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리뷰
“일하지 않는 자들의 토지 소유보다 큰 죄는 없다”
민중의 고통을 직시하고 체제의 모순을 개혁하려 한 뜨거운 이성
우리는 어떻게 다시 노예가 되었나?톨스토이는 어느 날 모스크바-카잔 철도 하역 노동자들이 37시간 연속 노동을 밥 먹듯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도저히 믿기지 않아 노동자들을 직접 만나러 간다. 그리고 영하 20도의 혹한 속에서 밤을 새워 쉴 새 없이 무거운 짐을 나르고 하루 1루블도 벌지 못하며, 10평 남짓한 공간에 40명 넘는 인부들이 제대로 누울 자리도 없이 지내는 참혹한 현실을 목도하고 분노한다. 대부분 고향에서 땅을 잃고 일자리를 찾아온 농민들로, 시골의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이런 열악한 환경에서 중노동을 감내하고 있었다. 톨스토이는 상류계급의 평균수명이 55세인데 비해 이런 노동자들의 수명은 29세라는 충격적인 통계자료를 인용하며, “노동자들이 사방에서 서서히 고통스레 죽어가고 있는데, 우리는 스스로의 편의와 만족을 위해 그 노동을 이용하고 있지 않은가”라고 개탄한다.
톨스토이는 소수의 사람들이 대다수 사람들의 노동과 삶에 대해 완전한 통제권을 갖는 현실을 바라보며, 우리 시대에 노예제도는 엄연히 존재한다고 단언한다. “농노제와 노예제의 폐지는 낡고 불필요해진 형태를 폐지한 것에 불과하고, 이전보다 더 다수의 노예를 장악하는 더 견고한 형태의 노예제로 교체되었을 뿐이다.” “소수가 다수 인민을 노예화한 것이 인민이 곤경에 처한 주된 원인이다.”
톨스토이에 따르면, 현대의 새로운 노예제가 견고해진 것은 정치권력과 그들의 협력자인 지식인들이 토지, 조세, 소유를 합법화하고 정당화하기 때문이다. “어떤 양의 토지든 개인의 소유물이 될 수 있으며, 상속, 유증, 매매를 통해 개인 간에 넘길 수 있다는 법령이 존재한다. 부과된 조세는 누구든 무조건 납부해야 한다는 또 다른 법령도 있다. 거기다 어떤 방식으로든 획득한 물건은 그 양이 얼마가 되든지 그것을 소유한 사람의 양도할 수 없는 재산이라는 법령 역시 존재한다. 그리고 이러한 합법화의 결과로 노예제도가 존재한다.”
〈우리 시대의 노예제도〉 〈노동인민에게〉 〈정치인들에게〉 등의 글에서 톨스토이는, 토지를 빼앗아 그 땅에서 일하지 않는 지주들의 손에 넘기고, 사회적 필요가 아니라 권력자의 이익을 위해 과중한 세금을 매기며, 노동의 산물을 자본가들의 소유로 돌리는 권력의 합법화와 정당화의 논리를 반박하고 그 근본적 대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일하지 않는 자들의 토지 소유보다 큰 죄는 없다톨스토이는 식인 풍습, 인신 공양, 영아 살해, 집단학살, 사법 고문, 능지처참, 화형, 태형 그리고 노예제 같은 역사적으로 사라진 악습들만큼이나 해롭고 사악한 제도들이 여전히 존재한다고 말한다. “매춘이 그러하고, 육식이 그러하며, 군국주의와 전쟁이 그러하며, 또한 당장의 시급하고 절실한 문제로서의 사적인 토지 소유제가 그러하다.”
현재의 토지 소유제는 “농사꾼이 토지에 투입한 노동의 산물을 누릴 그의 권리를 보호하는 게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농사꾼이 일구는 토지를 빼앗아 그 땅을 일하지 않는 사람에게 넘겨주는 수단”이다. “자신이 태어난 곳의 토지 일부를 사용하는 의심할 여지 없는 자연스러운 각자의 권리를 대다수 인민에게서 빼앗는” 이 제도야말로 “끊임없이 러시아 인민을 고통에 빠트리는 주요 악”이다.
