 속을 더듬고 막대질하는 건가….”(90쪽)라며 유한한 인생의 의미를 되새긴다. 죽음과 운명에 대한 노년의 성찰이 짙게 깔린 작품이 아닐 수 없다.
건깡깡이, 걷지르다, 검덕귀신, 굴치, 길차다, 끌텅지, 나루하다, 나릿나릿, 나배기, 난딱, 날속한, 내셍기다, 너주레하다, 누운벼락, 두리기상, 땀직하다, 마구발방, 만수받이, 맷가마리, 목곧이, 무르춤하다, 봉충다리, 뻗두룩하다, 뻥짜, 살스럽다, 새들하다, 서덜밭, 성성이, 소마소마, 수참하다, 시르멍이, 시쁘다, 실없쟁이, 쑹쑹이, 안쫑잡다, 안형제, 양글다, 어방짐작, 언걸먹다, 여립켜다, 여짓거리다, 오그랑장사, 와뜰, 왜배기, 잔밉다, 제웅치기하다, 쪼볏이, 흐둥하둥…….
내가 이번 작품집의 소설들을 읽으면서 사전을 찾아보아야 했던 단어들 가운데 일부다. 아마도 작가는 평소의 독서 중에, 아니면 작정하여 사전을 들춰보다가 낯설거나 요긴한 단어들을 접할 때마다 일일이 메모해 두었다가, 수시로 되새겨 육화하는 과정을 거쳐 소설의 문장 속에 한 땀 한 땀 수놓았을 것이다. 그렇게 정성을 담아내는 성실한 자세로 그의 소설들은 탄생한 것이리라.
이토록 아름다운 작가 오경훈은 이제 우리 곁을 떠났지만, 그가 남긴 작품들은 그가 풍겼던 은은한 향기와 정겨운 미소로써 바람결 구름결에 넌지시 우리를 찾아올 것이다. 당장이라도 백발의 그가 저만치서 ‘어이!’ 하며 부르고는 너털웃음으로 성큼성큼 걸어와 손을 내밀 것만 같다.
작가 소개
지은이 : 오경훈
1944년 제주에서 태어나 제주교대를 졸업하였으며, 25년 동안 교사로 재직한 후 5년여를 《한라일보사》 기자로 활동했다. 1980년대 《경작지대 동인으로서 여러 편의 소설을 발표했고, 1987년 《현대문학》 추천 완료(1976년 초회 추천)되면서 등단했다. 창작집 《유배지(1993)》, 장편소설 《침묵의 세월(2001)》, 연작소설 《제주항(2005, 초판》), 《증보판 제주항(2024)》등을 간행했다. 2025년 2월 22일 별세했다.
목차
■ 단편소설
가깝고도 먼 곳・9
열쭝이 사설・31
사교(邪敎)・57
실향(失鄕)・91
마을제[酺祭]・119
악마는 숨어서 웃는다・163
■ 중편소설
강정(江汀) 길 나그네・195
해설・ 3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