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리뷰
“몇 년 동안이나 끈덕지게 마음을 괴롭혀서 끝내 종이에 꾹꾹 눌러쓸 수밖에 없는 것, 그것은 위대하든 보잘것없든 속절없이 문학이 됩니다.” 《뾰족한 전나무의 땅》을 ‘미국 문학의 3대 걸작’으로 꼽은 윌라 캐더는 세라 온 주잇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말했다. 마음속에 끈적하게 들러붙은 불편한 장면들까지 떼어내지 않고 받아들여야 수백 년을 살아남는 ‘문학’이 되듯이, 위대하든 보잘것없든 ‘나’를 이루는 것들을 담대하게 마주해야 비로소 내가 ‘나’의 주인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다섯 편의 소설을 모았다.
너새니얼 호손의 탄생 220주년을 기념해 출간하는 《주홍 글자》는 ‘낡아빠진 통념의 낙인’이라는 앙상한 이미지로 작품을 ‘낙인찍은’ 독자에게는 완전히 다른 이야기로 가닿을 소설이다. 화려한 무늬로 덧댄 인간의 비겁한 마음보다 ‘희망’이라는 간절한 글자로 새긴 정직한 마음이 희미하더라도 더 오래 빛날 수 있음을 통렬하게 드러낸다. 윌라 캐더가 말한 ‘미국 문학의 3대 걸작’ 중 또 한 작품이기도 하다.
국내에 처음 번역된 《뾰족한 전나무의 땅》은 메인주의 한 바닷가 마을에서 머문 주인공이 짙어지는 여름처럼 한 계절 그곳 사람들과 나눈 짙은 우정을 밀도 높은 문장으로 그린 소설이다. 윌라 캐더뿐만 아니라 헨리 제임스, 어슐러 K. 르 귄 등에게도 극찬을 받았고, 주잇을 ‘미국 지방주의 문학의 선구자’라고 일컫는 세간의 평가가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해준다. 앨미라, 블래킷, 전나무, 소귀나무, 웜우드⋯⋯ 등장인물과 각종 나무나 약초의 이름을 가만히 따라 읽다보면 어느새 “몽돌 해변 너머 조붓한 만에 서서 우리를 기다리는” 누군가를 반가이 마주칠 수 있는 아름답고 신비로운 작품이다.
1930년대 모던 상하이의 밤 문화를 사랑했던 작가 무스잉의 소설집 《상하이 폭스트롯》도 국내 처음으로 선보인다. 쏟아져 들어오는 서구의 문화와 사상 속에서 순응하거나 도태될 수밖에 없는, 뜻대로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춤추는 것밖에 없던 상하이 젊은이들의 불안감과 두려움을 폭스트롯 댄스 리듬에 맞춘 듯한 감각적인 문장으로 그려낸다. 스물여덟 살에 요절한 무스잉이 더 오래 작품 활동을 했다면 어떤 작품을 써냈을지 궁금해지는데, “상하이, 지옥 위에 세워진 천국!”이라는 〈상하이 폭스트롯〉의 첫 문장에서 ‘상하이’를 ‘서울’로 바꿔 읽는 일도 흥미롭다.
《사생아》는 중도에 읽기를 멈출 수 없는 소설이다. 작가와 작품 모두 국내에 처음 소개하는 것이지만, 꼬리에 꼬리를 무는 궁금증이 끝내 이야기를 단번에 읽도록 만드는 보편성을 지녔기 때문이다. 사건은 엄마를 떠나보낸 뒤 세상에 혼자 남은 주인공이 외로움과 고립감을 견디다못해 어린 시절 머릿속으로 만들어낸 상상 속의 아이를 다시 불러내고, 그 아이가 다른 사람의 눈에까지 보이게 되면서 벌어진다. 이 기이하고 명료한 서사의 이면에는 당시 영국 사회가 독신 여성을 바라보는 불편한 시각도 고스란히 담겨 있다. 주인공이 스스로 창조해낸 존재에 대해서는 온전히 자신이 소유권을 지녀야 한다는 듯 행동한다는 점에서 《프랑켄슈타인》을 떠올리게도 한다.