톨스토이는 일하지 않는 사람들이 토지를 점유하는 것을 ‘거대한 죄’라고 일갈한다. “토지는 소수의 예외적인 전유물이 될 수 없으며, 토지가 필요한 사람들을 토지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막는 것은 죄악이라는, 인민 가운데 최고의 사람들이 항상 잘 알고 있는 의심할 여지 없는 진리가 모든 사람의 공통된 의식이 되어야 한다. 땅을 일궈서 생계를 유지하려는 사람을 땅에서 떼어놓는 건 부끄러운 일이고, 궁핍한 사람들을 땅에서 떼어놓는 행위에 가담하는 것 또한 부끄러운 일이 되도록 해야 한다. 토지에 대한 합법적인 권리를 빼앗겼다는 이유만으로 어쩔 수 없이 일하도록 강요당하는 사람들의 노동을 이용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되도록 해야 한다.”
톨스토이는 이러한 인식의 변화, 윤리적 반성의 촉구에 그치지 않고 토지 문제의 근본적 해법을 고민한다. 톨스토이는 황실 소유의 토지 기부, 미개간지로의 이주, 의무 임대제, 토지 기금 같은 정부 대책에도, 강제 몰수 후 분배라는 사회주의 혁명가들의 토지개혁안에도 반대한다. 정부안은 단기적 미봉책일 뿐이고, 사회주의 방식은 ‘몰수된 토지를 어떻게 분배할 것인가?’라는 문제를 필연적으로 안고 있기 때문이다. “토지 문제의 해법은 일부 소유자들에게서 토지를 몰수해서 타인들에게 배분하는 것에, 즉 토지의 자의적인 처분에 있을 수 없으며, 토지 소유라는 오래된 불의의 소멸 그 한 가지뿐이다.” 토지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위반되고 있는 토지에 대한 자연적인 권리와 자신의 노동 생산물에 대한 인간 각자의 권리를 복원하는 것이 필요하다.”
토머스 스펜스, 토머스 페인, 패트릭 에드워드 도브 등의 토지개혁안들을 비판적으로 검토한 후, 톨스토이가 토지에 대한 천부적 자연권을 복원하는 유일한 방법으로 주목하는 것은 헨리 조지의 ‘토지단일세’다. 19세기 후반 미국의 정치경제학자인 헨리 조지는 토지는 사람이 창조하지 않은 것으로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게 귀속되지만, 몰수나 공산제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여겼다. 따라서 토지 소유를 그대로 인정하되, 토지 가치(토지에서 얻는 수익)에 대해서만 세금을 매기고 다른 모든 세금은 폐지하자고 주장했다. 이렇게 되면 대토지를 소유한 부재지주는 과도한 세금을 피하기 위해 토지를 양도할 것이고, 세금 부담이 줄어든 노동자의 복지는 증대될 것이다.
사적 소유제의 불공정을 시정하려는 헨리 조지의 혁신적 이론은 유산계급의 이익을 대변하는 학계와 종교계, 심지어 사회주의자들(중요한 것은 토지 문제가 아니라 사적 소유제의 완전한 폐지라고 여겼다)의 의도적 침묵에 부딪혀 거의 알려지지 못했다. 하지만 초기부터 ‘토지단일세’의 열렬한 옹호자였던 톨스토이는 〈노동인민에게〉 〈거대한 죄〉 〈토지 문제의 유일하게 가능한 해법〉 등 여러 글에서 헨리 조지의 이론을 자세히 소개하고 그 장점을 예찬한다.
권력 없는 사회를 어떻게 건설할 것인가?“노동자들이 처한 곤경의 원인은 노예제도이다. 노예제도의 원인은 합법화이다. 합법화는 조직화된 폭력을 기반으로 한다. 그렇기에 사람들의 처지를 개선하는 것은 조직화된 폭력을 제거하는 경우에만 가능하다.”
조직화된 폭력이란 곧 정부, 국가, 권력이다. “권력은 이전에 생각했듯이 어떤 신성하고 위용 있는 것이 아니며 사회생활의 필수조건 역시 아니고, 누군가에 대한 다른 누군가의 거친 폭력의 결과”일 뿐이다. 권력은 소멸되어야 할 악이지만, 과연 어떻게 해야 없앨 수 있을까? 톨스토이는 고드윈, 프루동, 바쿠닌, 크로포트킨, 막스 슈티르너, 벤저민 터커 등 여러 아나키스트들의 주장을 검토하며, 이들이 “권력의 실질적인 제거는 완력이 아니라 권력의 무익성과 해악을 사람들이 자각함으로써 이뤄져야 한다”라고 올바른 결론에 이르고도, 비종교적이고 유물론적인 세계관에 매달림으로써 막연한 예측과 공허한 염원에 그치고 말았다고 말한다.
