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리뷰
지금 이 순간의 인도는 어떻게 역사가 되는가
7년간 진행한 수백 명의 인터뷰
보도, 역사, 논쟁이 결합된 탁월한 르포
습기를 머금어 구겨지는 종이처럼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사람들을 변화시키다 “10년 전쯤부터 사랑하는 사람들이 미쳐가기 시작했다.”
이 책의 첫 문장이다. 바깥에서 들어온 이념과 신념이 가족, 친구, 이웃 사이를 파고들면서 서로 때려죽이고, 비난하고, 고발해온 삶이 여기 담겨 있다. 저자의 친척 한 명은 언제부턴가 무슬림들은 인간도 아니라고 비하하기 시작했다. 그 말을 처음 들었을 때 너무 낯설었다. 왜냐하면 그는 이전에 무슬림에 대해 언급한 적이 한 번도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는 말만 꺼냈다 하면 무슬림 이야기로 몰고 간다. 최근 인도에서는 습기를 머금어 구겨지는 종이처럼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사람들을 변화시키고 있다.
『거대한 퇴보』는 ‘힌두교도와 무슬림 간의 분쟁’이라고 간단히 요약될 수 없는 책이다. 최근 10년간 평범한 인도인들은 ‘사실’보다 ‘감정’에 더 몰두해 자신들의 기억을 만들어왔다. 감정은 폭력에서 양분을 흡수하면서 덩치를 점점 더 키워왔다. 이제 사람들은 인도의 다원주의적 뿌리를 대놓고 거부하기 시작했다. 2014년 나렌드라 모디 총리의 당선 이후 우파 힌두 민족주의가 득세하면서 생겨난 풍경이다. 서로가 정치와 언론으로부터 영향을 받으면서 점점 더 냉담해지고 알 수 없는 존재로 변모해갔다.
이 책은 사라진 것에 대해 애통해하는 기록이자, 조사에 기반한 회고록이며, 극단주의로 몰고 가는 우파 힌두 민족주의의 뿌리를 캐려는 시도다. 저자는 지난 7년간 폭동 피해자, 가해자, 경찰 등 수백 명의 사람을 만나 인터뷰했다. 감정, 목소리, 일어났던 일 모두 저자의 문장으로 새롭게 태어난다. 『아이리시타임스』는 이 책의 특징으로 “아름다운 문체”를 꼽았다. 다년간 목격하고 인터뷰한 것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의미가 바래거나 뒤바뀌기도 한다. 이를테면 저항과 자유를 부르짖는 모습이 감격스러워 남겨두었던 저자의 3년 전 기록은 지금 다시 보니 구역질을 일으켰다. 당시의 열정이 너무 나이브했고, 지금 변한 건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이 책은 인도가 어떻게 현재의 모습에 이르렀는가를 연대기로 다루지 않는다. 역사의 조각들을 맞춰나가는 방식으로 상황을 명확히 보려 한다. 이를테면 몇 년 전 큰 이슈가 되었던 인도의 신원 확인 프로젝트의 기원으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이는 훼손되기 전 인도의 독이 흘러나온 시작점을 찾으려는 것이다.
저자는 기자 정신으로 인도 뒷골목에 들어가 수많은 디테일로 책을 완성한다. 이야기는 여러 장소와 시간을 넘나들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하는 인물이 한 명 있다. 바로 니사르다. 2020년 2월 24일 오후 3시에 일어난 폭동의 목격자인 그는 데님 등의 옷을 만드는 사람이다. 하지만 목격 이후로 생업은 제쳐둔 채 한 달 중 거의 절반을 법원에서 보낸다. 그것도 1년 내내. 인도의 사법 체계에 맞닥뜨려 니사르가 겪는 시련을 저자 역시 끝까지 함께하는데, 이것이 이 책의 전체 서사를 관통하는 하나의 줄기이기도 하다.
거리는 역사가 된다 2014년 모디가 당선된 후 그가 속해 있는 인도국민당BJP과 그를 뒷받침했던 인도국민의용단RSS은 현재의 우파 힌두 민족주의를 극단으로 치닫게 하는 세력이 되었다. 이 책에서 저자는 BJP와 RSS의 내부자들을 인터뷰하며 이들 조직을 파헤친다. RSS는 1925년에 만들어졌는데, 창설자인 헤지와르는 모든 폭동이 ‘무슬림 폭동’이라고 확신하며 ‘독을 품은 쇳소리’가 퍼진다고 여겼다. 현 정권의 지도자들은 2014년 이후 타종교 신자들에 대한 증오감을 키울 것을 촉구했고, 힌두가 우월하다는 생각을 점점 더 노골적으로 드러내왔다.
그것의 최대 분기점이 된 것은 현 정권의 내무장관 아미트 샤의 시민권 수정법안이다. 예리한 저널리스트인 저자는 1장을 아미트 샤가 무심코 발언했던 장면에서 시작한다. 샤는 원래 경청을 잘하는 인물이었지만, 이제는 무슬림을 박해할 수단인 시민권 수정법안을 통과시키려 하고 있었다. 이 법안은 표면적으로는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 방글라데시의 소수민족에게도 시민권을 부여한다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실제로는 이 법의 시행으로 거의 200만 명의 시민이 무국적자로 전락했다. 그리고 그들 대부분은 무슬림이었다.
“시민권 수정법 반대, 국가시민명부 반대.” 2019년 12월 15일 자미아대학에서는 학생들이 이 구호를 외치며 시위하러 모였다. 그리고 경찰은 바리케이드 양쪽으로부터 시위 진압을 시작했다. 구타가 발생했다. 뒤에서 옆에서 앞에서 곤봉이 사정없이 날아들었다. 무슬림들은 “갈기갈기 찢어버려야 해”라는 말과 함께.
