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제삿날 찾아온 왕할아버지의 영혼과 증손자가 따뜻하고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이야기다. 작가 이영미는 어린 독자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제사의 참다운 의미를 두 주인공의 흥미진진한 이야기 속에 넌지시 녹여냈다. 어른들처럼 제사의 격식을 갖추진 않았지만, 민호는 제사를 직접 체험하면서 하루를 보낸다. 작가는 제사가 매년 반복되는 지루한 형식적 의례가 아니라, 한때 몸을 가지고 이 땅에 살았던 조상을 보다 가까이 느끼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추억하는 일이라는 것을 설득력 있게 전달한다.
출판사 리뷰
할아버지도 아버지가 있었다고요?
아침부터 시골집이 어수선해요. 할머니랑 엄마는 부엌에서 음식을 하고 아빠는 빗자루로 마당을 쓸어요. 할아버지는 흑백사진이 들어 있는 액자를 닦고 있어요. 왕할아버지 오시는 날이라서 다들 바쁘게 준비하고 있지요.
왕할아버지가 누구냐고요? 왕할아버지는 할아버지의 아버지래요. 민호는 할아버지한테도 아버지가 있었다는 게 너무 신기해요.
갑자기 강아지 달봉이가 마당에 있는 감나무를 보고 컹컹 짖어요. 민호는 달봉이를 따라 감나무로 달려갔어요. 나무 아래에 커다란 왕구슬이 떨어져 있어요. 민호는 냉큼 왕구슬을 주워요. 그런데 처음 보는 아이가 나뭇가지에 앉아 민호를 내려다보고 있어요. 쉿, 손가락을 입에 대고서요.
아이는 나무에서 뛰어내려 뒤뜰로 달려갔어요. 민호가 뒤쫓아 가자 아이는 당장 왕구슬을 내놓으래요. 자기 거니까 돌려 달래요. 하지만 민호는 왕구슬을 주고 싶지 않아요. 할아버지 집에서 주웠으니 내 거라면서 민호는 왕구슬을 등 뒤로 숨겨요. 그러자 수상한 아이가 민호에게 성큼 다가와요!
제삿날 왕할아버지와 함께 한 특별한 하루
제사는 자식들이 정성껏 음식을 차려 돌아가신 할아버지, 할머니의 영혼을 모시고 대접하면서 감사의 절을 올리는 아름다운 풍습입니다. 이처럼 제사는 초현실적인 상상을 바탕으로 한 특별한 의식입니다. 조상의 영혼을 초대하여 음식을 대접하는 일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니까요.
《왕할아버지 오신 날》은 이런 초현실적인 상황을 현실로 구현합니다. 왕할아버지의 제삿날, 일곱 살 민호는 또래 친구 ‘존오’로 현신한 왕할아버지의 영혼과 만납니다. 물론 민호는 존오가 왕할아버지라는 것을 전혀 모르지요. 백여 년 전 아이 존오의 말투와 행동거지는 예스럽지만, 현대 아이 민호와 자연스레 교감하면서 둘은 다정한 친구가 됩니다.
제삿날 어른들은 제사 준비에 바쁩니다. 심심해진 민호는 달봉이를 쫓아갔다가 왕구슬을 줍게 되고, 또래인 ‘존오’를 만나게 됩니다. 왕구슬 때문에 티격태격하던 둘은 곧 죽이 맞아 존오의 보물창고까지 함께 갑니다. 둘은 손때 묻은 옛 장난감으로 놀고, 물웅덩이에서 수영 시합을 벌입니다. 뒤뜰에서 엄마 몰래 제사 음식도 나누어 먹습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민호와 존오는 특별한 하루를 보냅니다.
존오와 헤어진 민호는 제사를 기다리다 깜빡 잠이 듭니다. 늦은 밤, 아빠의 채근에 눈을 뜬 민호는 뜻밖에 왕할아버지의 제사상에서 왕구슬을 발견합니다. 왕구슬은 존오의 보물 1호로, 존오가 끝까지 양보하지 않았던 소중한 물건입니다. 게다가 이제 민호는 왕할아버지의 성함이 ‘이존오’라는 것도 알게 됩니다. 왕구슬과 존오. 단순한 우연일까요?
《왕할아버지 오신 날》은 제삿날 찾아온 왕할아버지의 영혼과 증손자가 따뜻하고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이야기입니다. 작가 이영미는 어린 독자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제사의 참다운 의미를 두 주인공의 흥미진진한 이야기 속에 넌지시 녹여냈습니다. 어른들처럼 제사의 격식을 갖추진 않았지만, 민호는 제사를 직접 체험하면서 하루를 보냅니다. 작가는 제사가 매년 반복되는 지루한 형식적 의례가 아니라, 한때 몸을 가지고 이 땅에 살았던 조상을 보다 가까이 느끼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추억하는 일이라는 것을 설득력 있게 전달합니다.
심리적 동화 과정을 서정적 배경으로 묘사하다
일러스트레이터 오승민은 현대 아이 민호와 옛날 아이 존오가 시공간을 넘어 서로 동화되는 과정을 서정적 배경으로 훌륭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두 주인공이 경쟁적으로 달려갈 때 울창한 나무숲을 뚫고 역광으로 내리꽂히는 햇살 묘사는 인상적입니다. 또한, 두 주인공이 친밀해지기 시작하는 수영 장면은 웅덩이 밑바닥에서 올려다보는 구도로 감각적으로 묘사했습니다. 어둑한 밤, 담장 위에 앉은 존오 뒤로 환한 보름달이 떠 있는 장면은 신비함 속에 존오의 정체를 암시합니다.
압권인 것은 민호와 존오가 바위 위에 누워 노을이 지는 하늘을 바라보는 장면입니다. 광활하게 펼쳐진 붉은 하늘 아래 두 주인공을 마치 한 덩어리처럼 작게 묘사해, 둘이 서로 완벽하게 공감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