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리뷰
★★★희망을 상실한 현대 사회 속 교회의 존재 의미는 무엇인가★★★
“세상과 교회를 향한 애통하는 마음으로 새로운 방향을 찾는 모든 분에게 일독을 권한다!”
김병삼(만나교회), 송태근(삼일교회), 주승중(주안장로교회) 추천!과학과 기술의 진보에도 희망을 상실한 현대 사회를 위해 교회와 기독교 신앙이 기여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하는 책이다. 조지 오웰의 소설 『1984』가 암울하게 그렸던 미래를 현재로 살아가는 사회는 어떤 모습이며, 그런 사회에서 기독교 신앙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가? 레슬리 뉴비긴은 서구 문화를 특징짓는 출발점이 계몽주의와 그로 인한 근대의 과학주의 세계관이며, 기독교 신앙 대신에 민족 국가와 국가주의를 기초로 선택한 서구 사회가 희망의 실종을 특징으로 갖게 되었음을 지적한다.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 계몽주의가 현대 사회에 가져온 긍정적 변화를 인정하면서도, 신앙이 은폐되고 사적 영역으로 물러난 것이 아니라 근대의 과학주의 세계관이 내포한 한계를 극복하는 데 꼭 필요한 기능을 한다는 점을 깨달을 수 있다. 막다른 길에 다다른 현대 문명을 위해 기독교 신앙과 교회가 성경의 종말론적 비전으로 감당할 사명을 숙고하도록 돕는다.
“우리가 처한 ‘현대의’ 세계사적 위치는 이해를 위한 기존의 틀이 적절하지 않게 되었고 새로운 틀이 요구되는 시점이라는 것입니다. 저는 기독교 ‘교리’를 그 새로운 틀로 부끄러움 없이 제시할 것을 요청했습니다. 달리 말하자면, 저는 ‘현대’ 문화에 대한 진정한 선교적 접근을 요청하는 바입니다.” -서문 중에서
과학과 기술의 진보는 왜 현대인들이 희망을 상실하는 것을 막지 못하는가
그리고 교회와 기독교 신앙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계몽주의가 가져온 놀라운 발전, 그럼에도 희망을 잃는 사람들 근대 이후의 서구 사회는 과학과 기술, 문화 영역에 이르기까지 놀라운 발전을 이루었다. 그리고 20세기에 들어서면서 제국주의와 그로 인한 전쟁의 참화를 겪은 후, 20세기 후반 이후로는 세계화의 영향으로 그러한 발전이 비서구 사회로 확산되었다. 이 변화의 시작점에 계몽주의가 있었다. 깊은 종교적 의미를 가진 ‘계몽’이 여러 세기 동안 진행되어 온 발전들의 정점 혹은 전환점을 가리키게 되면서, 이 단어는 종교와 문화의 편견에서 자유로운 인간의 발견을 의미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발전이 그늘을 키워 왔다는 것도 사실이다. 발전한 나라의 젊은이들이 희망을 잃고, 남루한 옷차림으로 인도의 거리를 헤매는 이유는 무엇인가? 한쪽에서 과학과 기술이 가져오는 변화를 칭송할 때, 같은 사회의 구석에서 이루어지는 인간의 비인간화를 어떻게 설명할까?
계몽주의의 전환과 교회의 책임 레슬리 뉴비긴이 철학자 마이클 폴라니(Michael Polanyi)를 따라 지적하는 바에 따르면, 일반적인 인식과 다르게 계몽주의는 단순히 전진하기만 한 것이 아니었다. 계몽주의자들이 미신과 모든 비합리성과 싸운 것은 감사할 부분이지만, 그 과정에서 교리 혹은 믿음보다 의심에 주도권을 부여한 것은 아우구스티누스가 처음으로 ‘비판 이후 철학’(post-critical philosophy)을 시작함으로써 그리스 철학의 역사를 끝낸 것과 반대 방향으로 나아간 것이다.
계몽주의의 영향 아래서 기독교 신앙은 사적 영역으로 물러난 것으로 보인다. 그와 함께,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계시가 참된 이해의 출발점이라는 확신도 일부 영역으로 제한되었다. 뉴비긴에 따르면, 계몽주의의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근본적 전향, 새로운 출발점이 필요하다. 그 출발점은 단순히 아우구스티누스에게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아우구스티누스의 전환을 유비로 이해해서, 증명될 수 없지만 신앙에 의해 유지될 수 있는 가장 근본적 믿음들을 인정하는 것이다. 또한 우리 문화의 근원적 갱신을 위해, 그러한 새로운 이해의 모델을 제공할 책임이 교회에 있음을 인식하는 것이다.
