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2008년 온라인 연재 당시부터 17년간 스테디셀러로 자리 잡은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가 영화 개봉을 앞두고 다시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새로운 장정으로 선보이는 개정판에는 소설 속 ‘나’와 ‘그녀’, 요한의 17년 후 이야기를 더해 독자들에게 한층 확장된 감동을 전한다.
1980년대 서울 변두리를 배경으로, 못생긴 여자와 상처 입은 두 청년의 우정과 사랑을 그린 이 소설은 외모 이데올로기와 자본주의 시스템이라는 거대한 힘 앞에서 흔들릴 수밖에 없었던 청춘들의 내면을 섬세하게 파고든다. 백화점 아르바이트 현장에서 시작된 이들의 관계는 단순한 연애 서사를 넘어, 부와 아름다움이라는 허울 좋은 기준에 편입하지 못한 절대다수의 자화상, 그리고 그 바깥에서 존재를 지키려 했던 한 세대의 감정사를 대변한다.
마돈나, 마이클 잭슨, 켄터키 치킨집 등 소비문화가 촘촘하게 번져가던 시대적 풍경 속에서, 박민규는 ‘못생김’이라는 낙인을 단 인물에게서 오히려 진정한 사랑과 인간다움을 조명하며 외모 중심의 질서에 정면으로 문제를 제기한다. 스스로를 부끄러워하고 비교 속에 지쳐가는 오늘날 독자들에게, 그의 소설은 소수의 화려한 빛이 아닌 불완전한 우리 각자가 가진 내면의 빛으로 세상을 다시 보게 만드는 특별한 경험을 선사한다.
출판사 리뷰
★★★ 영화 〈파반느〉 개봉 예정
★★★ 17주년 기념 양장 특별판
★★★ 개정판 후기 「그 후 17년」 수록
“우리는 모두 죽은 왕녀 곁에 들러리 선 시녀와 마찬가지였다.”
외모 이데올로기에 대한 야심 찬 반격!
아름다움의 바깥에서 시작된, 가장 아름다운 이야기
“모든 사랑은 오해다.
사랑을 이룬 이들은 어쨌든
서로를 좋은 쪽으로 이해한 사람들이라고,
스무 살의 나는 생각했었다.”
2008년부터 6개월간 온라인서점 예스24 블로그에 연재되었던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는 발표 초기부터 ‘박민규의 색다른 연애소설’로 회자되며 독자들의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못생긴 여자와 그런 그녀를 사랑했던 한 남자의 이야기를 20대 성장소설의 형식으로 그려낸 이 작품은 작가 스스로 ‘80년대 빈티지 신파’라 일컬을 만큼 내용이나 스타일에서 큰 변화를 선보였다. 자본주의 시스템이 본격적으로 가동되기 시작한 80년대 중반의 서울을 무대로 한 이 소설엔 평범한 인간관계가 어려울 정도로 못생긴 여자와, 잘생기고 번듯하지만 부모에게 버림받은 트라우마를 공유한 두 명의 청년이 등장한다. 백화점 아르바이트 현장에서 만난 이들 세 사람은 서로의 결핍과 아픔을 거울처럼 비추며 조심스럽게 가까워진다. 상처받은 인간의 내면에 그 어느 작품보다 깊이 파고드는 이 소설을 통해, 작가는 부조리와 편견 가득한 사회의 장벽 앞에서 절망할 수밖에 없었던, 그래서 무참히 사회의 바깥으로 추방당했던 우리 모두의 첫사랑의 기억을 들추어낸다.
“그럴듯한 것은 결코 그런, 것이 될 수 없다.”
