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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
개정증보판
창비 | 부모님 | 2025.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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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 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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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 소개

한국 사회에 ‘홍세화’라는 이름을 처음 각인시킨 책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가 개정증보판으로 돌아왔다. 이 책은 30년 전인 1995년 초판 출간 당시, 군부독재의 여파로 아직 경직되어 있던 한국 사회에 타인에 대한 상식적인 존중과 용인을 뜻하는 ‘똘레랑스’(tolerance)를 알리며 단박에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이념과 신념이 다르다는 이유로 타인을 증오하고 배척하는 것이 당연시되었던 한국 사회에 똘레랑스의 착륙은 그야말로 충격이었고 폭발적인 호응을 불러일으켰다. 그 후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는 ‘안 읽으면 부끄러운 책’으로 알려지며 오랜 시간 열광의 중심에 있었다.

30년 전 어두운 시대의 막을 내리듯 이 책은 도착했고 변화를 갈망하던 1990년대 청년들에게 각광받았지만, 우리는 여전히 ‘똘레랑스’가 절실한 사회를 살아가고 있다. 서로의 다름을 불용하고 차이를 차별과 억압의 이유로 삼으며 공존보다 분열을 더 쉽게 선택하는 이 사회에서 대화와 타협, 존중과 인정은 갈수록 변두리로 밀려나고 있다. 타자를 향한 혐오를 원동력 삼아 자신과 반대되는 의견을 말살하려드는 사회적 분위기를 묵인한 결과, 다 함께 더 나은 민주주의의 길로 나아가야 할 탄핵 정국의 광장에서조차 시민들은 극단적으로 대립했고 화합은 우리 앞의 가장 긴요한 과제로 남았다.

그러므로 이 책의 저자 홍세화가 2006년 개정판의 서문에서 말했듯 ‘달라졌으면서 달라진 게 없는 세상이라서 똘레랑스는 여전히 유효하다. 그것은 앞으로도 아주 긴 세월 동한 계속 유효할 것이다.’(6면) 위기를 넘어 민주주의의 서사를 새롭게 써나가야 하는 이때야말로 홍세화의 똘레랑스를 다시 한번 곱씹고 소화해야 할 적기임이 틀림없다.

출간 30주년을 기념하고 홍세화의 타계 1주기를 기억하는 의미를 담은 이번 개정증보판에는 홍세화의 오랜 벗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의 추도문과 저자가 2023년 『한겨레신문』에 마지막으로 기고한 칼럼을 추가해 더욱 뜻깊다.

  출판사 리뷰

90년대, 읽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던 바로 그 책
분열과 혐오의 한국 사회를 다시 한번 각성시킬 목소리


한국 사회에 ‘홍세화’라는 이름을 처음 각인시킨 책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가 개정증보판으로 돌아왔다. 이 책은 30년 전인 1995년 초판 출간 당시, 군부독재의 여파로 아직 경직되어 있던 한국 사회에 타인에 대한 상식적인 존중과 용인을 뜻하는 ‘똘레랑스’(tolerance)를 알리며 단박에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이념과 신념이 다르다는 이유로 타인을 증오하고 배척하는 것이 당연시되었던 한국 사회에 똘레랑스의 착륙은 그야말로 충격이었고 폭발적인 호응을 불러일으켰다. 그 후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는 ‘안 읽으면 부끄러운 책’으로 알려지며 오랜 시간 열광의 중심에 있었다.
30년 전 어두운 시대의 막을 내리듯 이 책은 도착했고 변화를 갈망하던 1990년대 청년들에게 각광받았지만, 우리는 여전히 ‘똘레랑스’가 절실한 사회를 살아가고 있다. 서로의 다름을 불용하고 차이를 차별과 억압의 이유로 삼으며 공존보다 분열을 더 쉽게 선택하는 이 사회에서 대화와 타협, 존중과 인정은 갈수록 변두리로 밀려나고 있다. 타자를 향한 혐오를 원동력 삼아 자신과 반대되는 의견을 말살하려드는 사회적 분위기를 묵인한 결과, 다 함께 더 나은 민주주의의 길로 나아가야 할 탄핵 정국의 광장에서조차 시민들은 극단적으로 대립했고 화합은 우리 앞의 가장 긴요한 과제로 남았다. 그러므로 이 책의 저자 홍세화가 2006년 개정판의 서문에서 말했듯 ‘달라졌으면서 달라진 게 없는 세상이라서 똘레랑스는 여전히 유효하다. 그것은 앞으로도 아주 긴 세월 동한 계속 유효할 것이다.’(6면) 위기를 넘어 민주주의의 서사를 새롭게 써나가야 하는 이때야말로 홍세화의 똘레랑스를 다시 한번 곱씹고 소화해야 할 적기임이 틀림없다. 출간 30주년을 기념하고 홍세화의 타계 1주기를 기억하는 의미를 담은 이번 개정증보판에는 홍세화의 오랜 벗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의 추도문과 저자가 2023년 『한겨레신문』에 마지막으로 기고한 칼럼을 추가해 더욱 뜻깊다.

