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샘문시선 1061권. 김명순 감성시집. 한국문학상 수상 기념시집이다. 1부 '까르페디엠', 2부 '동백이 인생이', 3부 '사랑이란 명제로', 4부 '소소한 것들에 대하여'로 구성되었다.
출판사 리뷰
<평설>
자연과 물아일체의 초자아 발견의 이미지와 사유
- 강소이(시인, 수필가, 소설가, 문학평론가)
1.들어가는 글
어느 시인의 시집을 읽더라도 그 시인의 삶의 여정과 가치관, 세계관 등이 역력히 드러나곤 한다.
일면식도 없는 김명순 시인의 시집 「사랑의 정원사」를 읽는 내내 포근한 미소가 떠올랐다. 시가 난해하거나 어렵지 않아서 가독성可讀性이 높은 게 특징이다. 시집 전체의 흐름은 일상적인 소재를 다루고 있는 듯하지만, 깊이 있게 보면 김명순 시인의 시는 남다른 독특한 시 세계를 보이고 있다. 김명순 시인의 시세계를 간략하게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1) 외로움과 방황을 극복하고 초자아를 발견하며 희열을 읊은 시편들
2) 사유와 철학성이 깊은 시편들
3) 은유(metaphor)의 연결을 보인 시편과 이미지의 시편들
4) 자연과 합일 –물아일체를 보인 시편들
5) 부모님과 고향을 그리워하는 향수를 읊은 시편들
위의 특징들의 면면을 살펴보도록 하겠다.
2. 시편 들여다보기
1) 외로움과 방황을 극복하고 초자아를 발견하며 희열을 읊은 시편들
김명순 시인은 <외로움>이란 시에서 적막감과 고독을 읊었다.
“별빛 달빛만이/ 반짝이는/ 고요한 적막감... 나는 그중한 점이 되어/ …
짙푸른 새벽에 도취 된/ 관객 이여라”라고 했다.
<방황>에서는 “텅 빈 주차장이/ 모두가 떠났음을 말해 주네요”라고 했다. 모두 떠나 텅 빈 상황을 말한다. “정 많던 사람들은 오간 데 없고/ 나만 덩그러니/ 서성거리다가/ 가을바람에 구르는 낙엽에 눈물이 나고/ 가슴이 아려옵니다” 이 구절을 보면, 화자는 혼자 덩그러니 남아 서성거리게 된다. 정 많던 사람들은 모두 떠난 상황이다. 구르는 낙엽에도 눈물이 나고 가슴이 아리다. 해서 “어디로 가야 할지를 일러 주지도 않은 채/ 그 자리만 수없이 맴돈다// 길은 있으나/ 나의 길은 어디인지/ 갈 곳을 몰라 서성입니다”라고 했다. 어디로 가야 할지 방황하고 있는 화자의 상황을 직설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인간은 누구나 방황을 한다. 한가지 비전과 목표를 갖고 돌진하는 일은 그리 쉽지 않은 일이며, 그런 사람들은 흔하지 않다. 이 시의 화자로 보이는 시인 역시 방황하고 있다. 외로움, 적막감, 방황 끝에 <초자아>라는 시를 통해 보면, 시인은 마침내 길을 찾은 것으로 보인다.
<초자아>의 시에서 시인은 “터널이 되어버린 숲길로/나는 자아를 찾아 떠나기로 했다”라고 했다. 이 일은 엄청난 용기가 요구되는 일일 것이다. 평범하게 소일하며 지내도 될 터인데, 화자는 자아를 찾아 떠나기로 한다. 그곳은 아무도 오지 않는 곳이다. “정적을 깨우는/ 아무도 오지 않는 곳에서//… 새가 되어 가고 있는 나를 보았다/ 그 숲에서 난,/ 성장하고 있는 나의 자아를 보았다/ 날개를 단 초자아를”이라고 했다. 그곳에서는 정적을 깨우는 한 쌍의 새만이 나뭇가지를 오간다. 화자는 새가 되어가는 “나”를 본다. 그 숲에서 자아가 성장하고, 날개를 단 초자아를 본다.
