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한국문학의 미래로 주목받은 청예의 첫 중편소설 『반 고흐의 마지막 획』이 출간되었다. SF, 스릴러, 로맨스를 넘나들며 서사의 외연을 확장해 온 작가는 이번 작품에서 19세기 유럽과 21세기 한국을 교차시키며 예술과 인간의 내면을 집요하게 응시한다.
고흐와 고갱을 닮은 두 인물 ‘반공후’와 ‘옹고경’의 관계를 중심으로, 사랑과 동경, 열등감과 증오가 뒤엉킨 예술가의 삶을 그려낸다. 오랜 친구이자 라이벌, 용의자와 피해자라는 복합적 관계 속에서 두 인물은 서로를 비추고 비틀며, 욕망이 타자를 필요로 하면서도 동시에 소거하려는 모순을 드러낸다.
살인 사건을 기점으로 전개되는 서사는 예술과 삶, 성공과 실패의 경계를 흔들며 독자에게 질문을 던진다. 예술은 헌신인가 파괴인가, 사랑은 연대인가 소모인가라는 물음 속에서, 끝내 남는 선택과 감정의 흔적을 깊은 여운으로 남기는 작품이다.
출판사 리뷰
격렬했던 사랑만큼 서로를 증오하게 된 두 화가의 비극
예술가의 고독은 헌신인가 혹은 자신을 살라 먹는 독인가
“그리면 기억하게 됐다.
기억하면 원하게 될 줄을 알면서.”
“한국문학의 미래”로 선정된 청예의 첫 중편소설 『반 고흐의 마지막 획』이 ‘림’의 중편소설 시리즈 〈사이림(s a i l I m)〉으로 출간되었다. 한 사람으로부터 파생되는 삶의 균열과 사건 이후에도 멈추지 않는 시간, 감정의 궤적을 포착하려는 〈사이림〉과 청예가 만나, 한 인간의 내면과 예술 그리고 그 이후를 집요하게 응시하는 하나의 세계를 선보인다. SF, 오컬트 스릴러, 로맨스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서사의 외연을 확장해 온 청예는 이번 작품에서 19세기 유럽과 21세기 한국을 교차시키며, 믿기 어려운 진술과 허무하면서도 아름다운 과거를 정교하게 교직한다.
마치 빈센트 반 고흐가 환생한 듯한 ‘반공후’와 폴 고갱이 환생한 듯한 ‘옹고경’은 오랜 친구이자 라이벌, 용의자와 피해자라는 다층적 관계 속에서 하나의 관계로는 환원될 수 없는 긴장감을 형성한다. 한때 같은 빛을 응시했으나 끝내 서로 다른 어둠에 가닿은 두 화가, 고흐와 고갱을 닮은 두 인물은 서로를 비추고 비틀며 예술과 예술가의 관계를 은유적으로 드러낸다. 예술가로서의 동행을 넘어 존재론적 균열을 발생시키는 이 둘의 이야기를 통해, 욕망은 타자를 필요로 하면서도 동시에 소거하려는 모순 위에서 작동하고, 그 필연적 귀결로서 파열은 불가피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내 외로움으로는 오직 나만을 원망했어야 했다”는 공후의 마지막 말은, 세속적 가치와 주변의 모든 것을 떠나보내고 끝내 예술만을 끌어안은 선택의 그림자와 겹쳐진다. 되돌릴 수 없는 균열을 거슬러 올라가는 서사의 끝에서, 슬픔을 품은 젊은 화가의 마지막 선택은 독자의 마음에 오래도록 지워지지 않을 하나의 획을 남긴다.
