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평생 침묵과 고요의 언어를 건너온 이문길 시인이 아흔을 앞두고 내놓은 열아홉 번째 시집 『허공만리』는 삶과 죽음, 생과 무생, 사랑과 이별을 투명하게 비워낸 시인의 마지막 숨결을 담는다. ‘산’, ‘구름’, ‘잠’, ‘돌’, ‘별’ 같은 일상의 사물이 존재의 근원을 비추는 장면으로 다시 태어나며, “나는 매일 허공만리 길을 간 것이다”라는 고백처럼 그의 모든 시간은 허공을 건너는 여정으로 겹쳐진다.
아내를 떠나보낸 이후의 상실과 애도, 죽음을 담담히 받아들이는 유머와 평화까지, 이 시집은 한 인간이 생의 끝자락에서 남기는 가장 고요한 목소리를 기록한다. 비움과 수용의 시학으로 완성된 이문길의 언어는 허공 속으로 사라지는 듯하면서도 오래 머무는 울림을 남긴다.
출판사 리뷰
“한 걸음에 천리를 가는 시인의 마음, 허공만리의 길 위에서”
1939년 대구에서 태어나 평생 시의 언저리에서 침묵과 고요를 노래해 온 이문길 시인이 아흔을 앞두고 내놓은 열아홉 번째 시집, 『허공만리』.
“다시 마지막 시집을 낸다 / 시 같은 게 없어 / 미안하고 부끄럽다”로 시작하는 ‘시인의 말’처럼, 그는 자신의 언어마저 비워내며 끝내 시로 남는다.
이 시집에는 삶과 죽음, 생과 무생, 사랑과 이별, 그리고 시간의 허무가 한층 투명하게 녹아 있다.
‘산’, ‘구름’, ‘잠’, ‘돌’, ‘별’ 같은 일상의 사물과 자연은 그의 시 안에서 모두 생명을 얻고, 마침내 하나의 세계가 된다.
삶의 여정을 다함으로 겪은 시인이 남기는 맑은 목소리,
허공을 건너는 듯한 이문길 시의 마지막 숨결을 만날 수 있다.
“나는 모르고 있었다
그러고 보면
나는 매일 허공만리 길을
간 것이다.”
허공을 건너는 시, 허공으로 돌아가는 시 ·- 이문길 『허공만리』
이문길 시인의 열아홉 번째 시집 『허공만리』는 한 인간이 생의 끝자락에서 남기는 가장 맑고 고요한 언어의 기록이다. 1939년 대구에서 태어나 평생 ‘흙과 산, 그리고 사람’의 세계를 그려온 그는, 이번 시집에서 마침내 자신이 걸어온 길의 끝에 이르러 “다시 마지막 시집을 낸다/ 시 같은 게 없어/ 미안하고 부끄럽다”고 고백한다. 그러나 그 겸손한 서두와 달리, 이 시집은 오히려 시가 사라진 자리에서 시가 새로 태어나는 순간을 보여준다.
『허공만리』는 시인이 걸어온 삶의 지형이자, 그가 떠나려는 영혼의 지도이다. ‘산’, ‘구름’, ‘잠’, ‘돌’, ‘별’ 같은 제목의 시들이 연이어 등장하지만, 그것들은 단순한 자연의 이미지가 아니라, 존재의 근원에 대한 물음으로 이어진다. “나는 모르고 있었다/ 그러고 보면/ 나는 매일 허공만리 길을/ 간 것이다”라는 시구처럼, 시인은 자신이 살아온 모든 날이 사실은 허공을 건너는 길이었다는 깨달음에 이른다. 그 길 위에서 그는 생과 무생의 경계를 묻고, 삶과 죽음을 나누던 모든 구획을 지워나간다.
이 시집의 가장 깊은 울림은 비움과 수용의 시학에서 비롯된다. ‘생과 무생’에서 시인은 “하늘은 생인가, 무생인가”라고 묻고, “나는 무생에서 왔기에/ 와서도 생을 모르고 산다”고 답한다. 여기서 생명은 어떤 의지나 욕망의 결과가 아니라, 스스로의 존재를 자각하지 못한 채 흘러가는 ‘허공의 숨결’로 그려진다. 또한 ‘돌’, ‘바람’, ‘잠’ 등의 시에서 반복되는 ‘모르겠다’는 말은 체념이 아니라, 알 수 없음 자체를 껴안는 깨달음의 언어다. 그는 묻고, 모른다고 말하고, 그 모름 속에서 다시 길을 걷는다.
