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리뷰
「장화홍련전」은 황제펭귄 출판사의 ‘빛나는 우리 고전’ 그림책 시리즈의 첫 번째 책이다. 이 시리즈는 우리 고전소설에 대한 그간의 학문적 연구 성과를 제대로 담아, 작품 본래의 의미와 역사적 의의를 살리기 위해 기획되었다. ‘설화’로 통칭되는 옛이야기가 주인공 자체보다는 사건의 흐름에 주로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면, 고전소설은 주인공의 내면세계가 구체적으로 묘사되는 등 개성이 잘 드러나 있는 것이 그 특징이다. 그림책 「장화홍련전」에서 장화, 홍련의 내면 상태를 그림으로 형상화하는데 많은 초점을 둔 것도 이러한 이유이다. 가장 앞선 것의 하나인 15세기 후반 김시습의 「금오신화」를 비롯 「홍길동전」 「박씨전」 「흥부전」 「토끼전」 등 지금도 널리 사랑받고 있는 우리 고전소설은 근대적 인쇄술이 도입된 1912년 이래 상업적으로 출판되어 대중적으로 큰 인기를 얻었다. 이 때 출판된 책은 표지가 아이들의 딱지처럼 울긋불긋해 ‘딱지본’이라 불리기도 했다.
「장화홍련전」 그림책은 1915년 경성서적조합에서 발행한 구활자본을 바탕으로 다시 쓴 것이다. 30년 넘게 고전소설을 연구한 세명대학교 한국어문학과 권순긍 교수와 함께, 많은 판본 가운데 원래 작품의 의의를 가장 잘 담은 저본을 선정하는 작업부터 원고의 수정, 그림 검토 과정을 함께했다. 이 책을 그린 한태희는 한국창작그림책이 본격적으로 만들어지기 시작한 1990년대 후반부터 20여 년간 그림책 일러스트레이션 작업을 해 왔다. 현재는 4년째 한국출판미술협회 회장으로 일러스트레이터들의 공동 이익을 위해 애쓰고 있는 선배 그룹의 작가이다.
옛사람들의 또 다른 상상이야기 「장화홍련전」 「장화홍련전」은 어린이 그림책에서는 드물게 귀신이 등장하는 이야기이다. 우리는 귀신이야기 하면 머리를 풀어 헤친 오싹한 처녀귀신을 생각하곤 한다. 하지만 귀신이 무섭기만 한 존재일까? 우리는 과연 귀신이란 어떤 존재인가 제대로 생각해 본 적이 있을까?
귀신에 관한 이야기는 어느 나라에나 있지만, 우리의 귀신은 억울하게 죽은 자들이 이승에서의 한을 해결하기 위해 등장한다. 그래서 한국판 공포물에는 괴물이나 초자연적 재앙이 아닌 귀신들이 등장한다. 그리고 그 앞자리를 차지한 것이 「장화홍련전」이다.
「장화홍련전」은 1920년대 한국영화가 시작된 이래, 일곱 차례나 영화로 만들어져 「춘향전」 다음으로 많이 만들어졌다. 「장화홍련전」이 이처럼 대중들에게 인기가 있었던 것은 왜일까? 그것은 「장화홍련전」이 한국적 귀신의 전형이라고 할 만하기 때문이다. 못된 계모의 박해와 죽음, 원한을 갚기 위해 원귀로 출현, 현명한 관리와의 만남, 계모의 처형, 인간 세상으로의 환생 등 귀신의 한풀이 과정이 두루 잘 나타나 있다.
아름다운 귀신이 등장하는 그림책 「장화홍련전」또한 「장화홍련전」에서 귀신은 직접적으로 사람들에게 해를 입히거나 계모에게 복수를 하지 않는다. 그럴 수 있는 능력이 없어서라기보다는 이승의 일은 이승의 사람을 통해 해결하려고 한다. 또한 복수를 했다고 이야기가 끝나지 않는다. 이승에서의 행복 역시, 다시 사람으로 태어난 장화, 홍련을 통해 못다 한 인생을 살게 함으로써 마침내 이루어지게 한다.
이처럼 「장화홍련전」을 잘 들여다보면 옛사람들의 구복관(求福觀)이나 초자연적인 존재, 그리고 죽음에 대한 생각들을 잘 엿볼 수 있다.
그림책에서 가장 주가 되는 것은 이미지이다. 「장화홍련전」을 그림책으로 만들 때, 그 출발점은 기존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나오는 ‘전설의 고향’ 식의 공포 이미지를 벗어나는 것이었다. 그림 작가와의 기획회의에서 우리는 아름다운 한국적 귀신이 등장하는 그림책을 만들어보자는 데 뜻을 같이했다. 한지에 동양화 물감을 써서 반복된 채색을 통해 색감의 깊이를 더한 것도 이것을 실현하기 위해 채택된 방법 중의 하나였다.
장화, 홍련 이야기의 현재적 의미「장화홍련전」은 많은 토론거리를 주는 이야기이다. 옛이야기에서 왜 계모는 나쁜 사람으로 그려지는가? 남자만 중요시 여기는 남존여비의 사상을 어떻게 볼 것인가? 배좌수는 왜 딸의 죽음에 동조하는가?
「장화홍련전」은 조선 효종(1649~1659)때 평안도 철산현에 일어난 실재 사건과 허구가 결합한 이른바 ‘팩션(faction)'이다. 전반부는 ‘계모형 가정소설’, 후반부는 관가에서 사건을 해결하는 ‘공안소설’ 내지는 ‘송사소설’의 모습을 갖추고 있다.
그런데 「장화홍련전」을 비롯, 「콩쥐팥쥐」 「신데렐라」 「헨젤과 그레텔」과 같은 많은 옛이야기들에서 계모는 왜 악녀로 그려질까? 「장화홍련전」은 17세까지 유지되었던 조선 시대 재산상속에 대한 제도를 현실적 배경으로 한다. 경국대전에 기록되어 있는 ‘균분상속제’는 상속에 있어 남자와 여자가 동등한 권리를 지녔는데, 이는 여성이 출가하더라도 보존되었다. 이것은 재산을 다 차지하기 위한 계모의 욕심이 장화, 홍련을 죽음에 이르게 했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런데 하나 석연찮은 것이 바로 장화, 홍련의 아비인 배좌수의 부분이다. 「장화홍련전」에서 배좌수는 아들을 낳아 대를 잇기 위해 후처를 들인 후, 딸의 죽음에 가담을 했는데도 처벌을 면한다. 심지어 장화, 홍련은 원님 앞에서 “아버지만은 살려 달라”고 간절하게 청을 한다. 결국 배좌수는 계모 허씨가 처형을 당한 뒤, 멀쩡하게 세 번째 결혼을 하고 행복한 삶을 누린다.
이러한 상황이 어떻게 가능할까? 여기에는 가부장권은 온전히 보존되어야 한다는 절대적인 의식이 지배하고 있었다. 가문의 명예를 위해 딸에게 죽음을 명하는 아비는 당연하고, 그런 상황을 만든 계모는 그 모든 죄를 뒤집어쓰게 된다. 가부장권 수호를 위한 ‘악녀 만들기’인 셈이다. 당시의 견고한 가부장권 수호이데올로기는 착한 두 딸을 죽게 만든 엄청난 사건에 대해 희생양이 필요했고 흉측한 계모에게 그 일을 떠넘겼던 것이다. 그럼으로써 배좌수를 중심으로 한 가부장권은 온전히 지켜질 수 있었던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