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십대를 위협하는 학교폭력을 주제로 한 다섯 편의 짧은 이야기를 모은 단편집이다. 십대가 하루의 대부분을 머무르는 곳이지만, 어떤 누군가에게는 두렵기만 한 학교의 현재를 독특한 상상력과 날카로운 문제의식을 담아 바라본다. 이번 앤솔로지에는 다채롭고 기발한 이야기로 청소년문학의 새로운 지평을 열고, 여러 문학상을 수상해 문학성을 인정받으며 독자들에게도 큰 사랑을 받고 있는 이진, 주원규, 김의경, 김설아, 정명섭 작가가 참여했다.
다섯 작가가 들려주는 학교폭력 이야기는 왕따, 학교 내 무법자, 성매매 같은 현실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물론이고 피해자 캠프, 뱀파이어의 복수까지 다양하고 폭넓게 펼쳐진다. 그리고 그 속에서 십대들이 겪고 있는 고민과 어려움을 이야기한다.
다섯 작가의 눈에 비친 위태로운 학교에는 내 이야기를 들어줄 누군가를 간절히 기다리는 아이도, 나를 괴롭히는 가해자에게 복수하고 싶은 아이도, 친구의 고통을 외면하며 또 다른 폭력에 노출되어 있는 아이도 있다. 이들을 통해 작가는 학교폭력의 현실을 환기시키는 동시에 지금이야말로 고통과 두려움에 떠는 십대의 손을 단단히 붙잡아 줄 때라는 메시지를 호소력 있게 전한다.
출판사 리뷰
방향 없는 폭력 앞에 무방비하게 놓인 십대들
다섯 작가의 시선으로 전하는 위태로운 학교 이야기
학교는 어른들은 모르는 전쟁터가 되어 버렸다. 중고등학생은 물론이고 초등학생, 심지어 유치원생까지 학교폭력에 시달리는 아이들이 늘었다. 게다가 폭력의 세기는 갈수록 심해지고, 그 양상도 다양해지고 있다.
『마이너스 스쿨』은 이처럼 폭력으로 얼룩진 학교 안에 담긴 고민과 비밀을 이야기하는 소설집이다. 학교 안팎에서 학생들 사이에 벌어지는 여러 폭력의 모습을 그려냈다. 십대에게 지금 학교는 어떤 곳인지, 그 속에서 벌어지는 폭력에 대해 얼마나 자유롭다고 말할 수 있는지 등 학교폭력을 바라보는 다섯 작가의 시선을 엿볼 수 있다.
신체적인 폭력뿐만 아니라 따돌림, 언어폭력, 사이버폭력 같은 일들은 청소년들의 마음에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긴다. 폭력의 피해자가 훗날 가해자가 되는 일도 빈번하다. 피해자, 가해자와 마찬가지로 방관자 역시 폭력의 그림자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그야말로 지옥 같은 학교에서 살아남기 위해 아이들은 폭력을 방관하고 상처를 주고받으며 서로가 서로에게 가해자이면서 피해자가 된다.
학교폭력의 중심에 있는 친구는 끝없이 계속 이어지는 깜깜한 밤에 사막을 걷는 기분으로 하루하루를 간신히 버틴다. 학교라는 지옥에서 내일이 보이지 않는다는 십대에게 우리는 지금 어떤 말을 해 줄 수 있을까? 『마이너스 스쿨』의 다섯 이야기가 남긴 질문들은 그럼에도 오늘을 지나 내일을 살아가야 하는 청소년들에게 꼭 필요한 힘이 되어 줄 것이다.
“어차피 세상은 정글이야. 가해자 아니면 피해자.
폭력은 반복되는 거고.“
이진의 「옥상 아래 그 언니」는 SNS에 쓴 기억도 나지 않는 한 줄 때문에 반에서 이름 없는 유령이 되어 버린 소녀의 이야기다. 괴롭힘을 견디지 못해 옥상으로 달려갔다가 이상한 언니를 만나면서 그동안 혼자 견뎌야만 했던 외로움을 조금씩 치유받는다.
주원규의 「매우 도덕적인 캠프」는 엄마의 성화에 못 이겨 단 일주일 만에 참가자들을 ‘멘털 갑’으로 만들어 주겠다는 캠프에 참가한 동호의 일주일을 담았다. 캠프에서 동호는 지금껏 자신이 학교폭력에 전혀 무관하다고 착각을 하고 있던 것은 아닌지 돌아본다.
김의경의 「나비」는 지적장애를 가진 친구 ‘나비’를 이용해 성매매를 하게 되는 세 여고생의 이야기이다. 처음에는 죄책감이 들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자신들이 나비에게 저지르고 있는 일에 점점 무감각해해지는 모습은 오늘날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한다.