현대 문화에 대한 진정한 선교적 접근을 위하여 교회와 기독교 신앙이 현대 문화에 대한 책임을 다하기 위해서는, 현대 문화에서 왜곡을 일으킨 문제에 의해 교회와 기독교 신앙도 영향을 받았음을 인식해야 한다. 먼저, 폭력으로 사용된 교리가 제 역할을 하기 위해, 폴라니의 용어로 말하자면, ‘신앙의 틀’(fiduciary framework)이 탐구와 질문의 한계가 아니라 시작점이라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폴라니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기독교 선교가 올바로 이해될 때 그렇듯 다른 사고방식들과의 대화로 이어지고, 다른 ‘신앙의 틀들’로부터 움직이는 이들과 대화하며 사는 법을 배워야 한다. 바로 이것이 계몽주의 이후 문화와의 선교적 만남이다.
또한 우리는 예수의 사명이 선포하고 구현하는 하나님의 통치가 창조된 세계 전체와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에 대한 지배를 주장하는 통치이며, 성경이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오는 거룩한 도시의 비전으로 끝을 맺는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그렇게 할 때 우리는 공적 비전과 사적 비전을 다시 통합하며, 그러면서도 ‘콘스탄티누스의 함정’에 빠지지 않고, 세상에서 이루어지는 우리의 순종 전체를 다스릴 성경의 종말론적 비전으로 되돌아간다. 이러한 돌이킴은 우리가 하나님의 선물로서의 정의와 평화를 기대하게 만들 것이다.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 현대 문화의 발전 이면에 있는 계몽주의의 성과와 한계를 되돌아보고, 교회와 기독교 신앙이 어떻게 그러한 문화적 한계 내에서 축소되었는지 반성하면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 계시된 하나님의 총체적 비전으로 회복되어 세상에 새로운 빛을 비출 수 있을지 고민하게 된다.
*이 책은 ‘사귐과 섬김’의 지원으로 출간되었습니다. 한국 교회의 공공성 증진에 기여하려는 목회자 모임인 ‘사귐과 섬김’은 부설 ‘코디연구소’를 통해 기독교적 사회 문화 연구와 실천에 힘쓰고 있습니다.
■ 독자 대상 현대 문화와 기독교 신앙의 관계를 두고 고민하는 그리스도인
과학과 합리성을 요구하는 시대에 성경을 따르는 믿음의 의미를 찾는 그리스도인
종교를 무시하는 사회가 추구하는 미래에 동의할 수 없어 대안을 모색하는 그리스도인
인간의 끝없는 욕망이 세상과 교회를 삼키는 것 같은 상황에서도 복음 안에 있는 참된 대안을 기대하는 그리스도인

이 작은 책자는 영국교회협의회(British Council of Churches)가 1984년에 열릴 회의를 염두에 두고 1981년에 발주한 연구 과정의 일부로 작성되었습니다. 회의 시점으로 1984년이 선택된 이유는, 그 해가 유명한 소설 제목으로 널리 알려져 있어 사람들이 우리 사회에 어떤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지를 질문하게 될 시기라고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상당한 토론 끝에 모인 의견은 그런 회의를 준비하는 데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것과, 전국 회의 준비를 위해 논의를 활성화하고 몇몇 전문가 그룹에 의제를 제안하기 위한 글이 필요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어지는 글은 이러한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쓴 것입니다.
-서문 중에서
영국에서 사역을 하면서 종종 받았던 질문은 “인도에서 영국으로 옮겼을 때 무엇이 가장 힘들었습니까?”라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늘 “희망의 상실”이라고 답했습니다. 같은 경험을 가진 모든 사람이 이 말에 동의할 것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마드라스에서는 가장 비참한 빈민가에서도 상황이 개선될 수 있다는 믿음이 항상 있었습니다. 야간 학교를 시작하거나, 물 공급을 요구하고, ‘청년 진보 협회’ 같은 것을 설립할 수 있었습니다. 1947년의 독립 이후에 겪은 모든 실망에도 불구하고, 더 나은 미래가 올 것이라는 믿음은 여전했습니다.
-1장 희망을 상실한 문화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