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리뷰
★ 서강대학교 명예교수 김욱동, 문학평론가 전승민 강력 추천!
가난하고 미숙했던 스물다섯 헤밍웨이가 파리에서 마주친 것들
“나는 파리에서 삶의 기쁨과 슬픔, 사랑과 상실을 모두 뼈저리게 경험했다.
파리가 아니었다면 나는 지금의 나로 살지 못했을 것이다.”이 책은 노벨문학상 수상자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파리에서 거주하며 겪었던 6년을 담고 있다. 1921년 헤밍웨이는 소설가 셔우드 앤더슨에게 “비용이 저렴하고 세상에서 가장 흥미로운 예술가들”이 있는 파리를 추천받고 해외특파원 자격으로 아내와 함께 그곳으로 건너간다. 파리에서 헤밍웨이는 에즈라 파운드, 거트루드 스타인, T.S 엘리엇 등 유명 작가들과 교류하고 난 이후 삶의 혼란스러움과 세상의 폭력성을 몸소 느끼고 본격적으로 소설 집필을 시작한다. 파리 시절 가난한 동네의 월세도 빠듯했던 헤밍웨이는 식사를 거르면서도 미술관 가기를 빠지지 않았다. 돈이 없어 거리를 배회했고 센 강을 따라 산책하기를 즐겼으며 책을 사지 못하더라도 서점에 들러 예술의 동향을 살폈다. 악독한 취미라고 할 수 있는 경마에서는 돈을 잃기도 하고 따기도 했으며 그곳에서 인생을 배웠다고 큰소리 떵떵 칠 때면 아내 해들리가 제발 그만하라고 말리기도 했다. 그러나 헤밍웨이에게 가장 영향의 줬던 파리의 장소는 당연코 카페였을 것이다. 그곳에서 만난 동료 문인과 치열하게 예술론을 나누며 밤을 새우기도 했다.
지금 이 시대에 헤밍웨이의 파리 생활을 읽어야 할 이유란 무엇일까. 서강대학교 명예교수 김욱동은 “이 책은 위대한 작가의 성장 과정을 가까이서 직접 확인할 수 있다. 헤밍웨이가 이룬 업적의 모든 것이 파리에서 나왔다고 할 수는 없지만, 반대로 모든 것이 파리에서 나왔다고도 할 수 있다.”고 말한다. 처음부터 태어나기를 위대한 예술가로 태어나는 사람은 없다. 역량을 기르기 위해서는 누구에게나 배경이 필요한 법이고 헤밍웨이에게 파리는 문학 자양분이었다. 그러므로 헤밍웨이의 사소한 진면모까지 모두 알고 싶다면 그의 열렬한 추종자로서 파리의 생활을 상상할 필요가 있다. 100년 전 파리로 돌아가 위대한 작가의 서툰 시절를 통해 흔들리는 청춘의 아름다움을 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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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 서툰 시절 | 어니스트 헤밍웨이 지음 | 정지현 옮김 | 김욱동 감수 | 256쪽(각양장) | 값 19,800원
1921년 청년 헤밍웨이의 서툰 시절을 담은 파리 회고록
“훌륭한 작가가 되고 싶은 열망을 온몸으로 느끼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생각될 때 나는 파리를 떠올린다.”우리가 알고 있는 헤밍웨이는 이렇다. 전쟁문학의 걸작인 『무기여 잘 있거라』로 명성을 얻었고, 스페인 내전을 배경으로 한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로 수십만 부 넘게 팔리는 대성공을 거둔 작가. 인간의 한계를 불굴의 정신으로 풀어낸 『노인과 바다』로 퓰리처상과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작가, 자신의 문학론을 통해 “인간은 파괴될 수 있지만 결코 패배하지 않는다.”라는 명문을 남긴 작가. 우리가 알고 있는 헤밍웨이는 보통 이 정도다. 그가 명성을 얻은 이후의 모습에 국한될 뿐 그에게도 서툰 시절이 있었음을 알지는 못한다.
그러나 우리는 알지 못한다. 위대한 소설가 헤밍웨이에게도 서툰 시절이 있었다는 것을. 헤밍웨이는 스물다섯에 해외특파원 자격으로 파리로 건너가 아내 해들리와 가난하게 살며 본격적으로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그곳에서 헤밍웨이는 문학계 동료들뿐만 아니라 예술계 유명인들까지 우연히 만나 교류하며 자신의 문학적 상상력을 키운다.
1921년 프랑스 파리에 도착한 헤밍웨이의 모습이 어떤지 궁금하다면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 떠올리면 된다. “사실 파리는 비가 올 때 가장 아름다워요.”라고 말하는 벨 에포크(유럽의 태평성대) 시대의 예술가들. 스콧 피츠제럴드, 거트루드 스타인, 살바도르 달리, 피카소, 폴 고갱, 그리고 헤밍웨이. 국적도 다르고 예술론도 다른 그들은 모두 프랑스 파리로 왔고 서로를 만났다. 생 미셸 광장의 카페에 가면 언제나 누구 한 명은 꼭 그곳에 있었고 혹시 아무도 모르더라도 간단한 소개로 새로운 친분을 가질 수 있었다.