1930년대에 《미스 몰》만큼 매력적인 여성 캐릭터를 등장시킨 소설이 있었을까? 가정부인 미스 몰은 어리지도 예쁘지도 순진하지도 않고, 당시의 사회가 규정한 여성상에도 전혀 맞지 않는다. 하지만 미스 몰은 자신에 대한 세간의 평가를 의식하지 않고, 때로는 자발적인 해고를 택할 정도로 정해진 규범에도 무심한 진취적인 인물이다. 캐릭터의 개성과 장점이 뚜렷할 때 소설에 빠져들기란 얼마나 손쉬운 일인지 여지없이 보여주는 작품이다. 특히 김멜라 소설가가 추천사에서 말했듯이 “‘아, 웃긴 여자’, ‘아아, 웃기고 똑똑한 여자’, ‘이럴 수가, 웃기고 똑똑한데 친절하기까지 한 여자!’” 캐릭터라면 더더욱.
세계문학 고전을 읽는다는 건 시간을 과거로 되돌리는 일이기도 한데, 때로는 거기에 앞날을 내다보게 하는 어떤 귀중한 장치나 해답이 숨어 있기도 하다. 지나간 시절을 쉬이 잊지 않고, 내가 ‘나’로서 온전히 존재하길 바라는 여러분에게 이 다섯 편의 소설이 미래를 살아가는 소중한 동력이 되길 바란다.
답답하고 불친절한 집, 혹은 그녀가 방금 나온 악의적인 유머가 번득이는 비극을 끌어안은 집. 고용된 말벗으로, 보모 겸 가정교사로, 혹은 유용한 가정부로 거의 20년 동안 생계를 유지하면서 자신을 위해 창조한 환상을 제외한 모든 환상을 잃었지만, 그녀는 그 환상만큼은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녀를 명령에 따라 작동하고 새 명령이 주어지지 않으면 멈출 수 없는 기계로 취급한 냉혹한 자들의 영향력에 저항할 수 있게 해준 자신의 자존감에 대해 진심으로 신에게 감사했다.
“내가 즐거울 땐 계속 웃을 거고 나의 빈약한 지적 능력을 계속 사용할 거야.”
작가 소개
지은이 : E. H. 영
1880년 영국 노섬벌랜드에서 선박 중개인의 딸로 태어났다. 웨일스의 게이츠헤드 고등학교와 펜로스 대학에서 공부했다. 1902년 변호사인 존 대니엘과 결혼한 뒤 《미스 몰》(1930)을 포함한 영의 소설 대부분의 실제 배경이 되는 브리스틀의 클리프턴으로 이주했다. 제1차 세계대전이 벌어지자 군수품 공장에서 일했고 1917년 전쟁 중에 남편을 잃었다. 이후 런던으로 이주해 남편의 친구였던 랠프 헨더슨과 그의 아내까지 세 명이서 동거를 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공립학교 교장으로 일하던 헨더슨이 은퇴하자 영은 헨더슨과 윌트셔로 이사해 여생을 보냈다. 날카로운 유머로 집 안을 꿰매는 가정부 ‘미스 몰’이 주인공인 《미스 몰》은 자기 연민을 허락하지 않는 자리에 채워 넣는 자존감에 대해 말하는 소설로, 영에게 제임스 테이트 블랙 기념상을 안겨주었다. 당시 여성의 사회 진출은 이전보다 늘었지만 그 역할이 제한되거나 폄훼되기 일쑤였는데, 영은 여성참정권 운동의 적극적인 지지자로서 이러한 현실을 날카로운 통찰로 되짚었다. 그 밖의 주요 작품으로는 《밀알》(1910), 《저곳에》(1912), 《황무지의 불》(1916), 《윌리엄》(1925), 《목사의 딸》(1928), 《채터턴 광장》(1947) 등이 있다. 1949년 윌트셔에서 폐암으로 사망했다.
목차
미스 몰
해설 | 나 스스로 즐거워하지 못한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