사랑이라는 칼날로 벗겨낸 삶의 허상들
온 세상이 브리트니 스피어스의 데뷔곡 「Baby One More Time」으로 가득하던 1999년의 겨울, 34세의 성공한 작가인 ‘나’는 언제나처럼 모리스 라벨의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를 듣고 있다. 그리고 잊지 못할 단 한 명의 여인을 추억한다. 오래전 두 사람은 눈 내리는 크리스마스를 함께 보냈고, 여자는 ‘나’에게 크리스마스 선물로 모리스 라벨의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를 선물했다. 우연찮게도 그날 두 사람이 함께했던 카페엔 벨라스케스의 그림 「라스메니나스」가 걸려 있었는데, 모리스 라벨은 그 그림에서 영감을 얻어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를 만들었다고 한다. 벨라스케스의 그림 속 시녀는 오랫동안 ‘나’의 마음 한구석에 자리 잡게 된다.
‘나’의 아버지는 뒤늦게 인기 배우가 된 잘생긴 남자였고, 어머니는 그런 남자를 위해 헌신하는 못생긴 여자였다. 성공을 거머쥐자 아버지는 결국 가족을 떠나고, 어머니는 슬픔과 절망 속에 삶을 이어간다. 1986년의 그때 ‘나’의 나이는 스무 살. 온 나라가 경제성장의 가속도를 타고 부를 향해 미친 듯이 노력하던 그 시절, ‘나’는 자본주의의 최전선 백화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인생의 중요한 두 사람을 만나게 된다. 민감하고 연약했던 청춘의 시기에 정신적 스승이 되어준 요한이라는 인물과, 그 누구도 쳐다보기 싫어하던 못생긴 그녀. 둘은 서로 사랑했고, 즐거웠으며, 늘 함께이고 싶었지만, 결국 그녀는 외모로 인한 사회적 소수자의 상처를 입고 ‘나’의 곁을 떠난다. 그리고 요한도 가족에 대한 심리적 상처를 극복하지 못한 채, 머나먼 요양소로 떠나버린다. 세월이 흐르고 소설가로 성공한 ‘나’는 수소문 끝에 그녀가 독일에 있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프랑크푸르트행 비행기에 몸을 싣는데...
외모 이데올로기에 대한 야심 찬 반격!
“우리는 모두 죽은 왕녀 곁에 들러리 선 시녀와 마찬가지였다.”
표제이기도 한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에서 죽은 ‘왕녀’ 곁에 선 ‘시녀’가 상징하는 것은 비단 주인공의 못생긴 연인만이 아니다. 그것은 80년대에 대한 추억 그 자체다. 그것은 록음악이기도 했고, 소설이기도 했으며, 늘 성공을 꿈꾸던 우리네 서민들의 삶 자체이기도 했다. 마돈나, 마이클 잭슨, 할리우드의 온갖 삼류영화들 틈바구니에서 문득 자신들의 비루한 삶에 눈물을 삼키곤 했던, 그래서 예뻐지고 싶고, 부유해지고 싶고, 세련되고 싶었던 지나간 우리의 모습들이다. KFC가 등장하기 전 시장 골목 어귀마다 서 있던 켄터키 치킨집과, ‘HOPE’라 적힌 간판 아래서 희망을 안주 삼던 변두리 호프집, 백화점의 죠다쉬와 나이키, 자가용을 욕망하던 촌스럽고 시시했던 그 모든 시절이 바로 죽은 왕녀 곁에 선 시녀를 떠올리게 한다. 모리스 라벨이 벨라스케스의 그림에서 모티브를 얻어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를 작곡했듯, 박민규는 죽은 왕녀 곁에 들러리 선 시녀의 모습에서 부와 권력의 시스템 안에 농락당한 애처로운 절대다수의 그림자를 발견해낸 셈이다.
