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1992년 《창비》 봄호로 등단한 이후 줄곧 농사꾼이라는 시인의 삶을 질박한 시어로 녹여내고 있는 박형진의 여섯 번째 시집 『시의 부엌』이 나왔다. 박형진은 자신의 모든 것인 농촌과 고향의 소멸을 누대에 걸쳐 살아가는 ‘농부 시인’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이번 시집도 자연과 삶의 순환을 유장하게 그려내거나 삶의 밥심이 뜨거운 숨결로 차오로는 농촌의 진풍경을 담백하게 그려내며 외로움과 쓸쓸함을 아우르는 서정을 버무려냈다.
출판사 리뷰
1992년 《창비》 봄호로 등단한 이후 줄곧 농사꾼이라는 시인의 삶을 질박한 시어로 녹여내고 있는 박형진의 여섯 번째 시집 『시의 부엌』이 나왔다.
박형진은 자신의 모든 것인 농촌과 고향의 소멸을 누대에 걸쳐 살아가는 ‘농부 시인’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이번 시집도 자연과 삶의 순환을 유장하게 그려내거나 삶의 밥심이 뜨거운 숨결로 차오로는 농촌의 진풍경을 담백하게 그려내며 외로움과 쓸쓸함을 아우르는 서정을 버무려냈다.
“이 산골 나지막한 오두막/가느다란 연기 한줄기가/높고 쓸쓸한 것들의 위로가 되랴/차라리 언 땅에 낮게 더 낮게 깔려서/한 목청으로 여기저기 재채기를 해대면/조여 오는 새벽냉기는 풀어지겠지/어린나무 꽃눈들 잠이 깨겠지”(「집을 깨우다」 부분)
시인은 먼동에 샛별이 뜰 무렵 아궁이에 불을 지펴 잠든 집을 깨우며 “그것이 저 먼 길 날아가는/기러기의 좌표쯤이나 되었으면”하고 원해보다가 조여 오는 새벽 냉기나 풀었으면 좋겠다고 얼른 소망의 날개를 사람들 가까운 곳으로 데려온다. 그러면서 “어린나무 꽃눈들 잠이 깨겠지”로 마무리 한다. 박형진의 시가 피어나는 가장 간절한 순간이라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시선은 “실낱같이 피어오르는/봄 향기 한 점이 안타”까워 “식은 찻잔에 물을 붓고/또 한잔을”(「봄으로 가는 구멍 하나」) 내리는 구절을 통해서도 잘 드러난다. 또한 눈 내리는 추운 날 바느질을 하며 “놀랍게도 바늘은/도끼질 몇 십 년에 닳고 닳아서 된 것이라” “도끼질과 바느질은 같은 것”(「바느질」)이라는 상상의 감각을 펼치기도 한다. 이처럼 눈에 묻힌 겨울의 시간을 견디며 생명을 틔워내는 봄을 그리거나 사유를 확장하는 서정들이 시집 전편에 녹아 있다.
발문을 쓴 김영춘 시인은 “박형진의 시가 외로움이라는 가난과 결핍에서 돋아나고 피어나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면서 “외로움에서 돋아난 시의 이파리들이 어느새 생명의 이파리로 피어나 나부끼고 있다”고 말했다.
표사를 쓴 김용택 시인은 “박형진의 시를 읽어 가노라면 우리들의 도회적 세련과 세계를 누비는 명품(?)들이 무엇인가를 빼먹은 말이라고 경고하기도 한다. 모항 바닷가 작은 오두막 ‘시의 집 한 채’는, 그 존재가 막강한 아름다움이다.”이라고 말했다.