알을 깨고 나오지 못한 이와 알을 깨고 나와 날개를 다는 이가 있다. 아마도 화자는 아무도 가지 않을지도 모르는 숲(문학의 숲)에서 자신이 다시 태어나고, 시인으로 성장해가는 것을 보며 대견하고 자랑스러울 것이다. 김명순 시인이 문학의 숲으로 입장한 것을 축하를 드리며 그 행보에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문학이 주는 기쁨과 위로, 카타르시스, 아브락사스를 얻게 되길 기원하는 마음 간절하다.
다음 시는 <샛별 소나타>의 일부이다.
소설小雪 지나버린 계절
가슴 한구석 따뜻이 전해오는 작은 전율에
내 마음에 살 차오르는 벅찬 희열과
푸른 밤 서정곡으로 설레여라
- <샛별 소나타> 일부
“가슴 한구석 따뜻이 전해오는 작은 전율”은 김명순 시인이 “문학도”로서 늦은 공부와 문학에 대한 열정으로 가슴이 설렌다는 뜻이리라.
누구에게나 시간은 공평하다. 시간은 공평하게 흐르게 마련이다. 누구나 무엇인가 바쁜 사정이 있어 삶의 질곡을 겪을 것이다. 그러다 보면 하고 싶은 일은 미뤄지기도 한다. 특히 우리 여성들의 삶은 자식들 뒷바라지로 본인의 성취는 뒷전이 되기 일쑤다. 그러나 뒤늦게라도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기필코 해내는 투지력이 있으니,
화자의 삶은 ‘성공자의 반열에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다.
‘나이도 먹었는데, 인제 와서 뭘 하겠어’라고 포기하지 않고 몰두하고 정진할 “푸른 밤의 서정곡”이 있어서 화자는 행복한 사람이다. 그래서 “새벽녘 커튼을 젖히고 샛별처럼 반짝이는 가로등 불빛들의 영롱함을 인식할 수 있는 것이다. 가로등이 있는지도 신경 쓰지 못하고 사는 일반인들에게 가로등 불빛은 절대로 영롱하게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자신의 미래에 희망을 품었기에 영롱해 보이는 것이리라.
2) 사유와 철학 성이 깊은 시
김명순 시인은 나이가 들어 남일고에 입학한 만학도이며, 늦깎이 문학도이다. 세월의 연륜이 쌓일수록 사유가 깊어지기 마련이다. 그런데 <호수>, <다 내 탓으로>. <설백 천지백>, <겨울나무>, <가슴앓이 꽃>을 보면, 시인의 삶의 태도와 사유를 엿볼 수 있다.
<호수>라는 시를 보면, 화자는 호수를 보면서 “평안해지면 정화되어 맑아지네”, “편견과 실수로 상처를 주지 말라며/ 배려와 관용을 배우라 하네”라고 했다. 호수에서 정화, 맑음을 보고 있다. 또한 “배려와 관용”을 배운다. 호수는 화자의 스승이다.
성내지 않는 잔잔한 호수가 되어 보라고
하늘바라기 호수는
부끄럽지 않은 겸손한 기품을
배우며 살아보라고
늘 한결같은 마음으로
자연의 섭리에 순응하며 살아보라고 하네
- <호수> 일부
위의 구절에서도 호수는 화자(시인)에게 스승이다. “성내지 않음”, “겸손한 기품”, “자연의 섭리에 순응”을 가르치고 있다. 이 시를 읽으면, 김 시인의 인생관과 삶의 태도를 엿볼 수 있다. 이미지의 형상화가 거의 없는 시다. 관념어와 한자어도 여럿 보이는 관념시다. 그러나 이 시를 읽으면 호수의 잔잔한 모습과 평온함이 느껴지며 호수와 같은 김명순 시인 겸손한 인품이 짐작된다. 고요해지며 맑아지는 느낌의 시이며, 시인의 삶의 태도와 기품을 알 수 있게 하는 시라고 하겠다.
다음 시 <다 내 탓으로>라는 시는 김 시인의 겸허한 삶의 태도를 직설적으로 보여주는 시라고 하겠다. 시의 전체적인, 주된 정서가 가톨릭적이다.
가슴 저리게 아파져 오는 건
너무나 작은 나 때문이더라
모두가 내 탓이라
내 탓이라
내가 아파서 우는 것도
내 탓이라
작은 내 탓이라
- <다 내 탓으로> 일부
세상에서 일어나는 것을 남의 탓으로 돌리면 원망과 한恨이 맺히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 시에서처럼 “모두가 내탓이라/ 내 탓이라// 내가 아파서 우는 것도/ 내 탓이라/작은 내 탓이라”고 했다. 자신의 탓으로 여기면 자신이 겸손해진다. 남을 원망하지 않게 된다. 겸허한 마음으로 자신을 성찰하고 반성하게 된다.
