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리뷰
좋아하는 것을 이야기합니다저는 개고양이와 종일 뒹굴며 뽀뽀나 하는 방탕한 퇴폐주의를 지향합니다.
_11월 트위터, 메인 트윗
여기 자신을 스스로 트잉여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트위터든 페이스북이든 인스타그램이든 SNS의 기능은 거의 유사하다. 하지만 트위터는 조금 다른 결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때로는 유쾌하고 때로는 신랄한 말장난과 진심, 그 사이에서 끊임없이 좋아하는 어떤 것에 대해 언급하고 지지하고 교류한다. 이 책은 바로 그 트위터 세상에서부터 시작되었다.
‘11월’이라는 작가의 이름은 트위터에서 사용하는 닉네임이기도 하다. 트위터를 하기 전까지 고양이는 저자와 전혀 상관없는 존재였다. 그런데 트위터를 하면서 좋아하는 것을 스스럼없이 말하는 많은 이들을 만나게 되었다. 트위터 속에는 세상의 모든 풀과 꽃에 관해 이야기하고, 사랑스러운 강아지와 고양이의 사진을 올리고, 지금 이 순간의 즐거움에 대해 쉴 틈 없이 떠드는 사람들이 있었다.
어떤 일을 하는지보다 무엇을 좋아하는지가 더 중요한 곳. 그 트위터 세상이 아니었다면 저자는 ‘감자’라는 이름을 가진 사려 깊은 고양이를 만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여름밤의 도로 끝에서 작고 부스스한 고양이와 마주쳤어도 그저 길에서 사는 고양이려니 하고 인사 한마디 건네지 않은 채 헤어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트위터 세상을 통해 버려진 동물을 하나라도 더 구조하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알고 있었기에 작은 고양이에게 ‘안녕?’ 하고 말을 걸게 되었다.
그리고 저자 역시 트위터를 통해 말하기 시작했다. 가장 좋아하는 감자와 또 한 마리의 사랑스러운 고양이 ‘보리’에 대해. 이 책은 바로 이 두 고양이에 대한 더할 나위 없이 따듯한 기록물이다. 세상에는 수많은 고양이가 있고 서점에는 이미 많은 고양이 에세이가 있지만, 인간과 마찬가지로 모든 고양이는 그 나름의 생각과 매력이 있기에 좀 더 다양한 고양이 이야기가 넘쳐나는 데 작은 기여를 할 수 있길 바라며 세상에 내놓은 고백이다.
운명처럼 찾아온 작은 기적에 관한 이야기“불행한 삶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그것은 음악과 고양이이다.”
_알베르트 슈바이처
저자는 2013년 8월, 여름밤의 도로 끝에서 고양이 한 마리를 만났다. 병원에 데려다주면 누군가 알아서 보호자를 찾아 줄 것으로 생각했지만, 그건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렇게 어쩌다 보니, 납작한 얼굴을 한 작고 부스스한 고양이 감자와 같이 살게 되었다. 감자의 동생으로 입양한 보리까지 함께 조용하면서도 다사다난한 가족을 이루게 된 것은 조금 더 후의 일이다.
그런데 혹시 귀엽고 사랑스럽기만 한 고양이 에세이를 기대했다면, 이 책을 펼치는 순간 다소 실망할지도 모른다. 물론, 감자와 보리는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귀여움과 사랑스러움을 가지고 있지만 놀랍게도 이 이야기는 감자와 보리의 부드러운 털처럼 마냥 따듯하고 상냥하지만은 않다.
저자는 말한다. 누군가의 역사가 “그 사람의 책상 서랍 속 물건이나 커튼의 주름, 혹은 오래된 옷과 냉장고 문을 빼곡히 채운 자석, 뒤축이 닳은 구두 같은 것”이거나 “해마다 남긴 사진이라든가 무슨무슨 대회에 나가 받은 상장” 또는 “어느 한 시절을 함께한 이들과의 편지나 엽서 같은 흔적”이라면 “나에겐 역사라 부를 만한 것이 없다”고. 어린 나이에 결혼해 세 아이의 엄마가 되었고, 믿을 수 없는 폭력에 시달리다 겨우 벗어날 수 있었다. 이제는 까마득한 과거가 되었지만, 이후로도 시간이 흐르는 대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만이 할 수 있는 일의 전부였다.
