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올 에이지 클래식 시리즈. 현진건은 1920년대에 주로 활동한 우리나라를 대표할 만한 사실주의 작가로, ‘시간과 장소를 떠나서는 아무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며 문학이야말로 현실을 떠나서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가장 어두웠던 시대인 일제강점기를 살아가며 보고 겪은 비참한 현실을 사실 그대로 순도 높은 어둠으로 작품에 담아냈다.
이 책에는 「빈처」부터 「술 권하는 사회」, 「희생화」, 「운수 좋은 날」, 「B사감과 러브 레터」, 「까막잡기」, 「사립정신병원장」, 「불」, 「고향」, 「할머니의 죽음」까지, 사실주의 작가 현진건의 대표작 10편이 실었다. 그의 작품 속에는 가난과 고뇌, 허위와 소외의 정서가 가득하다. 따라서 작품을 읽다 보면 가슴 한 편이 아리는 불편한 느낌을 받을지도 모른다.
출판사 리뷰
순도 높은 어둠으로 사실주의 문학을 개척한 작가, 현진건!
언제부터인가 TV 화면 속에서 ‘가난’이 자취를 감췄다. 재벌이 나오지 않는 드라마는 찾아보기 힘들고, 하다못해 전문직 종사자라도 나와야 사람들의 흥미를 끌 수 있다. 부유함을 엿보는 것이 일상이 되면서 가난은 몇몇 소수의 드러내지 말아야 할 치부로 취급 받는 듯하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 주변에서 가난이 사라졌는가 하면 그렇지는 않다. TV 화면에서 눈을 돌려 현실을 바라보면 우리 주변에는 여전히 무수한 가난이 존재한다. 가난이 곧 삶이 된 이들의 참혹한 이야기는 사건 사고를 전하는 뉴스를 통해서야 짤막하게 우리의 망막에 닿곤 한다.
현진건은 1920년대에 주로 활동한 우리나라를 대표할 만한 사실주의 작가로, ‘시간과 장소를 떠나서는 아무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며 문학이야말로 현실을 떠나서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가장 어두웠던 시대인 일제강점기를 살아가며 보고 겪은 비참한 현실을 사실 그대로 순도 높은 어둠으로 작품에 담아냈다. 그의 대표작인 『운수 좋은 날』을 읽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마지막 결말이 주는 충격에 머리가 울리는 경험을 하게 된다. 열흘 동안이나 돈 구경도 못한 김첨지에게 모처럼의 행운이 잇따라 찾아들지만 이처럼 운수 좋은 날, 그를 맞이하는 것은 결국 병든 아내의 죽음이다. 작은 희망조차도 아무렇지 않게 짓밟히는 현실 앞에서 우리는 애써 외면해 왔던 가슴 속 울분을 터뜨리게 된다. 그리고 통증에 준하는 극단의 기억으로 마음 깊은 곳에 선명하게 각인시킨다.
올 에이지 클래식으로 선보이는 『운수 좋은 날 빈처』에는 사실주의 작가 현진건의 대표작 10편이 실려 있다. 그의 작품 속에는 가난과 고뇌, 허위와 소외의 정서가 가득하다. 따라서 작품을 읽다 보면 가슴 한 편이 아리는 불편한 느낌을 받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신기루에 가까운 욕망에 반쯤 눈 먼 채로 살아가는 요즘 세상에서 균형과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기 위해서는 반쯤 눈 감아 왔던 안쓰러운 현실에도 눈을 부릅뜰 필요가 있을 것이다.
하나의 장면으로 전체를 보여 주는 묘사의 아름다움!
사실주의의 기법은 현실을 있는 그대로 그려내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아무리 뛰어난 작품이라 하더라도 현실을 모두 담아 낼 수는 없다. 좋은 카메라라고 해서 세상을 모두 담지는 못하는 것처럼 말이다. 다만 훌륭한 사진작가는 카메라 렌즈 안에 포착된 단면을 통해서 전체의 세계를 짐작하게 한다. 현진건도 마찬가지였다. 현진건은 하나의 장면에 포착된 사물이나 풍경을 통해 전체를 엿보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러한 힘은 바로 묘사에서 나왔다.