삶의 동반자였던 아내를 떠나보낸 뒤의 시간 또한 『허공만리』의 주요한 정조를 이룬다. ‘삽’, ‘손목시계’, ‘조화’, ‘단풍나무 꽃’ 등에서 그는 상실을 슬픔으로만 받아들이지 않는다. “아내가 두고 간 손목시계/ 아내 묘 앞에 앉아/ 집에 돌아갈 때 되었는지 들여다본다”라는 구절처럼, 그의 애도는 일상의 사소한 물건에 깃든 사랑의 흔적을 통해 조용히 이어진다. 그 사랑은 눈물로 마르지 않고, 오히려 시간과 사물 속에 스며들어 삶의 다른 이름이 된다.
『허공만리』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시집이다. 시인은 ‘저승’에서 “저승 문 앞에서/ 누가 나 못 들어오게 하면/ 문 앞에서 자버리면 된다”고 말한다. 이 유머와 담담함은 시인의 오랜 연륜이 빚어낸 지혜이며, 그가 이미 삶의 고통을 모두 품은 자만이 가질 수 있는 평화다. 죽음을 허무가 아닌 ‘또 다른 삶의 방편’으로 바라보는 그의 시선은, 이 시대의 독자들에게도 잔잔한 위로로 다가온다.
결국 『허공만리』는 한 시인이 남긴 유언과도 같은 책이다. 그러나 그것은 끝을 선언하는 유언이 아니라, 존재의 근원을 향해 열린 문과 같다. 허공을 향해 날아가는 새처럼, 시인은 이 시집을 통해 말없이 자신의 길을 완성한다. 세상을 오래 바라본 이의 눈으로, 그는 다시 묻는다.
“어떻게 알겠는가/ 내가 왜 살고 있는가를.”
그 물음에 답하지 않은 채, 그는 다만 시를 남긴다.
허공 속으로 스러지는 그 언어는, 끝내 우리 모두의 길 위에서 반짝인다.
내 묘비명에
이렇게 다시 고쳐 쓰려고 한다
‘아아, 알고 보니
이 적막도 주인이 있어
내 것이 아니고 하늘의 것이구나’를
‘불 하나 꺼 놓으면
이리 편히 쉴 수 있는 것을’이라고
-「이렇게 편히」 전문
화가 성기열 선생님이
내 시를 보고 소식을 전해왔다
이문길 시인님
멋집니다
참 잘
사십니다
파이팅입니다
하늘이 내린
이문길입니다
나는 이 글을 읽다가
이렇게 탄식했다
하늘이 안 낸 사람
누가 있노
-「누가 있노」 전문
섬이 육지 같을 때가 있다
떠내려가다가 안 가고 있는
육지 같을 때가 있다
섬이 육지인 줄 알고
살러 오는 사람들
살다 가는 사람들
바다에 가보면 있다 아직
섬이 육지인 줄 알고
사는 사람들
-「섬」 전문
작가 소개
지은이 : 이문길
1939년 대구 출생1959년 서라벌예술대학 문예창작과 수료1981년 『허생의 살구나무』를 냄1983년 대구문학상 수상1998년 《현대문학》 등단『떠리미』 『날은 저물고』 『헛간』 『보리곡식을 걷을 때의 슬픔』 『복개천』 『초가삼간 오막살이』 등 18권의 시집과 시 선집 『그리운 집이여』, 시·산문집 『석남사 도토리』, 동시 선집 『눈물 많은 동화』를 냈다.
목차
시인의 말
산
옛날
허공만리
산
까치
이렇게 편히
생과 무생
구름
누가 있노
마이산
섬
봄
섬
산
그림자
금
요괴
거울
당산나무
산꼭대기 나무들
근린공원
………
소 장터
아무리
남은 땅
작심
나귀
이상한 일
천고
물까치
단풍나무 꽃
세월
산새
손목시계
나
고향
5월 바람
르누와르
정처 없이
호롱불
구름
잠
저승
넷이러라
비
사람
삽
바람
종교와 예술
강아지
풀벌레
가을
물고기
하루
참새
별
조화
잠
떨어져야
달맞이꽃
희언
돌
장마
뒷골목에 가면
마귀할멈
노아의 방주
우리 동네
잠 안 자고 사는 사람
산
십조의 금법
두 하늘
코스모스
나는
수부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