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한국전쟁의 판도가 뒤바뀌던 그날 밤, 나는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부산으로 향하는 마지막 열차의 지붕에 올라탔다. 군인, 병자 그리고 부상자로 가득 찬 피난 열차에 뼈를 파고드는 바람이 몰아쳤다. 피난 열차는 기적 소리를 내며 밤새 이동했다. 그날 밤 모든 사람이 나처럼 운이 좋지는 못했다. 어린아이 몇 명이 밤사이 사고로 떨어져 죽었다. 긴 여행 내내 내 허리에 묶인 밧줄을 움켜쥐고 나를 지켜준 어머니가 아니었다면 나도 그들 중 하나가 될 수 있었다. 어머니는 내가 조는 모습을 볼 때마다 꼬집어 깨웠다. 북한에서 태어난 아이가 고향을 떠나와 미국의 이민자로 살아가게 되기까지는 우여곡절이 참 많았다. 먼저 어수선한 부산에서 빠져나와 작은 어선을 타고 일본으로 향했다. 우리는 한국전쟁 발발 직후 뉴욕에서 도쿄로 돌아온 아버지를 그곳에서 재회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랐다. 스물네 시간의 항해 끝에 도착한 직후, 우리는 불법 입국 혐의로 체포되었다. 감옥, 수용소, 병원에서 두 달을 보낸 후에야 보석으로 풀려나 아버지와 재회할 수 있었다.근대화를 위해 국가가 나선 일본과 달리, 조선의 지배층은 구태를 버리지 못한 채 일본에 나라를 넘겨주고 말았다. 결국 명환은 조국을 위한 자신의 임무를 수행하기로 했다. 그의 준비는 아주 조용히 진행되었다. 1910년 가을, 할아버지는 눈물을 흘리는 어머니와 아내를 고향에 남겨두고 만주를 향해 길을 나섰다.〈1. 나라의 상실(1900~1910)〉 중에서
고종이 조선의 독립을 호소하기 위해 사절단을 파리 강화회담에 보내려는 계획을 일본 관료들이 저지하며 그 노력은 끝이 났다. 그들은 고종을 막을 유일한 방법은 황후처럼 죽음에 처하게 하는 것뿐이라 결정했다.… 살인이라는 말이 국내 전역과 해외 한인 사회에 퍼져나갔다. 독립운동가들의 은밀한 활동이 준비되었고, 전 세계의 이목을 끌기 위해 고종의 장례 행렬날인 1919년 3월 3일을 택했다.… 이후 몇 주 동안 자발적인 시위가 전국으로 확산했다. 군중들은 태극기를 흔들고 “만세!”를 외치며 행진했다. 일제는 무자비하게 평화시위를 진압했다. 3.1운동으로 알려지게 된 이 시위에 일제는 민족주의의 잔재를 모두 뿌리 뽑겠다는 결의를 보여주었다. 수천 명이 살해되고, 체포되고, 투옥되고, 고문당했다. 3.1운동으로 7,645명이 목숨을 잃고, 45,562명이 다쳤다. 일제는 약 1,000개의 교회, 학교, 집들을 불태웠다. 서울에서 남쪽으로 35킬로미터쯤 떨어진 수원 근처의 한 마을에서는 일본군이 중요한 발표가 있다며 모든 사람을 교회 안으로 모이게 했다. 그러고는 교회에 불을 지르고 탈출하려는 사람들을 향해 총을 쏘아 사살했다.〈2. 항쟁〉 중에서
이번에는 우리 가족도 떠나야 했다. 중국과의 전쟁은 북한과의 경우와는 달랐다. 그래서 공산군이 7개월도 안 돼 두 번째로 서울을 점령했던 1월 초 마침내 우리는 출발을 결정했다. 어머니와 할머니는 서울의 몰락, 어쩌면 남한의 몰락이 점점 더 불가피해지고 있다고 느꼈다. 불과 두 달 만에 귀향의 꿈과 희망은 물거품이 되었다.… 우리 가족은 두 번째로 모든 것을 잃었지만, 다행히 살아남았다. 많은 사람이 운이 좋지는 않았다. 가진 건 사라졌지만, 불굴의 한국인 정신은 가족들 사이에 온전히 남았다. 1953년 7월 27일 협정이 체결될 당시 나는 한국에 있지 않았다. 체결 8개월 전 아홉 살이 된 나와 어머니는 다시 한번 새로운 곳으로 이동하여 우리의 삶을 다시 시작하려고 했다. 부산으로 가는 기차 지붕에서의 여행처럼 그것은 모험이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한국을 떠나 일본으로 가는 것이었다.〈5. 한국전쟁(1950~1953)〉 중에서
작가 소개
지은이 : 강견실
1942년 11월 11일 함경남도 단천에서 출생1946년 가족 월남1952년 가족이 일본으로 이주1961년 미국 유학1963년 University of Missouri 졸업1964년 Northwestern University 졸업 한인 최초 여성 기자 (San Francisco Chronicle/San Francisco Examiner)1975년 가족이 미국으로 이민1982년 Korean American Journalist Association 공동 설립1992년 한인 최초 북미 3대 일간지 기자 (LA Times Staff Writer)1995년 영문 자서전 Home Was the Land of Morning Calm: A Saga of a Korean-American Family 출간1996년 Home Was the Land of Morning Calm 일본어 번역판 출간1997년 Asian American Journalist Association Lifetime Achievement Award 수상2017년 Fuller Theological Seminary 졸업2018년 금문교회 부목사2019년 8월 16일 암 투병 중 LA 자택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음 (76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