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17~18세기에 자본주의적 경제 발전과 정치 사이의 관계를 둘러싸고 벌어진 사상가들 사이의 치열하면서도 눈부신 논쟁들을 되짚어 가며, 왜 오늘 우리는 자본주의가 막 등장했을 무렵, 상업의 확대를 둘러싸고 벌어졌던 이 논쟁에 주목해야 하는지, 그간 우리가 잊고 있었던 것은 무엇이고, 그랬기에 우리가 반복해서 범하는 착각은 무엇이었는지를 차분하게 독자들에게 제시한다.
출판사 리뷰
자본주의가 막 출현했을 무렵, 몽테스키외와 제임스 스튜어트 경을 비롯한 당대의 주요 사상가들은 온화한 상업이 사람들의 길들여지지 않은 야만적 정념을 길들여, 사회를 온화하게 만들 것으로 기대했다. 이해 타산적인 상업의 정신은 정직함과 신중함, 분별력 등에 기반해 있기에, 사람들도 이런 습성을 내면화해 자본주의 시대에 걸맞은 심리적·도덕적 성향을 가질 것으로 기대한 것이다. 이로부터, 온화한 상업의 확대는 전제정을 막고, 온화한 정치와 합리적 국정 운영으로 이어지리라는 기대가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그렇게 자본주의가 막 등장할 무렵, 그 옹호자들은 상업의 이런 측면에 기대어, 자본주의의 출현을 반기고 정당화할 수 있었다. 곧 경제가 우리를 자유롭게 할 것이라고.
자본주의가 사람들의 야만적 정념을 길들인다니? 몽테스키외 이후, 자본주의의 역사와 현실을 생생히 경험하고 있는 우리들의 시각에서 볼 때, 이는 매우 허황된 예측에 불과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기적 사익 추구에만 매몰된 일차원적 인간들. 무분별한 환경과 자원의 남용. 물질적 이해관계를 추구하기 위해 전쟁도 불사하는 정치가와 국가들. 시간이 흘러갈수록, 더욱 악화되어 가기만 하는 부의 재분배 문제 등등. 하지만, 좀 더 곰곰이 생각해 보면, 오늘날에도 경제 발전이 정치와 사회의 발전을 이끌고 안정을 낳는다는 견해는 여전히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다. 전후, 현대자본주의의 형성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 케인즈는 물론이고, 현대 민주주의론의 중요한 이론적 기초를 놓은 조지프 슘페터 역시 (이 책의 저자인 허시먼이 이런 대가들 역시 과거의 논쟁들을 들여다보려 하지 않는다고 한탄했듯이) 이 같은 견해를 펼쳤고 옹호했다. 좀 더 최근인 1970년대와 1980년대 각광을 받았던 주요 민주화 이론들 역시 경제 발전이 정치적 발전과 민주주의를 가져온다고 가정하고 있었다. 그리고 21세기인 현재에도 이런 구호가 여전히 유행하고 있다. “문제는 경제야, 이 멍충이들아!” 자본주의를 옹호했던 초기의 예측과 기대는 깨졌지만, 불사조처럼 또 다시 등장하는 기대와 처방들. 왜 이런 일들이 반복되는 것일까? 우리가 잊고 있었던 것은 무엇일까?
앨버트 O. 허시먼의 『정념과 이해관계』는 17~18세기에 자본주의적 경제 발전과 정치 사이의 관계를 둘러싸고 벌어진 사상가들 사이의 치열하면서도 눈부신 논쟁들을 되짚어 가며, 왜 오늘 우리는 자본주의가 막 등장했을 무렵, 상업의 확대를 둘러싸고 벌어졌던 이 논쟁에 주목해야 하는지, 그간 우리가 잊고 있었던 것은 무엇이고, 그랬기에 우리가 반복해서 범하는 착각은 무엇이었는지를 차분하게 독자들에게 제시한다.