같은 빛에서 갈라진 두 개의 예술
서로를 비추며 끝내 소진하는 관계의 역학
『반 고흐의 마지막 획』은 촉망받던 젊은 화가의 살인 사건을 기점으로, 그 용의자로 지목된 ‘공후’의 진술과 기억을 교차시키며 막을 올린다. 애증으로 얽힌 두 여자의 관계는 타인들의 개입으로 인해 엉클어지고, 끝내 예술을 대하는 태도의 대립으로 확장된다. 예술을 삶 그 자체로 받아들이는 공후와 달리, ‘고경’은 그것을 현실을 위한 수단으로 여기며 자신의 야망을 숨기지 않는다. 각자의 방식으로 성공과 실패를 통과해 가는 동안, 관계는 사랑과 열등감, 동경과 증오가 복잡하게 얽힌 채 서서히 파국으로 치닫는다. 타인을 통해 자신을 완성하려는 욕망이 필연적으로 타인을 훼손하는 방식으로만 가능하다면, 이들의 양상은 과연 공존이었는가, 아니면 서로를 소진시키는 또 하나의 투쟁이었는가. 끝내 단정될 수 없는 진실은 독자의 인식을 끊임없이 흔들고, 피해자와 가해자의 경계가 뒤섞이는 서사는 예술과 예술가의 본질에 대한 불편한 사유를 요청한다.
“외로움을 양분 삼아 자라는 것이 예술이라면,
그 총체는 고통일 수밖에 없었다.”
청예는 〈소설, 쓰다〉에서 오랫동안 고흐를 부러워했음을 고백하지만, 동시에 “외로움은 보이지 않는 죄수복”이기에 아무리 찬란하게 포장하더라도 비극적이라는 사실을 되새긴다. 예술을 향한 동경은 타자를 향해 뻗어나가는 충동인 동시에, 그 끝에서 자신의 심연과 대면하려는 욕망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스스로를 살리기 위해 혹은 붕괴되지 않기 위해”(김도희 현대미술가 추천사) 반 고흐라는 환상을 뒤집어쓰고 연인도, 친구도, 가족도 밀어낸 공후의 삶은 예술과 행복을 두고 전자를 선택한 결과가 너무나 가혹하다는 것을 상기시킨다.
『반 고흐의 마지막 획』은 서사의 중심에 놓인 사건의 미스터리를 드러내는 데 머무르지 않고, 그 이면에 잠복한 질문들을 집요하게 환기한다. 예술가가 취해야 할 ‘진정한’ 태도란 무엇인가, 끝내 타협하지 않는 순수인가 아니면 세계와의 접속을 가능하게 하는 전략인가. 인정받지 못한 재능은 여전히 재능으로 존재할 수 있는가, 혹은 타인의 시선 속에서만 비로소 성립하는 것인가. 나아가 사랑은 서로를 완성하는 연대의 형식인가, 아니면 서로를 잠식하며 파괴로 이끄는 또 다른 욕망의 이름인가.
이 작품은 어떤 해답을 제시하기보다, 우리가 믿어온 가치와 선택의 근거를 되묻게 만든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위해 창작하고, 누구를 통해 스스로를 증명하며, 끝내 무엇을 붙들고 남아야 할까? 그리고 그 선택은 과연 우리 자신의 것이라 말할 수 있을까? 이 물음들이 독자의 깊은 곳에 닿아 오랜 울림으로 남기를 바란다. 언젠가 이 글이 스스로를, 누군가를 외로움에서 구원해 주리라 믿으며.
나는 전생의 사인이 타살임을 알리고, 쓰레기 같은 폴 고갱의 죄악을 널리 알려 그 타락한 명예를 실추시키고자 다시 태어났어요. 옹고경은 두려웠겠지요. 내가, 반 고흐가 환생한 이 반공후가! 전생의 죄를 모두 폭로하고 자기를 거장의 반열에서 쫓아낼까 봐요.
부쩍 서늘해진 대기가 뻣뻣해진 몸을 얇게 감았다. 서글픈 자화상을 숨기려는 가을이었지만, 늘 촉각으로 그 기척을 들켜 버린다.
사람이 죽어도 누군가는 자기 몫의 내일을 기대한다.
작가 소개
지은이 : 청예
2021년 「웬즈데이 유스리치 클럽」으로 교보문고 스토리 공모전 단편 우수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장편소설 『일억 번째 여름』 『낭만 사랑니』 『오렌지와 빵칼』 『라스트 젤리 샷』 등을 펴냈다. 한국과학문학상 장편 대상, K-스토리 공모전 드라마 및 SF 부문 최우수상, 컴투스 글로벌 콘텐츠문학상 우수상을 수상했다. 2024년, 2025년 예스24가 한국문학의 미래로 꼽은 ‘젊은 작가’로 선정되었다.
목차
반 고흐의 마지막 획
소설, 쓰다 ― 수련과 붉은 지붕으로 이뤄진 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