빠리의 유일한 한국인 택시운전사
망명자이자 이방인의 시선으로 두 사회를 바라보다


1979년 유신 말기, 비밀리에 반독재 투쟁을 전개해온 남민전(남조선민족해방전선준비위원회)의 조직원들이 대거 체포되었다. 남민전은 국가보안법을 위반한 간첩 조직이라는 누명을 쓰고 와해되었고, ‘남민전의 전사’들은 차례로 사형과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이때 동료들에게 가해지는 모욕과 폭력을 먼 타국에서 지켜만 보아야 했던 이가 있었는데, 그가 바로 홍세화다. 그 또한 남민전의 일원이었으나 당시 그는 우연찮게 빠리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남민전과 관련된 이라면 누구나 ‘빨갱이’ ‘간첩’으로 몰려 감옥으로 잡혀 들어가는 시대에 그는 귀국할 수 없었고, 하루아침에 망명자 신분이 되어 당장의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결국 그는 생존을 위해 택시운전사로 일하는 길을 택했다. 그렇게 20여 년이 지나고, 그가 빠리의 유일한 한국인 택시운전사로 일하며 한국 사회에도 프랑스 사회에도 온전히 속할 수 없는 이방인으로서 겪고 고민한 바를 써 내려간 자전적 에세이가 바로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이다.
“나는 삼중의 이방인이었다.”(81면) 홍세화는 말한다. 그는 체제에 반기를 들었다는 이유만으로 고국 땅을 밟을 수 없었고, 빠리에서는 언제나 “당신은 어느 나라에서 왔소?”(44면)라는 질문을 받는 타자였으며, 빠리의 한국인 공동체조차도 그를 위험인물로 낙인찍고 배척했다. 어디에도 섞일 수 없고 누구에게도 환영받지 못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자리에서만 보이는 진실이 있었기에 이 책에 담긴 그의 목소리는 더욱 울림이 크다.
홍세화는 “한 사회와 다른 사회의 만남”(64면)이 일으키는 충격을 생생히 증언하는 자였다. 고문과 투옥을 피해 70년대의 한국을 떠나온 그에게 프랑스인들이 일상적으로 누리고 행하는 모든 것들, 특히 저마다의 개성, 자유로운 의견 피력, 타인의 생각과 처지에 대한 존중은 뼈아프게 낯설고 부러운 것이었다. 그가 운전대를 잡고 빠리를 누비며 경험한 프랑스의 상식은 한국의 상식과 놀랍도록 달랐다. 무엇보다 인간의 존엄과 평등을 우선시하며 그렇기에 누구나 기득권에 맞서 자기의 권리와 의견을 서슴없이 주장할 수 있게 보장하는 프랑스 사회의 모습을 보며 그는 “내가 알지 못한 사회의 모습이었고 꿈틀거림이었다”(69면)라고 술회한다.
“중력이 없는 땅”(404면)인 듯 느껴졌던 프랑스 사회와 그 자신 사이의 간극은 그가 망명 신청을 위해 찾아간 프랑스 사무국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그는 사무국의 관리에게 한국으로 돌아갈 수 없는 상황을 설명해야 했지만, 짧은 영어 몇 마디로 ‘유신체제’와 ‘긴급조치’의 실체를 제대로 전달할 수 없었다. 특히 남민전의 일원이었다는 그의 말에 사무국의 관리가 “그래서 당신은 그 조직에서 구체적으로 무슨 행동을 했습니까?”(187면)라고 되묻자 그는 기어코 말문이 막혀버린다. “몇 차례에 걸쳐 박정희 군사독재정권을 무너뜨리자는 삐라를 뿌렸다는 정도”만으로도 “한국의 유신체제하에서는 취조실에서 고문을 당해야 하며 적어도 수년간의 옥살이를 각오해야” 한다는 “어처구니없지만 엄연한 사실”(187면), 이러한 사실을 가능케 한 분단의 현실을 프랑스인에게 이해시키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결국 허탈함과 분노를 못 이기고 “이상주의자도 휴머니스트도 빨갱이가 될 수 있는 곳이 바로 한국”(193면)이라고 소리치는 그의 모습은 ‘다른 생각’을 용인하지 않았던 우리의 암울했던 과거를 되돌아보게 하는 동시에 오늘날까지 계속되는 이념적 낙인을 쓰라리게 상기시킨다.

