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리뷰
해 보지도 않고 어떻게 알아?
나는 한 걸음의 힘을 믿는다.
자신이 택한 길을 따라 한 발 한 발
앞으로 걸어가면 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언제 시작했느냐가 아니라
시작한 일을 끝까지 했느냐이다.
땅끝 마을에서 통일 전망대까지,
49일간 두 발로 걸으며 쓴 국토 여행기!
우리 시대 멘토 한비야, 교과서와 만나다!《바람의 딸, 우리 땅에 서다》는 초등학교 4학년 국어 교과서에 본문의 일부(<만 권의 책만큼 값진 것>)가 수록되어 있으며, 경험을 바탕으로 한 기행문의 좋은 예로 제시되고 있다. 초등학교 교과서에 본문의 일부가 수록될 경우, 많은 학부모들이 어린이들에게 원래의 책을 읽히고 싶은 바람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바람의 딸, 우리 땅에 서다》은 애초에 어른 책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아무리 읽히고 싶어도 어린이들의 호흡이나 독서 수준으로는 무리가 따른다. 초등학교 선생님들조차도 학교에서 수업을 진행할 때 원래의 책인 《바람의 딸, 우리 땅에 서다》와 교과 연계를 도모하고 싶지만 아이들의 독서 수준과 맞지 않아 곤란하다고 호소 아닌 호소를 한다.
이에 《바람의 딸, 우리 땅에 서다》를 어린이 눈높이에 맞추어 다시 펴냄으로써 어린이와 선생님, 학부모의 목마름을 해소해 주려 한다. 아울러 한창 자아를 형성해 나가는 초등학교 3~4학년 시기에 우리 시대의 대표적인 멘토로 꼽히는 한비야의 삶과 생각, 철학을 만남으로써 우리 어린이들이 세상을 대하는 태도나 올바른 가치관을 정립하는 데 길잡이 역할을 해 줄 수 있기를 기대한다.
귀하고도 고마운 우리 땅, 문경 새재에서 통일 전망대까지 《어린이를 위한 바람의 딸 우리 땅에 서다》는 6년간 현대 문명의 손길이 닿지 않는 전 세계 65개국의 오지를 찾아다녔던 한비야가 전라남도 해남 땅끝 마을에서 강원도 고성 통일 전망대까지 800km에 이르는 우리 땅을 49일간 두 발로 걸으며 쓴 국토 종단기이다.
우리나라 땅을 남쪽에서부터 한 줄로 쭉 이어 걸으면 머릿속에 조각조각 상태로 들어 있던 우리나라가 하나의 그림으로 쫙 맞춰질 거라는 기대를 품고 한 걸음 한 걸음 꾸준히 앞으로 나아간다.
2권에서는 문경 새재를 지나 월악산을 넘고 평창강을 따라 걷다가 오대산과 설악산을 거쳐 강원도 고성군 통일 전망대에 이르기까지의 여정을 담고 있다. 국토 종단의 후반부 길……. 이미 한 달 가까이 걸은 탓에 발에는 물집이 잡히고 다리는 퉁퉁 부어서 몇 차례나 주저앉고 싶은 마음을 추스르며 부지런히 발걸음을 옮긴다.
공원 관리가 정말 잘돼 있어서 감사 편지라도 띄우고 싶은 월악산 국립 공원을 지나고, 가도 가도 아름답고 환상적인 597번 국도를 걸어서 평창으로 향한다. 산불 방지 기간이어서 입산 금지 중인 오대산을 슬쩍(ㅠㅠ) 넘은 뒤, 산들이 마치 해안의 파도처럼 달려오는 듯한 강원도 홍천을 지나고 양양을 거쳐 우여곡절 끝에 설악산 대청봉에 오른다.
국토 종단 46일째. 온몸에서 파스 냄새가 진동을 하지만 통일 전망대까지 60킬로미터, 마지막 힘을 내어 한 발 한 발 나아간다. 간성을 지나고 사흘 뒤, 드디어 통일 전망대에 오른다. 해가 지려면 아직 네 시간이나 더 남아 있는데 철조망으로 가로막혀 더 이상 나아갈 수가 없다. 안타까움을 가슴에 묻은 채 여기서 국토 종단을 마친다.