복숭아나무 가지에
우편함을 걸어놨습니다
꽃봉오리 부풀 때
괜히 마음도 부풀었습니다
그러고 말았지요
사는 일이라는 게
언제나 매일반이라고
꽃이야 무심한 듯 피고 지는데
제멋대로 피고 지는데
재채기 한번 크게 했습니다
봄이 움찔합니다
- 「꽃가루 비염」 전문
정지 방 아궁이에 불을 지핀다
먼동에 샛별이 뜰 무렵
잠든 집을 깨우려는 것이다
아니 집은 이미 첫닭울이에 깨서
어수선한 꿈으로 뒤척이는
나를 바라보고 있었을 것이다
박형진 시집_ 시의 부엌
일어나 뒤늦은 도량석을 하고
무슨 성스런 의식인양 불을 댕기면
집은 기다렸다는 듯 코를 벌름거리며
찬 하늘에 연기를 뿜어낸다
그것이 저 먼 길 날아가는
기러기의 좌표쯤이나 되었으면
그러나 이 산골 나지막한 오두막
가느다란 연기 한줄기가
높고 쓸쓸한 것들의 위로가 되랴
차라리 언 땅에 낮게 더 낮게 깔려서
한 목청으로 여기저기 재채기를 해대면
조여 오는 새벽냉기는 풀어지겠지
어린나무 꽃눈들 잠이 깨겠지
- 「집을 깨우다」 전문
바늘을 잡고 앉으면
마음이 편해진다
나무를 패느라
조금 전까지 도끼를 잡은 손
도끼질과 바느질은 같은 것이다
놀랍게도 바늘은
도끼질 몇십 년에 닳고 닳아서 된 것이라
박형진 시집_ 시의 부엌
무겁기 그지없다
자칫 살을 찌를라 신경을 곤두세우고
내리치면 갈라지는 이 추운 날의 흔적들
한 땀씩 꿰매노라면
어느새 마음이 따뜻해진다
모처럼 바늘을 잡은 김에
첫눈이 내리는 날 만나자던 약속을 흥얼거리고
고개 들어 슬쩍 먼 산을 건너다보면
한 손에 걸레 잡고 한 손에 행주 쥐고
방과 부엌을 오가며 살림하느라
종일 고단했을 마누라
약속을 지키지 않고 잠이 들었다
그도 한쪽 터진 삶이 숨겨져 있지
창밖엔 어느덧 눈이 오는데
이불을 덧대 기워주고 싶다
- 「바느질」 전문
작가 소개
지은이 : 박형진
1958년 전북 부안군 변산에서 10남매의 막내로 태어났다. 1984년에 결혼해서 딸 셋 아들 하나를 생산하는 자식 농사와 유기 농사를 지었는데 땅에 대고 절하다 보니 어찌어찌 시를 쓰게 되었다. 1992년에 《창비》 봄호로 등단하고 2년 후에 첫 시집 『바구니 속 감자 싹은 시들어 가고』를 시작으로 『다시 들판에서』 『콩밭에서』 『밥값도 못하면서 무슨 짓이람』 『내 왼쪽 가슴속의 밭』등을 냈다. 1996년에는 산문집 『변산 바다 쭈꾸미 통신』을 냈고 그 후 『모항 막걸리집 안주는 사람 씹는 맛이제』 『농사짓는 시인 박형진의 연장 부리던 이야기』를 냈다. 그 사이 청소년 소설 『갯마을 하진이』와 유아 교육 도서 『벌레 먹은 상추가 최고야』를 내게 되었다.
목차
제1부
달력을 보며/ 집을 깨우다/ 시의 부엌/ 바느질/ 당산 할매/ 정상 가동/ 대보름/ 겨울 빨래/ 궁민의 힘/ 저녁에서 아침 사이/ 다시 봄/ 접接/ 그 사월/ 투표소에서/ 어떤 양곡관리법 개정(안)/ 진달래
제2부
젓 누름돌/ 나는 낡은 것이 좋다/ 착시/ 옛길/ 아이스크림을 사는 이유 / 옮겨가다 / 순치/ 되묻다/ 연습/ 첫추위/ 빙점/ 봄으로 가는 구멍 하나/ 다짐/ 밥심/ 회상
제3부
결기/ 육자배기/ 귀가/ 채송화 예보/ 노래/ 참깨 / 손님/ 때왈/ 문턱 각시/ 아주 오래된 경운기/ 휴식/ 흘러간다/ 한 생애라는 것이/ 이름/ 무의 계보/ 순환
제4부
꽃가루 비염/ 월하月下/ 꽃은 무엇으로 피는가/ 내 안의 멀구슬나무/ 산딸 꽃/ 청춘/ 이런 사랑
/ 구월/ 선유仙遊/ 언저리에서 사무치다/ 새벽(에/ 망중한/ 마루에서 생각하다/ 메밀밭 이야기/ 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