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등단 이후 시네필들에게 크게 주목받아온 96년생 평론가 김병규의 첫 평론집 『빈손의 영화』가 마음산책에서 출간되었다. 저자 김병규는 2018년 영화잡지 《필로》에서 신인 영화평론가로 선정되고, 같은 해 《씨네21》 영화평론상을 수상하며 평론가로서 비평 활동을 시작했다. 등단 전부터 네이버 블로그 아이디 ‘판타지(Fantasy)’로 시네필들 사이에서 종종 회자되던 저자는 ‘젊은 평론가’ ‘신예 평론가’라는 따분한 수식어를 지워내며 고유한 비평적 역량을 펼쳐왔다. 『빈손의 영화』는 영화평론가 김병규가 그동안 써온 글을 선별하고 재구성해 묶은 첫 책이다.
출판사 리뷰
21세기 ‘손상된 영화’의 풍경을 그리다
영화평론가 김병규 첫 평론집
“영화가 잃어버린 것은
손이라는 특별한 장소의 감각일지도 모른다”
영화사의 위기들을 점철해
새로운 성좌를 그리는 비평적 실천
『빈손의 영화』에서 저자는 영화사의 중요한 분기점을 되돌아보면서 동시대 영화가 놓인 자리를 감각한다.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가 과거와 결코 분리될 수 없듯이 21세기의 영화도 이전 세기의 영화로부터 독립적일 수 없는 간명한 전제로 하여금 저자는 현재 영화가 놓인 새로운 장소를 포착해낸다.
손은 주어진 사물을 붙잡아 아직 밝혀지지 않은 세계의 비밀과 접속하는 영화의 단면이다. 하지만 〈남쪽〉의 소녀가 손에 잡고 있던 그림엽서, 메모, 영화 포스터가 서서히 사라지고 불타서 없어지듯이 영화사에서 손의 의미는 흐릿해지고 있다. 그리고, 2023년에 공개된 〈클로즈 유어 아이즈〉에서 영화감독이자 소설가인 미겔(마놀로 솔로)은 두 손에 어떤 도구도 지니고 있지 않다. 빈손의 영화가 도착한다.
- 「책머리에」에서
총을 단단히 움켜쥐던 20세기 서부극 속 주인공의 손이, 자꾸만 물건을 놓치는 21세기의 무능한 빈손으로 스크린에 돌아올 때 지금의 영화는 무엇을 보여줄 수 있는가. 『빈손의 영화』는 이 긴요한 질문에 응답하려는 비평적 실천을 보여준다.
“연결을 끊어라.
그리고 다시 (작은) 연결을 모색하라”
서로 다른 영화의 좌표를 잇다
저자는 『빈손의 영화』에서 홀로코스트라는 절멸의 시간을 카메라에 담지 못한 “무능한 예술”인 영화가 그 잃어버린 역사를 어떻게 현현시키는지 살펴보고(1. 부서진 장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주목할 만한 동시대 영화의 시도를 톺아 일별하며(2. 영화는 어디에 있습니까), 195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자신의 황금기로 자꾸만 회귀하려는 오늘날의 미국영화를 진단한다(3. 아메리칸 언더그라운드). 이어 1980년대 일본영화계에서 촬영소 시스템이 붕괴한 이후 일본영화에 잠재한 위태로움을 소마이 신지, 아오야마 신지, 구로사와 기요시, 하마구치 류스케, 미야케 쇼의 작품을 중심으로 살펴보고(4 유예된 몸짓), 위기를 지나 폐허가 된 한국영화의 현 상황을 냉철하게 직면한다(5 망각의 연대기).
폐허의 한가운데서 취할 수 있는 태도는 향수에 젖은 추억을 되새기거나 지나간 역사를 잊지 않겠다는 다짐에 사로잡히는 것이 아니라 아직 실현되지 않은, 그러나 언젠가 도래할 영화의 잠재성을 향해 몸을 던지는 것이다. 사라진 기억을 붙들어 역사를 다시 쓰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고정된 장소를 떠난 영화를 멀리서 응시하면서 가능한 다른 방식의 연결과 결합을 시도하는 것. 다시 말해 영화를 이루는 기존의 조건이 사라지고 난 뒤에도 영화를 지속시키는 방법에 대해 자문해보아야 한다.