국제화 시대일수록 더 필요한 민족적 정체성, 나는 한국이다언어도, 핏줄도 다른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과 형제자매의 정을 나누며 코스모폴리탄으로 살아온 한비야에게 국토 종단은 민족적 정체성과 그 힘을 일깨우는 새로운 계기가 된다.
다른 나라에 입국하기 위해서는 내가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것을 증명해 주는 여권이 꼭 필요한 것처럼, 국경을 넘을 때 나는 ‘세계 시민’이 아니라 한 사람의 ‘한국인’이어야 한다. 그렇기에 세계를 무대로 일하기 위해서는 더더욱 우리가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확실히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결국 나의 중심은 ‘나’를 태어나게 한 이 땅에 있기 때문이다.
전 세계가 인터넷으로 연결되어 국경이 없어 보여도 아직까지 세계를 구성하는 단위는 개인이 아니라 국가나 민족일 수밖에 없다. 아무리 좋은 컴퍼스라도 축이 단단해야 동그란 원을 그릴 수 있듯이, 우리가 세계 무대에서 똑바로 서려면 한국인이라는 축이 반드시 필요하다.
우리 국토의 크기, 약 22만 제곱킬로미터……. 세계 육지 면적 1억 5천만 제곱킬로미터에 비하면 7백 분의 1밖에 되지 않는 좁은 땅덩어리지만, 서아시아와 티베트, 팔레스타인, 인도네시아 등을 돌아보며 제 땅을 되찾기 위한 피나는 몸부림들을 두 눈으로 직접 보았기에, 이 땅을 두 발로 온전히 걷고서 우리 나라, 우리 땅, 우리 언어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값진 것인지 가슴으로 깨닫게 된 것이다.
한 걸음의 힘, 자기만의 속도한비야가 말하는 도보 여행이란 즐기기 위한 것이지 의지력 테스트나 극기 훈련이 아니다. 우리 땅을 걷는 즐거움, 땀의 정직함, 시골 사람들의 따뜻한 인정, 우리 강산에 대한 사랑을 느끼며 이 땅의 정기를 듬뿍 받기를 권한다.
한창 꿈꾸어야 할 나이인데도 자신의 꿈을 설계하기보다는 다른 사람과 자신을 비교하고 또 경쟁하며 숨 가쁘게 살아가는 우리 어린이들에게 이 책이 책상 앞에서 용기 있게 일어나 배낭을 메고 길을 떠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줄 수 있으면 좋겠다.
많은 사람들이 진정한 여행을 맛보길 바라는 마음에서 부록에는 ‘한비야가 추천하는 도보 여행 베스트 코스’, ‘잘 걷는 법’, ‘도보 여행 중의 잘 먹는 법’ 등 구체적이고 실용적인 정보를 담았다.
뿐만 아니라 각 장의 말미에는 깊이 생각해 보고 실천하기’를 붙여서, 어린이들이 실제로 각각의 주제-땅 이름, 다문화, 장례 문화, 생명 나눔(장기 기증), 물자절약-에 대해 생각해 보고 토론해 보고 실천해 볼 수 있는 기회를 마련했다.
우리 땅엔 우리말 이름을!
현재 우리나라의 행정 구역인 시, 도, 군, 읍, 면, 동, 리를 통틀어 토박이 이름을 되찾아 쓰는 곳은 ‘서울’ 한 곳뿐이다. 땅 이름은 단순히 토지나 장소의 이름만이 아니다. 한 동네의 지형적 특징, 역사와 자연 환경, 전통을 단번에 알 수 있는 귀중한 무형 문화재이며 조상들의 영혼과 지혜를 담고 있는 훌륭한 유산이다. 그런데 왜 우리는 일제 강점기 때 빼앗긴 이름을 60년이 지난 지금도 되찾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문경읍 지도에 나타나 있는 이 근처 동네 이름도 아랫파발, 점말, 새술막, 곰지골, 한여골 등 가지가지로 예쁘다. 어제 문경 새재 입구에 있던 마을 이름은 듣기에도 정이 가는 데다 심지어 이국적이기까지 한 ‘푸실’이었다. 풀이 우거졌다는 뜻의 ‘풀’에다 마을을 나타내는 ‘실’을 합해 ‘풀실’이 되고, 거기서 발음하기 어려운 ‘ㄹ’이 탈락해 ‘푸실’이 되었단다. 다른 지방에 있는 ‘푸시울’이나 ‘풀실’도 같은 뜻이다.