조직화된 폭력을 제거하기 위해 폭력을 사용할 수도 없는데, 이는 “다른 사람이 자신을 대하기를 바라는 대로 다른 사람을 대하라”라는 황금률의 도덕에 부합하지 않을 뿐 아니라, 부도덕한 자들의 폭력에 의한 지배라는 악순환을 낳기 때문이다. “여러분들이 원하는 것을 성취한다고 해봅시다. 현 정부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정부를 세우고, 공장들과 토지 모두를 몰수합니다. 여러분은 어째서 새 정부를 구성할 사람들이 지금의 정부와는 다른 새로운 원칙을 따르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일까요. 그들이 동일한 원칙에 의거한다면 지금과 똑같을 테고, 그들은 그 권력을 유지하고 강화하려 할 뿐만 아니라, 제 권력을 써서 자기 이익을 위해 해낼 수 있는 무엇이든 뽑아낼 것입니다. 어째서 여러분은 공장과 토지 관리를 담당할 사람들이 제 몫을 과도하게 챙길 수단을 찾아내지 않으리라 생각하십니까. 몽매하고 순종적인 사람들에게 그저 필수품만 남겨둘 테지요.” 사회주의 혁명 후의 미래를 예견한 혜안이 아닐 수 없다.
권력은 오직 하나의 정신적 도구를 통해서만 소멸시킬 수 있는데, 바로 “삶에 대한 종교적인 이해”이다. 이는 민중의 삶을 억압하는 “정부의 활동에 참여하지 않음과 더불어 정부의 요구에 대한 불복종을 필수조건으로 하는 생명의 기독교”의 가르침을 따르는 것이다. 톨스토이는 〈세 가지 거짓된 것〉에서 병역, 조세, 토지 수탈의 고통에서 벗어날 유일한 방법은 “사람들에게 복종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에게 복종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자발적으로 동의한 것에만 복종해야 한다. 정부, 병역, 조세, 경찰, 재판 같은 일에 참여하지 말아야 한다.”
권력에 대한 절대적 불복종과 거부, 황금률의 도덕에 바탕한 톨스토이의 ‘기독교 아나키즘’은 정부가 사라진 이후의 무정부적 혼란을 걱정하지 않는다. 외적인 강요에 의해서가 아닌 내적인 의식 변화가 사람들을 서로 억압하지 않는 평화로운 공동체의 삶, 그리하여 “병역도, 전쟁도, 조세도, 세금도, 인민이 사용하지 못하는 토지도 없는” 진정 행복한 삶으로 이끌 것이라고 확신한다.

지금 정부는 불필요한 존재가 되었으며, 정부는 자국민 겁박에 사용하는 온갖 악행들보다 훨씬 큰 해악이 되었다. … 정부는 폭력을 주로 행사하는 그 활동으로 볼 때 늘 성스러움과는 정반대되는 자들, 가장 뻔뻔하고 난폭하며 타락한 자들로 이뤄진다. 모든 정부, 더 나아가 군사권을 부여받은 정부는 끔찍하고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기관이다. … 모두가 묵인하는 가운데 날로 확장하는 병력과 전쟁의 무서운 재앙에서 벗어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대회나 회담, 협정이나 재판정이 아니다. 거대 재앙이 비롯하는 폭력의 도구, 이른바 정부를 제거하는 것이다.
실제로 농노제와 노예제의 폐지는 낡고 불필요해진 형태를 폐지한 것에 불과하고, 이전보다 더 다수의 노예를 장악하는 더 견고한 형태의 노예제로 교체되었을 뿐이다. … 이미 인민 대다수가 자본가들의 손아귀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하나의 노예화 수단이 폐지되는 것은 다른 수단이 그것을 대체했을 때뿐이다. 노예화 수단들은 여러 가지다. 어느 하나가 아니면 다른 어떤 것, 때로는 여러 수단을 아울러 사용하여 인민을 노예 상태로 속박한다. 다시 말해, 소수의 사람들이 대다수 사람들의 노동과 인생을 완전히 틀어쥐는 국면이 조성되는 것이다. 이처럼 소수가 다수 인민을 노예화한 것이 인민이 곤경에 처한 주된 원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