“우리들의 부싯돌은 부딪쳐야 빛이 난다”
분열과 혐오의 한국 사회에서
홍세화를 다시 읽어야 하는 이유


국가의 이념에 순응해야 하는 사회와 개인의 신념을 존중하는 사회. 무엇이 두 사회를 이토록 다르게 만들었는지에 대한 고민은 깊어질 수밖에 없었다. 홍세화는 두 사회의 차이가 ‘똘레랑스’의 유무에서 비롯되었다고 진단한다. 그에 따르면 똘레랑스란 한마디로 “다른 사람이 생각하고 행동하는 방식의 자유 및 다른 사람의 정치적·종교적 의견의 자유에 대한 존중”(374면)을 뜻한다. 당신의 이념과 신념이 존중받길 바란다면 남의 이념과 신념도 존중하라. 이것이 바로 “똘레랑스의 요구이며 인간 이성의 당연한 주장”(375면)이라고 그는 말한다. 그러니 똘레랑스가 있는 사회에서는 타인의 생각과 입장을 막무가내로 비난하거나 강제로 바꾸려들지 않는다. 서로의 다른 입장은 부단하고 치열한 대화를 통해서만 좁혀질 수 있을 뿐이다. 타자를 다른 그대로 받아들이라는 똘레랑스의 정신은 정치나 사상의 영역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나와 다른 국적, 인종, 문화, 생활방식, 정체성 등을 용인하는 데까지 나아간다. 즉 똘레랑스는 일종의 삶의 태도이자 인간 사회에서 반드시 요구되는 최소한의 배려인 것이다.
그러나 한국 사회의 모습은 어떠했는가. 홍세화는 프랑스를 지탱한 것이 똘레랑스였던 반면 한반도를 지배한 것은 “증오의 이데올로기”(71면)였다고 말한다. 남북이 서로를 증오하고 배척함으로써 내부의 결속을 꾀했던 분단의 역사는 다름을 위협으로, 타자를 적으로 간주하게 만들었다. “공산주의가 무엇인지 모르면서 벌써 공산주의자를 철저히 증오하고” “인간에 대한 사랑을 알기 전에 증오부터 배”(71면)우는 사회는 인간 사이의 신뢰와 연대, 상호 책임을 훼손하고 공동체를 찢어놓았다. 비판적 관점과 견해 들은 “우리들의 부싯돌은 부딪쳐야 빛이 난다”(399면)라는 볼떼르의 말처럼 맞부딪쳐 활력을 자아내지 못하고 증오와 독선의 논리에 의해 산산이 부수어지기 일쑤였다. 이 책에서 홍세화는 자신이 한국전쟁 때 일어난 민간인 학살의 생존자였음을 밝히며 이러한 증오의 이데올로기가 한 인간의 삶에 얼마나 잔인하고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남기는지 또한 증언한다.
오늘날 한국 사회 역시 이러한 그림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갈라치기’를 부추기는 정치 현실, 일상에서 폭력적으로 표출되는 이념적 갈등, 소수자와 약자를 향한 혐오와 차별 등이 여전히 우리 사회에 증오의 흔적이 깊게 새겨져 있음을 보여준다. 이같은 현실에서 민주주의의 지속가능성을 위해서라도 똘레랑스는 일상의 지침이자 공동체의 윤리로 자리 잡아야 한다. 다시 똘레랑스의 가치를 되새기고 실천해야 할 때인 것이다. 그것이 홍세화가 ‘보론’이라는 이름으로 이 책의 상당 부분을 할애해 똘레랑스를 설명하는 이유이고, 이 책을 지금 우리가 다시 읽어야 하는 이유이다.