따라서 죽은 ‘왕녀’는 절대다수가 신봉해온 자본주의의 꽃인 부와 아름다움이 된다. 사실 그 꽃은 소수의 권력자가 자신들의 지위와 부를 유지하기 위해 설정해놓은 허울 좋은 이데올로기임에도 불구하고, 절대다수인 우리는 아무런 의심도 없이 그 꽃을 찬탄하며 부러워한다. 그래서 주인공인 ‘나’는 이미 달콤한 성공의 꽃을 찾아 가족의 삶을 유기해버린 아버지에게서 상처를 받은 바, 실체를 알 수 없는 꽃들의 향기에 염증을 느끼고 오히려 못생긴 ‘그녀’에게서 진정한 사랑의 토대를 발견한다. 박민규의 소설에서 예외 없이 발견되는 자본주의 시스템과 주류·비주류의 역학관계에 대한 비판의식이 이번엔 ‘외모 이데올로기’에 희생당하고 있는 여성의 입장을 새롭게 재조명한 것이다.
부끄러워하고 부러워하는 이 시대 모든 이들을 위한 연서
소설 읽기의 색다른 즐거움을 선사할 BGM 음반과 라이터스 컷 도입
“저는 늘 스펙만을 강요하는 사회에서 경쟁력 없이 살 수밖에 없는 대다수 사람들을 위로하고 싶었습니다. 삼미 슈퍼스타즈가 남자들을 위한 소설이었다면, 이번 소설은 여자들에게 위로를 줄 수 있었으면 합니다.”
사석에서 남긴 작가의 후기처럼,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는 외모 경쟁에서 불리한 여성들, 나아가 늘 외모 콤플렉스에 시달리고 스스로를 부끄러워하는 여성들을 위한 일종의 연서다. 동시에, 인간을 끊임없이 이끌고 구속하는 ‘힘’에 대한 문제 제기다. 부를 거머쥔 극소수의 인간이 그렇지 못한 절대다수에 군림해왔듯이, 미모를 지닌 극소수의 인간들이 그렇지 못한 절대다수를 사로잡아온 역사, 결국 극소수가 절대다수를 지배하는 시스템 오류에 대한 지적이다. 하지만, 역시나 이 모든 오류를 바로잡을 수 있는 것은 ‘사랑의 힘’이다. 아름다운 어느 한 사람의 화려한 빛이 아니라, 불완전한 우리 각자의 인생들이 자신감 있게 전원 스위치를 켜고 내면의 빛을 밝혀야 사랑도 세상도 완전해질 수 있다는 것이 작가가 궁극적으로 전하고자 했던 메시지다.
이 소설에서 특기할 점은 책의 말미에 라이터스 컷(Writer’s cut)을 도입한 것이다. 영화로 치자면 일종의 디렉터스 컷과 같은 장치로, 독자들이 본 내용의 결말을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는 가능성을 남겨두려는 작가의 특별한 기획이다. 또한 이 소설만을 위한 BGM 음반을 제작하여 QR 코드로 실었다. 아련한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머쉬룸 밴드의 음악이 소설 읽기의 색다른 경험을 제공한다.
“우리의 손에 들린 유일한 열쇠는 「사랑」입니다. 어떤 독재자보다도, 권력을 쥔 그 누구보다도... 어떤 이데올로기보다도 강한 것을 서로를 사랑하는 두 사람이라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그들은 실로 대책 없이 강한 존재입니다. 세상은 끊임없이 우리가 부끄러워하길 부러워하길 바라왔고, 또 여전히 부끄러워하고 부러워하는 인간이 되기를 강요할 것입니다. 부끄러워하고 부러워하는 절대다수야말로, 이 미친 스펙의 사회를 유지하는 동력이었기 때문입니다.
와와 하지 마시고 예예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제 서로의 빛을, 서로를 위해 쓰시기 바랍니다. 지금 곁에 있는 당신의 누군가를 위해, 당신의 손길이 닿을 수 있고... 그 손길을 기다리고 있을 누군가를 위해, 말입니다. 그리고 서로의 빛을 밝혀가시기 바랍니다. 결국 이 세계는 당신과 나의 「상상력」에 불과한 것이고, 우리의 상상에 따라 우리를 불편하게 해온 모든 진리는 언젠가 곧 시시한 것으로 전락할 거라 저는 믿습니다.”