김설아의 「뱀희」는 전혀 눈에 띄지 않는 평범한 소녀 범희가 폭력의 희생자가 된 뒤에 학교에 남은 이들에게 벌어지는 이야기이다. 사실 오랫동안 열여덟 살로 살아온 뱀파이어인 범희는 피해자로 남기보다 오히려 자신을 괴롭힌 가해자들을 부숴 버리는 것을 택한다.
정명섭의 「즐거운 나의 학교」는 전학생인 안상태가 학교의 지배자로 군림해 온 대니 최 습격 사건의 범인을 찾는 과정을 담았다. 사건을 파헤치면서 그 속에 얽힌 여러 가지 상황들이 사회에서 일어나는 폭력과 크게 다르지 않음을 깨닫는다.
이처럼 이번 소설집으로 작가들은 방향 없는 폭력 앞에 무방비하게 놓인 십대들의 모습과 학교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폭력의 내밀한 모습을 들여다본다.
어째서 우리는 자꾸 스스로를 해코지하려 드는 걸까? 그건 아마 누구도 우리의 말을 들어 주지 않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끊임없이 무시당하고 얻어맞은 끝에 번데기처럼 단단한 껍질로 몸을 보호하고 깊은 곳으로 꽁꽁 숨어든 우리의 말과 존재는 날카로운 칼로 상처를 내고 헤집어 억지로 끄집어내는 수밖에는 없다.
“자꾸 나쁜 상상을 하게 돼요.”
나는 코를 훌쩍이며 중얼거렸다.
“어떤 상상?”
“옥상에서 떨어져 죽는 상상이요. 진짜 안 좋은 습관인 건 아는데…… 멈출 수가 없어요.”
나는 살면서 아무에게도 해 본 적 없는 말을 언니에게 털어놓았다. 뉴스에서 나의 죽음을 대대적으로 보도하고, 비로소 사실을 알게 된 엄마와 아빠가 가슴을 치며 후회하고, 그 애와 패거리가 나에게 한 짓과 신상이 털리고 욕을 먹고 학교와 직장에서 쫓겨나는 통쾌한 상상까지 전부 이야기했다. 언니는 묵묵히 내 이야기를 끝까지 듣더니 조용히 말했다.
“너도 그랬구나.”
언니의 짧고 덤덤한 말이 가슴 깊이 스며들었다. 언니도 나와 같았다.
“짜증나네. 그건 내가 90분 전에 말했잖아요. 난 실제로 학폭을 당한 적이 없다고요!”
“아니지. 그건 답이 아니야. 내가 90분 전에 말하지 않았던가? 잠정적으로 불우한 환경에
처한 이들이 기생충처럼 이 사회에서 나쁜 공기를 뿜어 대는 이상 학폭은 멈추지 않는다고.”
“그게 또 무슨 말이에요?”
“학폭은 차이에서 오는 거야. 낙오자들이 낳은 자식에게서 열등감, 피해 의식, 그런 게 쩔어서 포텐 터지는 게 학폭이라고! 거기에 한 가지 더.”
동호가 또 뭘 따져 물으려고 입술을 움직이자 선글라스 남자가 동호의 말을 가로막고 빠르게 이어 붙였다.
“학폭은 잠재적인 시한폭탄과 같아. 못 배우고 천성이 못된 개새끼들, 더럽고 지저분한 환경에서 먹고 자라고 산 쓰레기 새끼들은 무슨 수를 쓰든 학폭 가해자가 되거나 커서 싸패가 되든 범죄자가 되든 할 거란 말이야. 그런 새끼들이 활개 치고 다니는 이 빌어먹을 평준화 학교에서 학폭은 당연히 있는 거야. 넌 이미 피해를 당한 거고. 안 그래?”
그렇게 따지면요, 아니 만약에 선생님 말이 사실이라 가정하면 나도 다른 애들한테 학폭 가해자일 수밖에 없어요. 제가 그렇게 행동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해도요.
연미는 채팅 앱을 깔고 나비를 살 남자를 물색했다. 채팅창에 ‘168cm, 50kg, 긴 생머리 청순한 스타일, 17세 숫처녀’라고 띄우자 5초도 안 되어 수많은 아이디가 접속해 왔다.
“스무 살이잖아?”
내 물음에 연미는 웃으며 말했다.
“어릴수록 돈을 많이 부를 수 있단 말이야.”
‘20만 원’이라고 혜서가 입력하자 연미가 비싼 거 아니냐고 물었다.
“처음이잖아.”
혜서는 바닥에 앉아 과자를 먹고 있는 나비에게 물었다.