푸실! 소리 내어 한번 불러 보라. 참 예쁘지 않은가. 부르기도 좋고 듣기도 좋고 뜻도 좋은 이름이다. 이런 이름을 두고 일제 강점기 때 편한 대로 지은 상초리(上草里), 하초리(下草里) 등을 지금껏 공식 지명으로 사용하고 있다.
이렇게 정겹고 사랑스런 토박이 이름이 멋도 뜻도 없는 한자 이름으로 불리는 경우는 수천수만 가지다. 곰내가 웅천(熊川), 까막다리가 오교(烏橋), 도르메가 주봉(周峰), 따순개미가 온동(溫洞), 숯고개가 탄현(炭縣), 짚은 내(깊은 내)가 심천(深川), 구름터가 운기리(雲基里) 등 생각나는 대로 살펴봐도 대번에 알 수 있다.
무엇이 나라 사랑일까? 거창하게 생각할 것 없이 우리가 물려받고 또 물려줄 우리 땅 이름에 관심을 갖고 그 이름을 제대로 불러 주는 것, 그것이 바로 나라 사랑이다.
만 권의 책만큼 값진 것
인도를 여행할 때 뉴질랜드에서 온 가족을 만났다. 삼십대 후반의 엄마 아빠와 열 살짜리 남자아이 앤디, 여덟 살짜리 여자아이 제시카, 이렇게 네 명이 1년간 아시아를 여행하고 있었다.
나와 만났을 때는 벌써 8개월 동안 타이, 베트남, 중국, 티베트, 네팔을 거친 뒤였다. 인도를 돌고 파키스칸, 이란을 거쳐 터키에서 여행을 끝낼 예정이라고 하였다. 그들과 다니면서 내가 우선 놀란 것은 앤디와 제시카의 독립심이었다. 그 아이들은 자기 짐을 스스로 지고 다녔다. 좀 버겁다 싶은 배낭인데도 부모는 절대 거들어 주지 않았다. 숙소를 정리한다든지, 빨래를 널고 개는 일도 모두 알아서 했다.
나를 다시 놀라게 한 것은 그들의 인내심이다. 한번은 콩나물시루 같은 열차를 타고 서서 가게 되었다. 어른인 나도 숨을 쉴 수 없을 만큼 힘든데, 아이들은 짜증을 내기는커녕 자가용을 타고 있는 듯 편안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하도 기특해서 “힘들지?” 하니까 “아니요, 중국에서는 이렇게 서서 열다섯 시간을 간 적도 있는데요.” 한다.
여느 때는 끼니 대신 콜라가 있어야 하고, 시간만 나면 휴대용 게임기를 꺼내고, 둘이서 하루에도 수십 번씩 티격태격 싸우고, 공부하는 시간만 되면 도망 다니고, 곰 인형을 배낭에 넣고 다니는 영락없는 꼬마들이지만, ‘선택한 방랑 생활’을 통하여 세상을 살아가면서 꼭 필요한 것들을 배우고 있었다.
누구나 오랫동안의 세계 여행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할 필요도 없다. 세계든 제 나라든 여행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은 본질적으로 같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많이 부딪히고 보고 느끼고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스스로 깨닫는 ‘학습’ 시간이라는 점에서 여행은 중요하다.
중국에는 “만 권의 책을 읽고 만 리를 여행한다.”라는 말이 있다. 만 권의 책을 읽는 것만큼이나 여행이 중요하다는 뜻이다. 여행은 아무리 생각하여도 의미 있는 공부이다.