그로부터 3개월 후 학살이 자행되었다. 2020년 2월 뉴델리에서는 경찰 폭력과 반무슬림 폭동으로 53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저자는 그 사상에 뿌리 깊게 관여한 이들, 가해자들, 이웃들, 목격자들, 피해자들을 이 책의 주요 인물로 등장시킨다.
현관문을 열면 들어오는 건 도시의 실패들뿐무함마드 메하르반. 그는 사진가로서 저자에게 수많은 인터뷰 대상을 소개해주었다. 처음에 평화로웠던 시위는 충격적인 폭력에 직면했다. 새로운 모습의 인도가 부상 중이었고, 정교분리주의와 평등이라는 오랜 규범들은 내팽개쳐졌다. 이 낯선 나라는 상황에 따라 필요하면 살인까지도 정당화하기 시작했다. 저자는 이 사람들과 상황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면서 이야기를 들었다.
하지만 무슬림들은 자신이 당한 일을 증언하다가도 위협을 느끼면 곧바로 종적을 감췄다. 무슬림이고 게이이며 노동계급 출신인 J―가 그렇게 사라졌다. 저자는 다시 메하르반을 통해 2020년 2월 힌두 폭도들이 불태운 시장으로 가게 되었고, 거기서 니사르를 만날 수 있었다.
니사르는 이 책의 핵심 목격자다. 2020년 2월 23일 저녁 정치 지도자 카필 미슈라는 델리 북동부에 군중을 결집시켰다. 이로 인해 무슬림들은 거리에서 살해당했다. 이튿날인 24일 오후, 남자들은 니사르의 집에서 몇 분이면 닿는 운하 위 낮은 다리 위에 멈췄다. 그들은 바리케이드를 설치하고, 대형 확성기를 꺼냈다. 다리 위에서 인도국민당의 지역 지도자가 군중을 선동하기 시작했다. 불길한 구호들이 울려 퍼졌다. “할례받은 놈들은 쫓아내라.” “힌두여, 깨어나라! 깨어나라!”
군중은 이웃들에게 인사 대신 조롱과 전투의 함성을 내뱉기 시작했다. 저녁 5~6시쯤 남자들은 무슬림의 집과 가게의 문을 부수고 들어갔다. 손에는 몽둥이, 쇠막대를 들고 있었다. 어둠 속에서 벌어진 대학살은 오로지 소리로만 가늠되었다. 고함, 뜀박질, 비명.
경찰서에 피해를 신고하기 위해 방문했던 니사르의 고난은 이때부터 시작되었다. 가해자의 이름을 대면 경찰은 이름을 빼고 담백하게 진술하라고 했다. 가해자를 두둔하는 것이었다. 그러고는 거꾸로 니사르를 심문하기 시작했다. 똑같은 질문이 계속 반복되었고, 더 나아가 그들은 니사르 기억의 신빙성이 떨어진다며 따졌다. 이런 심문은 동부 델리 카르카르두마 법원 단지 5층에 있는 71호 법정에서 1년 내내 계속되었다.
사실 니사르에게는 희망이 삶의 방식이었다. 하지만 현관문을 열면 눈에 들어오는 건 도시의 실패들뿐이었다. 그리고 그 실패들을 자꾸만 자신에게도 투영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의 집 앞을 가로막고 있는 남자들, 사방에 흩어진 종이와 재. 점점 흐려지는 폭동의 장면들. 이것이 그가 가진 패의 전부였다. 이런 현실 속에서 그는 희망의 크기를 대폭 줄였다. 그는 지치지 않고 매일 법정을 드나들며 증언했지만, 저자는 니사르 역시 여느 목격자들처럼 용기와 무모함 사이에 갇혀 꼼짝도 못 하는 것을 지켜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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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룬다티 로이가 강력 추천한 이 책은 세계 최대 민주주의의 위기에 봉착한 인도를 파헤치면서 관료제, 법 집행 기관, 언론, 사법부에 희망을 걸고 있는 모든 사람에게 경종을 울린다. 놀랍도록 세밀하고 철저한 보도를 바탕으로 하는 기록은 지금 이 순간의 인도를 정확히 포착하고 있다.

위협이 느껴졌고, 저항은 고단했다.
이성에 귀 기울이지 않는 그들이라도 함께 자란 데다 그들이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다가갈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J—는 조용한 시간에 맞춰 델리 거리를 걸었다. 저녁이 되어 공원에 모인 사람들이 단결의 노래를 부를 때면 시선을 피해버렸다. 누군가에게는 낭만적인 광경일지 몰라도 그에게는 우스꽝스러울 뿐이었다. 수십 년 동안 그의 삶은 털끝 하나 변한 게 없는데 저들의 노래에 누가 설득될까? 그 노래에 무슨 가치가 있을까? 누구를 위한 노래인가? 그는 상징이 된 남자, 버락 오바마를 떠올렸다. 하지만 정확히 무엇의 상징인가? 오바마는 희망과 변화를 약속했지만, 그의 바로 다음은 트럼프였다. 희망의 시간이 끝나고 곧바로 이어지는 게 공포의 시간이라면 무슨 소용이 있을까? 문제의 뿌리는 훨씬 더 깊다는 것을 그는 경험을 통해 깨달았다. 그는 다가오는 사태를 직감하고 친구에게 말했다. “무슬림을 향한 증오가 분출되고 있어. 이제는 무슨 일이든 일어날 수 있어. 대량학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