가톨릭 미사 시간에 교인들은 자신의 작은 죄까지도 반성하면서 가슴을 세 번 치며 “내 탓이요. 내 탓이요. 내큰 탓이로소이다”라고 읊는다. 통회하며 신 앞에 사죄하며 신의 자비를 구한다. 이 시를 읽으니, 마음이 겸허해지는 느낌이 든다.
김 시인 시의 사유와 철학 성의 깊이는 <겨울나무>와 <가슴앓이 꽃>에서도 잘 드러난다. <겨울나무>에서는 끝 연에서 “아아! 나는 언제쯤/ 가진 것 다 내어주는/ 너를 따라갈 수 있을까?”라고 읊고 있다. 1년 내내 인간에게 아낌없이 주기만 해 온 나무가 겨울을 맞이해서도 “밤새 하얗게/ 가지가지 꽃눈이 내려앉은 자리/ 시리도록 아름답다”라고 사유해 내며 겨울까지도 꽃눈의 아름다움으로 인간에게 카타르시스(정서순화)를 내주고 싶어한다. 겨울나무처럼 가진 것 다 내어주는 겨울나무를 따라가고 싶은 열망을 보인다. 불교에서 말하는 보시報施를 베풀며 살고 싶은 것이다.
기독교적인 세계관으로 본다면 빛과 소금의 사명을 다하고 싶은 것 일 게다. 그리고 <가슴앓이 꽃>에서는 “마지막 처절한 흙꽃으로 피었다가 지는 날 원소로 돌아가리라”라고 했다. 이 시의 전체적인 내용의 흐름으로 보아, 김 시인은 늘 모멘트 모리(Memento Mori)를 생각하며 사는 것 같다. “모멘트 모리”는 인간은 언젠가는 죽는다는 사실과 늘 죽음을 기억하라는 뜻의 라틴어이다.
“흙꽃”, “원소로 돌아가는 삶”을 생각하고 사는 삶에 대한 깊은 통찰력을 볼 수 있다. “너희는 흙에서 왔으니 너희는 흙으로 돌아가리라”라는 성경의 세계관을 보이는 깊이 있는 시라고 하겠다.
3) 은유(metaphor)의 연결을 보인 시편과 이미지의 시 편들
<노을 사랑>, <들꽃>, <동지冬至>, <서리>는 메타포가 훌륭한 시들이다. <노을 사랑>에서는 주홍빛 해가 나뭇가지에 대롱대롱 매달린 모습을 본다. 멀리 지던 해가 나뭇가지에 매달린 것으로 보인 것일 것이다. 그런데 그것을 보며, 김 시인은 “수줍어라/ 나뭇가지 사이로/ 빨갛게 잘 익은/ 감이 열렸다”고 표현하고 있다. “주홍빛 해 = 잘 익은 주홍빛 감”인 것이다. 훌륭한 은유적인 표현이다. <들꽃>에서도 “이리저리 피어나/ 손때 묻지 않은 너”인 들ㅤㄱㅗㅊ “고운 보랏빛별이여/ 이름 모를 꽃이여”라고 했다. 이름 모를 들꽃의 색깔이 보랏빛이었나 보다. 그 “보라 꽃 = 보랏빛 별”로 메타포로 연결하고 있다.
<동지(冬至)>라는 시는 어린 시절에 엄니가 동짓날 팥죽을 끓여주시던 추억 – 유년시절에 대한 회귀본능과 함께 훌륭한 메타포의 시라고 하겠다.
“끓어오르는 가마솥은 백두 천지요/ 긴 나무 주걱은 백두 주목이라” 팥죽이 펄펄 끓어오른 가마솥이 매우 컸었나 보다. 어린 눈으로 본 커다란 가마솥이 백두산 천지처럼 넓었다고 기억하고 있다. 따라서 “가마솥 = 백두천지”이고 “나무 주걱 = 백두 주목”이라는 은유로써 독창적인 발상이라고 하겠다.
그리고 이 시의 백미는 다음 구절이다.
