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리뷰
디지털 시대, 문학의 본질을 다시 생각하다문학의 의미를 거론할 때면 약간의 냉소와 회의가 드러나고, 그런 분위기는 오히려 문학의 고유한 아우라처럼 여겨지는 시대에, 우리가 여전히 문학을 읽고 써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에 대한 답을 찾자면, 다시 두 가지 질문을 던져보게 된다. 문학은 돈이 되는가, 문학은 무슨 쓸모가 있는가.
프랑스의 대표적 지성인 앙투안 콩파뇽이 문학의 공급자이자 이용자로서의 오랜 경험을 바탕으로 이 새롭지 않은 질문에 매우 시의적절한 답을 제시한다. 미국(컬럼비아 대학교)과 프랑스(소르본 대학, 콜레주 드 프랑스 등)에서 오랫동안 문학을 가르치며 수십 권의 연구서를 출간했고 그 공로를 인정받아 아카데미 프랑세즈 회원으로 선출된 대학자이며 프랑스에서는 대중적으로도 성공한 유명 작가이니, 이 시대 문학의 쓸모를 논증하기에 더없는 적임자인 듯하다.
이 책에서 콩파뇽은 “문학, 왜 하는가?”가 아니라, “문학, 왜 해야 하는가?”라는 물음을 던진다. 그가 강조하는 키워드는 ‘문학적 소양’이다. 문학적 소양을 쌓으면 남들보다 ‘경쟁 우위’에 설 수 있고, 더 잘 성장하고, 인생에서 더 크게 성공할 수 있는가? 그는 그렇다고 믿는다.
문학이 돈이 되는가? 이 책의 원제인 “La litterature, ca paye!”가 시사하듯, 콩파뇽은 문학의 쓸모를 수익성의 관점에서 살펴보겠다고 밝히며, 《악의 꽃》의 저자 보들레르의 얘기로 책을 시작한다. 생전에 작가는 신문 편집자들에게 작품 게재를 간청하고 어머니에게 수시로 도움을 요청하며 저주받은 예술가의 삶을 궁핍 속에서 근근이 이어갔다. 하지만 이미 1846년 스물다섯 살에 그는 이렇게 썼다. “시는 수익성이 가장 높은 예술이지만, 이 투자는 늦게 수익을 올린다.” 그의 사후 50년이 지나 그의 시집은 베스트셀러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세대를 이어가는 고전이 되었으니, 그가 평생을 문학에 투자하기로 한 것은 오판이 아니었다. 하지만, 문제는 그것이 너무 늦게 돈이 되었다는 점이다.
속도, 생산성, 수익률의 관점으로 보면, 모든 면에서 느릴 수밖에 없는 문학은 이 시대와 화합하기 어렵다. 하지만, 그래서도, 문학은 돈이 안 된다는 불신이 팽배한 ‘현대 세계’에서, 문학이 어떻게 작가와 독자 모두에게 수익을 제공해 주는지, 그 계산을 좀 다른 기준으로 해보자는 게 콩파뇽의 제안이다.
모든 분야에서 필요로 하는 ‘문학적 소양’의 가치콩파뇽은 문학을 제외한 모든 영역이 ‘문학적 소양’을 중시하고 문학을 자신들의 분야에 최대한 활용하길 원한다고 본다. 책이 잘 팔리고 당장 수익이 돌아오는 건 작가와 독자 모두가 바라는 일이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문학은 오히려 어디에나 편재하고 있으니, 지금 문학은 새로운 르네상스를 맞고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경제학, 사회학에서도 이론의 짜임새를 문학적 수사로 잘 다듬은 이론들이 더 잘 살아남는다. ‘꿀벌의 우화’, ‘블랙 스완’, ‘마태효과’ 등이 그 예다. 의학 분야에서는 질병 이야기에 서사적 역량을 더한 ‘서사 의학’이 점점 더 비인간적으로 변해가는 의료계의 한구석을 적극적으로 파고들고 있다. 예술도 마찬가지다. 모든 분야에 스토리가 더해져야 근사해지고 성공 확률이 높아진다. 책을 안 읽는 정치인, 문학적 수사를 제때 활용하지 못 하는 정치인은 국민으로부터 신뢰를 얻지 못하고 심지어 조롱의 대상이 된다. 법과 문학은 이미 오래전부터 서로 매우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지 않은가.
