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리뷰
고갱이와 멋 부림
식물에게는 헛꽃이라는 게 있다. 참꽃은 작고 볼품이 없어 눈에 띄어도 이목을 끌지 못한다. 그래서 살아남기 위해 헛꽃의 치장을 한다. 영락없이 꽃처럼 보이는데 헛꽃이다. 진짜 꽃이 너무 작아 곤충을 유혹할 수 없으니 꾀를 낸 것이다. 꽃이 피면 홀딱 속아 넘어간 곤충들이 혼미하여 날아든다.
이런 멋 부림은 사람들에게서도 나타난다. 명함에 찍힌 많은 이력들은 거의 헛꽃이다. 시에 있어 멋 부림은 고갱이를 돋보이게 하려는 장치다. 멋 부림은 고갱이를 사람들에게 인식시키기 위에 눈길을 끌어들이는 헛꽃이다.
곤충에게서나 사람에게서나 먼저 눈이 가는 것은 헛꽃이다. 헛꽃의 멋 부림에 끌려들어가 고갱이를 만나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멋 부림이 결코 나쁜 것은 아니다. 다만 헛꽃에만 눈길이 가 고갱이를 놓칠까 하는 근심을 하는 것이다. 헛꽃은 헛꽃으로서의 역할이 있을 뿐 고갱이는 아니다. 고갱이를 놓치면 곤란하다. 헛꽃은 당의정의 설탕물과 같은 것이다. 고갱이를 잡아라. 삶의 줄기, 고갱이를.
밥과 영혼
시를 쓰는 일은 밥을 팔아 영혼을 사는 일이다. 이는 매우 고달프고 곤혹스러운 일이다. 영혼도 사고팔고 하는 자본주의에서는 적합한 직업이 아니다. 자본주의는 영혼을 팔아 밥을 사는 구조다. 밥을 팔아 영혼을 사야지 영혼을 팔아 밥을 살 수는 없다. 그러나 시인은 밥을 팔아 영혼을 사는 사람이다.
어느 시인은 태어나려고 하는 “아이의 심장도 밥, 밥, 밥, 하고 뛴다.”고 시를 썼다. 이게 자본주의의 논리다. 밥이 법보다 위에 있다. 자본주의는 영혼을 팔아 밥을 사는 구조니 태아도 이미 밥의 중요성을 알고 있다는 암시다. 아무리 숭고한 영혼도 밥 앞에서는 무력하게 무릎을 꿇는다.
밥과 영혼은 공존하기가 어렵다. 나는 많은 시인들이 밥 때문에 영혼을 팔아 힘들어하는 것을 보아왔다. 밥 앞에서는 젊은 날의 꿈도 무릎을 꿇는다. 먹기 위해 사는가? 살기 위해 먹는가? 장난처럼 묻던 물음이 어떤 함의를 가졌는지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밥과 영혼이라. 시를 쓰는 일은 밥을 팔아 영혼을 사는 일이다. 곤란하다. 헛꽃은 당의정의 설탕물과 같은 것이다. 고갱이를 잡아라. 삶의 줄기, 고갱이를.
생선을 싼 종이와 향을 싼 종이
마음은 아주 크고 넓다. 그런데 사람들은 마음이 보이니 보이지 않느니 한다. 말은 마음의 소리요, 행동은 마음의 자취니, 마음은 아주 분명하게 보인다. 그리고 빙산일각(氷山一角)이라, 보이는 부분 보다 보이지 않는 부분이 더 크다. 그리고 그 마음이 다 시의 행간에 담긴다. 생선을 싼 종이는 생선 비린내가 나고, 향을 싼 종이는 향내가 나기 마련이다.
같은 나무를 보고 어떤 시인은 전신주를 떠올리고, 어떤 시인은 미륵상을 떠올린다. 전신주를 떠올리는 시인은 전신주에 마음이 가 있고, 미륵상을 떠올린 시인은 미륵에 그 마음이 가 있다. 그 마음이 행간에 담긴다.
말은 마음의 소리다. 시는 그 마음의 소리를 가장 잘 드러내는 양식이다. 시인은 단어 하나 토씨 하나에 그 마음을 다 담는다. 시를 읽는 독자는 어떤 평론가 보다 예리한 눈을 가지고, 그 마음을 읽는다.
작가 소개
지은이 : 성선경
* 1988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시부문 「바둑론」 당선* 시집 : 『민화』『햇빛거울장난』『파랑은 어디서 왔나』외 다수* 시조집 : 『장수하늘소』 * 시선집 : 『돌아갈 수 없는 숲』『여기, 창녕』(공저)* 시작에세이 : 『뿔 달린 낙타를 타고』『새 한 마리 나뭇가지에 앉았다』『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엽서』* 산문집 : 『물칸나를 생각함』 * 동요집 : 『똥뫼산에 사는 여우』(작곡 서영수) * 고산문학대상, 이용악문학상, 산해원문화상, 경남문학상, 경남도문화상 등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