동지섣달 싸늘한 항아리
손에 쩍쩍 달라붙는 엄동설한
세상 뒤꼍에 내놓은 팥죽 옹기
칼바람 막아주는 누옥 사랑방에서
묵객들 허기에 동이 난다
- <동지> 일부
팥죽은 아궁이 위 가마솥에서 세상 바깥으로 내놓였다. 옹기에 담긴 팥죽은 누옥 사랑방에서 묵객들의 허기를 달래며 동이 난다. 표현이 훌륭하다. 시골의 넉넉한 인심을 엿볼 수 있는 훈훈한 시이다. 이 작품은 은유의 훌륭한 표현 기법으로 그려낸 수작秀作이다.
시 쓰기의 기법 중에 메타포(metaphor-은유)적 연결은 매우 고도의 고급스러운 표현법이다. 또한 시각적, 청각적, 후각, 미각, 촉각적 심상으로 더 나아가 공감각적 심상은 시를 표현해 내는 것이 시 쓰기의 고급진 표현이다.
<서리> 시는 위의 조건을 모두 충족시키는 매우 우수한 시이다. 이 시도 어머니가 쑥버무리를 해주시던 어린 시절을 추억하며 유년시절에 대한 회귀본능을 보여주는 시이다. 잔잔한 풍경화를 보는 듯한 느낌이다. 모정母情에 대한 그리움까지 묻어있는 정감 있는 시라고 하겠다.
풀밭에 내린 서리를 보고, 시인은 어머니가 해주시던 쑥버무리를 연상해낸다. 서리 내린 풀밭 = 쑥버무리로 연결하고 있다. 이 또한 훌륭한 메타포(은유)다.
서리 밭은 은빛으로 반짝인다. 한 폭의 수채화를 보는 듯한 시각적(회화적) 심상으로 형상화 해내고 있다.
이미지의 형상화가 우수한 작품은 <여름 바다 이야기>, <설화>, <잎새의 노래> 등이다.
<여름 바다 이야기>는 “황금빛 햇살”, “춤을 추고”, “금빛 모래밭”, “찬란한 빛줄기”, “매끄러운 물결”, “하얀 구름길”, “물보라” 등의 시각적 이미지의 형상화가 우수하다. “물빛 선율”, “아프페지오 연주”, “휘파람 소리” 등은 청각적 이미지의 형상화가 눈에 띄인다.
<설화>는 시 전체가 하얀색 이미지다. 설꽃雪花, 하얀 낮달, 하얀 들판, 눈 속에 먹이 찾아 드는 새떼들, 고목나무, 눈보라 등의 겨울 풍경은 흰색 이미지의 잔치를 보이고 있다.
<잎새의 노래>에서도 “파아란 하늘”의 파란색 시각적 이미지, 잎새의 시각적 이미지를 보인다.
위에서 잠시 언급한 것처럼, 김명순 시인의 시는 다소관념적이고 일상적인 면모를 보이기도 하지만 이미지의 형상화에 성공한 시편들도 여럿이다.
4) 자연과의 합일 –물아일체를 보인 시편들
<동백이 인생이>에서는 한때 사랑했던 친구와 결별한 후 단절의 고통을 읊은 시이다. “뚝뚝 낙화하는/ 붉은 동백이 내 마음인 양/ 핏빛 물든 사연 낭자하다”라는 표현을 보면, 친구를 잃은 화자 자신의 마음과 붉은 동백의 핏빛 묻는 사연과 일체를 보이고 있다. 동백(사물)과 자신(我)을 일체 시키고 있다. 동백꽃이 모가지째 뚝 떨어져서 바닥이 붉은색으로 물든 것과 자신의 아픔이 핏빛임이 일치한다고 본 것이다. 비애미가 그려진 작품이다. 물아일체物我一體는 시인의 처지와 자연물과 합일을 이루는 정서적 몰입의 경지를 말한다. 김명순 시인의 시적 몰입을 엿볼 수 있는 시이다.
