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외나무다리에서 붙은 한판 싸움에 번득인 유쾌한 웃음
≪지름길≫은 외나무다리를 무대로 벌레 두 마리가 서로 제가 먼저 건너려고 싸우는 것이 주된 내용인 그림책이다. 문자적 표현은 지극히 절제한 채 배경도 과감히 생략하고 캐릭터 위주의 큼지막한 그림이 강렬한 색채와 함께 펼쳐진다. 우리 아이들이 문자의 세계를 벗어나 그림을 읽고 보는 재미가 큰 그림책을 만날 것이다.
갈 길이 바쁜 주인공 벌레가 지름길로 가는 외나무다리를 조심스레 건너고 있다. 그런데 웬 녀석이 마주 온다. 외나무다리라 비켜 줄 수도 없고, 뒤로 물러서야만 한다. 그런데 둘 다 물러설 생각은 조금도 없다. 둘은 말싸움 끝에 몸싸움까지 불사한다. 결과는 주인공이 밀려 떨어지는 줄 알았는데, 녀석은 외나무다리를 꽉 붙든 채 거꾸로 매달려 다리를 건넜다. 결국 둘 다 무사히 다리를 건너게 되었다는 것으로 이야기는 끝난다. 벌레들의 다리에는 특별한 털 같은 게 있어 평지는 물론 벽 같은 곳도 거침없이 기어오른다는 점에 착안한 작가의 유머가 드러나는 순간이다. 단조로운 이야기만 계속 밀어붙이는가 싶더니 결말에서 웃음 한판과 해피엔드를 끌어냈다.
≪지름길≫은 글에 있어 서두와 결말을 제외하면, 온통 언어의 리듬밖에 존재하지 않는 것 같다. 허둥지둥, 조심조심, 어, 너, 거기, 비켜, 낑낑, 툭탁툭탁, 에잇, 조용……. 이 짤막한 의태어와 의성어 같은 낱말만 나열해 놓았을 뿐인데도 뭔가 상황이 그려지는 것 같다. 말을 생기 있게 다룬 문장 때문에 장면이 떠오르고 이미지가 살아난다. 그래서 그림은 언어에서 받는 이미지를 되살리고 다시 문장 하나하나, 단어 하나하나에 귀를 기울이게 만든다. 자세한 배경은 과감히 생략한 채, 대담하면서도 굵게 단순화한 선이나 눈에 집히는 선명한 터치가 화면 가득 이미지를 증폭시키며 이야기를 더욱 생생하게 들려준다. 특히 외나무다리에서 몸싸움으로 치닫는 벌레들을 향해 좁혀 가는 클로즈업 구사는 치열한 장면 속으로 아이들의 감정까지 잡아당기는 힘이 있다.
무엇보다 ≪지름길≫에서 단연 눈에 띄는 것은 강렬한 색채다. 빨강 파랑 노랑 검정이 기본 색으로 주조를 이루며 화면에서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가령, 주인공 벌레를 둘러싼 배경은 푸른색이, 상대 벌레를 둘러싼 배경은 붉은색이 지배한다. 일반적으로 푸른색은 희망을 암시하는 색으로 앞으로 나아가는 전진을, 붉은색은 위험을 알리는 색으로 정지를 상징한다. 또한 벌레로 표현한 캐릭터는 몸집이 짤막하고 동글동글한 것이 걸음마를 뗀 아이의 동작과 비슷한 느낌을 준다. 어딘지 모르게 살짝 어색하고 둔한 것이 오히려 건강함과 귀여움으로 다가온다. 그러면서도 캐릭터에 안정감이 있고 이야기를 천천히 끌어가는 데 제 기능을 다 한다. 특히 서로 치고받으며 몸싸움을 할 때 얼굴 표정과 다리의 동작에 과장된 변화를 줌으로써 변화가 없는 공간이 지루하지 않게 상황으로 몰입시키는 효과가 있다.
녀석은 늦지 않으려고 허둥지둥 지름길로 간다. 조심조심 외나무다리를 건넌다. 그런데 웬 녀석이 떡 하니 마주 오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둘 다 물러설 생각은 요만큼도 없다. 급기야 둘은 티격태격 몸싸움을 벌인다. 그러다 그만 마주 오던 녀석한테 밀리고 마는데…….
작가 소개
저자 : 마이클 그레니엣
1955년 폴란드에서 태어났다.
1996년 <달님은 어떤 맛일까?>로 일본 그림책 상을 받았다.
그 동안 지은책에는 <누가 있는 걸까?> <어느 다리가 먼저야?> <왜 슬퍼?> 등이 있다.
역자 : 이선아
1967년 부산에서 태어나 부산대학교 예술대학 미술학과를 졸업한 뒤, 좋은 그림책을 소개하며 우리말로 옮기는 일을 시작했다.
현재 어린이책 전문기획실 \'햇살과 나무꾼\'에서 일본어 번역팀장으로 일하고 있으며, 지금까지 <꼬물꼬물 변신> <크림, 너라면 할 수 있어> 등 수많은 그림책을 우리말로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