“너 아직 남자하고 자 본 적 없지?”
무슨 말인지 아는지 모르는지 나비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비는 실실 웃으며 혜서가 준 나비 사진에 코를 처박았다.
나는 나비를 보며 생각했다. 곧 나비의 날개가 꺾일까. 그러면 영영 날아가지 못하게 될까. 날개 따위 바스러져도 나비는 비명조차 지를 수 없다. 나비가 자신을 표현하는 방법은 오로지 연약한 날개를 팔랑이는 것뿐이다. 날개가 바스러진 나비는 차라리 죽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작가 소개
지은이 : 주원규
서울에서 태어나 2009년부터 소설을 발표하며 본격적인 글쓰기를 시작했다. 2017년 tvN 드라마 〈아르곤〉을 집필했고, 2019년 『반인간선언』을 원작으로 한 OCN 오리지널 드라마 〈모두의 거짓말〉의 기획에 참여했다. 2011년부터 꾸준히 가출 청소년을 만나 글쓰기를 가르치며 그들의 목소리를 듣고 기록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제14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인 『열외인종 잔혹사』를 비롯해 장편소설 『메이드 인 강남』 『반인간선언』 『특별관리대상자』 『기억의 문』 『무력소년생존기』 『크리스마스 캐럴』, 청소년소설 『한 개 모자란 키스』 『주유천하 탐정기』 『아지트』, 청소년 인터뷰집 『아이 괴물 희생자』 『힘내지 않아도 괜찮아』, 평론집 『성역과 바벨』, 번역서 『원전에 가장 가까운 탈무드』 등이 있다.
지은이 : 김설아
1980년생. 부산에서 태어났다. 2004년 〈현대문학〉 신인 추천 단편 소설 부분에 당선되어 글을 쓰게 되었다. 밤낮으로 이야기를 생각하고 틈만 나면 책을 읽고 글을 쓴다. 쓴 글들은 대부분 책상 서랍 안에 있지만 가끔 지면에 발표되는 글로 돈을 받기도 한다. 혼자 지은 책으로는 장편 소설 《공작새에게 먹이 주는 소녀》, 단편집 《고양이 대왕》이 있다. 같이 지은 책으로는 《피크》, 《캣캣캣》, 《당신의 떡볶이로부터》가 있다.
지은이 : 정명섭
인문학과 소설, 픽션과 팩션, 다큐멘터리와 드라마를 넘나들며 글을 쓰고 있습니다. 처음부터 작가였던 건 아니에요. 대기업에서 샐러리맨도 해보고 바리스타로 10년 동안 일하기도 했습니다. 요즘 가장 재밌는 일은 학교나 도서관에 강연을 나가 어린 친구들을 만나는 겁니다. 『우리 반 홍범도』, 『어린 만세꾼』, 『38년 왜란과 호란 사이』, 『오래된 서울을 그리다』, 『교과서에 나오지 않는 조선 사건 실록』, 『훈민정음 해례본을 찾아라』, 『역사 탐험대, 일제의 흔적을 찾아라』 등 어린이 책과 역사추리소설 『온달장군 살인사건』, 『적패』, 『개봉동 명탐정』, 『유품정리사』, 『한성 프리메이슨』, 『상해임시정부』, 『살아서 가야 한다』, 『달이 부서진 밤』, 『미스 손탁』 등을 썼습니다. 『무너진 아파트의 아이들』, 『불 꺼진 아파트의 아이들』 등 환경과 재난을 다룬 동화도 줄기차게 쓰고 있습니다.
지은이 : 이진
서울에서 태어나 대학에서 디자인과 영상이론을 공부했다. 2012년 장편 소설 《원더랜드 대모험》으로 제6회 블루픽션상을 수상하며 등단했다. 2014년 청소년 장편 소설 《아르주만드 뷰티 살롱》을 냈으며, 2017년 1960년대 미 군부대 클럽에서 활동하던 연예인들의 삶을 그린 장편소설 《기타 부기 셔플》로 제5회 수림문학상을 수상했다. 2020년에는 청소년 장편 소설 《카페, 공장》을 썼다. 그 외 공저 단편집 《콤플렉스의 밀도》, 《소녀를 위한 페미니즘》이 있다.
지은이 : 김의경
한국경제 청년신춘문예에 『청춘 파산』으로 등단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콜센터』로 제6회 수림문학상을 수상했으며, 지은 책으로 『쇼룸』과 단편 앤솔러지 『당신의 떡볶이로부터』가 있다.
목차
이진_옥상 아래 그 언니
주원규_아주 도덕적인 캠프
김의경_나비
김설아_뱀희
정명섭_즐거운 나의 학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