헤밍웨이의 문학적 성공의 자양분은 파리였다고 할 수 있다. 스물다섯의 헤밍웨이는 파리에서 모든 것을 배웠다. 다양한 경험을 쌓고 예술론을 공부하며 역량을 키운 덕에 헤밍웨이는 노벨문학상을 수상하고 작가로서 최고의 반열에 오를 수 있었다. 명성을 얻은 이후 1957년 가을 쿠바에서 그는 자신의 젊은 날을 회고하는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그 글을 모은 것이 바로 이 책이다.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은 위대한 작가의 사소한 일상을 엿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가 당대의 예술가들과 함께 한 시간들을 마치 흑백영화를 보듯 눈앞에서 마주할 수 있을 것이다.
스물다섯 헤밍웨이가 파리에서 만난 예술가들
삶의 본질적 고통과 그들이 던진 찬란한 질문들이 책에는 헤밍웨이가 파리에서 만났던 인물들과의 일화가 자세히 소개된다. 특히 사람인 거트루드 스타인과의 일화가 인상적이다. 당대에 이미 문학계 거장으로 인정받은 거트루드 스타인은 청년 헤밍웨이와 그의 지인 예술가들을 길 잃은 세대Lost Generation라고 명명했다. 길 잃은 세대란 제1차 세계 대전이 끝난 뒤 절망과 허무감을 문학에 반영한 젊은 세대를 뜻했으며 인생의 의미나 목표를 잃고 방황한다는 의미에서 붙여진 이름이었다. 어니스트 헤밍웨이, 프랜시스 스콧 피츠제럴드, 윌리엄 포크너는 길 잃은 세대를 대표하는 세 명의 예술가였다. 스타인은 허무와 체념에 빠져 일상을 내팽개치는 길 잃은 세대를 향해 자주 쓴소리를 퍼부었다.
“자네들은 모두 길 잃은 세대야. 전쟁에 나갔다 온 젊은이들 전부 다 마찬가지라고. 자네들은 재능은 있지만 존중심이란 게 전혀 없어. 죽도록 술만 퍼마시고 헛소리만 내뱉으면서 다 파괴하려고 하지.”
스타인이 하는 말을 듣고 그날 밤 헤밍웨이는 집으로 걸어가면서 혼자만의 생각에 잠겼다. 자기중심적이고 정신적 나태함을 간직한 스타인과 (헤밍웨이의 지인이자 소설가인) 셔우드 앤더슨의 절제력을 비교해 보면 누가 누구를 길 잃은 세대라고 명할 수 있겠는가? 헤밍웨이는 길 잃은 세대라는 명칭을 “비열한 꼬리표”라고 반박하며 한 세대를 납작하게 평하는 스타인에게 반기를 든다.
그러나 여전히 문학계 거장인 스타인은 헤밍웨이에게 전폭적인 지지를 아끼지 않았고 여러 예술가 인맥을 쌓을 수 있도록 도왔다. 결정적인 순간에 다정한 위로와 애정을 표하는 스타인을 떠올리며 헤밍웨이는 “어쨌거나 거트루드는 좋은 사람이야.”라고 말한다. 1920년대 파리는 이런 곳이었다. 서로를 폄하하고 상대를 함부로 대하고 한 세대를 자기 마음대로 명명하고 타인을 쉽게 평가하지만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뭉칠 때면 무엇도 따지지 않고 물심양면으로 다른 이들을 도왔다. 어쩌면 이 모든 것은 파리라는 장소가 주는 무한한 특권이었을지도 모른다. 헤밍웨이는 지나간 것들을 두고 미웠던 것까지도 모두 사랑했었다고 회고한다.
“이 모든 이야기는 우리가 무척 가난하고 매우 행복했던,
우리들의 눈부신 젊은 시절 파리의 모습 그 자체를 뜻한다.”한 작가의 인생론을 검토하기 위해서는 그의 소설을 읽는 것뿐만 아니라 그가 살아왔던 다채로운 삶에 대한 행적을 낱낱이 좇는 게 중요하다. 파리에서 머문 6년의 시간은 헤밍웨이에게 소중했던 시간이다. 그가 무엇을 보고 누구와 만나고 어떤 경험을 했는지. 가난하고 미숙했던 헤밍웨이만이 말할 수 있는 진리는 무엇이었는지. 당대의 가장 유명했던 예술가들이 실제로 어떤 말을 주고받고 무엇을 고민했는지. 헤밍웨이의 눈으로 보았을 때 거트루드 스타인의 이기주의와 피츠제럴드의 부부 싸움은 어떤 모습을 하였는지.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이 모든 경험이 씨앗이 되어 30년 후 헤밍웨이를 위대한 소설가로 만들었다는 점이다. 누구에게나 ‘서툰 시절’은 있을 수 있다. 하물며 위대한 작가에게도 그런 시절은 필연적이다. 가난하고 미숙한, 하루하루 불안에 떠는 청춘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부신 가능성을 품고 살아갔던 헤밍웨이와 당대 예술의 도시 파리의 삶을 탐험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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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피카소는 자네 수준이 아니야. 비슷한 또래들 그림으로 사야지. 자네처럼 전쟁에 나가 군복무를 한 사람들 말이야. 그런 사람들을 알게 될 걸세. 근방에서 만날 수 있을 거야. 실력 있는 신인 화가들은 항상 있기 마련이니까. 하지만 자네가 옷을 많이 사는 게 문제가 아니라 문제는 항상 여자들이야. 비싼 건 여자 옷이거든.”