- 「폐허와 상속인」에서
김병규 평론가는 이 책에서 영화사의 단절과 위기를 중점에 두면서도, 이 위태롭고 부식된 예술을 마냥 우려하거나 비관하지 않는다. 그 대신 서로 다른 맥락에 놓여 있던 영화들의 좌표를 이어 이 시대의 성좌를 탄생시킨다. “어느 때보다 파편적으로 조각나” 있는 영화는 이로써 다시금 논의의 장소를 얻는다. 영화의 역사를 채우고 있는 작품과 텍스트를 풍부하게 인용해 동시대 영화와 접속하는 저자의 글을 읽다 보면, 영화를 이해하는 새로운 지도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존 오브 인터레스트〉는 강제수용소 중심부에서 20세기 영화의 또 다른 전통적 기억을 깨운다. 그건 홈드라마의 기억이 다. 설정의 구체성을 소거하고 줄거리만 요약한다면, 이 영화는 한 가족이 아버지의 전출로 인해 흩어졌다가 재회하는 20세기적 홈드라마다. 다만 이 문장에서 아버지는 강제수용소의 기획자이고, 가족이 재회하는 장소는 아우슈비츠다.
서치라이트의 빛이 너무 강렬하다면, 온갖 기계장치들의 소음이 너무 과도하다면 리얼리티는 잠식되어버린다. 이것이 아우슈비츠에서 탈출한 두 명의 생존자가 가스실의 존재를 고발했음에도 수용소의 이미지가 우리의 인식에 포착되지 않은 이유이다. 그러므로 리얼리티를 초과하는 결합과 상상이 필요하다.
우리의 삶을 한정 짓는 조건이 우리의 현실을 연장하는 필연적 근거로 거듭난다. 아름다운 순간이다. 이 장면에 카우리스마키가 응시하는 ‘현재’의 시간이 있다. 과거에 붙잡히지 않고, 완료되지 않은 미래로 향하는 그들의 뒷모습에서 그 특별한 시제가 솟아오른다. 이것이 우리가 영화에게서 상속받은 자리, 영화의 시간이 속한 자리다.
작가 소개
지은이 : 김병규
영화평론가. 중앙대학교 영화학과를 졸업했고 대학에 다니는 동안 두 편의 단편영화를 연출했다.2018년 영화잡지 《필로》 신인 영화평론가에 선정되고 같은 해 《씨네21》 영화평론상을 수상하며 평론가로 영화 글을 쓰기 시작했다. 졸업한 예술고등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영화에 대해 가르친다. 영화를 보러 다니고 이따금 영화를 만드는 현장에 간다. 영화평론가로 활동한 지 7년이 되는 해에 첫 평론집 『빈손의 영화』를 선보인다.
목차
책머리에
영화를 붙잡은 작은 손
1 부서진 장소: 1945년, 강제수용소의 죽음과 부활한 영화
무능한 영화, 두 개의 기적_클로즈 유어 아이즈
수용소와 박물관_존 오브 인터레스트
잔해 속의 우화_피닉스
얼굴의 뒷면_트랜짓
몽타주의 이면_세계의 이미지와 전쟁의 각인 | 태양 없이
감금된 세계_영화적 고정장치에 관한 노트
과거는 아직 지나가지 않았다_고다르의 죽음과 영화의 100년
2 영화는 어디에 있습니까: 동시대 영화의 곤경과 돌파구
극장 앞의 평범한 연인들_사랑은 낙엽을 타고
영화의 추방자들_노 베어스
형식이라는 강박관념_애프터썬
‘예술영화’라는 오명
애프터 선라이즈, 혹은 영화붕괴전야前夜_아네트
불순한 영화를 향하여
평등한 만남의 장소_토리와 로키타
기계는 벌레를 포획할 수 있는가_미래의 범죄들
관광객의 영화_그랜드 투어
재구성의 장소_리허설, 워크숍, 촬영장의 영화
3 아메리칸 언더그라운드: 20세기, 미국영화의 마지막 꿈
언더그라운드 U.S.A._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카메라 너머의 불온한 것들_파벨만스
출구 없는 사막_애스터로이드 시티
미치광이들의 영화_리코리쉬 피자 | 더 배트맨
이미지의 죽음_탑건: 매버릭
망상적 엘리트주의자의 초상_오펜하이머
지워진 장소(들)_아마겟돈 타임
빈손의 영화_리차드 쥬얼
줍는다는 것_배심원 #2
4 유예된 몸짓: 1980년, 촬영소 시대 이후 일본영화의 도주
벌거벗은 신체_소마이 신지
하늘을 바라보는 영화의 곤경_아오야마 신지
영화는 외계의 것_구로사와 기요시
감염과 면역의 몽타주_하마구치 류스케
영화를 (다시) 만든다는 것_미야케 쇼
5 망각의 연대기: 2020년대, 한국영화라는 잿더미
폐허와 상속인_한국영화의 100년과 도래한 2020년대
‘한국영화’의 원점_1995년 체제에 부쳐
발명된 한국인_패스트 라이브즈 | 파묘
잘려 나간 몸(들)_밀수
목소리의 변신술_헤어질 결심
편지 쓰기의 몸짓
홍상수의 영화_소설가의 영화
도망치는 영화_도망친 여자 | 탑
도착하는 영화_인트로덕션 | 여행자의 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