“홀로 바느질을 하고 있던 아내는 얼굴을 살짝 찌푸리고 가늘고 날카로운 소리로 부르짖었다. 바늘 끝이 왼손 엄지손가락 손톱 밑을 찔렀음이다. 그 손가락은 가늘게 ???며 하얀 손톱 밑으로 앵두빛 같은 피가 비친다. 그것을 볼 사이도 없이 아내는 얼른 바늘을 빼고, 다른 손 엄지손가락으로 그 상처를 누르고 있다. 그러면서 하던 일가지를 팔꿈치로 고이고이 밀어 내려놓았다. 이윽고 눌렀던 손을 떼어 보았다. 그 언저리는 인제 다시 피가 아니 나려는 것처럼 혈색이 없다. 하더니, 그 희던 꺼풀 밑에 다시금 꽃물이 차츰차츰 밀려온다. 보일 듯 말 듯한 그 상처로부터 좁쌀낟 같은 핏방울이 송송 솟는다.”(「술 권하는 사회」 중에서)
바늘에 찔려 고통스러워하는 여인의 모습이 눈에 보일 듯이 선명하게 그려졌다. 이야기의 흐름 상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작가는 지나칠 정도로 세밀하게 표현하고 있다. 아내가 느끼는 손톱 밑에 바늘이 찔린 고통이 일제강점기를 살던 지식인이 겪었던 아픔과 같은 고통임을 드러내려는 것이다.
현진건은 짧은 단편소설에서 하나의 장면으로 주인공의 아픔은 물론, 시대적 고통까지 나타내기 위해 묘사를 주로 활용했다. 현진건의 작품 어디에도 일제강점기에 처한 우리나라의 현실이나 인간이 가진 이중성에 대해 구구절절한 설명은 없다. 그러나 독자들은 그의 작품을 읽으면서 그가 보여준 세상 너머의 무엇을 볼 수 있다. 이러한 묘사의 힘과 아름다움으로 그가 겪었던 시대의 아픔은 흑백사진처럼 선명하게 우리들의 가슴에 남게 된다.
▶ 주요 내용
「빈처」- 나는 유학을 다녀온 지식인으로, 열심히 글을 쓰지만 경제적으로는 무능한 무명작가다. 나의 아내는 이런 나를 대신하여 어려운 살림살이를 책임지며, 끝없이 나를 믿어 주고 내조해 준다. 물질적 가치를 중시하는 세태 속에서 나를 보는 주변의 시선은 따갑기만 하고, 나는 아내에 대한 미안함과 예술가로서의 고뇌를 느낀다.
「술 권하는 사회」- 아내는 일본으로 유학을 갔던 남편이 돌아오기만 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리라 생각하며 고생을 참고 살아왔다. 하지만 돌아온 남편의 행동은 아내가 기대하던 바와 다르다. 돈벌이도 못할뿐더러 술에 취해 들어오는 날이 많다. 아내는 대체 누가 남편에게 술을 권하는지 궁금하기만 하다.
「희생화」- 나의 누님은 18세 꽃 같은 처녀로, 당시로는 드물게 근대교육을 받는다. 누님은 같은 학교의 남학생과 자유연애를 하게 되고, 용기를 내 어머니께 허락을 구한다. 하지만 봉건적인 남자의 집안에서는 이들의 만남을 반대하고 남자는 집안에서 정한 결혼을 피해 멀리 떠나 버린다.
「운수 좋은 날」-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어느 날, 근 열흘 동안 돈 구경도 못한 인력거꾼 김첨지에게 모처럼 행운이 잇따른다. 김첨지는 몸져누운 아내가 염려스럽지만 연이은 요행을 잡을 욕심에 계속해서 발길을 재촉한다. 제법 많은 돈을 손에 쥐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김첨지에게는 까닭모를 불안감이 엄습한다.
「B사감과 러브 레터」- C여학교의 기숙사 사감인 B여사는 40에 가까운 노처녀다. B사감은 여학생들에게 오는 러브 레터를 가장 싫어하여 편지를 받은 학생은 큰 봉변을 당하곤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새벽에, 기숙사 한 켠에서 웃음소리와 함께 남녀의 수작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마침 잠을 깬 세 명의 여학생은 소리가 나는 곳을 찾아 나서고 뜻밖의 장소에 다다른다.
「까막잡기」- 같은 학교에 다니는 상춘과 학수는 각기 미남과 추남의 표본이라고 할 만한 외모이다. 자유연애에 대한 기대를 품고 있는 잘생긴 상춘은 못생긴 학수에게 여학교에서 주최하는 음악회에 갈 것을 청한다. 학수는 무조건 여학생을 비난하며 가지 않겠다고 하지만 상춘의 간청에 이끌려 결국 음악회를 찾는다. 그런데 음악회에서 여학생 하나가 학수에게 까막잡기를 하고 학수는 갑작스레 여학생을 동경하게 된다.