아내는 스타인 선생이 입은 이상한 싸구려 옷을 쳐다보지 않으려고 애썼다. 다행히 억지로 시선을 피하는 티가 나진 않았다. 그들은 우리 집 방문을 마치고 돌아갈 때도 우리를 여전히 좋게 생각하는 듯했고 플뢰루스 거리 27번지에 다시 와 달라고 초대했다.
【거트루드 스타인의 가르침】“그의 소설은 어때요?” 내가 물었다. 선생은 앤더슨의 작품에 대해서는 조이스만큼이나 입에 올리기를 싫어했다. 그녀 앞에서 조이스의 이름을 두 번 꺼냈다가는 다시는 그녀의 집에 초대받지 못할 것 같았다. 한 장군 앞에서 다른 장군을 칭찬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것이다. 그런 실수를 처음 하는 순간, 똑같은 실수를 두 번 다시 반복하면 안 된다는 사실을 깨닫고도 남았다. 반면 그 장군이 이긴 적 있는, 패한 장군에 대해서는 언제든 언급해도 된다. 장군은 신이 나서 자신에게 패한 장군을 오히려 칭찬하고 자기가 어떻게 이겼는지 자세한 무용담을 들려줄 것이다.
【길 잃은 세대】
작가 소개
지은이 : 어니스트 헤밍웨이
1899년 7월 21일 미국 일리노이 주 오크 파크(현재의 시카고)에서 태어났다. 의사 아버지와 성악가 어머니 사이를 두었고, 여섯 남매 중 장남이었다. 평생을 낚시와 사냥, 투우 등에 집착했으며, 다방면에 걸쳐 맹렬한 행동을 추구하고, 행동의 세계를 통해 자아의 확대를 성취하려 했다. 그러한 인생관은 그의 작품 전체를 통해서도 드러난다.고등학생 때 학교 주간지 편집을 맡아 직접 기사와 단편을 썼으며, 고등학교 졸업 후 대학교 진학을 포기하고 1917년 [캔자스시티 스타]의 수습기자로 일했다. 제1차 세계대전 중이던 1918년 적십자 야전병원 수송차 운전병으로 이탈리아 전선에서 복무하기도 했으며, 전선에 투입되었다가 다리에 중상을 입고 귀국했다. 휴전 후 캐나다 [토론토 스타]의 특파원이 되어 유럽 각지를 돌며 그리스-터키 전쟁을 보도하기도 했다. 1921년, 해외 특파원으로 건너간 파리에서 스콧 피츠제럴드, 에즈라 파운드 등 유명 작가들과 교유하는 등 근대주의적 작가들과 미술가들과 어울리며 본격적으로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1923년 『세 편의 단편과 열 편의 시(詩)』를 시작으로 『우리들의 시대에』, 『봄의 분류(奔流)』,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를 발표했다. 방황하는 젊은이들의 삶을 그린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 소설로 베스트셀러 반열에 올랐다. 그후 1920년대 ‘로스트 제너레이션(잃어버린 세대)’를 대표하는 ‘피츠제럴드’와 ‘포그너’와 함께 3대 작가로 성장하였다.그의 첫 소설 『해는 또다시 떠오른다』를 1926년에 발표했는데, 헤밍웨이의 대다수 작품은 1920년대 중반부터 1950년대 중반 사이에 발표되었다. 전쟁 중 나누는 사랑 이야기를 다룬 전쟁문학의 걸작 『무기여 잘 있거라』(1929)는 그가 작가로서 명성을 얻는 데 공헌했으며, 1936년 『킬리만자로의 눈』, 스페인 내전을 배경으로 한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1940)는 출판되자마자 수십만 부가 넘는 판매고를 올린다. 이후 10년 만에 소설 한 편을 발표하지만, 주목을 받지 못하다가 1952년 인간의 희망과 불굴의 정신을 풀어낸 『노인과 바다』를 발표하여 큰 찬사를 받았으며, 퓰리처상과 노벨문학상을 수상한다.그러나 이 해에 두 번의 비행기 사고를 당하는데, 말년에 사고의 후유증으로 인해 우울증에 시달리고, 집필 활동도 막히기 시작했다. 하지만 행동의 규범에 철저한 만큼이나 죽음과 대결하는 삶의 성실성과 숭고함을 작품에 투영하려 노력해왔다. 1959년에는 아이다호 주로 거처를 옮겼고, 1961년 여름, 헤밍웨이는 신경쇠약과 우울증에 시달리다 1961년 케첨의 자택에서 엽총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대표작으로는 1929년 『무기여 잘 있거라』, 1940년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1952년 『노인과 바다』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