소외된 이들의 진정한 벗이자 영원한 아웃사이더
홍세화의 시작점이 된 단 한권의 책


홍세화는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를 출간하고 10여 년 만에 영구 귀국했다. 고국으로 돌아온 기쁨도 잠시, 그는 다시 몸담게 된 한국 사회에 적응하길 거부했다. 깨어 있는 비판자로서, 자신이 전한 똘레랑스의 정신을 한평생 실천해나갔다. 언론인, 정치인, 사회운동가로 활동하며 보수 진보 가리지 않고 기득권의 위선과 독선을 거침없이 비판했다. 다수에게 환영받지 못하는 의견이더라도 더 평등하고 포용적인 사회를 만드는 데 보탬이 되는 것이라면 굽히지 않았다. 필연적으로 ‘아웃사이더’가 될 수밖에 없는 삶이었지만, 그는 자꾸만 더 낮고 외진 곳으로 향했다. 그곳으로 밀려난 이들, 난민, 성소수자, 여성, 장애인, 비정규직 노동자, 빈자의 벗이 되어 함께했다. 그는 진정한 자유, 평등, 연대라는 이상을 향해 부지런히 몸을 움직이는 사상가이자 실천가였다. 우리가 어떤 세상을 열어가야 하는지를 최전선에서 묵묵하게 보여준 시대의 어른이었다.
망명생활을 하기 전 그가 한국에서 경기고와 서울대를 졸업한, 일명 ‘KS’ 마크를 단 기득권이자 엘리뜨였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는 실로 놀라운 행보다. 그런 이력을 가진 그가 권력에 편승하지 않고 끝까지 ‘똘레랑스의 전도사’로, ‘아웃사이더’로, ‘소박한 자유인’으로 살아갈 수 있었던 것은 빠리에서의 20년 덕분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그간의 배경이 모두 부질없어지고 맨몸으로 다른 사회와 부딪혀야만 했던 때, 예상치 못하게 택시운전사로 일하며 “‘생존 잇기’의 쓴맛”(114면)을 감내해야 했던 날들을 잊지 않았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그 시절 프랑스어가 서툰 외국인 택시운전사를 그저 한 명의 인간으로 동등하게 대해준 손님들, 일상의 연대가 무엇인지 알려준 택시운전사 동료들, 웃고 떠들고 어깨동무하며 데모를 하던 그때 그 거리의 자유로운 빠리지앵들… 그에게 영원히 잊을 수 없는 놀라움과 감동, 씁쓸함을 안기며 그의 삶을 송두리째 바꾼 사람들, 장면들, 일화들이 이 책에 모두 담겨 있다. 홍세화의 시작점이 된 단 한권의 책,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를 펼쳐 “빠리에 오세요”(13면)라며 운을 떼는 그의 이야기를 따라가보자. 똘레랑스가 말뿐인 구호가 아니라 살아 있는 현실로 다가오고, 분열과 단절의 시대를 건너는 중인 우리에게 하나의 이정표가 되어줄 것이다.

