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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배나무꽃은 피었는데
삶창(삶이보이는창) | 부모님 | 2024.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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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 소개

정낙추 시인의 시집에는 이제는 다 떠나버린 농촌과 바닷가에 덩그러니 남아 있는 존재의 쓸쓸한 목소리로 가득 차 있다. 물론 2부에서는 시인이 나고 자란 고향, 충청도 내포 지방인 태안과 서산 지역의 특색이 도드라지기는 하지만 말이다.정낙추 시인이 고향인 태안에서 읊조리는 노래는 어쩌면 만가(挽歌) 같기도 한데, 쇠락을 넘어 이제 마지막에 다다른 듯한 농촌에 대한 만가 또한 누군가는 남겨야 할 시적 기록이다. 물론 마지막에 다다랐다는 판단이 잘못된 것이어서 누군가 다시 신생의 노래를 불러준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말이다.산비탈 억새밭 가운데납작한 무덤임자 없는 무덤이 아니다임자는 무덤 속 하얗게 누워소나무로 자라고억새로 흔들리다가봄날에는 등 굽은 할미꽃으로 핀다오늘은 이승어느 곳에 사는지 모를 고달픈 자손들 소식바람에 물어보고새에게 물어보고죽어서도 걱정으로 맺힌 납작한눈물방울_「무덤」 전문
가을 지나사람들은 모두 떠나고벼 그루터기만훈련소 병졸들처럼 줄 맞춰 서 있다 허공을 향해 흔드는논둑 갈대꽃 손짓에 가라앉는 회색 하늘마음을 비운다는 것은 마음뿐 버릴 것을 못 버리고서성대는 계절의 끝빈들에 홀로 서서내 비록 옹색한 살림이지만짚북데기 속몇 개의 벼 이삭은 남겨 놓고 싶다 긴 겨울고독한 날짐승의 몫으로-「빈들에서」 전문
작년 가을빚에 쪼들려배처럼 누렇게 뜬 얼굴로 몰래 이사 간돌배나무집 형네 빈 마당가에빨아 넌 하얀 빨래밤사이 그 집 식구들 돌아왔나 했더니아니다 아니다빈집을 지키던 돌배나무가 하얀 꽃등을 내걸었구나 잉잉 꿀벌도 찾아들어오랜만에 살아나는 집햇볕도 온종일 꽃구름 근처를 서성대고 지나가는 사람들도 한 번씩 쳐다보고이런 봄날돌배나무집 얼굴 고운 형수 배처럼 사근사근한 목소리 다시 들었으면 좋겠는데봄바람이 하얀 빨래 다 걷어가도 돌아오지 않네돌아올 기미 없네_「돌배나무꽃은 피었는데」 전문

  작가 소개

지은이 : 정낙추
충남 태안에서 태어났다. 1989년부터 『흙빛문학』을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했으며 시집 『그 남자의 손』과 『미움의 힘』, 소설집 『복자는 울지 않았다』 『노을에 묻다』를 출간했다. 현재 고향인 태안에서 농사를 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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