<저녁노을>은 이 시집의 여러 돋보이는 작품들, 백미白眉 중 하나이다. 이 시에서도 “그대 심상에 물들어 버린/ 내 마음이 고와 보이지 않으신가요?”라며 저녁 노을과 물아일체를 보인 자신을 직접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또한 “온 산하에 그대가 내려앉으니”라고 했다. 노을을 “그대”라고 칭한다. 자연을 의인화하는 자연 친화적 발상이다. 또한, 재미있는 것은 “날 보고 싶어 산마루터기에서/ 잠시 머물다 가시는 당신이 아름답습니다”라고 했다. 산 마루터기에 머물러 있는 노을을 보며, 화자(시인)를 보고 싶어 산마루터기에서 잠시 머물다 간다고 했다. 저 멀리에 있는, 자신과 아무 상관도 없는 자연 현상을 끌어와 “날 보고 싶어 산마루터기에서 잠시 머무는 노을”로 자신과 연관 지어 무정물無情物을 유정화有情化한다.
노을을 바라보면 하루해가 지는 장렬한 시간의 파노라마를 강렬하게 느끼게 된다. 붉은 듯, 노란빛과 주홍빛이 구름에 언뜻언뜻 가려지면서, 태양은 일몰의 위용을 떨친다. 밝은 해로 하늘에 떠서 온 세상을 비추던 위풍당당했던 위세. 태양은 지면서도 찬란하게 하늘을 장식하는 것이다. 이 시에서도 화자는 노을을 인격화한다.
5) 부모님과 고향을 그리워하는 향수를 읊은 시편들
이 시집에는 어머니와 고향 이야기가 여러 편에서 읽힌다. 위에서 언급했던 유년시절에 대한 회귀본능과 그리움을 그린 시편들 외에도 <소천>, <소쩍새 울던 봄>을 별도로 언급하도록 하겠다. <소천>은 부모님께서 소천하던 상황을 시로 읊었다. 마음 아프고 슬픈 상황이지만, 세상을 이별하는 순간에 자식들 이름 한 번 더 불러보고 얼굴 한 번 더 보고 싶어 하는 애잔함이 느껴지는 시이다.
<소쩍새 울던 봄>도 역시 애잔함이 묻어나는 시이지만,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인생의 허망함과 시름, 세월의 무상함의 가라앉는 정서를 보인다. 그러나 소쩍새 울던 봄과 벚꽃의 화사한 봄밤의 시각적 이미지가 또한 양립하고 있어서 이 시는 매력 있는 시다. “소쩍새 울던 그날에도/ 이 봄은 있었건만/ 세월 훌쩍 뛰어넘은 오늘/ 소쩍새 울음소리는 들리지 아니하고, 쌩하니 지나는 차 소리만 요란하네”라고 했다. 오늘도 소쩍새 울던 그 봄날인데, 소쩍새 울음소리도 벚꽃도 어머니도 부재한다. 단지 차 소리만 요란하다.
시간은 흐른다. 흐르는 시간을 아무도 잡을 수가 없다. 소쩍새 울던 그날, 어머니는 그 새소리를 “소쩍새 이니라”라고 이름을 붙여 알려주셨다. 큰 오라비, 어머니, 벚꽃 소쩍새는 화자의 유년 시절의 한 장면이다. 공기 속에 스며든 벚꽃 향기, 소쩍새 소리는 화자의 기억 속에 각인된 그리움으로 가슴 속에 웅크리고 있다. 벚꽃 향기 불어오던 옛 시절, 어머니의 모습이 그리워 눈가엔 눈물이 글썽인다. 예민한 감수성이 그려지고 있으나, 이 시는 어린 시절과 가족의 정을 그리워하지만, 소쩍새도 벚꽃도 가까운 주변에서 찾아보기 힘든 현실이다. 소쩍새와 벚꽃을 보려면 시간을 내어 자연 속에 일부러 찾아가야 하는 게 요즘의 현실이다. 여의도 윤중로에 벚꽃이 유명하다. 도심 여기저기에서도 벚꽃을 심어놓은 걸 볼 수 있다. 그러나 김명순 시인이 보고 싶은 벚꽃은 어머니와 큰 오라버니와 함께 보았던 벚꽃일 것이다. 함께 들었던 소쩍새 소리가 그리운 것이다. 향수鄕愁가 느껴지는 훌륭한 수작秀作이라고 하겠다.
3. 나가는 글
위에서 김명순 시인의 면면을 살펴보았다. 대부분 일상적인 소재를 시로 읊고 있다. 다른 시인들의 대부분 처녀 시집에서도 보이는 양상이다. 김명순 시집 「사랑의 정원사」는 다음과 같은 특징으로 요약할 수 있음을 살펴보았다.
