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깊고 단단한 문장을 건네는 작가, 임솔아의 첫번째 산문집이 문지에크리 열번째 책으로 출간되었다. 첫 산문을 기대하는 독자들의 기다림에 부응하듯, 『다시, 뒷면에게』에는 저자가 아주 오랫동안 응시하고 차분히 매만진 글들로 가득하다. 제목의 표현처럼, 책에는 “뒷모습을 보려면 제가 보던 시선의 정반대 방향으로 가야만” 함을 아는 자의 태도가, 지나간 기억을 가만히 쓸어주는 손길이 녹아 있다.뒷모습에 대해 말하기 위해서는 자연히 한 시절을 공유한 가족들과의 일상, 유년시절의 기억에서 시작될 수밖에 없다. 어린 시절 텅 빈 운동장에 혼자 남겨졌을 때의 막막함, 세상을 떠난 사람의 결코 잊히지 않는 눈동자, 아픈 강아지의 마지막 발걸음, “아무도 돌보지 않은 것들. 아름답지도 않은 것들. 끝까지 혼자인 것들”의 뒷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는 일이 “내가 기다려온 무언가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고백한다.저자는 한 인터뷰에서 “어느 날 소설을 쓰다가 그 인물에게 뒷모습이 없다는 걸 알았어요”라고 밝힌 적이 있다. 이 말을 열쇠 말 삼아본다면, 이번 산문에서 뒷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는 일화들은 아직 씌어지지 않은 면을 상상하고 그려내는 작가로서의 태도에 가까울지도 모르겠다. 그런 의미에서 『다시, 뒷면에게』는 한 인물이나 사물의 뒷모습까지 놓치지 않고 응시하며, 문학이 다가갈 수 있는 깊이와 섬세함에 대해 고민하는 일종의 문학론, 작가론으로 읽어볼 수도 있을 것이다.오르골 안에는 색소폰을 든 피에로와 공 위에 서서 묘기를 부리는 개가 있었다. 태엽을 돌리면 오르골 속 세상이 돌아가고, 음악이 나왔다. 내가 감은 태엽을 직선으로 펼친다면 개는 공을 굴리며 어디로 걸어갈까. 운동장에서 원을 그리며 돌았던 그 걸음들을 직선으로 펼쳐본다면 어디까지 나아가게 될까. 지구가 태양 주변을 돌며 지나왔던 시간들을 직선으로 펼쳐본다면 우주의 끝까지도 도달할 수 있을까. 오르골을 보고 있으면 감춰놓은 외부를 보는 것 같다. 오르골의 태엽을 자주 감아준다. (「프롤로그」)
할머니의 영정 앞에서 나는 눈물이 나지 않았다. 나는 할머니를 사랑하지 않았다. 할머니도 나를 사랑하지 않았다. 사실이었다. 사실인 채로 끝나버린 사실이다. 끝나버린다는 것은 영원히 그 자리에 그대로 남아 있게 된다는 것이다. 할머니와 나는 감정에 너무 솔직했다. 진심을 함부로 배설하는 태도가 우리의 가능성을 차단했다. 할머니와 내가 조금만 노력했더라면, 사실 바깥으로 손을 뻗으려 애썼더라면, 그랬더라면, 더 좋았을 텐데. (「첩의 손녀」)
함께 일한 요리사들과 다른 아르바이트생이 아니라 나에게 전화를 건 이유가 있다고 했다. “너랑 나랑은 대화를 많이 했잖니.” 나는 또 이모의 말투대로 “우리가 뭘 그렇게 대화를 많이 했느냐”며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같은 책을 읽었잖아. 그게 대화한 거지.” (「열아홉살 때 나는 다이미(大味)라는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작가 소개
지은이 : 임솔아
소설가·시인. 2013년 ‘중앙신인문학상’(시 부문)과 2015년 『문학동네』 대학소설상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눈과 사람과 눈사람』 『아무것도 아니라고 잘라 말하기』, 중편소설 『짐승처럼』, 장편소설 『최선의 삶』 『나는 지금도 거기 있어』, 시집 『괴괴한 날씨와 착한 사람들』 『겟패킹』 등을 펴냈다. 신동엽문학상·문지문학상·젊은작가상 등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