(고전 할리우드 영화에서 나올 법한) 비유를 들어 보자. 당신이 당신의 어떤 부분 ― 가령 피부색이나 코의 모양, 당신이 믿는 종교 따위 등등 ― 을 열정적으로 싫어해 당신을 죽이고자 하는 광신도들에게 쫓기고 있다고 가정해 보자. 그들이 온통 당신에게만 관심을 집중해 쫓아오는 상황에서, 당신이 도망치며 약간의 돈을 뿌리자, 그들은 각자 땅에 떨어진 지폐들을 진지하게 주워 모으기 시작한다. 도망치면서 당신은 그 깡패들이 이처럼 선량한 자기 이익을 추구했다는 점에서 운이 좋았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일반화에 능숙한 이론가는 이 사례를 폭력적인 정념이 부의 추구라는 해롭지 않은 이익의 추구로 인해 억눌리는 보편적 현상의 한 사례 ― 그것도 적나라한 사례 ― 에 지나지 않는다고 언급할지도 모른다. 자본주의의 초기 옹호자들은 자본주의의 이 같은 점에 갈채를 보내고 있었는데, 이 통찰력 넘치는 소책자는 바로 이 점을 주제로 삼고 있다.
- 아마르티아 센의 서문 중에서.
작가 소개
지은이 : 앨버트 O. 허시먼
좌우 모두가 인정하는 세계적인 경제학자로, 전통적인 주류 경제학의 맹점을 파헤치면서 창의적인 관점을 선보인 학자로 잘 알려져 있다. 1915년 독일의 베를린에서 태어나 베를린 대학, 소르본 대학, 런던 정경 대학에서 수학했으며 트리에스테 대학에서 약관 23세에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 시기에 스페인 내전에 참전해 한나 아렌트를 비롯한 유럽의 지성들을 탈출시키는 일을 했으며, 1941년 미국으로 이주한 뒤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기도 했다. 이후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에서 일하면서 마셜 플랜에 참여했고, 1952년부터 5년간 남미 콜롬비아 정부의 경제고문을 지냈다. 이때 허시먼은 발전 경제학자로서의 입지를 굳혀가면서 개발도상국 경제에 대한 괄목할 만한 연구서인 『경제 발전 전략론The Strategy of Economic Development』(1958)을 집필했다.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그는 예일 대학, 컬럼비아 대학, 하버드 대학, 프린스턴고등연구소 등의 아카데미에 적을 두면서 지성사를 기반으로 한 연구에 매진한다. 『떠날 것인가, 남을 것인가Exit, Voice, and Loyalty』(1970)는 허시먼이 발전 경제학자에서 사회 사상가로 변신하는 계기가 된 저서로, 퇴보해가는 조직에서 보이는 행동 유형을 ‘이탈’과 ‘항의’, 그리고 ‘충성심’이라는 개념을 통해 설명하고 있다. 2003년 미국정치학회 최우수도서로 선정된 『열정과 이해관계The Passions and the Interests』(1977)에서는 서구 지성사에 기대어 자본주의의 발달사를 예리하게 해석했고, 『보수는 어떻게 지배하는가The Rhetoric of Reaction』(1991)에서는 정치적 수사학의 근본적인 패턴을 분석하기도 했다. 2012년 12월 10일 향년 97세를 일기로 타계했으며, 미국 사회과학연구위원회에서는 그의 지적 전통을 잇기 위해 ‘앨버트 O. 허시먼 상’을 제정하여 매년 국가 간, 학제 간에 뛰어난 공을 세운 학자에게 수여하고 있다.
목차
아마르티아 센의 서문 9
20주년 기념판 서문 22
감사의 글 26
들어가는 말 29
제1부 이해관계는 어떻게 정념의 맞상대로 불려 나오게 되었나
영광 개념과 그것의 몰락 35
‘있는 그대로의’ 인간 40
정념을 억누르고 제어하기 43
서로 대항하는 정념의 원리 50
정념의 조련자로서 ‘이해관계’와 ‘이해관계들’ 65
새로운 패러다임으로서 이해관계들 79
이해관계가 지배하는 세상이 가진 자산: 예측 가능성과 항상성 88
결백하고 부드러운 돈벌이와 상행위 99
차분한 정념으로서의 돈벌이 111
제2부 경제성장이 정치 질서를 개선한다는 기대는 어떻게 형성되었는가
학설의 구성 요소들 121
1. 몽테스키외 121
2. 제임스 스튜어트 경 136
3. 존 밀러 144
관련되어 있지만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관점들 151
1. 중농주의자들 155
2. 애덤 스미스와 어떤 이상의 종말 160
제3부 지성사의 한 사건에 대한 성찰
몽테스키외-스튜어트의 이상은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나 179
이해관계가 지배하는 세상의 약속과 프로테스탄트 윤리의 대립 196
오늘날의 관점에서 200
옮긴이의 말 206
후주 217
찾아보기 2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