- 「작가의 말」 중에서
모든 사랑은 오해다. 그를 사랑한다는 오해, 그는 이렇게 다르다는 오해, 그녀는 이런 여자란 오해, 그에겐 내가 전부란 오해, 그의 모든 걸 이해한다는 오해, 그녀가 더없이 아름답다는 오해, 그는 결코 변하지 않을 거란 오해, 그에게 내가 필요할 거란 오해, 그가 지금 외로울 거란 오해, 그런 그녀를 영원히 사랑할 거라는 오해... 그런 사실을 모른 채 사랑을 이룬 이들은 어쨌든 서로를 좋은 쪽으로 이해한 사람들이라고, 스무 살의 나는 생각했었다. 결국 내게 주어진 행운이 있다면 바로 그것이었다. 그런 서로의 이해가, 오해였음을 깨닫지 않아도 좋았다는 것... 해서 고스란히 서로가 이해한 서로를 영원히 간직할 수 있었다는 것...
세계라는 건 말이야, 결국 개인의 경험치야. 평생을 지하에서 근무한 인간에겐 지하가 곧 세계의 전부가 되는 거지. 그러니까 산다는 게 이런 거라는 둥, 다들 이렇게 살잖아... 그 따위 소릴 해선 안 되는 거라구. 너의 세계는 고작 너라는 인간의 경험일 뿐이야. 아무도 너처럼 살지 않고, 누구도 똑같이 살 순 없어. 그딴 소릴 지껄이는 순간부터 인생은 맛이 가는 거라구.
인간은 참 우매해. 그 빛이 실은 자신에게서 비롯되었다는 걸 모르니까. 하나의 전구를 터질 듯 밝히면 세상이 밝아진다고 생각하지. 실은 골고루 무수한 전구를 밝혀야만 세상이 밝아진다는 걸 몰라. 자신의 에너지를 몽땅 던져주고 자신은 줄곧 어둠 속에 묻혀 있지. 어둠 속에서 그들을 부러워하고... 또 자신의 주변은 어두우니까... 그들에게 몰표를 던져. 가난한 이들이 도리어 독재 정권에게 표를 주는 것도, 아니다 싶은 인간들이 스크린 속의 인간들에게 자신의 사랑을 헌납하는 것도 모두가 그 때문이야. 자신의 빛을... 그리고 서로의 빛을 믿지 않기 때문이지, 기대하지 않고... 서로를 발견하려 들지 않기 때문이야. 세상의 어둠은 결국 그런 서로서로의 어둠에서 시작돼. 바로 나 같은 인간 때문이지. 스스로의 필라멘트를 아예 빼버린 인간... 누구에게도 사랑을 주지 않는 인간... 그래서 난 불합격이야. 나에게 세상은 불 꺼진 전구들이 끝없이 박혀 있는 고장 난 전광판과 같은 거야.
작가 소개
지은이 : 박민규
1968년 울산에서 태어나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했다. 2003년 『지구영웅전설』로 문학동네작가상을,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으로 한겨레문학상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2005년 신동엽창작상, 2007년 이효석문학상, 2009년 황순원문학상, 2010년 이상문학상을 수상했다. 소설집 『카스테라』(2005)와 『더블』(2010), 장편소설 『핑퐁』(2006) 등을 썼다.
목차
라스 메니나스
무비 스타
내가 처음 당신의 얼굴을 보았을 때
켄터키 치킨
Lucy in the Sky with Diamonds
겨울, 나무에 걸린 오렌지 해
딸기밭이여, 영원하리
달의 편지
바람만이 아는 대답
어떤, 해후
해피엔딩
Writer’s Cut
작가의 말 | 부끄러워하지 않고 부러워하지 말기
개정판에 부치는 후기 | 그 후 17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