그러니, 많은 분야가 문학적 소양을 점점 더 필요로 하는 이때, 콩파뇽은 문학인들 스스로도 문학에 대한 의심과 미래에 대한 불안에서 벗어나 문학의 힘과 유용성을 시대에 걸맞게 재인식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절대적으로 시간을 써야 하는 ‘독서’의 생산력콩파뇽이 문학의 쓸모를 분석하며 특히 비중을 두는 문제는 독서의 생산성 향상이다. 독서에는 많은 시간이 들고 글쓰기는 더욱 그러한데, 우리는 점점 더 시간을 절약하려 하고 생산성을 개선하는 것을 중요시한다. 그러니 속성상 느리고 가성비가 낮은 문학은 그 자체로 타 분야보다 경쟁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는 “우리가 작가에게서 기대할 수 있는 유일한 생산성 향상은 책을 덜 읽는 것, 즉 독서를 줄여 시간을 버는 것인데, 작가는 본질상 독자이며 작가를 만드는 것 또한 독서이니, 이 분야에서 눈에 띄는 개선책을 찾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전제하면서도, 문학에서도 생산성이 개선되고 있음을 다양한 사례를 통해 제시한다. 오디오북 시장이 놀라운 속도로 커졌고, ‘공유 독서’의 방식이 유행처럼 퍼지고 있으며, 신경과학 분야에서의 인지 능력 개선 연구들이 가시적인 결과를 도출해내고 있음이 그 예다. 그러면서도 종이책의 독서에서 생산성을 개선하려는 욕심은 자칫 오독을 초래할 수 있음을 염려하며, 제대로 읽는 것의 중요성을 간과하지 말 것을 당부한다.
작가에게도 독자에게도 독서는 많은 시간을 투자할 수밖에 없는 대체 불가능한 주제인 만큼, 독서의 효율을 높이기 위한 여러 방식은 ‘바쁜 사람들’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의 시간을 효율적으로 쓰는 데 상당한 도움이 될 거라는 얘기다.
모든 교과 과정에서 필수과목으로 재배치해야 할 ‘문학’사회와 학교 교육에서 문학이 점차 자리를 잃어가고 있는 현실, 즉 학생들은 취업을 우선 고려하자니 실용적 기술을 선호하게 되고, 문학은 선택과목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는 건 한국, 미국, 프랑스 할 것 없이 비슷한 상황인 듯하다. 저자는 오늘날 중등 및 고등 교육과정에서 문학 수업이 어느 정도까지 천덕꾸러기 신세로 전락했는지, 취업을 위한 목적이 우선시된 전문/대학의 학사 시스템에서 문학이 얼마나 저평가되고 있는지를 예시하기 위해 매우 구체적으로 미국과 프랑스의 사례들을 언급한다.
그로부터 도출하는 결론은 이렇다. 모든 분야가 문학적 소양을 중요시하는 게 확실하니, 학교와 사회는 ‘문학’을 더이상 문학 학부라는 울타리 안에 가두지 말고 모든 교과 과정의 필수과목으로 재배치해야 한다는 것. 비판적 사고를 길러주고,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를 제공하며, 다양한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게 해준다는 점에서 문학만큼 시대를 초월해 그 가치를 발하는 영역은 없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 고유한 가치만으로도, 문학은 모두가 필수과목으로 배워 갖춰야 할 소양이고, 문학적 역량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교육을 통해 훈련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문학, 왜 해야 하는가?이 책에는 문학이 처한 현 상황에 대한 냉철한 관찰과 분석이 있고, 문학 교육의 올바른 방향에 대한 깊은 성찰이 있으며, 문학과 독서의 밝은 미래를 내다보는 낙관도 있다. 콩파뇽은 문학의 쓸모는 여전히 강력하니, 모든 사람의 삶과 교육에서 문학의 자리를 잘 유지하고 강화하는 것이 다른 무엇보다 시급하다고 역설한다. 문학과 독서, 둘의 응집체인 문학적 소양은 기다릴 줄 아는 사람들에게 늘 보상을 안겨주기에, “그것은 이득을 늦게 보는, 하지만 아주 큰 이득을 보게 해주는 투자다”라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문학은 돈이 된다!”라는 슬로건에 담긴 저자의 메시지는 단순한 상업적 성공이 아닌, 문학이 개인과 사회에 장기적으로 미치는 영향력을 강조하는 것일 테다.
이렇듯, 문학은 디지털 시대에 더욱 절실한 지적 도구라는 걸 인식하는 것만으로도, 우리가 문학을 왜 해야 하는지는 명확해진다. 이 책 전체를 감싸고 있는 문학과 독서의 미래에 대한 콩파뇽의 낙관이 문학을 삶의 일부로 여기는 독자들에게 매우 든든한 힘을 전해줄 것이다.

그래서? 문학은 쓸모가 있는가, 없는가? 뭔가에, 길을 건너가는 데, 인생을 가로지르는 데 도움이 되는 책이 있고,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책이 있는 건가? 무용한 책, 아무 쓸모도 없는 책을 대표하는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같은?
문학은 타자성을 인식하는 수단이자, 여기 이 세상, 이 세계, 하루하루의 평범한 삶, 그 진부함, 그 비루함을 인식하는 수단으로, 잘난 체하는 독아론이나 상아탑의 엘리트주의, 예술의 신비주의와 대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