1) 외로움과 방황을 극복하고 초자아를 발견하며 희열을 읊은 시편들
2) 사유와 철학 성이 깊은 시편들
3) 은유(metaphor)의 연결을 보인 시편과 이미지의 시편들
4) 자연과 합일 –물아일체를 보인 시편들
5) 부모님과 고향을 그리워하는 향수를 읊은 시편들
「사랑의 정원사」와 같은 훌륭한 시를 읽게 되어 기쁜 마음이다. 김명순 시인은 시에 관한 공부와 애정이 깊은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시를 다룰 줄 아는 예민한 감수성의 우수한 자질을 가진 시인의 시를 읽게 되어 기쁜 마음이다. 문학의 숲에서 초자아를 발견하였으니, 더욱 더 성장하고, 더욱 정진하여 문업文業을 쌓게 되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두 번째 세 번째… 시집을 내면 낼수록 시의 지평이 넓어질 것으로 보이는 자질 높은 시인의 평설을 쓰게 된 것으로 보인다. 초자아가 성장해 가시는 것을 기쁜 마음으로 지켜보고 싶다.
<평설>
자연과 하나가 되어
그 속에서 삶을 살아가게 하는 시詩
- 김환생(시인, 수필가, 문학평론가)
김명순 시인의 시를 읽으면 마음이 차분해진다. 시인의 언어는 그냥 일상적인 언어들인데 읽으면 읽을수록 자연과 하나가 되어 그 속에서 내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가를 배운다. 저물어 가는 하늘빛은 어떤 빛일까? 그 하늘에 곱게 번지는 노을은 하루를 보내는 내 마음이다. 저물녘 내 마음은 어둡지 않고 노을처럼 고운 빛으로 하루를 마감한다.
저물어 가는 하늘빛/ 노을이 참 곱기도 하다
내 마음 같은 하늘빛/ 하늘빛이 내 마음이라
보고 또 보아도/ 아름다운 나의 하늘이시여!
- <하늘빛> 전문 인용
시 ‘자화상’에서는 단풍과 한 몸이 되어 조용히 웃고 있는 시인을 본다. 시인의 모습이 이렇다. 김명순 시인은 여러 가지 이유 때문에 늦게 공부를 시작했다. 그렇게 공부를 하면서도 항상 상냥하고 쾌활하며 재치가 있다. 시인은 누구에게나 다정한 웃음으로 먼저 다가가 자기 자신을 드러낸다. 자기를 숨기지 않고 드러내면서 상대방을 포용하고 감싸준다. 그러면서도 무엇 하나 놓치지 않고 자기 것으로 만들지만, 필요에 따라 다른 사람들과 공유할 줄 안다.
그런 시선을 가지고 있기에 이런 표현이 가능하다.
가을걷이 끝난 들녘
단풍 곱게 물든 나무 아래
살며시 비집고 자리해 본다
있는 듯, 없는 듯,
수줍은 듯, 멋쩍은 웃음
멋쩍은 몸짓으로
카메라 반사 찰칵,
저 먼 뒤안길
풋풋했던 청춘이었더라면
이래도 저래도
달빛 그리듯 어여쁘겠지만
오십도 훌쩍 넘긴 후반 길에
기능 좋은 사진기가 있다 한들
그 나이 어디로 갈까만
그래도 여심인지라
곡선 어여쁜
아낙이고 싶어라
- <자화상> 전문 인용
김명순 시인은 정읍에 있는 남일고등학교를 다녔다. 일반계 고등학교에서 정년 퇴임한 필자가 그 학교에서 학생들을 지도하던 어느 날, 한 학생으로부터 ‘시를 배우고 싶다.’는 문자를 받았다. 나는 그 학생을 불러 상담을 했다. 겸손하고 순종적인 그 학생의 단정한 태도가 내 마음을 움직였다. 그렇게 시를 배우기 시작한 김명순 학생의 문학적 재능은 참으로 남달랐다. 무엇보다 시상詩想이 참신하고 표현이 자유로웠다. 깊은 성찰을 통해 자신을 비우고, 그렇게 바라본 사물을 따뜻하게 안아주는 시선視線이 항상 곱게 보였다.