「사립정신병원장」- 오랜만에 고향을 찾은 나는 모처럼 친구들과 자리를 함께 한다. 그중 형편이 어려운 친구 W가 정신이상자 P군의 말벗 노릇과 감시 역할을 하며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W군은 본래 낙천적인 성격이었으나 술자리에서는 전과 달리 몹시 불안정하다.
「불」- 갓 시집온 열다섯 살 순이는 밤이면 남편에게, 낮이면 시어머니에게 시달리며 힘겨운 나날을 보낸다. 고통을 피할 궁리를 짜며 밥을 짓던 순이의 눈에 문득 성냥이 들어오고 순이는 성냥을 품속에 감추고 생그레 웃는다.
「고향」- 대구에서 서울로 올라오던 나는 동양 삼국 옷을 한 몸에 감은 특이한 외양의 남자와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남자는 동양척식주식회사로 인해 토지를 빼앗긴 뒤, 고향도 가족도 잃고 이리저리 방황하며 살아온 자신의 인생 이야기를 들려준다. 너무도 참혹한 인생사에 말문이 막힌다.
「할머니의 죽음」- 3월 그믐날, 할머니의 병환이 위독하다는 전보를 받고 나와 가족들 모두가 생가를 방문한다. 온가족이 모여 할머니의 죽음을 기다리지만 할머니는 좀처럼 돌아가시지를 않고 가족들은 자기의 삶으로 돌아가고 싶은 속내를 숨기지 못한다.
“우리 구경 가 볼까?”
짓궂은 셋째 처녀는 몸을 일으키며 이런 제의를 하였다. 다른 처녀들도 그 말에 찬성한다는 듯이 따라 일어섰으되 의아와 공구와 호기심이 뒤섞인 얼굴을 서로 교환하면서 얼마쯤 망설이다가 마침내 가만히 문을 열고 나왔다. 쌀벌레 같은 그들의 발가락은 가장 조심성 많게 소리 나는 곳을 향해서 곰실곰실 기어간다. 컴컴한 복도에 자다가 일어난 세 처녀의 흰 모양은 그림자처럼 소리 없이 움직였다.
-「B사감과 러브 레터」 중에서
앙다문 이빨엔 피가 흘렀다. 그 겅성드뭇한 눈썹이 알알이 일어섰으며 핏발 선 눈엔 그야말로 불이 나는 듯하였고 이마엔 마른 가죽을 뚫고 나올 듯이 푸른 힘줄이 섰다. 그러나 그것보다도 마치 납을 끓여 부은 듯한 그 얼굴, 실룩실룩하는 살점 하나하나가 떠는 듯한 그 꼴이란 더할 수 없이 무서웠다. 입에 거품을 버글버글 흘리고
“미친놈하고 같이 있으면 어쨌단 말이냐? 미쳤으면 어쨌단 말이냐? 으? 너는 돈 있다고, 너는 돈 있다고.”
하고 이를 빠드득빠드득 갈아붙이며 K군을 향해 몸부림을 쳤다. 순한 양 같은 이 낙천가가 비록 취중일망정 사나운 짐승같이 날뛰며 악마보다도 더 지독한 표정을 할 줄이야 누가 꿈엔들 생각하였으랴.
-「사립정신병원장」 중에서
작가 소개
저자 : 현진건
현진건(玄鎭健, 1900~1943)은 1920년 《개벽》에 단편 「희생화」를 발표하면서 등단했으나, 이듬해 발표한 「빈처」부터 문단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백조》의 동인으로 활동하였으며 김동인, 염상섭과 더불어 한국 근대문학 초기에 단편소설 양식을 개척하고 사실주의 문학의 기틀을 마련한 것으로 평가된다. 대표적인 단편으로는 「술 권하는 사회」(1921), 「타락자」(1922), 「할머니의 죽음」(1923), 「운수 좋은 날」(1924), 「불」(1925), 「B사감과 러브레터」(1925), 「사립정신병원장」(1926), 「고향」(1926) 등이 있고, 『타락자』(1922), 『지새는 안개』(1925), 『조선의 얼골』(1926), 『현진건 단편선』(1941) 등의 단편집과 『적도』(1939), 『무영탑』(1941) 등의 장편소설이 있다.
목차
1부
빈처
술 권하는 사회
희생화
2부
운수 좋은 날
B사감과 러브 레터
까막잡기
사립정신병원장
불
고향
할머니의 죽음
주석
작품 해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