* 故 홍세화 선생의 타계 1주기를 추모하며 홍세화 선생의 정신을 함께 기억하는 추도식과 추모문화제가 2025년 4월 18일 열릴 예정이다(문의: 홍세화 선생 1주기 추모위원회 02-6004-2000).




세상이 달라졌다고들 한다. 사실이다. 내가 돌아올 수 있었던 것도 세상이 바뀐 덕이다. 그러나 그 변화란 불평등과 억압, 배제의 행태만 바뀐 것, 다시 말해 그것들이 노골적이었던 데서 은밀하게, 그러나 구조적으로 바뀐 것에 지나지 않는 게 아닐까? (…) 이처럼 ‘달라졌으면서 달라진 게 없는’ 세상이라서 이 책이 담고 있는 메시지, 즉 차이를 차별, 억압, 배제의 근거로 삼지 말라는 ‘똘레랑스’는 여전히 유효하다. 그것은 앞으로도 아주 긴 세월 동안 계속 유효할 것이다.
「개정판 서문」에서

‘한 사회와 다른 사회의 만남’, 그것이 나에게 처음 가져다준 것은 눈물이었다. (…) 그러나 ‘한 사회와 다른 사회의 만남’은 그 만남으로 또는 눈물로 그쳐선 안 될 일이었다. 만남도 눈물도 사랑에서 오고 또 사랑을 요구한다. 또한 그 사랑은 사회 안에서 반드시 앙가주망(engagement, 사회참여)을 요구한다. 그러나 나에게 그것은 다만 ‘나 자신과 벌이는 끝없는 싸움’으로 나타났을 뿐이었다.
「한 사회와 다른 사회의 만남」에서

  작가 소개

지은이 : 홍세화
1947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1972년 대학교 재학 시 ‘민주수호선언문’ 사건으로 제적당했다가 1977~79년 남조선민족해방전선준비위원회(남민전) 조직에 가담했다. 1979년 다니던 무역회사의 해외지사 근무차 유럽으로 갔다가 남민전 사건이 터져 귀국하지 못하고 빠리에 정착했다. 이후 관광안내, 택시운전 등 여러 직업에 종사하면서 20여 년간 망명생활을 했다. 이때의 체험과 성찰을 담은 자전적 에세이이자 사회비평서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로 1995년 한국 사회에 ‘똘레랑스’(tolerance)를 전하며 뜨거운 각성을 일으켰다. 2002년 영구 귀국 후 『한겨레신문』 기획위원과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판 편집인, 진보신당 대표, 『말과활』 편집·발행인, ‘학벌없는사회’의 공동대표, 학습공동체 협동조합 ‘가장자리’ 이사장, ‘장발장은행’의 은행장 등을 지냈다. 화성외국인보호소 방문 시민모임 ‘마중’의 일원으로 활동하며 난민과 이주노동자를 지원했다. 2024년 4월 타계했다. 지은 책으로 『쎄느강은 좌우를 나누고 한강은 남북을 가른다』 『악역을 맡은 자의 슬픔』 『빨간 신호등』 『생각의 좌표』 『결: 거ㅤㅊㅣㄻ에 대하여』 『미안함에 대하여』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 『세계는 상품이 아니다』 『민주주의의 무기, 똘레랑스』 등이 있다.

  목차

개정판 서문(2006)
초판 서문(1995)
서장 “빠리에 오세요”

제1부 빠리의 어느 이방인
당신은 어느 나라에서 왔소?
한 사회와 다른 사회의 만남
이방인
떠나온 땅
길을 물어가며
아듀! 고물택시
나도 승차거부를 했다
씰비와 실비
망명 신청, 갈 수 없는 나라

제2부 갈 수 없는 나라, 꼬레
회상 1 잔인한 땅
택시 손님으로 만난 한국인들
빠리를 누비며
한 송이 빨간 장미
수현과 용빈에게
회상 2 방황의 계절
회상 3 가슴의 부름으로
뉴옌과 나
마지막 눈물

보론 프랑스 사회의 똘레랑스
마지막 당부 소유에서 관계로, 성장에서 성숙으로

추도문 올곧은 지성, 또는 소박한 자유인|유홍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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