날마다 마주하는 우리들
가랑잎 굴러가는 것만 보아도/
까르르 웃는 우리들은 초로初老의 고딩들이죠
시선 하나 몸짓 하나에도 함께 웃어 주고/
격려와 응원으로 서로가 헤아려 주며 행복해하지요
고3, 가슴이 벅차오릅니다/ 왠지 어깨도 으쓱합니다/
대견스럽기도 합니다
우리 반 친구님들 축하해요/ 고3 되신 거요.
토닥토닥 존경합니다/ 우리 언니들과 오라버니
그리고 늘 호탕한 웃음으로 이끌어 주시는 담임선생님
늘 학생들을 위해 애쓰시는 남일의 모든 선생님!
정말 고맙습니다/ 존경합니다/ 사랑합니다/
언제까지나 늘 건강하세요
- <행복했던 고3> 전문 인용
고향은 어떤 곳인가? 우리들의 고향은 어디인가? 고향에 가고 싶지 않은가? 김명순 시인의 시를 읽으며 고향을 생각해본다. 시인은 고향에 대해 그의 시 ‘고향’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가고 싶다, 내 고향
낯선 객지에서 살아오면서/
스스로를 위로했다/
제2의 고향이라고
늘 숨겨져 있던 마음/ 가슴 울리는 뭉클함/ 내 고향
부모님이 보고 싶어지고/
어릴 적 추억들이 모락모락 연기처럼 피어오를 때
힘이 들고 외로울 때/ 향수는 고향을 향해 달린다
세월만큼이나 하얘진 머리칼을 쓰다듬으며/
아련한 추억으로 그리움을 삭혀본다
- <내 고향> 전문 인용
고향이 그립지 않은 사람이 있겠는가? 그 고향이란 어떠한 곳인가? 고향을 떠나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내가 태어나고, 내가 자란, 내 어린 시절의 코흘리개 친구들이 있는 곳, 내 유년의 기억이 서려 있는 곳, 내 어머니가 계신 곳이 그립다. 어머니의 품 안이 그리워진다. 그가 만일 외국에 나가 있다면 내 조국이 그립다. 내 조국이 나의 고향이다. 고향은 바로 그런 곳이다.
양로원을 방문한 일이 있었다. 거기에 있는 어르신들께서 처음에는 나를 쳐다보지도 않으셨다. 담담한 표정이 아니라 아예 무관심하셨다. 1급 심리상담사인 내가 어떻게 어떻게, 참 어렵게 그 어르신들과 말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저에게 하시고 싶은 말씀이 없으시냐?’라고 했더니한 분이 더듬더듬 말씀을 하셨다.
‘손주들이 보고 싶어요. 아들딸이 보고 싶어요.’라고 말씀하시고 입술을 다무셨다.
‘다른 말씀은 없으셔요?’라고 여쭸더니 다른 분이 나를 한참 물끄러미 바라보시다가 말씀하셨다.
‘고향에 가고 싶어요.’라고 말씀하시자 모두들 그 말씀에 눈물을 흘리고 계셨다.
서투른 입술로 그렇게 말씀하시는 어르신들은 넋을 놓은 분들이 아니셨다. 복잡한 일을 못 하시는지 몰라도 단순한 말씀만을 겨우 하시는 어르신들은 알고 보니 치매
환자라고 볼 수 없었다.
그런 일이 있고 난 어느 날 나는 문득, 그분들이 말씀하신 고향에 가고 싶다는 말씀이 어머니를 보고 싶다는 말씀이셨구나를 알고 돌아가신 내 어머니 생각에 한동안멍하니 앉아 있었던 일이 있었다. ‘나의 고향이 바로 나의 어머니였구나!’를 요양원에 내던져진 어르신들을 통해서 비로소 알게 되었다. 그 말을 여러 문인과 만나 말하며 모두가 깊은 상념으로 요양원을 생각해 본 일이 있다.
김명순 시인의 고향은 경북 ‘안동’이다. 안동을 떠나 객지인 ‘전주’에서 거의 평생을 살면서 세상살이가 쉽기만 했을까? 때로 삶이 힘들고 외롭고 아플 때 얼마나 고향이 그리웠겠는가. 시인의 시를 읽으면 누구라도 고향이 그리워질 것이다. 나는 이 한 편의 시를 읽으며 ‘이 한 편의시 속에 김명순 시인의 모든 것이 다 들어있다고 말하고 싶다. 시인은 이렇게 일상적인 언어로 우리를 감동시켜 많은 생각들을 하게 한다.