저자는 불행이 너무 익숙해서 불행한지조차 몰랐던 그 시절에 감자를 만났다. 고양이를 키울 수 없는 형편이었지만, 아는 체를 해 오는 부스스한 고양이를 거리에 그냥 두고 오기엔 마음이 영 불편했다. 뜻하지 않게 작은 생명 하나를 구하게 되었다고만 생각했는데, 정작 구원을 받은 건 자신이었다. 감자를 거두고 돌보면서, 그리고 보리를 키우면서, 아무런 의심 없이 사랑을 주고받을 수 있는 관계가 가능하다는 걸 깨닫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이 책은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채로 살아가던 사람이 누구에게도 사랑받지 못한 채 버려진 고양이들을 만나 서로를 구원하고 진정한 사랑을 나누게 되는, 작은 기적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어둠이 깊을수록 더 빛나는 별처럼세상에서 가장 고요하고 따듯한 위로가 있다면
고양이라는 존재, 그 자체가 아닐까.
_본문 중에서
또한 이 책은 절망에 빠진 사람이 어떻게 살아남아 소소한 일상의 즐거움을 말할 수 있게 되었는지를 보여 주는 감동적인 생존기인 동시에,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순수한 사랑이 얼마나 위대한지를 보여 주는 증거물이기도 하다. 살아가는 것은 곧 상처를 안고 가야 하는 일이고, 누군가를 혹은 무언가를 열렬히 사랑한다는 것은 기쁨만큼이나 큰 슬픔이 함께하는 일이라는 걸 느껴 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담담한 고백에 큰 위안을 받게 될 것이다.
감자를 만난 저자의 삶이 한순간에 기적적으로 바뀐 것은 아니다. 그러나 조금씩 많은 것이 변했다. 안락한 집이 생겼고, 깊고 편하게 잠들 수 있는 밤이 찾아왔다. 즐거움을 느끼는 날이 늘었고, 세상의 모든 사랑스럽고 따듯한 단어의 진정한 의미를 비로소 알게 되었다. 행복을 말하고 느끼며 살아갈 수 있게 된 것이다.
저자는 “엉망진창인 채로 망가져 버린 내 인생에서 감자는 유일하게 온전히 반짝이는 작은 등불이었다”고 말한다. 어둠이 깊을수록 반짝이는 작은 불빛 하나가 더 위대하게 느껴지는 것처럼, 막막한 시절에 느닷없이 나타나 맹목적인 애정과 조용한 응원을 보내 준 고양이는 저자에게 용기이자 희망 그 자체였다. 어둠 속에서 길을 비추는 유일한 별이었다.
우리는 이 책을 통해 도무지 무뎌지지 않을 것 같은 단단한 슬픔이 조금씩 희석되는 순간과 만날 수 있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삶을 견뎌내고 있을 또 다른 누군가에게 어둠 속에서 빛나는 작은 불빛처럼 큰 위로로 남을 것이다.
차마 보호소로는 보낼 수 없어 데려왔으나 그것은 연민과 비슷한 그 무엇이었을 뿐 사랑이라 부를 만한 마음은 아니었다. 모든 것이 낯설고 어색한 가운데 그저 내가 좋아서 내 옆에 있고 싶어서 다가와 몸을 기대는 작은 고양이를 나는 자꾸만 자꾸만 밀어내고 피하기만 했는데, 그 고양이가 내 목을 꼭 끌어안았다. 마치 이 우주에 자신이 기댈 곳은 나 하나뿐이라는 듯.
그 순간 감자와 함께 집으로 돌아가는 것보다 중요한 일은 세상 어디에도 없을 것만 같았다.
행복이란 42.195킬로미터 마라톤의 결승 지점 같은 것이라고만 생각했다. 저기 무지개 너머 어딘가에서 반짝반짝 빛나고 있을 놀라운 어떤 순간일 것이라고. 그러나 감자를 만나고 알게 되었다. 행복은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니었다. 어느 날의 하늘이, 바람이, 나무가. 햇살 좋은 오후, 거실에 드리운 나뭇가지의 작은 그림자가. 그렇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하루하루가 행복이고 기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