김명순 시인을 지도한 선생으로서 시인의 탁월한 시적 재능을 아낀다. 누가 읽더라도 김명순 시인의 시를 읽으면 일상적인 언어의 사용에 호감을 느끼며 시상詩想에 공감을 일으키며 시인의 시詩 세계로 깊이 빠져들어 갈 것이다.
김명순 시집에 상재한 모든, 시들이 우수한 시이지만 그 가운데 몇 편을 골라 서문에 인용하였다. 두서없는 글이지만 시인의 앞날의 응원이 되었으면 마음이다. 시인의문운이 창대하기를 기원하며 순수를 잃고 사는 세상의 독자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작가 소개
지은이 : 김명순
전북 전주시 거주 남일고등학교 졸업 군산군장대학교 재학중 (사)문학그룹샘문 이사 (사)샘문그룹문인협회 이사 (사)샘문학(구,샘터문학) 이사 (사)한용운문학 편집위원 (주)한국문학 편집위원 (사)샘문뉴스문화부 기자 이정록문학관 회원 샘문시선 회원 <수상> 2023 한용운문학상 시 등단(샘문) 2024 한국문학상 우수상(샘문) 미당문학 전국지상백일장 입선 전국새만금청소년사문학상 장려상 2024 신춘문예 샘문학상 당선 2024 샘문뉴스회장상 <표창> 2024 국회의원상 <공저> 이별은 미의 창조 불의 詩 님의 침묵 <한용운문학시선집/샘문> *****위대한 부활 그 위대한 여정 호모 노마드투스 <한국문학시선집/ 샘문>*****태초의 새벽처럼 아름다운 사랑 외 다수 <컨버전스시선집/ 샘문>*****움직이지 않으면 변화가 없다 <위당 김환생 헌정문집>
목차
여는 글 / 4
자연과 물아일체의 초자아 발견의 이미지와 사유 / 6
자연과 하나가 되어 그 속에서 삶을 살아가게 하는 시 / 18
제1부 : 까르페디엠
2월의 꿈 / 30
가슴앓이 꽃 / 31
가을 소나타 / 32
미친 가을 사랑 / 33
겨울나무 / 34
새벽기도 / 35
고갯길 / 36
내 고향 / 38
그리움 / 40
임 그림자 / 41
그저 마냥 웃지요 / 42
까르페디엠 / 43
금산사 찜질방 / 44
탈옥수 / 46
꽃길만 걸어요 / 47
자화상 / 48
제2부 : 동백이 인생이
낙엽이 가는 길 / 50
노을 사랑 / 51
행복했던 고3 / 52
설화雪花 / 54
설백 천지백 / 55
늦가을 단풍길 / 56
당신은 / 57
도라지 꽃차 / 58
동백의 기도 / 59
동백이 인생이 / 60
동지冬至 / 62
들꽃 / 63
딸바보 / 64
만월가滿月歌 / 65
만추 연가 / 66
무의식증無意識症 / 68
물수제비 / 69
물새 / 70
제3부 : 사랑이란 명제로
잎새의 노래 / 72
여름 바다 이야기 / 73
이별가 / 74
만학도의 봄 / 75
영롱한 봄노래 / 76
장미 / 77
봉숭아 연정 / 78
비움의 진리 / 80
방황 / 81
외로움 / 82
사랑의 정원사 / 83
옛사랑 / 84
사랑이란 명제로 / 86
다 내 탓으로 / 88
사랑의 방식 / 89
상실의 시대 / 90
바람결 / 91
생로병사 / 93
설레임 / 94
제4부 : 소소한 것들에 대하여
지구별 생태계 / 96
서리 / 97
아, 세월아 / 98
세월호 / 100
억새 무희 / 101
소천召天 / 102
소소한 것들에 대하여 / 104
청송靑松 / 105
솔 향기 피는 밤 / 106
순리順理 / 108
씨앗의 전설 / 109
아픈 사랑 / 110
여명을 기다리며 / 111
꿈꾸는 씨앗 / 112
애哀 / 114
고독한 눈물 / 115
여름 산 / 116
열매 / 117
오래 묵은 사랑 / 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